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시인의 제4 시조집 『아플 때 피는 꽃』은 고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미학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조를 통해 고통을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중요한 일부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치유와 깨달음의 순간을 부각한다. 김태희 시인의 시조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고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천착한다. 이는 고통의 경험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김태희 시인의 시조의 특징은 고통을 수동적으로 겪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과정으로 그려진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표제 시조인 「아플 때 피는 꽃」에서 그는 “까맣게 은둔했던 유년의 향기부터 / 내 가슴 놓아둔 무넘기의 울음까지 / 찔레꽃 하얗게 번진 흔적으로 밀려와”라고 쓴다. 이 시에서 ‘까맣게 은둔했던 유년의 향기’와 ‘무넘기의 울음’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상징하지만, 이내 찔레꽃이 하얗게 번져가는 이미지로 이어지며, 고통의 흔적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적 과정을 연상시키며, 고통을 부정적 요소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자기 인식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으로 본다. 또한, 김태희 시인의 시조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반영된 듯한 고통과 반복의 테마가 나타난다. 「겨울 남한강」에서는 “강어귀 철새 울음 목계에서 이포까지 / 아픔을 부숴가며 눕지 못한 여울 소리 / 강물은 또 입을 다문 채 / 뗏목처럼 흘러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시는 강물과 철새의 이미지를 통해 고통의 반복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니체의 영원회귀가 모든 고통을 긍정하는 것처럼, 시인은 ‘눕지 못한 여울 소리’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르며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여울의 소리는 고통의 순간을 끊임없이 깨고 나가며, 강물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이어가는 생명력의 표상으로 자리 잡는다. 김태희 시인은 고통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내 어머니」라는 시조에서는 “텃밭에 앉아 있는 / 외로운 하얀 나비 / / 호미 끝 무디도록 / 가을볕 북을 준다”라고 읊조리며, 어머니의 모습을 하얀 나비로 묘사한다. 나비는 한편으로는 덧없고 연약한 존재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해석된다. 어머니의 일상 속 노동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의 치열한 생존을 나타내지만, 그 속에서도 나비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긍정하며, 그 유한성 속에서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철학적 탐구로 이어진다.
『아플 때 피는 꽃』은 고통을 존재론적 문제로 접근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깊이 있게 천착한다. 시인은 고통을 단순히 견뎌내야 할 시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경험으로 바라본다. 그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김태희 시조의 이러한 철학적 탐구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로 수용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성장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고통의 경험이 곧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북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