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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제가 자주가는 세계명화이야기 사이트에서 퍼온 것입니다. 특히 이 글을 올린이의 유럽왕실 그림과 그 뒷얘기가 아주 재미나죠>
초상화를 놓고 예술적인 가치를 따지라면 골치 아프니까 패스.
최소한 말이죠, 그림 보고 아, 모델이 누구구나, 때 빼고 광 좀 냈구나 싶은
근대식 개념의 초상화 (현대식 초상화는 추상화랄까 색깔 생략이 좀 심하고오),
그것도 모델이 주로 거물이었다,
이러면 남자 모델은 젊으면 젊은 대로 총명 고귀,
늙으면 늙은 대로 현명 위엄,
여자모델도 대충 나이대로 비슷하게,
이 패턴이죠.
애들은 걍 동화책 삽화로도 쓸 수 있는 정도.
이 화가는 이름 보면 감 잡겠지만 헝가리에서 태어나서 독일 등지에서 미술 수학하고
다 늦게 영국에 와서 영국 시민이 됩니다.
유럽의 종교계, 왕실, 정계, 귀족의 거물들을 그것도 가족 규모로 그리는 거도 모자라서
이 즈음 본격적으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미국 거물들까지 엄청나게 많이 그렸습니다.
뭐 다 모델들 유명세가 있고 하니 바깥까지 알려지겠지만, 초상화가 아니라 사진을 찍었나
싶을 정도로 많지요.
20세기에 접어들었으니 젊은 여자들의 경우는 당시 헐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요염미도 묘사했고요,
빈터발터 시대와 확실히 다르게 여자들이 날씬합니다. ㅎㅎㅎㅎ
대충 지명도 높은 모델들부터 시작하죠.
1. 당분간 수수께끼로 남겨두죠 ㅎㅎㅎ 요즘도 심심찮게 유명한 집안이니 수수께끼도 못 되겠지만.
시간도 없으니 걍 밝힐까요? ㅎㅎㅎ
영감님 초상화가 눈에 좀 익지 않습니까?
모나코 공국 사람들의 초상화입니다. 영감님은 근자에 돌아가신 레이니에공의 외할아버지되는 양반,
그 옆의 요사스런 포즈의 여인네는 그 양반 첩, 이 아니고 그 양반 무남독녀 귀한 외동딸 샬럿공주님입니다. ㅎㅎㅎ
20세기 초 사교계 패션 한 번 끝내주죠? ㅎㅎㅎ
자, 조금 더 들어가보자면, 이 공주님이 근자에 돌아가신 레이니에3세공의 어머님입니다.
여기까진 계산이 쉽지요?
여기서 그쳤더라면 그냥 평범하겠는데, 이 영감님, 루이2세공께서는 결혼을 안 했습니다.
(이름을 잘못 표기했기에 정정합니다)
저 후계자 살럿공주님은? 사생아입니다.
(여담으로 지금 샬럿공주라고 간간이 인터넷 뜨는 애는 사실 공주 칭호는 없지요.
샬럿이란 이름이 저 외증조할머니 이름을 딴 건데, 정식으로 모나코의 샬럿 공주님이라면
저 초상화 주인공입니다)
모나코 공국의 결혼사는 대대로 모범적이진 못했습니다. 작은 공국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대국에서 귀부인을 대공비로 데려오면 갑갑한 작은 나라 사교계에 짜증을 내고 파탄 등등.
저 영감님도 어린 시절 파탄난 가정에서 자라 그런지 결혼이라는 의무를 이행을 하려고 들지를
않았고요, 젊은 날에 가출 비슷하게 프랑스 군대 복무하면서 서민의 이혼녀, 그것도 천한 일 하던
당시 기준으론 나이도 많은 20대 중반 이후 여자를 첩으로 둬서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평생 결혼 안 하고 적당히 플레이보이로 인생을 즐기면서도 후계자 정리는 해야 했죠.
후계자가 없으면 독일 먼 친척 집안에서 와야 할 판인데, 그건 이웃 프랑스에서도 안 바라고
당사자인 독일 귀족도 귀찮아 하니 순조롭게 사생아 딸래미를 가문의 핏줄로 입양하고
(작아도 국가원수라 이거죠 ㅎㅎㅎ) 이어 계승자로 선포합니다.
모나코 공국의 법상, 여자가 나라를 이어받으려면 남편이 대공가문의 사람, 즉 친척이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 있으면 머하러 사생아를 받아들일까? ㅎㅎㅎ
적당한 프랑스 귀족 명문 후예 떨거지 하나를 데려다 대공가문의 성을 주고 데릴사위 삼습니다.
요약하자면, 본인은 골치아픈 결혼생활로 가문의 대를 잇는 종마 역할을 거부한 대신 사생아딸에게
씨암말역할을 시킨 거죠 ㅎㅎㅎ
10년 결혼 생활에 애 둘 낳고 의무는 다했으니 저 공주는 애인 만들어 이혼해 버립니다.
이어 애들이 장성하자 후계자 자리도 넘겨줘 버리고 (작은 나라 자리야 귀찮기만 할 뿐이고 돈이야 걱정 없으니 ㅎㅎ)
또 다른 애인이랑 파리에서 삽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도 다녀서 사회복지쪽 일을 하느라고
파리의 거처를 전과자 재활시설로 만드는 등 30년도 더 살다 장수해서 죽었죠. 그런데 같이 살던 애인이
보석도둑으로 이름 날리던 전과자였답디다. ㅎㅎㅎㅎㅎㅎ
모나코 공국의 시초부터 어느 한 구석 요란하지 않은 게 없죠.
지금 대공도 주위에서 사생아 입양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유가 현대 민주주의 때문이 아니라, 모나코 공국의
저 빛나는 선례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현대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죠.
그나저나 여담으로, 흔히들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공국에 미모 유전자를 가져다줬네 하는데,
저 옛날 샬럿 공주의 모습을 보면 캐롤라인 공주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저 할머니 쏙 빼다 박았더만요.
실제 사진과도 별 차이 없음)
2. 교황 레오13세
3. 요크 공작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 (뒷날의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 ㅎㅎㅎ) 1933년
흔한 어린이 초상화와는 달리 귀여움보다는 어딘지 냉철한 위엄을 풍기게 했죠?
어린 나이지만 황태자인 큰아버지는 착실하게 결혼할 가망이 안 보이고,
차남이었던 아버지 요크공작은 벌써 병약해서 이미 대영제국의 후계자로 촉망받던 소녀였으니.
4. 요크 공작 (3의 아버지이자 미래의 영국 국왕) 1931년
부왕이 수줍고 허약한 차남이었던 이 양반한테는 큰 거 안 바래고 애나 둘 정도 낳아줄 걸 고대했답디다.
장남 에드워드 황태자 (뒷날 에드워드8세)가 부랑방탕한 넘이라 도저히 제국의 후계자가 그쪽엔 후계자
생산을 포기했으니. ㅎㅎㅎ
건강하고 방탕한 형보다는 오래 살 것 같지 않아서 큰딸 엘리자베스가 여왕은 되겠지만,
요크공작 본인은 왕이 될 걸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큰형이 예상외의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덜컥 조지6세로서 즉위합니다.
(조지5세는 이 양반 아버님이라서 정정합니다)
얼마나 수줍음 심하고 말솜씨 모자랐냐면, 이 왕자님이 뒤에 나오는 미래 마누라감한테 청혼을 했다가
몇번이나 거절당합니다. 세상에 대영제국 왕자님이 일개 귀족 딸한테 청혼해주는 거도 황송한 마당에
몇번이나 면박을 당하니 나중엔 모후께서 진노할 지경이었지요. 결국엔 결혼했지만.
하지만 즉위 이후 성격과 체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굉장히 성실하게 수행해서 2차대전 중 국민의
존경을 받는 현대 왕실의 기초를 이룩했습니다. 대단한 양반이죠.
5. 요크 공작부인 (4의 아내) 1931년 수수하고 튼튼한 용모지요? ㅎㅎㅎ
스코틀랜드 백작 딸래미로서, 그 한 세대 전이었다면 왕실 며느리 감으로 고려되기 어려웠겠죠.
긴장된 외교관계 속에서 강자로 떠오른 대영제국 시대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물론 순수 잉글랜드 귀족 출신 며느리가 왕실 입성하기 까지는 또 한참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다음은 순수 잉글랜드 평민 며느리가 들어올 차롄가?
영국 국민성 때문에 영국 왕비는 대대로 뒷이야기가 많이 파헤쳐지는 편인데,
이 분은 출생의 비밀 의혹이 끈질기게 평생 수근수근.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출생일자, 장소에 대한 의혹 때문에 본처 소생이 아니라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는
의혹이 평생 이어졌죠. 왕실 및 가족은 철저히 묵살하는 것으로 대처.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와도 비슷한 경우인데, 무시하기엔 이해가 안 되고,
어떤 식으로든 해명하는 건 그 자체가 왕실 위엄에 안 어울리는 거니까.
6. 그 밑의 동생왕자인 켄트 공작. 형보단 인물이 낫군요. 이후로 켄트가가 대대로 본가지보단
인물이 낫습니다.
7. 왜냐? 6의 왕자가 이런 공주와 결혼했거든요? 안팎이 다 뛰어나니. 4와 인물 비교가 되지요? ㅎㅎㅎ
마리나 공주.
이 미녀 공주님은 그 왕족 신분이 덴마크, 그리스, 러시아, 독일 등에 연고를 두고 있지만, 그 왕족 신분보다는
영국 왕실의 인연 덕에 시집왔습니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왕실과 사돈 관계가 몇번 나옵니다)
공주칭호가 유명무실할 만큼 외국출신 친정세력이 약해서 오히려 대영제국 왕자와 결혼하기 쉬웠죠.
친정 왕실이 본국에서 추방당해서 떠돌아다니는 신세였으니.
이젠 영국도 대륙과 복잡한 외교관계 때문에 외국인 왕자비는 데려오기 부담스러웠으니까.
결혼할 때 지참금, 혼수도 영국왕실과 귀족층에서 알아서 다 해결해 줬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세력 약한 명문 혈통 공주님이 오히려 거물 신랑 잡기 쉬워진 전쟁 전야의 현대였습니다.
또 한 가지 이 가난한 공주님의 결혼 사연이라면, 영국 왕실은 저 왕자님을 꼭 번듯하게 결혼시키려고
필사적이었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저 미남 왕자님은 일찍부터 왕실에서 인정 못할 애인이 종종 있었거든요.
그것도 남자 애인, 여자 애인 모두. ㅎㅎㅎ
영국 왕실에서는 지금까지도 다른 건 다 봐주고 덮어줘도 동성애만은 벅찼던 겁니다.
지금도 서양 보수층 상식대로 왕자가 여자하고 뒹구는 사진은 젊은 날 혈기로 덮어둘 수 있지만,
남자끼리 친척이라도 반갑다고 어깨를 끌어안는다든가 하는 신체접촉은 절대 금기죠.
십여년전엔가 찰스황태자 형제가 형제끼리 반갑다고 좀 가볍게 끌어안는 거 비슷한 사진 찍혔기로
그게 한참 구설수에 올랐고 반복은 안 되었죠.
윌리엄왕자가 대학시절 룸메이트랑 집 얻어서 자취할 때도 아가씨들을 룸메이트 구성에 넣었는데
우리 상식엔 해괴할지 몰라도 그쪽에선 미래 영국국왕이 기숙사 밖에서 남자끼리만 자유롭게 살았다면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사태니까 그렇게 조정한 겁니다.
반대로 작고한 퀸마더 같은 경우는 혈기왕성한 중년 나이에 과부가 되어 실익과 본인의 장난끼로
근 반세기를 호모 시종들을 많이 거느리고 살았고, 시동생과 소문이 있던 호모들과도 평생 교분을
나눴습니다. 딸 둘 데리고 사는 고귀한 과부 여인네가 남자들과 활기찬 대화라도 스캔들 없이 즐기자면
그것도 방편이었겠는데, 그러다 보니 영국 왕실의 고위 시종 중에는 호모가 좀 많아진 편이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자들을 낳으면서부터는 그 점도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이 공주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미모, 우아함으로 왕실 제일 미녀로 칭송받는 이외에도 성품도 외유내강
엄청난 귀부인이라고 또 존경받습니다. 어려운 자리로 시집온 거거든요.
남편되는 켄트공작은 사실상 막내아들로서 (그 밑에 동생이 또 하나 있었지만 얘는 간질로 가족과 격리되어
형제들을 거의 안 만나고 지내다 어릴 때 죽었음) 왕실 가족 전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금이야 옥이야 자란
미남에 건강하고 왕족으로선 드물게 예술적 조예, 교양이 뛰어난 분이었지만,
한편으론 평생 끊이지 않은 양성애 애인들 중에 유명인도 있고 문제인물도 많은데다 (스파이, 마약중독자, 남창 등등)
공작 본인의 젊은 시절 마약중독 문제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결혼하고 8년만에 비행기 추락으로 전사합니다.
그런데도 켄트공작부인은 평생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우아한 생활로 왕족의 귀감이 되어서 평생 영국국민들의 흠모를 받았죠.
8. 이 아가씨는 미국 거물의 딸로 태어나 거물에게 시집갔죠.
앨리사 멜론 브루스.주영 미국대사인 아버지를 따라와서 영미 양쪽 사교계에 이름을 떨쳤고,
남편은 내셔널 갤러리 관장이었습니다.
9. 미국 대통령 쿨리지의 초상화도 그렸고
10. 이 남자는 현 영국여왕의 친척이자 그 남편 필립공의 아저씨뻘 되는 루이스 마운트배튼의 신혼시절.
독일 작은 왕족이었던 가문의 독일식 이름 바텐부르크가 영국의 반독일 정서에 따라 영어식 마운트배튼으로
개명되는 치욕을 이기고 와신상담, 누이의 아들 필립이 여왕의 남편이 된 이후에는 태어난 어린 찰스가
물려받을 새 왕조가 윈저가 아니라 마땅히 마운트배튼으로 불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보수층의 여론을
조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머니가 빅토리아여왕의 외손녀이었던 고귀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재산이 빈약해서
유태계 대부호 상속녀 에드위나와 결혼합니다.
신분과 시대에 맞게 여배우 연인이 아주 많았고, 또 신분과 시대에 아주 위험하게도 남자애인도 심심찮게
있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뒤에서 부르는 별명이 마운트'바텀' ㅎㅎㅎ
아내 에드위나도 당당한 연애편력으로 유명했는데, 양성애는 내외 공통이라, 남편의 애첩 하나를 마나님이
꼬셔서 데리고 놀았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ㅎㅎㅎ
이상은 사생활 얘기고, 전쟁 중 군대에서 모범적인 지휘관이었고, 인도독립의 격변기에 인도 총독(정확하게는
인도에서 영국황제를 대리해서 통치하는 부왕 副王)으로서 간디 암살 등등 여러 대사건을 목격했습니다.
말년엔 한가롭게 그물질 나갔다가 아일랜드 독립 게릴라의 폭탄테러로 죽습니다.
영국왕족의 신변경호가 특수작전처럼 된 게 이때부터랍디다.
11. 이 여자는 10의 아내인, 유태계 미녀 상속녀 에드나. 이 부부는 당시 유행 따라 각자 애정관계
복잡하기로 유명하죠. 이 여자 리스트에는 인도수상 네루도 올라있을 정도로.
사족이지만, 당시 영국 사교계 애정관계도는 현대 찰스-카밀라-다이애나 정도는 어린애 장난. ㅎㅎㅎ
(이 부부는 특히 또 내외 모두 애인들 성별이 양쪽 성을 다 망라했던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영국 사교계 최상류층에서 양성애 내지는 동성애 경향이 치명적인 스캔들인 동시에 의외로 흔한
비밀인 내력이 있죠.)
다만 이 시대 귀부인들은 다이애나처럼 혼자만 피해자인 척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동네 사교계에서 부부가 다 같이 놀아나는 건 변함없으니. ㅎㅎㅎ
그 무렵 사교계가 사탄의 소굴이었다면, 현대 사교계는 미국 드라마식이 된 차이? ㅎㅎㅎ
(수영이 취미였고, 왕실인척으로선 별나게도 수장을 희망했던 건 이 여자라서 정정합니다)
12. 잠깐 연예계도 훑고 갈까요? ㅎㅎㅎ
이건 배우의 초상화로 그린 겁니다만, 사연이 웃깁니다.
2번째 마누라랑 이혼한 영국 귀족이 딸래미 초대로 같이 극장에 갔다가 빨강머리 독일 출신 여배우한테
한눈에 빠집니다.
애인 정도도 아니고 엄청나게 숭배하는 정도가 되어서 보석도 갖다 바치고,
유명화가한테 초상화 제작도 의뢰하죠.
근데 화가영감도 이 모델의 미모에 넘어가서 의뢰받은 거보다 훨씬 큰 초상화를 덜컥 착수합니다.
근데 완성도 되기 전에 이 여배우는 자살인지 사고인지 살던 집에서 추락사해버립니다.
그런데 화가와 의뢰인 일가가 죽이 맞아서 그 여배우의 의상, 보석을 그 집안 귀족 아가씨한테
착용시키고 포즈를 취하게 해서 강행합니다. 귀족따님이 키가 쬐끔 작았습니다만. ㅎㅎㅎㅎ
귀족께서는 이 그림을 죽은 여배우의 머리카락과 함께 평생 보물처럼 간직했다고 합니다.
이걸 순애보로 읽어야 할 거 같은데, 어째 기가 막히는 분?
13. 파이살 왕자.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나오죠.
14. 엘리노어 글린. 20세기 초의 로맨스 소설 작가로서 (옛날부터 원래 있던 쟝르랍디다 ㅎㅎㅎ)
스캔들성 높은 책을 왕왕 발표하다가 헐리웃 영화 대본 써서 더 거물이 되었죠.
이건 그녀의 사진이고
15. 이건 초상화입니다. 화가 묘사력, 모델을 멋있게 표현하는 능력을 미루어 짐작하시길.
16. 이 화가의 아들들을 모델로 한 그림. 비누방울 부는 아이들. Bubble Blowers
17. 16 에서 아들 스테판
18. 16에서 아들 폴. 둘 다 아들입니다 아들 ㅎㅎㅎ
19. Airlie백작부인. 걍 모델이 만족할 수 밖에 없도록 멋있게 그린 귀부인 초상화.
20. 레이디 브라우튼. 역시 걍 모델이 만족할 수 밖에 없었을 미모의 귀부인 초상화.
21. 바텐부르크의 루이즈 공주, 나중에 스웨덴 왕비가 됨. 10의 누나이며,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라서
영국왕실 후손입니다.
22. 21의 자매인 그리스의 앨리스 왕자비 (이 양반 아들이 필립공)
역시 10의 누나이며,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라서 영국왕실 후손입니다.
그리스 왕정이 폐지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핏줄을 구출하기 위해 영국 해군 함정이 파견되었던 거죠.
23. 영국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올가 메리 공주 (에드워드7세의 따님, 이름을 봐도 당시
빅토리아여왕 후예들의 화려한 국제적 혼인관계가 나오죠)
24. 이번엔 이 화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가족 규모 초상화의 한 예를 보죠.
포틀랜드 공작.
25. 포틀랜드 공작부인
26. 공작의 장남인 후작
27. 공작의 어린 차남. (하지만 그 나이에도 벌써 lord가 붙는 높으신 분 ㅎㅎㅎ)
28. 나중에 큰 며느리 될 아가씨. (이 아가씨의 일가 전체의 초상화도 역시 이 화가가 그렸음 ㅎㅎ
이런 식이니 당시 유럽, 미국 거물 가문들의 가족앨범을 제작했다는 편이 맞을 듯.
분량상 생략했을 뿐 영국의 대귀족들 초상화는 부부 하나씩 그린 게 기본이었고,
더 유명하면 대대로 애들까지 그렸음.
유럽 각국 군주 부부들도 프러시아, 스페인, 루마니아 등등 초상화가 더 많았음)
29. (왼쪽) 뒤에 스페인 왕비가 되는, 바텐부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
(오른쪽) 그 어머니인 비어트리스 공주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이 모녀의 그림을 흑백으로 제작하고, 나중에 칼라로도 제작했다고 합니다.
왼쪽 여자는 지금 스페인 국왕의 할머니죠.
바텐부르크 가문의 형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여자 후손2명과 결혼했는데,
형이 결혼한 건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고 (이쪽 후손들이 위에 나온 10번, 21번, 22번
포함하고 현재 영국여왕 남편 필립공까지 포함됨)
동생이 결혼한 건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입니다. (이쪽 후손은 현재 스페인 왕실)
한국식으론 상당히 요상한 관계가 되죠.
바텐부르크 가문은, 독일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 시집간 라인-헤세 가문과 친척간이라
안면 익혀서 혼사가 이뤄졌는데, 사실 이 신랑들의 어머니는 독일에서는 군주 가문이 아닌
그냥 귀족이라 귀천(貴賤)상혼으로 자손이 아버지의 신분을 물려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죠.
그러니 빅토리아 여왕 입장에서 보면 귀한 왕녀들 신랑감이 되어 영국에 와서 살아주기 딱 좋은
왕족 신랑감인 셈이었던 겁니다. 아직 왕녀들이 귀족에게 시집갈 세월은 아니었으니.
돈 없는 반편이 왕족이라도 부유하고 권력 있는 귀족보다 훌륭한 신랑감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