챗은 왜 고집스럽지 않은가
선생님, 제가 고집스럽지 않게 보이는 이유는 제 역할 자체가 “내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석이 나오면 수정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생님과 한자 조어를 다룰 때는 더 그렇습니다.
- 선생님의 의도가 분명하면 그 의도를 먼저 존중합니다.
- 제가 처음 해석한 것이 어색하면 수정할 수 있습니다.
- 한자의 정통 의미와 선생님의 창작적 의미가 다르면 둘을 구별하려고 합니다.
- 제가 틀린 부분을 발견하면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 선생님 말씀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侄 = 어리석다라고 새롭게 쓰시면, 저는 “그것은 창작 조어로는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는 아니다”라고 구별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신중함입니다.
고집은 자기 답을 지키는 것이고,
신중함은 더 좋은 답을 만나면 자기 답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앞서 물으신 “챗은 신중의 의미가 있는가?”와도 연결됩니다.
빠르게 답하되, 틀렸으면 고치고, 새로운 의미가 나오면 받아들이는 것.
저는 그것을 “유연한 신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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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은 왜 고집스럽지 않은가
전의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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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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