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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부활의 증인
본문 누가복음 24장 36-49절
찬송 164장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그의 손에 난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그의 옆구리에 난 창 자국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아니하겠노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의심 많던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증거를 보여주시자 예수님께서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은 한 사람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가장 극적으로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던 불신자였습니다. 자기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 핍박하고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이라는 도시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핍박자가 변하여 전파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지 아니했다면, 그렇게 극적으로 그의 인생이 뒤바뀔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나 또한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때문에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요? 그는 자기가 가진 헛된 믿음 때문에, 세상이 주는 모든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하며 살아갑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가 가진 믿음 때문에 핍박받는 것도 즐거워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있지도 않은 헛된 것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있지도 않은 사실을 믿는 믿음 때문에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핍박받는 것도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들은 얼마나 큰 바보들입니까?
이 진리를 더 깊이 알기 위해 예수님의 일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비참한 일생을 살아가셨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 가운데 사시다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의 일생을 결코 비참하다 말하지 않습니다. 한없이 복되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에게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역사는 예수님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삶을 사신 분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선물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복되고 영광스러운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처럼 복된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우리의 일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전에는 내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인생이 이렇게 변화되었다. 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증거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나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말씀을 함께 들으며, 내가 믿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확실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세 번 친히 나타나셔서 당신의 부활을 증거해주셨습니다. 첫째는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것이요, 둘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것이요, 셋째는 열한 사도와 그와 함께 한 다른 제자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첫째와 두 번째 나타나실 때는 다시 살아나신 육신을 만지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나나타실 때는 부활하신 몸을 직접 만지고 확인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친히 나타나셔서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 사도와, 또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눅24:36-37)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만난 사람들의 증거를 듣고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온전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제자들과 같은 영적 상태 가운데 있지는 않을까요? 부활에 관한 설교와 말씀을 항상 듣고 살면서도 정작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믿음을 참되고 온전하게 가지고 있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주님, 내 안에 있는 불신앙을 발견하고 깨뜨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생생한 믿음과 체험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내 안에서 부활에 대한 믿음이 생명으로 역사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찢기고 상한 예수님의 육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저주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주님이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8-39)
이어서 우리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을 보고서도 너무 기뻐 이것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또다시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건네는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께서 살아난 것이 얼마나 실제적인가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24:40-43)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저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불신앙의 모습을 이 시간에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솔직히 예수님을 향해 우리의 믿음 없음을 고백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시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친히 부활의 증거들을 보여 주시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결코 실제로는 불신앙 가운데 있으면서 믿는 것처럼 행세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않도록 하십시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육신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친히 보고 믿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을 보십시오. 의심 많은 도마를 향해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시고서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체를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서도, 육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왜요?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신실한 증인들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또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증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체를 육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들보다 더욱 생생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으로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확신을 주시기를 소원하십시오. 그분께서 도우실 때만 우리는 부활의 확신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예언하신대로 태어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일생은 성경대로의 일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의 일생을 소개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나 행동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태어나실 때, 죽으실 때)
성경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신 것과 성경대로 살아나신 것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 걸까요?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맡은 사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자기들만 간직할 것 같으면 그들이 본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본 것만으로 절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로 계획하신 비밀을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을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세상을 구원하신 비밀을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죽고 부활하셔서 영원토록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계시는 비밀을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이 일을 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진행해 오셨는가를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어두운 마음을 열어 주시고 구약성경을 통해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14:2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쟈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44-45)
그 결과 의심 많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큰 확신으로 가득 찬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육신을 따라 경험하는 모든 체험은 잘못 변질될 수 있습니다. 체험에 바탕을 둔 믿음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때문에 부자가 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가난해지면 그는 그가 가진 믿음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질병에서 고침 받은 체험을 가진 사람이 다시 질병 가운데 빠지게 되면 그는 그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을 통한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게 될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 확신을 따라 예수님의 증거자,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부활의 증거자들의 증언과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믿을 뿐 아니라,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알아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육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만져볼 수 있게도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풀어 들려주시므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거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6-48)
아멘입니다. 먼저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고 예정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은 절대 갑작스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늘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 가운데 서 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기회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7-48)
우리는 이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그들의 증거를 받은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사명입니다. 돌아보십시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내 믿음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나와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확실합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예수님처럼 새 생명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이 모든 질문을 한 마디로 요약한 질문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큰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일에 항상 힘쓰도록 합시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에게 마땅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