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첫날
나는 신방에 들어가는 새신랑처럼 씩씩하다. 내 안에서 사랑이 샘물처럼 솟아나기 때문이다.
올 한해도 하루만 살다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며 살다 죽어야겠다.
강화의 숲과 들길과 바다와 섬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 그리고 책과 음악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박진화 화가의 안내로 15명 정도가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 준비한 음식과 술을 올리며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를 드렸다. 나는 내가 쓴 축원문을 낭독했다(카페에 올린 새해 축원문 참조). 나는 나 개인을 위해서는 아무런 소원도 빌 것이 없다. 나는 이미 넘치는 축복 속에 살고 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나의 뜻이나 소원을 접고 하늘의 뜻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민족을 생각할 때 나는 참회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날씨가 좋아 네 시간 정도의 산행이 아주 행복했다. 나는 퇴행성 관절염 때문인지 다리가 조금 아팠다. 강화에서는 김신형, 김일수, 강복희, 양태부, 조성이, 박진화, 박이강(진화씨 아들)님이 오셨고 진화씨 친구들 여럿이 함께 했다. 진화씨 친구들은 마니산 정상에서 새해에 제를 올리는 일을 23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복 중에 복은 마음이 새로워져 하루 하루를 새마음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마음에서 복의 샘이 터진 것이라고 표현한다. ‘새해, 모두 복의 샘이 되십시오’
산행 끝나고 몇사람이 내가 자주 가는 마니산 주차장 앞 참성단식당에서 한잔 했다. 시동생 왔다고 식당 주인 우리 형수님이 오늘도 좋은 음식을 마구마구 내오신다. 나는 형수님을 안아드리며 새해에 큰복을 받으시라고 했다.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정이 많은 분의 사랑을 받고 마니산 기운을 듬뿍 받은 벗들과 한잔 하니 또다시 인생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2일
김신형, 김일수님과 운동하고 온수리의 그곳에가면이라는 닭갈비 집에서 저녁식사. 세광아파트 옆에서 이런 식당을 하던 나와 정이 들었던 여주인은 없고 주인이 바뀌었는데 음식맛은 옛날보다 더 좋다. 김형은 건강을 위해 날마다 걸으니 요즘은 청년이나 된 듯 건강하다고 했다. 아무리 나이들어도 정신은 본래 늙는 법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노력하면 몸도 그런지는 처음 알았다.
나이 70도 안되 늙은이 행세하는 것은 죄악이다. 남이야 나를 노인 취급하든 말든 나는 몸도 마음도 청년이다. 이렇게 자기최면을 거니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다. 김형은 어찌나 건강에 신경을 쓰는지 닭갈비가 너무 맛이 있다 하면서도 과식하는 것 같다며 수저를 놓는다. 나만 돼지 같이 폭식했다. 나는 먹고 마시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뽈록 나온 배는 나의 만족의 증거다.
3일
수요나들길 걷는 이들과 합류하기 위해 길선생님과 나들길 5코스를 거꾸로 걸었다. 가는 길 옆에 당나귀를 기르는 집이 있어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당나귀를 보며 사진도 찍고 그 착한 눈망울을 들여다 보았다.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당나귀가 되어 누군가를 태우고 눈 내리는 숲길을 걷고 싶다.
도중에 일행들 만나 함께 걸었다. 일행 중 김승길 선생은 올해 79세라는데 15키로 정도 되는 길을 가뿐히 걷는다. 작년에도 32키로 길을 하루에 걷기도 했다는데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해보인다 하니 걷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신다. 몸이 조금이라도 찌뿌등할 때 벌떡 일어나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금방 상쾌해진다고 했다. 봄봄 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 나들길 안내소 일을 그만두고 해방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김각희 누님 만나 반가왔다.
길선생님 모시고 심도학사 몇분과 송도의 조광호 신부님 작업실에 가서 구경하고 경복궁 식당이라는 좋은 식당에서 신부님께 저녁식사 대접 받고 유리 작품으로 만든 꽃병과 그릇 하나 선물로 받았다. 이런 훌륭한 예술작품에 꽃을 꽂아놓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이렇게 과분한 선물을 계속 받아도 되는지 그저 고마울뿐이다.
신부님은 자신이 70이 넘었어도 도인이 되기는커녕 여전히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어떤 젊은 신부가 나이가 들면 정욕도 가라않고 마음이 평안해지느냐고 어느 노신부에게 물으니 ‘불이 붙으면 늙은(낡은) 집이 더 잘 탄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만 그리움으로 마음이 들떠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이 되었다. 다만 신부님은 그것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는데 나는 아직 그럴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신부님은 나더라 목사가 되었으면 좋은 목사가 되었을거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해보라고 하신다. 나는 혹시 접대부라면 몰라도 목사는 결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신부님의 작품 중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예술은 지켜지지 않는 행복에 대한 약속이다’. 나는 이 말을 속으로 이렇게 고쳐 읽었다. ‘예술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신부님은 지금까지 만여점의 작품을 하셨는데 그것의 열배는 습작으로 했다며 창고에 있는 그림들을 보여준다.
밤 11시 넘어 강화로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 이명숙 박사님과 많은 얘기를 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난 것을 하늘에 감사했다. 심도학사에 도착하니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보름달이 환상적이다. 아이고 모르겠다. 나는 저 달처럼 환하게 웃는 것 하나라도 잘하며 살아야지.
이 나른한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걸까?
첫댓글
「登摩尼山」 ― 마니산에 올랐어라 /양태부
謹賀新年 새 아침에 무얼 할까 고민터니
마니산 始山祭라 풍물시장에 모이라네
올커니! 홍진(紅塵)을 털고 파사현정(破邪顯正)하리라
산 오르는 벗님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俗世엔 모르던 이도 산에선 다들 벗이라오
어이쿠! 그 발은 위험 내 손 잡아 건너오오
마니산 檀君路가 험하기도 하도 할사
일천계단 넘어갈 땐 숨이 턱에 받치는데
한발 앞 끌어주는 님이 고맙기만 하여이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뒤돌아 둘러보니
일망무제(一望無際) 허공 속에 산새들만 점 점 점
바다엔 섬 섬 섬이라~ 長峯,注文,阿此島ㄹ세
하늘,땅,사람의 정기(正氣) 한데 모인 마니산은
아픈 역사 소망들 쌓여 오를 때마다 숙연하오
벗이여 조금만 더 힘냅시다, 頂上이 바로 저길세
하늘섬 塹城壇은 맑고 밝아 淸凉한데
향(香) 피우고 배향(配享)하며 단군님께 비옵니다
무술년(戊戌年) 이 겨레 ― 태평성대(太平聖代) 이루리다
소사나무 쓰담~쓰담 돌아가며 인증 샷!
어깨 겹쳐 좌우로 정열, 손이라도 잡아보오
하하하 웃어보세요~ 어쩜 그리도 환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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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한 편 지어봤슴다 부족한 게 많소이다
운율(rhythm)은 그러하오만, 은유(metaphor)는 장차 어찌할꼬?
초짜가 어찌 하리오, 가다보면 좋아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