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포 세대'란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세대를 일컫는 말인데요. 이 외에도 이들의 고통을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 삼포 세대 외에도 4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스펙' 쌓기와 일자리 전쟁에 치여서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라 하여 '4포 세대'라는 부르기도 하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라 하여 '5포 세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외에 낙타 세대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입니다.
2. 일본에서는 이들 세대를 '사토리 세대'라 부른다고 하는데요. 우리말로는 '득도의 세대, 깨달음의 세대'라는 뜻입니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이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지요? ⇨ <아사히신문>이 최근 이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고, 국내 일부 언론들도 해당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사토리 세대는 지난 20년간 일본의 거품 붕괴 후유증과 장기 불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10대와 20대 초중반 세대를 말합니다. 즉 절망적인 일본에서 어떤 꿈과 목표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세대인데요. 이들 세대의 특징은 깨달음에 도달한 성직자들처럼 소비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동차를 사려 하지도 않고 브랜드 옷을 입으려 하지도 않으며, 스포츠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여행도 안 갑니다. 또 연애나 결혼에도 관심이 없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욕도 없으며 주목받는 일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3. 전 세계적으로 일본은 내수 비중이 매우 큰 나라 중 하나인데요. 청년층이 갈수록 소비에 무관심하다면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겠지요? ⇨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내수 비중은 조사 대상 156개국 중에서 5번째로 높았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신세대들이 소비를 기피한다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겁니다. 일본교통공사에 따르면 사토리 세대의 등장으로 일본의 20대 해외 여행자는 2000년 420만 명에서 지난해에는 290만 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또 일본자동차공업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초중반의 자동차 면허 취득자 중 실제로 운전하는 비율은 1999년 74.5퍼센트에서 2007년에는 62.5퍼센트로 감소했습니다.
4. 일본과 우리나라의 청년층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세대 간 경제력 격차와 계층 간 경제력 격차가 많이 겹치지만, 우리나라는 좀 덜 겹치는 것 같습니다. 일본 통계청에 따르면 재작년 일본 2030세대의 소득 대비 순저축액(=총저축액-부채총액) 비율은 마이너스 25퍼센트였습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10퍼센트였습니다. 이 통계는 일본의 세대 간 경제력 격차가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5. 40대 이상은 어떤가요? ⇨ 40대의 소득 대비 순저축액 비율을 보면 일본은 34퍼센트, 우리나라는 3퍼센트였습니다. 50대의 경우는 일본이 131퍼센트, 우리나라가 8퍼센트였고, 60대 이상은 일본이 418퍼센트, 우리나라가 27퍼센트였습니다.
ⓒ홍헌호
6. 일본의 40대 이상은 우리나라 4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한일 양국의 세대 간 경제력 격차 통계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는 그 격차가 매우 큰 반면, 우리나라는 전 세대가 골고루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세대 간 경제력 격차와 함께 계층 간 경제력 격차에도 동시에 주목해 복지 정책을 균형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난해 민주통합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원인은 세대 간 경제력 격차 문제와 계층 간의 경제력 격차 문제에 균형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7. 가계 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소득 대비 순저축액 비율이 플러스로 나타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겁니까? ⇨ 통계청이 가계 조사를 할 때 가계 부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모두 모집단에 포함시키기 때문입니다.
8. 가계 부채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가계의 고통도 심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계의 고통이 심해진다는 것은 어떤 지표로 확인할 수 있나요? ⇨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국민 계정 자료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매년 국민 계정 자료를 통해 가계의 총소득과 이자소득, 그리고 이자 지출액을 발표하고 있는데요. 이 자료를 토대로 가계 총소득 대비 순이자소득 비율을 계산해 보면 이 비율은 1985년과 1998년 사이에 2.6퍼센트에서 6.9퍼센트로 상승한 후 급락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0.5퍼센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전체 가구 중에서 가계 부채를 가진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가계 부채를 가진 가구의 부채 총액도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홍헌호
9. 2030세대들을 보면 극소수 부유층 자녀들은 명품 소비에 열중하는 반면, 대다수는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일본에 비해서 그 정도가 덜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2030세대의 고통도 심각한 수준 아닌가요? ⇨ 물론입니다. 지금의 대다수 2030세대는 과거의 2030세대와 달리 일자리 문제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또 지금의 2030세대는 부모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해서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지금의 2030세대는 집 밖에 나가서는 아비규환과 같은 취업 전쟁에 시달려야 하고, 집 안에서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하여 빚더미에 허덕이는 부모를 보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10. 일부 기성세대들은 취업 전쟁에 시달리는 2030세대를 향해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하고 있는데요. 이런 조언은 정당한 것인가요? ⇨ 일부 기성세대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2030세대로 하여금 눈높이를 낮추지 못하도록 형편없는 환경을 조성한 사람들이 바로 기성세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은행이 가장 좋은 사회 체제로 인정한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에서는 '스펙' 많은 사람을 치켜세우거나 '스펙' 적은 사람을 깔보는 사람을 인격이 형편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 훌륭한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선진국 국민다운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상파 방송부터 '스펙'이 적은 사람들, 능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들을 대놓고 비하하는 방송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11. 우리 사회에는 능력이나 '스펙', 또는 외모에 따라 누군가를 너무나도 쉽게 비하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과거 20년~30년 전보다 이런 홀대 문화가 더 활개를 치고 있지 않나요? ⇨ 20년~30년 전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계층은 대부분 부유층, 기득권층이었습니다. 당시 군사 정부가 부유층,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나쁜 짓을 하는 부유층, 기득권층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12. 누군가를 능력이나 '스펙', 또는 외모에 따라 너무나도 쉽게 비하하는 사회는 결코 성숙한 사회라 보기 어려운데요. 지금의 2030세대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런 미성숙한 문화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고, 또 취업 후에도 이런 미성숙한 풍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합니다. ⇨ 우리 사회에는 질 낮은 홀대 문화가 깊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대받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대기업 취업을 하려 하고, 또 홀대받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아파트를 사며, 또 홀대받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큰 차를 삽니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문제는 이런 홀대 문화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고, 과거에 비해서 훨씬 더 수준이 낮아졌다는 겁니다. 기성세대들은 이런 홀대 문화를 사회 전 분야에 확산시켜 놓고 나서 2030세대에게 왜 눈높이를 낮추어 중소기업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추궁합니다.
13. 기성세대에는 민주화 세대라는 486세대도 포함되겠지요? ⇨ 물론입니다. 지금의 486세대는 더는 후배들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세대가 아닙니다. 공익보다 사익에 몰두해 있습니다. 공익을 추구한다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당사자 운동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당사자 운동은 공익 추구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사익 추구 운동입니다. 2000년대에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일부 486세대는 관치가 두렵다는 이유로 대기업의 시장 논리에 편승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상당수 486세대가 관치와 시장 논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 영역에 대한 고민이 핵심인데 이들에게는 그런 고민이 없습니다.
14. 홀대 문화와 '왕따' 현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유년기 교육과정부터 누군가를 능력이나 '스펙', 외모에 따라 차별 대우하는 것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난받을 만한 것인지를 충분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교육 과정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천박하고 비난받을 만한 행태에 무감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5. 중소기업 취업자들의 경제적인 고통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심해졌지요? ⇨ 제조업의 경우를 보면, 1990년 무렵 중소기업의 급여는 대기업의 70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50퍼센트도 채 안 됩니다. 문제는 중소기업 취업자들의 고통이 급여 격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서 보통 중소기업은 부품, 소재를 담당하고 대기업은 조립을 담당하는데요. 대기업의 중국산 부품,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짐에 따라 국내 중소기업들의 협상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온갖 부당한 횡포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반(半)노예상태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2030세대는 선배들을 통해서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기성세대들은 막무가내로 2030세대의 눈높이가 문제라는 질타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2030세대의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현세대의 고령층 빈곤 문제를 후세대의 부담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정당한가요? ⇨ 앞으로 우리나라 2030세대의 삶이 사토리 세대와 같은 삶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저는 전자가 맞다고 봅니다. 지금의 486세대가 20대였을 때, 사토리 세대의 삶과 같은 미래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에서 현실화되었고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될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염치없이 2030세대에게 우리 세대의 고령층 복지까지 감당하라고 요구할 수 있나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민주통합당이 국채 발행보다는 부자 증세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지속해서 천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자 증세는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고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되는 길입니다. 부자 증세를 포기하면 향후에 의미 있는 복지는 없습니다.
▲ 지난해 12월 15일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광장 유세에서 청년유세단원들과 '젊은 그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17. 2030세대의 고통, 어떻게 덜어주어야 합니까? ⇨ 이런 문제는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정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서 해결하려 노력해야 출구가 보일 겁니다. 첫째, 중소기업저소득층근로자들을 위해 근로장려금을 확대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할 겁니다. 사실 이 복지가 여야 정당이 추진하는 보육 복지보다 더 중요합니다. 2030세대에게 일자리가 없다면 실업자에게 보육 복지를 해보아야 가계에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뿐,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합니다.
둘째, 대기업의 중국산부품,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고, 국내 중소기업들의 판로가 사라지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중소기업에 대해 스스로 생산성을 높여서 새로운 판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지금의 중소기업에는 연구 개발을 할 여력도 없고, 인력 양성을 할 여력도 없으며, 교육 훈련을 할 여력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중소기업에는 대학들이 중소기업에 도움을 주는 인력을 양성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18세기 주자학파와 같은 교육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처럼 대학의 절반 정도는 중소기업에 도움을 주는 교육을 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18. 좋은 기술은 있어도 담보물이 없어 기술을 사장해야 하는 중소기업과 청장년 창업 희망자들도 많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큰 문제지요? ⇨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보증지원입니다. 즉 좋은 기술은 있어도 담보물이 없는 중소기업에 대해 금융 기관들이 대출을 기피하기 때문에 정부가 기금을 통해 보증 지원을 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보증 지원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증 지원을 안 받아도 되는 중기업들이 지원을 많이 받아가서, 가장 보증 지원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신규 창업기업들이 혜택을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남발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중소기업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새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