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원래 1980년 알랭 부빌과 숀버그가 파리에서
초연한 작품으로부터 기인한다. 이 불어판의 뮤지컬을 우연히 뮤지컬
제작의 귀재 카메론 매킨토쉬(CATS, THE PHANTOM OF THE OPERA,
MISS SAIGON 등을 제작)가 듣고 매료되어 본격적인 뮤지컬제작에
착수하면서, 캐츠의 연출가 트레버 넌이 연출을 맡고 존 내피어,
데이비드 허시 등이 참가하여, 1985년 10월 8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이 첫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 10주년 기념 콘서트
레미제라블은 초연이후 약 40여개국에서 공연되며 뮤지컬계의 기록
들을 갱신해 나갔으며, 1987년에는 토니상의 8개부문을 휩쓸면서
그 명성을 드높였고, 1966년 7월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공연을 함으로써 많은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제작진들은 이 성공적인 뮤지컬의 1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사건을 기획한 것이 것이 바로 이 10주년 기념 콘서트이다.
이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는 지금까지 공연한 레미제라블의
배역중 베스트들이 초청되었고, 250명의 합창단이 동원되었다.
초청된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쟝발쟝 역의 Colm Wilkinson
(지금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열연중), 쟈베르역의 Philip
Quast(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동적인 쟈베르로 오리지널 런던
캐스팅인 Roger Allam이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팅인 Terrence
Mann은 따라올수 없는 경지로 보여짐), 마리우스역의 Michael
Ball(아마 뮤지컬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가 아닐까...),
앙졸라스역의 Michael Maguire(심포닉음반의 Anthony Warlow와
앙졸라스계(?)를 양분하는 잘생긴 배우) 등이며 '미스 사이공'의
킴역으로 유명한 Lea Salonga도 에포닌역으로 초청되었다. (에포닌
역은 오리지널캐스팅이 런던, 브로드웨이 모두 Frances Ruffelle로
실제로 이 공연에는 그녀가 초청되었으나 사정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고, Lea에게 그 자리가 돌아갔다는 전설아닌 전설이...^^)
◎ 부빌 & 숀버그 뮤지컬의 특징
뮤지컬은 클래식과 팝과의 정확히 한 중간에 놓여 있는 장르로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다른 여타의 뮤지컬과 비교해서
부빌 & 숀버그의 뮤지컬은 "약간" 클래식쪽에 가까운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같은 뮤지컬이
클래식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면, 최근에 등장한
'렌트'는 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레미제라블은
오케스트레이션이나 배우들의 발성 혹은 합창의 쓰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클래식컬 뮤지컬(?)로 구분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이후에 만든 작품 '미스 사이공'도 마찬가지이고, 최근에
제작되어 공연에 돌입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세번째 작품 '마틴
기어'도 작품의 분위기로 미루어 보건대 비슷하리라고 추측되어진다.
그들의 대표적인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을 비교해보면
여러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는 소재가 다분히 드라마틱
하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오페라나 뮤지컬들이 드라마틱한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부빌과 숀버그는 대결의 구도, 즉 라이벌들을 등장
시켜 극을 긴장시킴으로써 한층 그 점을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
레미제라블에서는 장발장과 쟈베르, 에포닌과 코제트가 그렇고
'미스 사이공'에서는 크리스와 튜이, 킴과 엘렌이 그렇다. 이러한
라이벌구도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 그들은 무대위의 두사람으로
하여금 카운터포인트에서 마주서, 한 노래안에서 서로의 주장을
펼치게 하고, 같은 구절로 함께 노래를 마치게 한다. 장발장과
쟈베르가 병원에서 마주쳐 장발장이 쟈베르를 때려눕히고 도망가는
대목(The Confrontation)은 대표적인 그러한 장면이며, '미스
사이공'에서의 I Still Believe가 그렇고, 라이벌은 아니지만
킴과 존의 Please도 그렇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캐릭터는 레미제라블의 쟈베르와 '미스 사이공'
의 튜이이다. 라이벌 구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결코
악역이 아닌 것이다. 악하게 태어난 인간은 결코 선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강직한 신념을 가지고 끈질기게 장발장을 추적하다가 결국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게 되는 쟈베르, 킴이 아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킴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를 죽이려고 하지만 결국 킴의 총을 맞고 죽어가는 튜이의 고통
스런 외침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악역으로서가 아닌 또다른 강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악역은 테나르디에와 엔지니어의
차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숀버그는 그의 뮤지컬에서 바그너와 같은 일관된 라이트
모티브(유도동기)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딘느의 주교가 불렀던
Valjean Forgiven은 마리우스의 Empty Chairs at Empty Tables로
불려지기도 하고, 판틴이 불렀던 Come to Me는 에포닌의 On My Own
으로 둔갑되어 나온다. 만약 그가 바그너작품을 충분히 연구하여
이를 사용했더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 오페라와 뮤지컬?
뮤지컬은 오페라가 표현하기 어려운 대사를 편하게 전달할 수
있기도 하고, 성악가가 발성하면서 표출해내기 어려운 표정연기등을
다소 쉽게 표현해 낸다는 장점도 안고 있어, 오페라감상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면도 크다 할 수 있는데,
뮤지컬로부터 자연스럽게 오페라로 접근하는 감상법도 이런면에서
권장되어 질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궂이 바렌보임의 "링"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최근의 오페라
연출경향은 고전적이라기 보다는 관객에게 신선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다소 충격적이고도 획기적인 연출을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오페라와 뮤지컬의 벽이 다소
엷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게 해주는 일면인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무대장치는 이런 점에서도 상당히 효과적이고도 교묘
하게 꾸며져 있는데, 회전하여 변경되는 바리케이트라던지, 회전식
바닥, 혹은 조명으로써 지하를 표현해내는 기법 등은 연출 및 무대
디자인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의
이동을 손쉽게 하여 만 하루만에 다른 나라로 옮길수 있는 기동력을
지녀, 레미제라블 전세계 공연을 동일한 무대장치에서 가능하게 하는
크나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미스 사이공'이 어마어마한 무대
장치로 인해 우리나라에서의 공연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이와 비교할
때 정말 가슴 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