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친구를 만나 나들이를 가졌다. 한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었는데 문득 내 이름이 생각났다. 사실 나이들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가 쉽지 않다. 나도 내 이름을 남들에게 불리어 진 적이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요즘의 일상 생활에선, 친구야! 00님! 아니면 산행에선 산대장 또는 온라인에서의 닉네임이 나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하! 그러고보니 서운해 말아야겠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아닌 택배기사 그들이다.
비록 이름이 불리우지 못하여도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님들께서 소중하게 지어주시고 사랑으로 불러 주셨던 이름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유럽이나 일본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성씨 마져도 빼앗겨 버리고 만다. 그 천하의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도 결혼전엔 힐러리 로뎀에서 결혼 후 힐러리 클린턴으로 성이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때론 나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고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울림에서 생겨나는 불편함이 아니라 원초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 혼란스런 상상력의 근원을 제거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이름이 세상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좌우한다고 믿기도 하였다. 마음 빼앗기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믿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장차 태어날 어린 생명에 대한 이름을 지어보기로 하였다.
작명을 하는 것도 간단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사라져 가는 뒷골목 작명소에서 지어 달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핏줄에 대한 사랑과 고귀함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
먼저 성과 이름에 대한 음양배합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수리오행이 있고, 오행의 상생과 불용문자도 있다. 피할 것으로는 원대하거나 거창한 것, 10으로 가득차는 수의 글자, 짐승이나 식물의 뜻, 나쁜 의미의 연상, 정신세계 높은 경지의 글자, 뜻의 불길, 10간 12지 글자, 측자 파자상의 불길한 문자, 맏이가 아니면 쓰서는 안되는 첫글자, 발음이 나쁜 것...
또 다른 방법으로 정리하면, 사주/음양 오행/발음 오행/자원 오행/음파/81수리/좋은 뜻/불용 한자/양가 이름/신점/품위/남여 구분이다. 뭐가 뭔지 정말 복잡하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냥 어감이 좋은 글자들을 조합하여 작명을 하고 만다. 브라운관에 나오는 사람들의 멋진 이름처럼...
굳이 고심하여 작명을 하지 않았어도 복받는 인생이라면 그리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인터넷을 참고하여 음과 양의 배합, 수리오행 그리고 글자획수에 따라 남자 아이의 이름을 지어 보기로 하였다. 먼저 성이나 친인척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어감과 유사한 글자를 배제하고 생각해 본 이름들, 지훈, 준수, 성재, 동민, 신우, 호철, 지환, 우창, 성민, 석훈들에 대한 글자(한자)를 풀이해 보았다.
그러나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에 성씨별로 추천하는 이름들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였다. 태현, 한서, 하진, 수혁, 우창, 정환, 준호, 지헌, 준수, 승민, 성윤, 원준, 윤성, 태훈, 동환, 도훈, 준서...
이름을 정리하여 아내에게 그 중 마음에 드는 5개 정도를 골라보라고 하였더니, 한참 들여다 보다가 머리가 아픈지 수첩을 밀어내 버리고 만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다시 머리를 극적이다가 집안의 돌림자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것은 '동(東)자로 시작해야 하는데 '동환' 동민?'... 왠지 흔해빠진 이름들 같았다. 문득 족보상의 돌림자는 아니지만 큰집 손주들이 '서'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자손이 귀한 작금의 세상에서 이름 한글자라도 동일하게 불리우면 이산가족 상봉에도 도움이 되고 형제간 정이 더하지 않을까?
다시 자료를 보고 범위를 좁혀보았다. 「서빈, 서준, 서진, 서환, 서후, 서훈」6개 이름 중에서 3개로 다시 압축해 보자면, 【서준, 서진, 서훈】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고 들었던 이름 같아서 조금 찜찜하다. 그래도 그들이 선점은 하였을망정 특허낸 것은 아니렸다.
아내에게 다시 보였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요즘은 버터 냄새 풍기는 서양애들 이름을 닮아야 좋다나. 이러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70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려 오거든 손주 이름 짓는다고 못간다고 전해라' 말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큰맘먹고 풀이 들어간다. 우선 '서'는 한자의 緖(실마리), 瑞(상서로울), 稰(거두어들일), 藇(고울) 중에서 稰로 중심을 잡고서는,
①준으로 할 경우: 俊(준걸), 駿(준마), 峻(수레), 準(평평할)에서 俊으로,
②진으로 할 경우: 眞(참), 振(떨칠), 珍(보배), 晋(나아갈)에서 珍,
③훈으로 할 경우: 勳(공), 薰(향풀), 訓(가르칠) 중에서 勳으로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稰俊(서준), 稰珍(서진), 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를 두고 애둘러 뭔 걱정인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줄어들 인구에 국가 소멸이라는 슬픈 현실을 앞두고 보면 가슴 뿌뜻한 일임엔 틀림이 없다.
남아 도는시간 활용한 것이지만, 한 생명이 두고 두고 타인으로부터 불려질 고유명사를 창작해 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추가로 稰元(서원), 稰潤(서윤), 稰昌(서창), 稰旴(서우)...
결국은 아들 내외의 심의를 거쳐 서우(瑞旴)로 지었다. 그리고 탄생의 글(書)를 지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