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적인 도시,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타향인들에게는 싸우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고, 섣부른 변화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대구!
최근 대구는 도심 스토리 만들기에 열중이다. 그 가운데 근현대를 아우르는 문화유산을 가진 이점을 살려서 도심 스토리 발굴에 치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스토리가 화두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스토리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에는 객관적인 역사가 담아내지 못한 애환과 정서가 숨어있다. 그러므로 스토리의 원형은 과거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기억과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무형의 가치이며 역사가 놓치고 간 실제 우리들의 지난 모습이기도 하다.
이 스토리의 발굴을 위해 대구시는 도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그 중 '길' 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지역 명소'를 넘어서서 지자체 '브랜드'로 뜨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대구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대구 중구 종로거리의 진골목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

대구시 중구 남일동 옛 중앙시네마 옆 길로 들어가면 왼쪽에 진골목이 보인다.
진골목은 경상도 말씨로 "길다" 를 의미하는 "질~다" 에서 기원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경상감영 을 큰 신작로를 이용하고 양반들과 부딪치길 꺼리는 백성들이 진골목으로 경상감영 에 용무를 보러 다녔다.
진골목은 일제시대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여, 진골목 안에 살던 7명의 부인들이 대구군민대회가 열린 이틀 뒤인 1907년 2월23일 금붙이 등 패물을 모아 나라에 헌납하며 여성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비가 진골목에 세워져 있다.
근대 초기 달성서씨들의 집성촌 으로 대구 최초의 2층 양옥과 옛 부호들의 저택이 늘어서 있다. 게다가 예전부터 대구 부자들이 살던 동네라 건물들이 하나 같이 200평 넘는 것들이었다. 대구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로보다 집값이 훨씬 비쌌다. 대구 최고의 부자 서병국 형제들이 모여살았으며 서병국은 1000평이 넘는 대저택을 짓고 살았다. 근대에는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 등이 살던곳이다.
부자들이 하나둘씩 떠난 진골목의 저택들은 쪼개져 팔리며 요정과 술집 골목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여관들까지 여럿 들어서며 윤락가로까지 전락한 진골목은 쇠퇴일로에 접어 들었다. 1980년대 이후 한옥이 풍기는 복고풍의 정취와 소박하고 맛깔스런 음식, 적절한 가격이 어울린 식당이 하나 둘 들어서며 중년층과 샐러리맨들이 드나드는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진골목 은 현대식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대구 도심에 옛날 골목길 풍경과 100년의 대구역사를 느낄 수 있다.
소설가 김원일이 쓴 '마당 깊은 집' 의 배경이 이 골목이다.
70년대 소방 도로를 뚫기 위해 그 허리가 잘린 진골목은 길다는 의미로서의 그 이름이 무색해져 있다. 그 진골목의 허리쯤에 위치한 미도다방은 퇴역 교수, 문인 등이 모여 2000원짜리 약차(쌍화차)를 마시거나 문인들의 시낭송회를 즐기는 복고풍의 공간이다. 옆 골목길로 들어가면 진골목식당(육개장,육국수,호박전)이 있다.
인근 향촌동 골목길은 6·25전쟁 때 서울의 문인·예술가가 대구로 내려와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다. 시인 구상(1919∼2004)이 시집 <초토의 시>를 발표했던 ‘꽃자리 다방’과 음악가 권태호(1903∼72)가 ‘나리 나리 개나리…’라는 가사의 동요 ‘봄나들이’를 작곡한 ‘백조다방’도 만날 수 있다.
향촌동을 거쳐간 사람은 오상순·김팔봉·마해송·박두진·조지훈·이호우·박목월·유치환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인교동의 삼성상회는 현 삼성그룹의 발상지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1910∼87) 회장이 28세이던 1938년 세운 첫 사업장이다.

□ 1코스(경상감영달성길)
중구 포정동의 경상감영공원에서 출발해 원삼국시대 거주지였던 달성토성(달성공원)까지 연결된 코스다. 경상감영은 조선시대 관찰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선조(1601년) 때 설치됐다. 집무실인 선화당과 처소인 징청각이 있다. 공원 내 대구근대역사관에 들르면 고대에서 근대까지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2코스(근대문화골목)
청라언덕이 있는 동산의 선교사 주택에서 투어가 시작된다.
이곳에는 서양 선교사였던 스윗즈, 챔니스, 블레어의 이름을 딴 새 채의 개화기 주택이 있다. 벽돌로 된 2층의 양옥집은 모두 1910년경 지어져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쓰였다. 현재는 대구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블레어주택(교육·역사박물관)과 챔니스주택(현 의료박물관), 스위츠주택(선교박물관)으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선교사 주택이 있는 청라언덕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길. 근대음악의 선구자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의 가곡 ‘동무생각’에도 나오는 야트막한 청라언덕 위에 서면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시내로 내려가는 90계단은 3.1만세운동길로도 불린다.

3·1만세 운동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산성당이 나타난다.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자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처음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은 화재로 소실된 이후 1902년 벽돌식 성당으로 건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계산성당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두 개의 종각이 솟아 ‘뾰족집’으로 불렸다. 마당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름은 ‘이인성 나무’. 일제 강점기 ‘천재 화가’로 불린 대구 출신 이인성(1912∼50)이 1930년대 그린 ‘계산동성당’ 그림에 나오는 나무다. 이곳은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계산성당 옆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을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1901∼43)와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1850∼1913)의 고택이 있다. 고택 옆 남성로에는 약령시가 있다. 약전골목으로 불리며 한의약박물관과 200여 곳의 한약재 관련 업소가 들어서 있다.

□ 3·4코스(패션한방길, 김광석 길)
3코스는 교동의 주얼리타운에서 시작된다. 이곳에는 귀금속업소 200여 곳이 밀집해 있다.
건물 내 20여 입점업소를 돌며 보석 세공과정을 견학하고 반지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코스는 ‘대구의 명동’으로 불리는 동성로와 섬유회관을 거쳐 서문시장으로 이어진다. 4코스에선 ‘가인(歌人)’ 김광석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김광석 길’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32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장 옆 골목길엔 기타를 치는 형상과 벽화 등 그를 기리는 조형물이 많다.

□ 5코스(남산100년 향수길)
남산동 가톨릭 타운 골목길 1.88㎞의 순례길을 걸으며 가톨릭 100년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대구대교구청·성모당 등 천주교 관련 시설이 있다. 천주교 신자였던 서상돈이 자신의 종묘원을 대구대교구에 기증하면서 조성됐다. 1913년 서양식 2층 벽돌집인 주교관을 이어 성유스티노신학교와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이 차례로 지어졌다. 유스티노캠퍼스 내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떠 1918년 건립됐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0년대 이곳을 방문했으며, 30년대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성유스티노신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 ‘근대골목투어’ 5개의 관광코스 중 백미인 2코스 여행 Tip
- 걷기 여행 필수 정보
걷는 시간 : 2-3시간 (박물관 및 내부 관람 시간에 따라 달라짐)
거리 : 약 1.64km
- 걷기 순서: 동산선교사주택(청라언덕)~ 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뽕나무골목(두사충)~ 에코한방웰빙체험관/대구 구 교남 YMCA회관~제일교회역사관~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영남대로~종로 ~진골목-화교협회(화교소학교)
*시작과 끝 지점을 반대로 해도 무방.
- 맛집 : 대구 약령시 거리, 염매시장, 현대백화점, 진골목 등에 식당이 있음
- 교통편
*자가이용 : 네비게이션 ‘청라언덕’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3호선 청라언덕역, 3호선 서문시장역, 1호선, 2호선 반월당역 / [버스] 엘디스리젠트호텔앞(00-643), 엘디스리젠트호텔건너 (02-199), 동산의료원앞(01-0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