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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2篇 天地篇 第13章(장자 외편 12편 천지편 제13장)
문무괴門無鬼와 적장만계赤張滿稽가 무왕武王의 군대를 보고, 적장만계가 이렇게 말했다.
“무왕武王은 유우씨有虞氏(순舜)의 덕德에 미치지 못하나 보다. 그래서 이런 비극을 만났나 보다.”
문무귀가 말했다.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는데 유우씨가 다스린 것인가 아니면 어지러워진 뒤에 다스린 것인가?”
적장만계가 대답했다.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인데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다면, 또 어찌 유우씨가 새삼 다스려 주기를 생각하겠는가. 유우씨가 두창頭瘡을 치료하는 방식은, 이미 머리가 벗겨진 뒤에 가발을 씌우고, 병이 심해진 뒤에 의원을 찾는 것과 같다. 효자는 약을 마련하여 어버이에게 바칠 때에 걱정으로 얼굴색이 초췌하지만 성인은, 평소에 봉양을 잘 해서 어버이가 병들지 않게 하지 못한, 그런 미흡한 행동을 부끄러워한다.
지덕의 시대에는 어진 사람을 숭상하지 않았으며, 능력 있는 자를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윗사람은 마치 나뭇가지 끝과 같았고, 백성들은 마치 들의 사슴과 같아서, 단정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의義라 자랑할 줄 몰랐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인仁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진실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충忠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마땅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신信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벌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도와주면서도 그것을 베푸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동함에 자취가 없었으며 일을 해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
門無鬼與赤張滿稽 觀於武王之師
赤張滿稽曰 不及有虞氏乎 故離此患也
門無鬼曰 天下均治 而有虞氏治之邪 其亂而後治之與
(문무괴 여적장만계로 관어무왕지사하더니
적장만계왈불급유우씨호인저 고로 이차환야로다)
문무괴왈 천하균치어늘 이유우씨치지야아 기란이후에 치지여아)
문무괴門無鬼와 적장만계赤張滿稽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군대를 보고, 적장만계가 이렇게 말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덕德은〉 유우씨有虞氏(순舜)의 덕德에 미치지 못하나 보다. 그래서 이런 비극을 만났나 보다.”
문무귀가 말했다.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는데 유우씨가 다스린 것인가 아니면 어지러운 뒤에 다스린 것인가?”
- 문무괴門無鬼 : 인명. 위의 순망諄芒이나 원풍苑風처럼 역시 실존 인물이 아니고 우의寓意의 인명이다.
- 적장만계赤張滿稽 : 역시 인명. “무왕武王이 주紂를 벌伐하기 위해 군대가 맹진孟津나루를 건널 때 〈문무괴門無鬼와 적장만계赤張滿稽의〉 2인이 함께 구경했음.”(成玄英)
- 불급유우씨호不及有虞氏乎 고이차환야故離此患也 : 유우씨有虞氏의 덕德에 미치지 못하나 보다. 그래서 이런 비극을 만났나 보다. 유우씨有虞氏는 순舜임금을 지칭한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덕德이 순에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을 만났다는 뜻. 순임금은 요임금의 선양禪讓을 받아 천자가 되었는데, 무왕은 선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방벌放伐(좇아 내어 죽임. 중국中國의 역성 혁명적革命的 관점觀點에서, '임금은 절대적絶對的인 것이 아니라 악정을 베풀면 내쫓아서 죽여도 거리낄 바가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를 덕의 고하로 표현한 것이다. 이離는 이소離騷(근심을 만남)의 이離와 같이 걸리다, 만나다의 뜻. 차환此患은 이 재난, 이 비극悲劇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의 폭군 주紂를 무력武力으로 토벌討伐, 즉 무력혁명武力革命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을 의미한다.
- 천하균치天下均治 이유우씨치지야而有虞氏治之邪 기란이후其亂而後 치지여治之與 :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는데 유우씨가 다스린 것인가 아니면 어지러운 뒤에 다스린 것인가. 기其는 억抑과 같다. 우리말 ‘아니면’에 해당한다. 적장만계赤張滿稽의 말이 마치 무왕武王을 폄하貶下하고 순舜을 일방적으로 찬미하는 것처럼 들려서 문무괴門無鬼가 순舜 또한 환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따져 묻는 내용이다.
赤張滿稽曰 天下均治之爲願 而何計以有虞氏爲
有虞氏之藥瘍也 禿而施髢 病而求醫
孝子操藥 以修慈父 其色燋然 聖人羞之
(적장만계왈 천하균치지위원이어니 이하계이유우씨위리오
유우씨지약양야는 독이시체며 병이구의니라
효자조약하야 이수자부에 기색이 초연하나니 성인이 수지니라 )
적장만계가 대답했다.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인데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다면〉 또 어찌 유우씨가 새삼 다스려 주기를 생각하겠는가.
유우씨가 두창頭瘡을 치료하는 방식은, 이미 머리가 벗겨진 뒤에 가발을 씌우고, 병이 심해진 뒤에 의원을 찾는 것과 같다.
효자는 약을 마련하여 어버이에게 바칠 때에 〈걱정으로〉 얼굴색이 초췌하지만 성인은 〈평소에 봉양을 잘 해서 어버이가 병들지 않게 하지 못한〉 그런 미흡한 행동을 부끄러워한다.
- 천하균치지위원天下均治之爲願 :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는 것은 바라는 것임. 모든 사람들이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란다는 뜻. 원願은 천하지원天下之願, 곧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
- 이하계이유우씨위而何計以有虞氏爲 : 만약 천하가 고르게 다스려지고 있다면 또 어찌 유우씨가 다스려 주기를 생각하겠는가. 이而는 우又와 같다. 위爲는 위천하爲天下, 곧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
- 유우씨지약양야有虞氏之藥瘍也 : 유우씨가 두창을 치료하는 방식은. 유우씨有虞氏는 순舜. 우虞는 순이 다스린 나라 이름. 유有는 나라 이름 앞에 붙이는 성대하다는 뜻의 어조사. 야也는 주격조사. 양瘍은 두창頭瘡. 약藥은 치료한다. 따라서 약양藥瘍은 두창頭創(瘡)을 치료한다는 뜻. 양瘍과 약藥은 각각 천하의 어지러움과 다스림을 비유한 것이다.
- 독이시체禿而施髢 : 이미 머리가 벗겨진 뒤에 가발을 씌움. 독禿은 머리가 벗겨지는 증세, 대머리. 체髢는 숱이 적은 머리에 덧대는 가발. 처음부터 머리가 벗겨지지 않도록 조처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
- 병이구의病而求醫 : 병이 심해진 뒤에 의원을 찾음. 병病은 질疾이 심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상의 두 구절은 유우씨有虞氏가 천하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지는 못하고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비로소 나와 다스렸음을 비유한 것이다.
- 효자조약孝子操藥 이수자부以修慈父 : 효자가 약을 마련하여 어버이에게 바칠 때. 수修는 수羞와 같이 쓰는 글자로 여기서는 바친다는 뜻. “수修는 바침이니 수羞와 같다. 고자古字에는 통용했다.”(林希逸). 수修를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치治와 같은 뜻으로 보고 ‘치료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효자가 약을 마련하여 어버이를 치료할 때.”로 번역한다.
- 기색초연其色燋然 : 얼굴색이 초췌함. 초연燋然은 초췌憔悴한 모양. 어버이의 병을 근심하느라 안색이 초췌해짐을 말한다.
- 성인수지聖人羞之 : 성인은 도리어 그런 것을 부끄럽게 여김. 효자가 어버이의 병환을 걱정하여 안색이 초췌해진 것은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봉양을 잘 해서 어버이가 병들지 않게 잘 보살피는 것만 못함을 말한 것이다.
至德之世 不尙賢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蠢動而相使不以爲賜 是故行而無迹事而無傳
(지덕지세에는 불상현하며 불사능하더니 상이 여표지하고 민이 여야록하야서 단정이부지이위의하며
상애이부지이위인하며 실이부지이위충하며 당이부지이위신하며
준동이상사불이위사하더니 시고로 행이무적하며 사이무전하니라)
지덕의 시대에는 어진 사람을 숭상하지 않았으며, 능력 있는 자를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윗사람은 마치 나뭇가지 끝과 같았고, 백성들은 마치 들의 사슴과 같아서, 단정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의義라 자랑할 줄 몰랐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인仁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진실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충忠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마땅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신信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벌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도와주면서도 그것을 베푸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동함에 자취가 없었으며 일을 해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
- 지덕지세至德之世 불상현不尙賢 불사능不使能 : 지덕의 시대에는 어진 사람을 숭상하지 않았으며 능력 있는 자를 부리지 않았음. 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높은 지위를 주지 않았고, 능력 있는 자라고 해서 그를 임용하지 않았다는 뜻. ≪노자老子≫ 제3장의 “어진 사람을 숭상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한다[불상현不尙賢 사민부쟁使民不爭].”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대목이다.
- 상여표지上如標枝 민여야록民如野鹿 : 윗사람은 마치 나뭇가지 끝과 같았고 백성들은 마치 들의 사슴과 같음. 표지標枝는 나뭇가지의 끝을 말하고 야록野鹿은 들판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사슴을 뜻한다. 상여표지上如標枝는 윗사람은 마치 나뭇가지 끝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단지 높은 자리에 있었을 뿐 아랫사람에게 군림하려는 마음이 없었음을 비유한 것이고, 민여야록民如野鹿은 백성들이 마치 들판의 사슴처럼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일했음을 비유한 것이다.
- 단정이부지이위의端正而不知以爲義 : 단정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의라 할 줄 모름. 올바르게 행동했지만 그것이 의라는 규범에 맞는지를 몰랐다는 뜻. 곧 사회규범인 의에 구속받지 않았다는 뜻.
- 상애이부지이위인相愛而不知以爲仁 :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인이라 할 줄 모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행위가 인이라는 가치규범에 합당한지를 몰랐다는 뜻.
- 실이부지이위충實而不知以爲忠 : 진실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충忠이라 할 줄 모름. 위의 인의仁義와 마찬가지. 실實은 성실誠實, 진실眞實.
역주18 당이부지이위신當而不知以爲信 : 마땅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신信이라 할 줄 모름. 당當은 합당合當의 뜻. 지덕至德의 시대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따위의 규범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저절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가치에 부합되게 행동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 준동이상사불이위사蠢動而相使不以爲賜 : 벌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도와주면서도 그것을 베푸는 것이라 여기지 않음. 준동蠢動은 벌레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뜻. 상사相使는 서로 도움. “相使는 서로 벗이 되어 도움이다.”(林希逸). 불이위사不以爲賜는 은혜를 베푼다고 여기지 않음, 은사恩賜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
- 행이무적行而無迹 : 행동함에 자취가 없음. 자취를 남겨서 길이 유명해지려고 하는 욕심 따위가 없음을 의미한다. 본성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따로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 ≪노자老子≫ 제27장에 나오는 “길을 잘 가는 사람은 바퀴 자국이 없다.”라고 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 사이무전事而無傳 : 일을 해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음. 역시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게 하려는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