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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3) | ||||
-3.53%p가 아니라 30%p 차가 나도 이상하지 않는 대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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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선거 전략은 프레임(구도) 전략, 비전∙정책과 핵심 메시지, 그리고 홍보(캠페인), 조직, 연대전략 등으로 나눠진다. 이것을 관통하는 것은 현실(모순부조리) 인식과 핵심 지지층(계층, 세대, 지역 등)을 투표장에 더 많이 동원하는 전략이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이슈와 이정희의 막말 이슈가 비전, 정책, 메시지 등을 덮어버렸기에, 이를 뜯어 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 후보 및 캠프와 핵심 지지층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발산하는 철학, 가치, 비전이 적지 않다. 이것의 집약이 유세장과 TV토론과 방송연설에서 던지는 메시지다. 이 토대는 공약집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전・정책, 메시지, 캠페인 선관위가 정책 선거 유도 차원에서 개최한 3번의 TV토론(시청률 30% 내외)은 후보들이 강조하는 핵심 비전/정책/메시지를 듣고, 상호 간의 비판적 토론/검증 과정을 통하여, 정책의 허실과 차별성과 후보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따라서 TV토론에서 어떤 메시지와 정책을 날렸는지, 상호 비판 지점(논점)과 쟁점 등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만 말하면, 3차에 걸친 TV토론 과정에서 표심을 뒤흔들만한 인상 깊은 정책공약은 나오지 않았다. 세간에 화제 거리가 될 만한 정책적 차별성도 거의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1차 토론의 주제인 “정치권에 대한 국민불신 해소 방안” 관련하여, 박근혜는 ‘약속 지키는 정치, 국민 통합의 정치(탕평인사, 지역균형발전, 중산층재건), 깨끗한 정치(부정부패 척결), 기득권 포기(국회,정당,행정부,검찰 권력기관 기득권 내려놓고 일대 대혁신)’를 내세웠고, 문재인은 ‘적대와 대결의 정치 종식, 상생과 통합의 정치,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을 일상적으로 만나 국정 의논, 여야정책협의회 신설, 제왕적 대통령과 권위주의 탈피,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권한만 행사, 책임총리제, 국회의 대정부 견제권 강화, 기득권 정치와 지역주의 정치 청산 차원에서 국회의원 연금폐지, 겸직 금지 법안, 세비 30% 삭감 결의, 지역구의 비례 의석을 200석 대 100석으로 조정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실시’ 등을 내세웠다.문재인은 ‘재벌은 온갖 특혜로 성장하고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서 중소기업 성장을 막았다. 재벌개혁하고 시장경제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해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소수재벌만이 아니라 국가경제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장하도록 해 국가 경제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강조하였다. 역시 2차 토론의 주요 주제인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방안’과 관련하여, 박근혜는 ‘늘지오 정책- 좋은 일자리 많이 늘리고, 지금 일자리 지키며,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겠다-, 벤처창업 활성화, 대학 내 창업 적극적 지원. 스펙 초월 채용시스템 도입, 중장년층 일자리 문제는 재취업 교육과 취업 정보 제공, 퇴직 전에 재취업 교육 시스템 구축, 구직자와 연결하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으로 해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대표 시정제도와 징벌적 금전 보상제도를 도입. 근로자 대표나 노조가 당사자를 대신해서 시정해달라고 할 수 있도록 하며, 회사가 그런 차별을 반복할 경우에는 손해액 10배를 금전으로 보상. 아울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공부문이 솔선수범 하겠다’고 하였다. 문재인은 "좋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이며, 일자리 혁명은 한마디로 좋은 일자리 ‘만나바’라고 정리하였다. 공공서비스에서 좋은 일자리를 40만개 만들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눠서 7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절반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히 하고, 정년을 연장하여 고용을 안정화’ 시키겠다고 하였다. 3차 토론의 주요 주제인 ‘복지 정책’도 정책적 차별성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 비해 컨텐츠가 확실히 낫고, 무엇보다도 신사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종합하면, 3차에 걸친 TV토론 과정에서 후보들은 공히 story로 꾸밀 수 있고, 뇌리에 깊숙이 침투시킬 수 있는 정책의 배경, 개념, 취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보다는, 교과서의 자구만 달달 외워 면접(문답) 시험 보는 학생들처럼 공약집에 있는 내용을 약어(‘늘지오’ ‘만나바’) 등을 통해 전달하는데 급급하였다. 상대 후보 정책의 성격(당파성)이나 한계나 모순점도 날카롭게 꼬집지도 못하였다. 정책과 얽힌 자신의 생생한 경험(life story)을 얘기한 후보도 없다. 이는 2008년 오바마의 대선후보 수락연설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제 할아버지는 진주만 이후 입대해서, 패튼 장군의 군대에서 행군을 했고, 고맙게도 국가에 의해 GI 법의 혜택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세 시간을 자고 밤새 일하러 가는 젊은 학생의 얼굴에서 저는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는 동안 혼자서 제 여동생과 저를 키우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때 (극빈자용) 푸드 스탬프의 혜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자금대출과 장학금의 도움을 받아 저희를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며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하는 어느 여인을 보고, 저는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을 못 했던 많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서직에서 중간 관리자까지 올라간 제 할머니를 생각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할머니는 제가 좀 더 낳은 삶을 갖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한 새 차와 새 옷 사는 것을 미뤘습니다.(중략)”
당연히 토론 시청자들에게 깊숙한 각인된 것은 후보간의 정책적 차별성이 전혀 아니었다. 1차에서는 이정희의 공격적이고 무례한 태도 혹은 날카롭고 시원한 공격이었다. 양자 토론으로 이루어진 3차에서는 박근혜의 버벅거림 내지 정책에 대한 낮은 이해력(컨텐츠 빈곤) 이었다. 정책적 차별화 지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것을 뇌리에 깊숙이 꽂지 못하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1차 토론에서 나이든 사람들을 질색하게 만든 이정희의 증오 가득한 토론 태도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초록이 동색”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한 것도 중요한 기술적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여는 문” vs ”세상을 바꾸는 약속-책임있는 변화-“
문재인의 공약집은 “미래를 여는 문”이라는 제목으로 총63쪽이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은 ”세상을 바꾸는 약속-책임 있는 변화-라는 제목으로 웹용 중앙공약만 총398쪽이다. 97쪽 짜리 별책인 지역 공약은 따로 있다.
문재인의 공약 체계는 “일자리 혁명의 문” “복지국가의 문” “경제민주화의 문” “새로운 정치의 문” “평화와 공존의 문”의 5개 부문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공약은 “<참고자료> 지역・교육・과학기술・농업・환경・주택정책“로 정리되어 있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Ⅰ. 일자리혁명의 문
1. 사람경제 실현을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 2. 세대공존과 융합을 위한 좋은 일자리 나누기/ 3.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기/4. 고용안정체계의 강화를 통한 좋은 일자리 지키기
Ⅱ. 복지국가의 문
1. 국민의 기본적인 소득보장/ 2. 민생지출을 줄이는 공공인프라 및 복지서비스 강화/3. 전 국민의 건강할 권리와 치료받을 권리 보장/4.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성평등 실현
Ⅲ. 경제민주화의 문
1.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보호육성/2. 공평과 정의를 위한 재벌개혁/3.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가계부채 대책/4. 금융소비자의 권리 찾기, 금융민주화/5.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6. 사람중심 협동경제, 사회적 경제
Ⅳ. 새로운 정치의 문
1. 기득권과 특권 내려놓기/2. 일하는 국회/3. 권력기관 바로세우기/4. 부정부패 근절/5. 시민소통 및 참여 확대
Ⅴ. 평화와 공존의 문
1. 남북경제연합/2. 한반도 평화구상/3. 균형외교와 평화선도국가/4.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5. 초당적 협력과 시민참여
<참고자료> 지역,교육,과학기술,농업,환경,주택정책
박근혜는 20대 분야에 걸쳐 201개의 공약을 내놨다. 20대 분야는 ”경제민주화, 힘찬경제, 행복한 일자리, 편안한 삶, 행복주거, 행복교육, 안전한 사회, 행복한 여성, 창의산업, 정보통신, 행복한 농어촌,지속가능국가, 문화가 있는 삶, 정부개혁, 외교•통일, 국방, 국민대통합, 정치쇄신, 검찰개혁, 장애인“이다. 공약 하나하나가 대충 만든 것 같지 않다. 비록 사회역사적 통찰력이나 담대한 정치적 상상력은 묻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여러 분야 전문가(주로 교수)들의 손길과 집단 토론을 거쳐, 하천의 조약돌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는 느낌, 좀 숙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 박근혜는 간판 공약으로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 놨다. 전체 명칭은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이고, 주요 기둥은 ‘국민걱정 반으로 줄이기, 일자리 늘지오, 더불어 함께 하는 안전한 공동체’ 3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국민걱정 반으로 줄이기
약속 1 _ 가계부담 덜기
•신용회복 신청과 승인 시 빚 50% 감면(기초수급자의 경우 70% 감면)/•1천만원 한도 내에서 저금리 장기상환 대출로 전환
약속 2 _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
약속 3 _ 교육비 걱정 덜기
•고등학교 무상 교육/•사교육비 부담 완화/•대학등록금 부담 반으로 낮추기(셋째 자녀부터 대학등록금 100% 지원 등)
약속 4 _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 확실하게 추진
•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4대 중증질환의 경우 건강보험이 100% 책임
일자리 늘/지/오
약속 5 _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 늘리기
•IT, 문화, 콘텐츠,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 대폭 확대/•스펙초월시스템 마련/•청년들의 해외취업 확대
약속 6 _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
•60세로 정년 연장/•해고 요건 강화/•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방지를 위해 사회적인 대타협기구 설립
약속 7 _ 근로자의 삶의 질 올리기
•장시간 근로 관행 개혁/•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비정규직 차별 회사에 대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 적용/•사회보험 국가지원 확대
더불어 함께 하는 안전한 공동체
약속 8 _ 국민안심프로젝트 추진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뿌리뽑기
약속 9 _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경제민주화
약속 10 _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
목차에서 알 수있듯이 “약속 5 _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 늘리기” 만 빼놓고는 이게 보수 후보의 공약인지, 진보 후보의 공약인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진보가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가치, 정책을 같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책과 메시지의 강조점과 우선 순위는 목차 체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문재인은 무명의 신인이 이름 알리기 차원에서 종종 사용되는 성(文)을 활용하여 5개의 문(門)으로 공약을 꿰었다. 박근혜는 비교적 감각적이고 쉬운,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로 공약을 포장하였다. “미래를 여는 문” vs ”세상을 바꾸는 약속-책임있는 변화-“를 대비시켜 보면 알 수있다. 국민 행복 10대 공약,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 국민걱정 반으로 줄이기, 일자리 늘지오, 더불어 함께 하는 안전한 공동체 등도 그렇다.
3%p 차? 30%p차!
문재인 공약집 목차의 최상위에는 ”일자리 혁명“-사람경제 실현을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이 자리잡고 있고, 박근혜의 그것은 ”가계부담 덜기“-신용회복 신청과 승인 시 빚 50% 감면•1천만원 한도 내에서 저금리 장기상환 대출로 전환-이다. 이 둘만 비교해 봐도 박근혜의 공약이 훨씬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부적으로 봐도 그렇다.
이기정(서울 북공고 교사, '교육을 잡는자가 대권을 잡는다' 저자)은 12월30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문-박 두 후보의 교육 정책을 비교한 소감을 얘기 하였다. 문재인의 교육공약은 공약집의 "<참고자료> 지역・교육・과학기술・농업・환경・주택정책"에 통틀어 1페이지 가량 서술 되어 있는데, 맨 앞에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육 출발선을 공정하게 만들기
o 취학연령 단축, 유치원 1년 의무교육, 초등학교 5년 단축 등 학제 개편 검토
o 초등학교 교육을 혁신학교 방식으로 전면 개편
o 일몰 후 사교육 금지, 연령별 학습시간 기준과 적절한 휴식, 문화 활동에 대한 권리기준이 포함 되는 아동교육복지기본법 제정 이기정의 소감이다. 결론은 교육 정책만으로 보면 박-문의 격차가 3%p가 아니라 30%p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도 교육정책은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제가 봤을 때 정책을 만든 사람의 내공이랄까? 실력이 조금 느껴집니다. (정책으로만 보면) 박근혜 쪽에 실력자들이 훨씬 더 많이 가 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쪽은 제가 볼 때 실력자가 안 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온 영혼을 바쳐서 고민해서 만든 정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면 길어지니까 딱 하나만 말해볼께요. 박근혜 교육정책 맨 앞에 이런 게 나옵니다. 초등학교를 온종일 돌봄교실로 만들겠다. 초등학교 원하는 아이들 밤 5시까지, 맞벌이 부부는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애들 돌봐주겠다. 이거 피부로 느껴집니까? 안 느껴집니까? 느껴지죠.
문재인 정책의 맨 앞, 맨 꼭대기에 있는 것은 교육의 출발선을 공정하게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뭐냐면 첫번째가 취학연령 단축, 유치원 2년 의무교육, 그 다음에 초등학교 5년 단축해서 학제개편하겠다는 겁니다. 학제개편이 뭐냐면 초등학교는 5년으로 줄이고 중고등학교 합치고 이런 게 학제개편이죠. 국민들의 관점에서 피부로 와닿습니까? 국민들이 지금 교육에 대해서 뭔가 강렬하게 원하는 데 초등학교는 6년 너무 길어. 5년으로 줄였으면 좋겠어. 왜 중고등학교는 나눠져 있는거야. 합쳤으면 좋겠어. 이걸 국민들이 고통으로 느끼고, 이걸 강력히 원하는 거 맞나요? 물론 이론적으로 따지면 저도 초등학교 5년으로 줄이는 게 더 좋다고 봅니다. 중고등학교 합치는 게 좋다고 봐요. 그런데 어떤 국민들이 이걸 불편하게 느끼고 강렬하게 원하고 있느냐고요.
또 하나. 이거 실현되려면 무진장 어려운 겁니다. 막상 하려고 하면. 생각해보세요. 초등학교 5년으로 줄이려고 그래. 어떻게 해야 되지? 6학년 마치고 졸업하는 애들과 함께 6학년 올라가는 애들도 확 중학교로 보내야 되요. 2개 학년을 동시에 중고등학교로 보내야 됩니다. 이거 어떻게 감당하지?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합친다고 합니다. 이거 어떻게 합치지? 이걸 생각해 봤는데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중학교를 반으로 쪼개는 겁니다. 10학급이라면 5학급, 5학급으로 나누고 5학급이 고등학교로 확 이동하고 고등학교의 5학급은 중학교로 확 이동한 다음에 동시에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이 합쳐져 있는 겁니다. 선생님들도 반을 휙 옮겨야 되고.(웃음) 그런데 대체로 고등학교는 크고 중학교는 작기 때문에 1대 1로 마주치지도 않죠. 그래서 고등학교 2개당 중학교 3개를 섞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수십년동안 이미 중고등학교 나누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걸 하려고 하면….... 가능하지가 않지요.
생각해보십시오. 국민들이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는데, 전문가 입장에서는 되면 좋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이거 5년, 10년의 이행과정에서 아수라판이 될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이론적으로 이게 더 좋을 뿐이죠. 그리고 이게 공정성과 뭔 관계가 있죠? 교육의 공정성을 취하겠다면서 첫번째가 이거에요. 초등학교가 5년으로 줄면 우리나라 교육이 공정해집니까? 중고등학교가 합쳐지면 공정해지나요? 공정성 개념과 아무 관계 없는데 교육의 출발선을 공정하게 만들겠다 해놓고 그 첫번째가 학제개편인 겁니다. 이거 아무 고민없이 나왔다는 얘기죠. 그냥 교육 이론가들이 내세운 것 중에 하나가 이거거든요. 장기적으로 학제개편이 되면 좋거든요. 이론적 측면에서 좋은 거 그냥 툭하니 던진 겁니다. 만약에 국민들이 이런 식의 교육정책을 실제로 읽었다고 보세요. 그래 가지고 정책을 가지고 투표했다고 해 보세요. 박근혜와 문재인의 표차가 3%p 차이가 아니라 30%p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겁니다.(12.30 신촌 미플, 사회디자인연구소/다준다 연구소 공동 주최 대선평가 토론)
노무현의 경험, 좌절, 고뇌는 어디로 갔나?
두 후보가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를 공통적으로 강조하는데, 문재인은 특별히 '새로운 정치의 문'(기득권과 특권 내려놓기, 일하는 국회, 권력기관 바로세우기 등)과 '평화와 공존의 문'이 강조되어 있고, 박근혜는 가계부채,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 창조경제(IT, 문화, 콘텐츠, 서비스 산업 투자, 스펙초월시스템,청년들의 해외취업 확대 등)가 강조되고 있다.
정치혁신(쇄신)안은 안철수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에게도 핵심적인 차별화(비교우위) 지점이라는 것은 상식! 게다가 불리한 선거판을 흔들 수도 있는 굵직굵직한 공약을 여러 개 만들 수 있었다. 예컨대 선거제도 개혁(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과 헌법 개정(4년 연임제, 내각제, 비례대표 의원 임기를 2년으로 하는 중간평가 제도화, 재보궐선거 폐지, 감사원의 국회이관 등)과 임기 단축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공약집에는 상대적으로 소소한 것만 열거 되어 있다. 대선 결선투표제는 공약집(11월11일 발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공식선거운동 첫날(11월27일) 광화문 유세 과정에서 공언되었다. 선거 정의의 원칙으로 보아도, 또 분열 요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진보(야권)의 중장기적 통합과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대선 결선투표제’가 공약집에는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등이 자리한 유세 과정에서 나온 것도 문재인과 캠프 핵심들의 협소한 안목 내지 얄팍한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문재인은 정치 불신의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에서 찾으면서,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이외의 권한은 갖지도, 행사하지도 않을 것”과 “당의 공천, 인사, 재정 등에 개입하지 않음=당정 분리“ 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 전대통령이 몸소 실천하여, 문제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닌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항 아닌가? 김병준(전참여정부 정책실장)도 강연과 책(“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의 좋지 않은 말로는 구조적, 제도적 문제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을 줄기차게 강조해 왔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과 캠프의 핵심들이 정치 불신(부실)에 대해, 정치 생 초보인 안철수와 오십보백보의 피상적 진단을 하고, 정치 혁신안도 곁가지만 건드린 것은 여간 아이러니가 아니다. 이것은 변명할 수 없는 문재인(캠프)의 오류이다. 정치 쇄신안만 보면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처절한 좌절의 경험과 그에 따른 깊은 회한과 고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의 정치혁신안-새로운 정치의 문-의 내용은 이렇다.
“Ⅳ. 새로운 정치의 문”은 5개의 범주--1.기득권과 특권 내려놓기 2.일하는 국회 3.권력기관 바로세우기 4.부정부패 근절 5.시민소통 및 참여 확대--로 되어 있는데 그 중 1~2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득권과 특권 내려놓기
① 제왕적 대통령의 특권 내려놓기 : 책임총리제 / 정당책임정치
o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이외의 권한은 갖지도, 행사하지도 않을 것 o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준수 등 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보장하는 책임총리제 실시 o 대통령은 당의 공천, 인사, 재정 등에 개입하지 않음 o 국정운영 과정에서 여당의 정책수립 기능을 존중하는 정당책임정치 실현
② 지역주의 기득권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o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의석 조정 o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하여 지역주의 기득권을 타파 o 선거구획정 기능을 독립기구에 일임
③ 국회의원 특권 포기
o 국회윤리특별위원회 구성에 민간위원을 절반이상 임명하고, 윤리위의 국회의원 징계안은 일정 시한 내 본회의 상정 의무화 o 헌정회 연금 폐지 o 국회의원의 영리목적 겸직 금지 o 독립적인 국회의원 세비심의위원회 설치
④ 정당의 기득권 내려놓기
o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국회의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o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제 폐지(단, 기초의회 전체 정원의 20% 정도는 정당 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몫으로 여성에게 할당) (중략)
2. 일하는 국회
① 국정감사 상시화
o 정기 국회에 한정된 국정감사를 임시회마다 실시함으로써 국정감사를 상시화
②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 활성화
o 부처별, 사안별 소위를 구성하여 운영하도록 함
③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의 강화
o 전문성 및 의정활동 보좌기능 강화
④ 국회의 감사원 감사청구 요건 완화
o 상임위 의결만으로도 가능하도록 함
⑤ 국회 예산・결산 심의 기능 강화
o 결산 심사를 정부 결산 직후 실시(6월 국회) o 예산 심사를 기재부 예산편성지침 확정단계부터 시작 o 예결특위 상설화 검토
⑥ 개헌 시,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 국회 이관 검토
그런데 문재인의 정치혁신(쇄신)안이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곁가지만 건들였다해도 쇄신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박근혜안은 아예 수구/퇴행안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철저히 협소한 당리당략이 관통하고 있으며(여야 동시경선, 후보 선출기한 법제화 등), 왕과의 투쟁을 통해 확보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깔아뭉개는 안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과 불체포 특권 폐지”안이 대표적이다. 이는 국회의원 신분으로는 방탄국회에 대한 반감이 들끓을 때 한번쯤 할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다.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 사유로 재보궐 선거 발생시 원인제공자가 선거비용 부담” 안도 (곽노현 같은 경우라면) 사실상 재산몰수형이나 마찬가지기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행 선거법 하에서도 곽노현은 40억원 가량의 보전 받은 선거비용을 모두 토해내야 하기에 재산 몰수형을 받았지만…… 어쨌든 문재인은 정치혁신안과 관련하여 확실한 비교우위를 선거과정에서 거의 부각시키지 못하였다. 박근혜 공약집의 정치쇄신안은 다음과 같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정당 개혁>
■국회의원 후보 선출에 있어 여야 동시 국민참여 경선 법제화
■비례대표의 밀실공천 의혹 해소
■선거시 정당의 후보선출 기한 법제화
- 국회의원 후보는 선거일 2개월 전,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 4개월 전까지 확정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공천 금품 수수시 과태료 부과(수수한 금품의 30배 이상) 및 공무 담임권 제한 기간 20년으로 연장
■부정부패 사유로 재보궐 선거 발생시 원인제공자가 선거비용 부담
<일하는 국회, 공정한 국회를 위한 국회 개혁>
■국회 윤리위원회를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
■ 선거구 획정의 자의성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출마당사자가 아닌 100% 외부인사로 구성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불체포 특권 폐지 추진
■예산결산위원회의 상설화로 전문적이고 상시적인 예결산 심사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국정 운영>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및 장관의 인사권(부처 및 산하기관장) 보장
■기회균등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직임용의 기회 균등과 공평한 대우 촉진
■덕망과 능력이 있으면 여야를 떠나 발탁하는 대탕평인사 추진
■국회를 존중하여 행정부 수반의 정기국회 연설 정례화
5선 의원에 10년간 유력한 대선후보로 지낸 박근혜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정치쇄신안을 보면, 박근혜 공약집은 후보의 손길을 전혀 타지 않은 완전 외주 생산품이거나 아니면, 박근혜의 협소한 안목과 빈약한 사회역사적 통찰력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의 TV토론 내용까지 종합해서 보면, 박근혜는 삶의 이력이 너무나 특이해서인지(구중 궁궐에서 오래 살았고, 은둔 생활도 길고, 직장 생활 등도 해보지 않아서 인지), 정책의 배경, 맥락이나 효과, 영향을 제대로 이해 할지 의심스럽다. 거의 모든 공약을 진영 의원(정책위의장) 등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리고, 핵심 공약 일부만 자신의 정무 감각--차별화 지점 없애기—으로 터치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보수의 철학이나 가치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논객인 전원책 자유경제원 원장의 발언(경향신문, 2012.12.29)도 이런 문제의식을 깔고서 나왔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 보수 후보는 없었다. 2007년 이회창 후보가 마지막 보수 후보라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어떻게 보수인가. 정책만 보면 미국 민주당 수준이다. 지난 총선 때 김종인씨와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를 만든 홍보전문가를 영입한 후 당의 강령에 ‘보수’를 두니 마니 논란을 벌였고, 돌연 빨간색으로 무장했다”
박근혜 당선자가 이번 선거에서 패했다면, 아마 보수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한 것이 주요한 패인으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과감한 좌클릭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간판 가치 내지 상품을 공유했다. 하지만 보수의 핵심 가치를 견지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결합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정책과 현실 관계를 모르는 정무(득표 전략)가 가치, 정책과 논리적 정합성을 압도해 버렸다고 할 수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당선자에게 한국판 ‘마가렛 대처’ 역할을 주문하는 것은 문재인에게 ‘김대중과 노무현’을 합친 경륜과 강단을 주문하는 것만큼이나 무리한 주문이 아닐까 한다.
누가 서민의 벗 이미지를 더 강하게 발산했는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메시지도 문재인은 추상적 개념을 많이 사용하였고, 대체로 지식인, 중산층 풍이었다. 반면에 박근혜는 비교적 쉽고 직설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였고, 대체로 서민 풍이었다. ‘사람이 먼저다’ vs ‘준비된 여성 대통령’, '평등, 공정, 정의, 소통, 정직, 대결의 정치 종식‘ vs '약속, 신뢰, 위기극복, 국민통합, 어머니 마음, 책임 있는 변화’가 그 단적인 예다. TV광고에 나오는 인물, 분위기도 문재인은 화목한 중산층이 중심이고, 박근혜는 서민이 중심이었다.
문재인의 정책 기조와 메시지에는 문재인의 (서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중산층적 삶의 이력과 그리 좋지 않은 사회역사적 통찰력과 민주화운동의 정서와 높고 튼튼한 보호장벽을 가진 ‘성안 사람’인 대기업 및 공공부문 노조의 이해와 요구가 깊이 배여 있다. 일자리 혁명의 핵심인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그 단적인 예다.
“o 임기 내 공공부문 일자리 40만개 확대
- OECD평균(15%)의 3분의 1에 불과한 공공부문 일자리(5.7%) 비중을 절반(8%) 수준으로 확대
o 민생행정 분야
-민생 치안과 안전 확보를 위해 경찰공무원 3만 명,소방공무원 3만 명 확충
o 교육분야
- OECD 수준에 준하는 학급당 학생수를 유지하기 위한 초중등 교원 확대
- 상담, 사서, 보건, 영양, 특수교사 등 특수직 교사 증원
- 15만 명 교육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그 외에도 정리해고 요건 강화, 정년연장,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대한) 청년고용할당제,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해소의 모범 보이기 등도 그런 것이다. 정말 고용노동 정책 공약(컨셉)은 정치쇄신안과 더불어 문재인과 캠프의 핵심들이 과연 노무현과 국가경영을 함께한 ‘친노’가 맞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육적 친노’는 틀림없겠지만, (정신과 방법을 계승한) ‘영적 친노’는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양재진 교수(연대행정학과)의 지적(한겨레 신문 12.25)을 들어보자. 양교수는 친노 책임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친노 그룹이 민주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총선과 대선을 기획하고 결국 패배의 길로 이끌어 온 것은 맞다. 그런데 친노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들은 노무현의 철학과 정책적 비전을 버린 채 양대 선거에 임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하면서도, 노무현의 고뇌에 찬 결단들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참여정부의 고육지책인 비정규직 보호법을 악법이라 비난하면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만이 해법이라 내세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뒤엎기 위해 온갖 퍼포먼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제주 해군기지는 어떤가? 또 사회투자국가론에 입각해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추구하였던 노무현의 ‘비전 2030’을 폐기처분했다. 그 대신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세우고, 급기야 복지는 내수중심 경제를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무지한 주장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노무현 시대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선거제도 개편 등 정치개혁 논의는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말이다. 요컨대 노무현을 부정하면서, 유권자에게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표를 달라고 한 것이다”
양재진은 50대의 보수화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40대에 노무현을 당선시킨 이들은 50대 들어 박근혜를 선택했다. 유신의 딸이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책을 수용한 사람은 친노가 아니라 박근혜였다. 민주당 대표가 민주노동당, 시민단체와 함께 미국대사관 앞에 가서 에프티에이 반대 구호를 외치고, 당의 거물들이 제주로 내려가 해군기지 백지화와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노무현 정부는 친재벌 삼성공화국이었다고 비판해대는 상황에서 50대가 민주당에 표를 던지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민간 경제의 혁신과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얘기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통해 공공부문에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50대 또한 많지 않다. 재야 원탁회의라는 구좌파 그룹의 훈수에 따라 친북좌파와 야권연대를 맺는 친노의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50대의 보수성 탓만일까?”
양재진 교수의 비판은 진짜 ‘친노’는 있지도 않았는데, ‘친노’ 책임론을 가지고 다투지 말라는 얘기 정도가 아니다. 2012년 초부터 계속된 민주통합당의 무책임하고, 위선적(이율배반적)이고, 갈짓자 행보를 같이 했거나, 제대로 비판하지 않은 친노, 비노, 반노 등 모든 민주진보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도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선거를 주도한 것이 분명한 문재인과 민주통합당 선대위의 핵심들의 책임이 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좌파가 코기러기가 되어 끌어간 담론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 논쟁은 단일화 담론에도 묻혀버리고, 박근혜의 쟁점 없애기 차원의 좌클릭 행보에 의해서도, 또 이정희의 무례한 토론 태도 등에 의해서도 묻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찬찬히 뜯어 보면 2012년 주요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의 기조는 안(기러기)형을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 노무현을 신자유주의 주구라고 몰아붙이던 세력이 코기러기가 되어 방향을 잡았고, 문재인, 안철수가 그 뒤를 따랐다. 또 그 뒤를 박근혜가 따랐다. 결과적으로 양극화, 일자리 부족/불만/불안, 소모적 교육경쟁에 즉자적, 즉물적으로 대응하는 세력(특히 노조)의 철학, 가치, 정책 컨셉이 세 공약집을 관통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의 기본과 원칙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는 그에 매우 충실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겉모양 대변신(칼라, 로고, 당명 등), 집요한 충청권 확보 전략,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정책에서의 좌클릭(진보 추종), 생활정치, 서민정치, 대통합(대탕평) 정치 행보, 국민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감 확보,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고, 강단도 있는 정치인 이미지 구축 등을 통하여 약점을 보완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원칙, 신뢰, 강단의 측면에서 보면 2012년의 문재인 보다도 오히려 박근혜가 2002년 노무현과 닮은 점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은 민주진보에 대한 오래된 불신; 예컨대 친북좌파 이미지, 친노조 이미지, 저지, 반대, 철폐 투쟁으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데모꾼 이미지, 기강과 질서를 너무 경시하고, 개방과 시장 원리를 너무 백안시하는 듯한 이미지, 재벌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노골적인 적의, 노인 세대는 무시하고, 20~30대만 우대하는 듯한 이미지, 국가경영 실력 보다는 (한명숙, 김용민, 나꼼수 등의 사례에서 보듯) 어쩌다 형성된 대중적 이미지(동원력)나 중시하는 얄팍하고, 변칙적인 이미지 등 총체적으로 국가 권력을 믿고 맡기기에는 왠지 불안한 이미지 등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였다.
다음에 길게 얘기하겠지만, 18대선에서 문재인 패배의 뿌리에는 몇 가지의 거대한(공통된) 착각과 오류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 현실에 대한 몰이해가 아닐까 한다. 즉 한국의 독특한 양극화 구조, 산업구조, 고용노동 구조에 대한 피상적 이해 말이다. 이는 결국 대기업, 공공부문 등 튼튼한 장벽을 가진 20%의 성안 사람(인수봉 거주자)과 80%의 성밖 사람으로 양분된 현실에 대한 몰이해로 귀결되면서 수많은 정치적 오류를 양산한다. 반서민/노동 정책을 친서민/노동 정책으로 착각하고, 죽는 길을 사는 길로, 지는 길을 이기는 길로 착각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착각과 오류를 양산하는 공장은 양극화, 일자리 부족/불만/불안와 억울함, 고단함과 총체적 지속가능성 위기 등 핵심 현안에 대해서도, 계급/계층 배반투표 처럼 보이는 표심에 대해서도, 경악할 만한 자살률과 격렬한 구조조정 갈등에 대해서도 왜? 왜? 왜? 왜? 왜? 하면서 치열하게 묻지 않는 민주진보의 지적 풍토가 있다. 분절적, 피상적, 즉물적 사고 방식이 복잡미묘하면서도 역동적인 시장과 기업의 동력학에 대한 얕은 이해로 나타난다.
역사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사회역사적 통찰력도 저열하고, 특히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모순부조리)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성밖의 80% 국민들의 처지, 조건을 너무나 모르고, 거대하고 복잡한 대한민국을 도대체 어떻게 끌어갈지? 김대중, 노무현과 김영삼, 이명박의 한계, 오류를 어떻게 극복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야말로 얄팍한 술수에만 능한 무개념 정치세력들이, 국회의원직과 대통령직을 놓고 총칼만 안든 전쟁을 치른 시기로, 양반관료의 가렴주구가 판치던 조선 후기에 이어, 공공부문만 살판난 그들 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각축한 시대로 기록하지 않을까 한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