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미생각입니다. ^^;;
1.
2013년 3월 13일.. 취업을 앞둔 20대들에게 3월이란 상반기 공채시즌, 피말리는 잔인한 시간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취업 전쟁터에 내몰린 그들에게 있어 취업은 생존의 문제다. 그들이 취업 관련 사이트에 찾아와 던지는 출사표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신입생 때부터 취업 준비와 취업 계획에 열을 올려야 하는 그들에게 예전 세대가 누렸던 '먹고 대학생' '낭만의 시절' '질풍 노도의 경험으로 자신을 조각하는 시간'이라는 말은 한낱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은 대기업, 공무원에만 몰리는 20대들의 행태를 꾸짖기 바쁘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근면하게 생활했던 기성 세대들의 모범에서 배우는 것이 없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지금의 상황이 기성 세대들이 겪었던 그들이 살아왔던 때와 조건이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동안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투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신뢰의 상실'이라고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동시에 이것은 전세계적, 전인류적인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뭔가 거창한 담론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 앞에 닥친 엄연한 현실이다.
'신뢰란 무엇일까?' 한자로 信 밀을 신이란 사람의 말에 기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한 말에 거짓이 없음을 믿을 수 있다는 뜻일게다. 그런데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보면 신뢰라고 하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에서도 '신뢰'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며 가치이다.
2.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내가 했던 얘기들을 찬찬히 짚어보면 답이 나온다. 자본이란 아니.. 좀 더 범위를 좁혀서 화폐란 일종의 <권리>이다. 가치에 대한 권리, 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며, 처분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고 그것을 사용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 내지는 원천, 동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바로 <차이>이다. 같지 않고 다르다는 것에서 결국 교환의 동력, 원인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진행될수록 <차별>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현재의 시대는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시대라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그 차이를 드러내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뢰>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을 곱씹어보자. 신뢰란 무엇일까? 거짓없이 믿는다. 라는 개념이 첫번째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어떤 것에 대한 <기대 혹은 바람>이 절대로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통념>을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현재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일까? 세상이 불안해지고,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할수록 사람들은 확실한 것, 안심할 수 있는 것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어째서 세대를 막론하고 공무원 시험에 열을 올릴까? 단순히 정년 보장이 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세간의 인식은 국가는 망해서는 안된다. 혹은 망하면 곤란하다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절대로 배신당해서는 안된다. 배신당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로 이런 생각의 통념들을 모두가 공유하게 되면 그것이 결국 하나의 <신뢰라는 틀>로 자리잡히게 된다. 우리가 생각해왔던 <신용, 진실, 믿음>이라는 개념과는 다소 다른 의미의 변종된 <신용>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화폐, 곧 신용카드의 개념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일 터이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망하면 안된다 망해서는 곤란하다는 통념의 공유가 국가 뿐만 아니라 은행권, 대기업 (특히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범위까지 확장되는 것.. 이것이 바로 돈이 돈을 불러 모으고, 양극화가 심해지게 되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리의 틀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망하면 곤란하다는 통념은 은행권, 대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설마 국가가 망하겠어? 설마 삼성이 망하겠어? 설마 은행이 망하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는 끝장이다! 라고 생각하는 통념의 확산과 암묵적인 동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한.. 자본과 인력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은 결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결국은 무엇일까? 각자도생이 <생존의 본능>인 이상.. 양극화와 일등주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잘살면 돼>주의가 시간이 갈수록 공동체의 근간을 갉아 되면 결말은 공멸 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이 사회는 구조적 모순이나 사회적 모순은 약자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면서 모른 척 하기 바쁘다. 일단은 지금 당장은 살고보자. 살아남고 보자는 식이다. 이런 식의 <책임의 전가>로 다수가 해피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비겁하고 비열한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는 한 신뢰라는 가치는 더이상 발 딛을 곳이 없어질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3.
상황이 이럴진대.. 이런 흐름을 당위성과 이성의 힘으로 막아낸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대한민국 범야권 좌파 진보연들은 여전히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중 위에 군림하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계몽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내리막을 향해 치닫는 작금의 현상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도 막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메시아가 나타나서 모든 것은 다 정리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우파나 좌파 모두가 [비록 동상이몽이긴 하나]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N.EX.T가 불렀던 'Lazenca, Save us'의 가사가 떠오른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그리고 노래는 합창이 되어 외친다. Lazenca, Save us 라고..!
그렇다면 대중의 이런 외침에 부응하여 메시아는 나타날 것인가? 여러 예언서에서 등장하는 혜성같이 등장하는 메시아를 열망하는 것,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단은 글을 맺을 수밖엔 없을 듯 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우리 스스로 각자의 판단으로 얻어내야 할 답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유시민이 최근의 저서 '어떻게 살것인가?'에서 <연대의 가치>를 짚은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희망은 아마도 거기에서 싹틀 것이다..!
고미생각 드림 / 2013년 3월 13일
■ 다음 Knowhow up Cafe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41)
첫댓글 한 줄 게시판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글의 서두에서 취업 얘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삼성 상반기 공채 공고가 떴기 때문입니다. 삼성 공고가 뜨는 순간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취준생들의 반응을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짓다가 그동안 하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꼭 기록해두고 싶었던 것이죠.
마침 어제 지여님께서 쓰신 글과 김동렬 님이 예전에 올렸던 강론, 그리고 아프로만님의 머니터리즘 글, 야째야째님의 김병관 군내 자살 개인소관사 발언 글 등이 그간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음~ [어떻게 살것인가] - 이책은 안 봤네요. 일부러 안 읽었어요. "자전적" - 이라고 책소개가 됬길래.
뭐.. 저도 굳이 안 읽었습니다. "연대" 라는 말만 보아도.. 그리고 그가 지금껏 걸어왔던 정치 노정을 뻔히 알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유시민의 책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골든타임과 추적자가 아무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도 그때 뿐이라는 거..! 그게 참 맥빠지는 일이죠.. ㅠㅠ
아프로만님께서 문예반을 신뢰하지 않으시는 것이 바로 이런 면과도 연결됩니다. 박경수까지는 몰라도 최희라 작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죠. 이것이 지난번 글에서 미당을 언급한 것과도 연관이 됩니다.
글이라는 건 자신의 삶과 결합해야 만이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해서 다 내 것은 아닌 겁니다. 머릿속에 나온 것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한.. 소유와 저작권에 대한 '개인적 기준'이 던지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이게 무슨 말이냐?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해서 다 내 것이 아니다.'는 말은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연결됩니다.
첫째는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자신이 깨우치고 알게된 지식들이 과연 기존의 지식과 동떨어진 전혀 새로운 창조물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자신이 성장하고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재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듯이 자신의 행동으로 일관성있게 실천이 되지 않으면 결국 <말의 성찬>으로 끝난다는 것이죠. 책임성과 방향성을 상실한 글과 말은 어떤 식으로든 악용되기 마련이고요.
세번째는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와 배경이라고 하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일이냐?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죠. <책임의 전가>를 통해 얻은 <반사 이익> 혹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를 통해 얻은 수익과 재산이라고 하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손해>를 바탕으로 해서 얻은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좌파의 경제 관념의 핵심적인 내용이고 이것이 <신파>와 <관념론>으로 변질되어서 문제이지만 제가 이 부분에 대한 좌파의 경제관에 주목하는 이유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공동체의 개입과 규제라는 부분을 근거할 수 있는 역할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프로만 비망록 [2013년 3월 13일]
삼성 아니면 공기업 쏠림'대마불사' or 새정치 사기짓 안철수 메시아는 [돌파구 없는 고립의 절박함] 에서 탄생함. 결론은 그래서 한국이 너무 좁다는 거- 바닥도 시장도
맞습니다. <고립>과 <절박함>이 대마(大馬)를 키우는 것이죠.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그게 안전하다고 여기니까요. 문제는 그렇다면 세계 경제는 고립되지 않았으니 괜찮으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벽에 부딪힌 것(=돌파구를 못찾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죠. 남충현님이 세계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라고 진단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왜 활력을 잃었을까? 이것은 좌파들의 진단이 어느 정도 맞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의 댓글에서도 자세히 서술하였습니다만 더이상 '전가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이죠. 펀드 붐이 주춤하고 신규 시장을 개척하지 못해 더이상 경제의 파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그런 이유 탓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게 악순환이 되어 돌고 돌게 된다고 봅니다. 경기가 얼어붙고 <각자도생>이 생존의 지침이 된 것이 과연 우리나라 한 군데만의 문제겠느냐 하는 것이죠. 동북아 정치지도자들의 성향이 죄다 비슷하다는 사실로 보건대 그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아를 원하는 <절박함>은 이제 인류의 바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무현이 인류와 진보의 시계를 물으며 생존의 미래를 걱정했던 참뜻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래저래 참 답답한 일이지요. ㅠㅠ
"돌파구가 없어서 고립의 외통수에 빠져 절박함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결국 대마에 목을 매고, 메시아를 추앙한다..!"
그렇다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이미 노하우업은 매우 큰 힌트를 제시했습니다. 첫번째가 바로 <존엄>이죠. 자신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는 겁니다..! 남에게 의존하고 남의 입, 남의 생각을 바라보기 보다 스스로 바로 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죠. 이 존엄이야 말로 공동체, 집단이 <진화>하는데 필요한 가장 큰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이 가진 것을 절대로 업수이 여기지 마시오!' -아프로만 어록-
이것이 모든 것을 극복할 희망의 가장 첫번째 단초입니다.
두번째가 바로 <연대>입니다. 유시민이 <자전적 에세이>라고 펴낸 '어떻게 살것인가?'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메시지..! 그것이 바로 <연대의 중요성>입니다.
왜 연대가 중요할까요? 세력을 만들기 위해섭니다. 변화의 추동력은 세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세력이 모이고 움직이는 방식에서도 분명히 <진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김동렬 님 식으로 말하면 <이심전심>에 해당합니다.
김동렬 님 식으로 표현하자면 <존엄>을 깨우친 <강한 개인>이 <이심전심>으로 <연대>하여 세력을 만들고 그 세력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것으로 동기와 동력을 확보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목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진화요, 집단의 진화, 인류의 진화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진보>입니다! 앞으로 노하우업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진화의 길>을 만들어 가는 항로를 스스로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우리의 길이 인정받으려면..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사례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을 검증 받고 인정받을 수 있게끔 해야 인류는 비로소 생존의 새로운 돌파구로 나아갈 겁니다.
여기까지는 김동렬 님의 진단과 처방과 일치합니다. 여기에 저는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더 짚어 봅니다..!
무엇보다 상부 구조는 결코 외부의 개입이라는 부분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외부효과, 외부자극에 의존하는 상부 구조는 결단코 메시아를 요구하는 삼천포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개인의 시야가 열리고 진화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진화는 그 다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공감트윗 : design나눔?@designNanoom
저는 대선국면 이후로 트윗 붙박이에요. 뭔가... 흐름을 읽는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웬지 고갈되고 스스로를 소모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특히 안철수와 주변정황을 지켜보면서...
사실 지금 겪는 고갈-소모의 느낌은 결국 지난 번 미처 풀지 못했던 숙제를 안고 또다른 국면을 맞아야 하는 낭패감 때문인지 몰라요... 뻔히 야기될 것이었던 일들에 새삼 놀라고 분개하면서 성찰의 때를 놓쳐요.ㅠ
고미생각 @uprightowalk
그러게 말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이 그렇게 정해진 이후로 앞으로의 상황이 뻔히 짐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로 눈앞에 닥치게 되면 낭패감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게 되죠. 하지만 좌절의 시간이 길면 위험합니다.
역시.. 정곡을 짚어주시네요. 맞습니다. 고갈과 소모.. 그것은 우리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은 고갈되고 소모되는 에너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서서 걷기 위해 그간의 행적을 차분히 돌아볼 때라고 봅니다.
고미생각 @uprightowalk
어차피 그 모든 일들이 제 손을 떠나서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 그 다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답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소모와 고갈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래서 트윗을 내려놓게 된 것이구요.
[트윗 비망록 : 홍성수 @sungsooh]
트위터 입문한지 1년 조금 넘은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 가능성을 많이 보다가 요즘은 회의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공론형성기능은 불가능에 가까운 듯 하고, 소식 전달이나 다른 매체와의 연결 정도가 최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프로만 비망록 2012년 4월 26일]
(http://cafe.daum.net/knowhowup/Dnqf/336)
(상략)
99%를 업신여기고 핍박하는 힘은 1%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99% 자신들에게서 나온다 - 이 때문이다.
(중략)
인문학 뿐만 아니다. 공학 건축학 다 마찬가지다 빌딩의 골조 설계와 역학계산 인체의 골격을 모방한 거다. 기계 공학의 토션과 스냅 이거 사람의 관절에서 모방한 거다. 컴퓨터의 연산 알고리즘? 사람의 사고방식 프로세스다. 이치의 모든 게 인간에게서 나온 거다 - 격물치지(格物致知)
인간 - 을 보라, 인간행동 인간행태를 보라, 모든 답이 거기에 있다. 이거 '기본' 이다 '기본'
(하략)
예전에 쓴 글이니 읽고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제 손에 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지 모르고 남의 떡이나 힐긋힐긋 곁눈질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분별을 모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결국은 무엇인가? 기록! 특히 시사성 글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일회용으로 소비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계속 읽고 또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이는 글을 읽는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 머릿 속에서 나왔다고 다 내 것은 아닙니다.' 고미생각 어록이 나온 이유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제 손에 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기본이 왜 중요한지를 안다. 모든 것의 기본과 기초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그 기초가 '핵'이 되어 얼마나 크게 불어나게 되는 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단편적인 지식을 많이 긁어 모은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지식이 되고, 내 판단의 근거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가방 끈 길고, 석박사 학위 따고 제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봐야 뭐하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거 다 헛거다.
그래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 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고 일갈한 거다.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서 문제다. 세상이 너무 많은 것을 억지로 주입하려 해서 문제인 거다. 지식이 과잉이 되니 무엇이 우선인지를 판단하지 못해서 사고가 정지해 버린 것.. 그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것이 중요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며, 최대한 많이 아는 것보다 핵심과 기본에 충실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토대가 탄탄하면 건물을 올리는 것은 삽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교훈은 동, 서양 공히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아니던가?
내가 왜 노하우업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게 되었나? 따지고 보면 이유는 딱 한가지다.
나는 서프의 미덕을 소중히 여기는 눈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프의 미덕은 무엇이었나? 본글과 댓글을구분하지 않고 모두 소중히 여긴다는 것, 대화와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이게 뭔가? 커뮤니티 소통의 절대 기본이다. 이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이를 무시하기 때문에 결국엔 사단이 나는 것이다.
본글과 댓글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 내가 쓴 글과 남이 쓴 글을 모두 귀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읽고 살피는 것.. 이거 다 누구나 아는 기본이다. 그 기본만 지켜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다!
지난 번에 내가 퍼왔던 트위터리안의 고민 -소모와 고갈- 을 해결하고 그간의 멘붕과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 그건 이미 우리 안에 다 있었다. 기본부터 챙기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것부터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자..
나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내게 있는 것을 결코 업수이 여기지 말자. 내가 이미 아는 것부터 소중히 여기자! 그것이 바로 기본이다. 그 기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정녕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다시 찾아나가는 사람은 정녕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업신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무시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 그렇게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돌아보는 데서부터 출발하자. 그렇게 기본을 다시 찾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 희망의 동력을 새롭게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