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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이 있어 공유 합니다.
역대 대한축구협회 회장들로 본 축구협회의 역사....한번 보시면 재밌습니다. ^^
<역대 축구 협회 회장들로 본 축구 협회의 역사 - 1. 일제강점기~5.16 군사정변>
전세계 그 어디를 가더라도, 그 어느 종목을 보더라도 역사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성장한 스포츠는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소리를 하죠. 체육계의 수장은 체육인이 맡아야 하는거라구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종종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 역시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무관심하니 그런 소리에 휩쓸리는 것이라구요.
1. 이 시기를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계몽 운동가, 독립 운동가들이 축구계를 이끌었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더불어 친일파들도 존재했구요.
계몽 운동가, 독립 운동가, 친일파 뭔가 안맞다 싶지만 사실 이들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코드도 하나 존재합니다.
지식인 계층이라는 거죠. 축구의 역사에서 늘 빠지지 않는 공식과도 같은 계층입니다.
혹시 이에 대해 스스로 더 파고들고 싶으시다면요.
일단 이들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서부터 공부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몽양 여운형 선생에 대해서 무지했다면 그거 정말 심각한겁니다. 반성하시구요.
동시에 친일파라는 세력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는지도 살펴보시구요.
문화 통치와 민족말살 정책이라는 두가지 코드는 고교 역사 시간에 퍼질러자지 않았다면 이미 들으셨을 겁니다.
한때 유행했던 '백년 전쟁'이라는 심플한 다큐를 통해 역사를 안다고 자부하셨다면 아래 내용을 보면서 뭔가 충격도 받으실겁니다.
사실 '백년 전쟁'이라는 다큐에 담긴 사관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가깝습니다.
세계의 주축을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즉 선과악 혹은 흑백 논리로 나누고 서술하는 방식이죠.
역사에 대해 스스로 파고들어본적이 없는 이라면 그런 역사관에 쉽게 이끌리는 법입니다. 그냥 심플하고 머리에 쏙쏙들어오니깐요.
하지만 역사라는건 그렇게 심플하게 정의할수 없는 겁니다.
우와 좌의 갈등, 이후 우파 세력이 또다시 분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로 원래 이승만과 같은 편에 섰지만 이후 결별한 이들이 당시 축구 협회를 이끄는 주축들이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을 왕처럼 모시며 뭉친 자유당 세력은 1955년을 기점으로 야권 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에 야권 인사들의 대회 활동은 당연히 위축될수 밖에 없었죠.
이 시점에서 또하나의 공식이 등장합니다.
1955년 13대 협회장으로 취임한 이는 이종림이라는 분으로 초대 서울 역장이었습니다.
아니 왠 역장? 싶으시죠?
여기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늘 등장하는 공식이 바로 '철도'라는 코드입니다.
축구가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축구를 직접하며 즐긴 대표적인 직업군들 중 하나가 바로 철도 노동자들이었거든요.
우리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43년에 창단된 조선철도축구단은 지금까지도 코레일 축구단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죠.
또 한가지 우리가 이 시대를 주목해야 하는건 현종주, 김명학, 정문기와 같은 인물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명학의 경우 현재 친일명부에도 등재된 친일파입니다만 (정확하게는 전형적인 변절한 지식인이었으며 의사였습니다. 걍 짜증나서 안 썼습니다.ㅎㅎ) 이들은 모두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으며 축구 선수들이기도 했습니다.
즉 최소한 이건 분명히 말할수 있는거죠. 이때까지 만큼은 그래도 축구라는 스포츠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었던거라구요.
<역대 축구 협회 회장들로 본 축구 협회의 역사 - 2. 군사 정권기>
1961년 5·16 군사 정변은 당연히 대한 축구 협회에게도 중요한 역사적 지표가 됩니다.
이 당시 대한민국 스포츠 전체로 눈을 돌리면 유난히도 낙하산 처럼 내려온 군인 출신들이 상부를 장악하다 시피 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걸 무작정 부정적으로만 볼순 없는게...이런 점도 있긴 합니다.
그 시기, 스포츠를 그나마 직접 해본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그 비중을 따진다면 군인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죠. 이른바 전투 체육이죠.
거기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스포츠가 제대로 뿌리를 내려보기도 전에 세계 스포츠의 기류 자체도 냉전 모드로 접어든 이후였죠.
이 시기는 우리네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전세계 스포츠가 암흑기로 접어드는 시기였기도 합니다.
머 그와중에 그래도 스포츠를 향한 철학이 분명히 자리 잡힌 국가들에서는 냉전 모드와는 무관하게 성장했지만요.
반면 당시 축구 협회의 상황은 조금 달랐습니다.
황엽이라는 군인 출신이 잠깐 몇달 회장을 역임하긴 했지만 군인 출신이라기 보다는 집권 여당 혹은 친 여권 성향의 정치인들이 주도했던 시기에 가까웠죠.
머 까놓고 말해서 박정희에게 충성 서약을 했던 인물들이나 다름 없구요. 걍 군인이 아니었던거구요.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금융기업들을 끌어들인 축구 리그 즉 실업 축구 리그가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걸 두고 한국 축구의 발전이라고 말하는 이는 좀 반성했음 하는 바램이 있구요. 이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는지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7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부터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는 올림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당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들이 필요했고 기업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79년, 박정희 정권의 국가 중심 성장 주의에 철저히 협력하며 급성장한 신동아 그룹의 최순영 회장이 축구 협회의 회장으로 오르게 됩니다.
거의 동시에 올림픽 유치 선언도 공개적으로 했죠.
하지만 10.26 사건이 발발하고 이제 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민주주의로 돌아가나 했더니 개새끼 전두환이가 등장해버렸죠.
머 당시 대부분의 재벌들 처럼 신동아 그룹 역시 재빠르게 갈아타며 전두환에게 충성 서약을 했구요.
종종 많은 이들이 그냥 같은 군바리라며 전두환과 박정희를 동일시 합니다만 ㅎㅎㅎ
경제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만큼은 둘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박정희의 경우 실제로도 사회주의자 출신이었고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전두환은 철저한 신자유경제주의자였죠.
아니 정확하게는 그냥 자기는 경제는 모르겠다 싶으니 당시 세계에서 대세로 굳어져가던 신자유주의 경제 전문가들을 데려다 쓴것이었구요.
거기다 3S 정책의 적합한 종목으로 야구와 축구를 지정한 전두환 정권에서는 축구라는 종목 자체를 계속 재벌에게 맡기는 것이 적합하다고 봤구요.
이때부터 사실상 재벌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축구가 시작된 셈이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앞서 우리가 보았던 '축구를 직접하는 지식인들' 역시 사라져갔고 그냥 남은건 배고픈 체육인, 축구인들 뿐이었기도 하구요.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축구계도 쬐끔 변할 뻔 하기도 했습니다.
최순영이 물러나고 전형적인 축구인 출신 이종환씨가 축구 협회장에 올랐죠.
그런데요~ 그는 그 자리를 3개월도 못 앉아 있었습니다.
축구인들 스스로가 이후 그 대신 또다른 재벌을 추대하죠.
<역대 축구 협회 회장들로 본 축구 협회의 역사 - 3. 80년대 이후>
이 시기 이후부터는 단순히 축구 협회 회장이 누구냐? 만으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좀 더 시각을 넓혀서 정리했습니다.
혹자들은 그럽니다. 현대가가 축구계의 절대악이니 현대가 망해야 된다구요.
최근 안민석 의원이 그런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더군요.
많은 분들이 그 인터뷰를 보고 그 분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 처럼 대하는걸 봤습니다만....
아뇨~ 현대가 망한들 또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뿐입니다.
또다른 재벌 혹은 정치인 혹은 그들과 유사한 권력을 지닌 이들 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입니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한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본질적인 근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뭘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경험을 해왔습니다.
선진국의 스포츠 시스템을 설명하면 정작 젊은 20~30대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되려 60~70년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가 더 쉽게 공감을 하시더군요.
왜 그런걸까요?
왜냐? 60~70년대에는 그래도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정도에서 그리 벗어나지는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운동 선수들 중에는 한글 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그 시절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운동을 병행한 이들은 어려운 한자어도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그들의 세대에서는 스포츠 선수라도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거든요.
아예 경제적인 여건때문에 학교 자체를 못가서 스포츠를 접할 기회도 못 얻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구요.
첫댓글 현제도 기업인이 왜 해먹을까요 그것도 형제가
축구인들중에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