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박물관
딸아이 부부가 효도 관광이란 말을 꺼냈을 때 손사레를 쳤다. ‘늙은이에게 멀리 집을 떠나자는 것은 효도가 아니야, 집에서 편안히 쉬도록 해주는게 효도야.’ 그러나 딸아이가 고궁 박물관 답사라고 하였으므로 내 마음이 움직였다. 딸아이는 애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고궁 박물관도 함께 다녀왔다. 곽희의 ‘조춘도’가 수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고궁 박물관에만 가면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조춘도는 너무 귀한 작품이라서 함부로 전시하지 않는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그때가 2006년이니, 벌써 18년 전이다. 지금도 조춘도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딸아이는 고궁이 수장하는 옥기며, 청동기, 도자기의 특별전을 가지는 중인데,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고, 며칠 만 지나면 작품 전시가 끝난다고 하였다. 내가 즐기는 회화전은 아니더라도, 특별전이라니 책에서만 보았던 국보급 명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싶어서 마음이 열렸던 것이다.
의원이라는 직업은 정서적으로 매마른 업종이다. 취미 생활을 할 만큼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하루 내내 실내에서 보내야 하고, 환자가 없으면 방에 앉아서 멍히 천정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그때 심심풀이로 그림책을 뒤적였다. 심심풀이란 그림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고,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체 그냥 시간이나 떼우려는 심사였다는 것이다.
이성적 사고로 훈련된 내 머리로는 동양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던 과학적 시선으로 보면 그림의 구성부터, 표현까지 모두가 엉터리였다. 그때 우연히 허영환 교수가 쓴 ‘東洋畵 1000년’이란 책을 통해 곽희의 ‘조춘도’를 만났다. 도저히 이해도, 납득도 안되었던 동양화의 구성 원리며, 사유의 세계를 허영환 교수는 차근차근 풀어주었다. 책을 읽고 나니 동양화는 우리가 과학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하, 이것이 동양화의 묘미구나. 그 이후로 나는 동양화에 빠져들었다. 과학이라는 종교에 매몰되어있던 나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세상으로 나의 시선이 옮아갔다고 할까. 미술 공부가 어느 사이에 나의 취미 생활 안에 들어와 있었다.
종종 ‘선생님은 왜 그림을 좋아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지만, 나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왜 인지 이유를 못 대면서도 미술책을 사 모았다. 미술책은 일반적으로 원색 도판의 그림이 들어있으므로 무척 비싸다. 그 비싼 책을 왜 사는지를 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사고 싶은 마음이 안개처럼 피어나서 나룰 꼬드기면 그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했다.
미술책을 사 모우면서 숱한 일화를 만들었다. 한문으로 된 책은 내가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책을 사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나를 아내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면서, 나와 여러번이나 말다툼을 했다. 읽지 못하는 책인데도 사야 하는 이유를 아내에게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하면서, 비싼 돈을 들여 증극에 주문까지 하였으니, 아내도 속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이런 일화들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중국 여행길에 서점에 들려서 중국화를 시대별로 수록한 30권짜리 미술전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록된 작품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었다. 글로만 소개하고, 작품은 볼 수 없었던 숱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고 안내서가 소개하였다. 우리의 백화점만큼이나 큰 서점에 30권 중에 겨우 5권만 비치되어 있었다. 전질 30권을 모두 사 모우는데 5년이나 걸렸다. 30권 전질을 갖추었을 때의 즐거움이란------. 책을 사기가 어려운 만큼 이 책의 완질을 갖춘 한국 사람은 나 뿐이리라는 자부심으로,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뒤에 서울의 모 대학의 동양화과 교수가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실망했던 일을 생각하면 책을 사모은 이유가 공부 때문이 아닌 셈이다. 부끄럽다. 책 사모우기는 공부가 목적이 아니고, 멋을 내려는 것이었음이 나 스스로에게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 노후를 보내면서 가장 많이 서가에서 꺼내는 책이 그 책이다. 멋이나 내려했던 내 심보가 이제는 공부삼아 책을 뽑아드니 늦었지만 옳은 길을 찾았다 싶다.
내가 5년이나 걸려서 중국회화 전집을 완질로 갖추고 나서 흡족함을 느꼈다는 것은 책을 사는 목적이 공부가 아닌 걸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중국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업자를 알게 되었다. 그분은 수시로 나에게 전화했다. 이번에 중국에서 무슨무슨 미슬 또는 문화 전집이 나왔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화상석 전집이니,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미술품 전집이니, 중국 무덤 벽화 전집이니 하는 등등이, 중국서 출판되면 1-2년 만에 나의 서가에 모셔졌다. 그 책을 손에 넣을 때마다 한국에서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이 극소수일텐데, 내가 그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으로 짜릿한 쾌감까지 느꼈다. 책을 비싸게 구입하고서도 서가에만 꽂아두고 거의 펼쳐보지 않는 책들이 점점 많아져 갔다. 책을 소유하는데 만족을 얻는, 나는 읽지도 않는 비싼 전질의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뻐기려 하는 전형적인 속물로 바뀌어져 있었다.
멋 부리기나 뻐기는 일을 지속하려면 재미의 즐거움이 따라와야 한다. 재미를 느끼려면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때 내 주변에서 중국 미술사 책을 사서 모우는 일을 부러워하기는커녕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나의 우쭐하던 기분도 식어갔다.
그렇더라도 내가 미술에 흥미를 가지고 서가에서 읽을 수 있는 미술 책을 꺼내어 뒤적이는 일은 계속하였다. 영남대의 이장우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시고, 한문 공부방을 개설하자 나는 거기에 나가서 한문 공부를 하였다. 한문 공부를 하면서 서가에만 꼽혀있던 미술 책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내 손이 갔다. 사전을 펼치고, 지레 짐작으로 멋대로 해석도 하면서------, 어차피 미술 책은 글 읽기보다는 그림 보기가 우선이다 보니 읽지를 못하더라도 책을 꺼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었다. 그림책에서 얻는 즐거움은, 오래 동안 나의 속물주의가 아니꼬와서 밖으로 나들이를 갔던 즐거움이 다시 나의 안으로 찾아왔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관심 따위에서는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순전히 나만의 즐거움을 위한 책 읽기였다.
더 반가운 일은 오로지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구입하였던 책들이 이제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요즘은 미술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예전에 이 책을 구입할 때는 집사람이 ‘읽지도 못하는 책을 왜 사요?’라며 잔소리를 하였는데, 그 답을 지금하고 있다. ‘지금은 미술 공부의 둘도 없는 안내자이다. 아내도 요즘은 아무런 말도 않는다.‘
이번에 딸아이 부부가 효도관광이란 말을 할 때 손사례를 치다가 따라나서기로 결정한 것은 ’고궁 박물관‘과 중국 미술이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싫다, 좋다,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