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노랗고 희게 핀 국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
꽃은 아름다워 사랑하는 것이겠지만, 꽃마다 다 좋아하는 뜻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 선비가 꽃을 좋아하는 것이 더욱 그러하였다. 18세기 꽃을 사랑한 문인 어유봉(魚有鳳)은 지금의 대학로 근처 낙산(駱山) 아래 집을 짓고 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꽃을 심었다. 구기자와 국화를 많이 심었다 하여 정원의 이름을 기국원(杞菊園)이라 하고 꽃을 사랑하는 뜻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봄에는 벽도화를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연꽃을 볼 수 있으며, 가을에는 국화를 볼 수 있고, 겨울에는 매화를 볼 수 있다.
벽도화는 꽃 중의 신선이요, 연꽃은 꽃 중의 군자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매화는 아마 이를 모두 겸한 것이리라.
내가 수천 년 후에 태어났으니 옛사람을 만나보고자 해도 볼 수가 없는데, 옛사람이 좋아하던 것을 보면
옛사람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네 가지를 취한 까닭이다. 그러니 깊은 교분을 맺고 그윽한 회포를 의탁하여 날마다 그 곁에서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조리니, 비록 혼자 산다 하더라도 쓸쓸하다는 근심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꽃이 많아지면 그 뿌리와 잎과 꽃과 열매를 채취해서 내 위장을 채우고 내 기운을 북돋운다.
몸이 편안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은 구기자와 국화의 영험한 효험이리라.
천고상우(千古尙友)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곳에 벗이 없기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천 년 전의 사람을 벗으로 삼고자 하지만, 천 년 전의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이 남긴 글을 벗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어유봉이 꽃을 사랑한 뜻 역시 천고상우에 있었다.
국화를 사랑한 옛사람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가 도연명(陶淵明)이다.
도연명은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면서, 여유 있게 남산을 바라본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먹고 입는 문제에 얽매여 남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을 하지 않고 귀거래하여 은일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도연명이다.
국화가 가지는 서리에도 시들지 않는 고상한 절개라는 뜻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이 도연명의 삶과 겹쳐진 것이다.
어유봉은 도연명이 좋아한 국화를 좋아함으로써 도연명의 정신을 배우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국화는 구기자와 함께 뛰어난 약효를 가졌다.
소동파(蘇東坡)도 “나는 이제 구기자와 국화를 양식으로 삼아,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꽃과 열매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겠노라”고한 바 있다.
국화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하여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으니,
정신적으로 국화의 고고함을 배우고 육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니
뜰이나 베란다에 국화 화분 하나 들여놓음직 하지 않겠는가?
건강을 위한 꽃 국화이지만 예전 선비들은 그 곁에 한 잔의 술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도연명이 막걸리에 국화를 띄워 마신 고사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조선 중기의 곧은 선비 권필(權韠)은 세사를 개탄하면서 며칠 연이어 술을 마셨다.
이에 남편의 건강을 근심한 아내가 술을 끊어라 하였다.
권필은
“당신 말이 맞기는 하네만, 국화 꽃가지 두고 어찌하겠소(卿言也復是, 奈此菊枝何)”라 너스레를 떨었다.
국화를 보고 어찌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겠나?
18세기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은 국화의 미덕을 고결한 절조, 오상고절이 아닌 양보하는 마음에서 찾았다.
“봄과 여름 사이에 온갖 꽃들이 꽃송이를 터뜨려 울긋불긋 경쟁을 하므로,
봄바람을 일러 꽃의 질투, 곧 화투(花妬)라 하는데 국화는 묵묵하게 뒤로 물러나 있다가
여러 꽃들이 마음을 다한 후에 홀로 피어나고 바람과 서리에 꺾이는 것을 괴롭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사양하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였다.
현실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한 잔의 술을 두고 한적한 정신을 가슴에 담는 것이 국화를 즐기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를 한 수 읊조리노라면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삶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조선 후기의 가난한 시인 정민교(鄭敏僑)가 쓴
<나락을 걷고 돌아오면서(穫歸)>라는 작품이다.
9월 찬 서리 내리자
남으로 기러기 날아오네.
나는 논에 나락을 걷고
아내는 목면옷을 짓는다.
막걸리는 많이 빚어야겠지
국화는 절로 많이 피리니.
이 한 몸 숨어 살 만하니
백년인생 이렇게 보내리라.
九月寒霜至 南鴻稍稍飛
我收水田稻 妻織木綿衣
白酒須多釀 黃花自不稀
於焉聊可隱 且作百年歸
첫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역시 선배님 다운 좋은 글 잘 만끽하고 갑니다.
국화향 솔솔~~ 풍기는 글이지요?
^^
우리 또한 닮아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 꽃 오상고절의 기질을...^^;
천고상우... 천년전의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이 남긴 글을 벗삼아~~~ 가슴에 닿습니다..
우리의 선인들,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았나요?^^
가난했지만 진정한 멋과 풍류를 알았던 그 님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시포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