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마리안누’라는 귀족 신분과 kikkuli 교본
신비의
투랑카멘 전차
기원전 1천 6백 년 전 중동의 중심에 자리한 미타니왕국과 가나안. 가나안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포함하는 지역이나 요르단 강 서쪽 땅, 또는 아크레 북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있는 좁고 긴 땅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BC 2000년대 경 가나안 땅을 차지했는데, 성서에서는 가나안을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고 한 '약속의 땅'과 동일시하여 점령을 정당화한다. BC 1250년경 가나안에 정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침략한 필리스틴을 물리치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복했다. 그후 가나안은 실제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있었으므로 이집트·미케네·크레타·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혼합되어 있다. 주신은 엘이며, 다른 신들로 엘의 아내 아세라, 비와 풍요의 신 바알, 기술의 신 코타르 등이 있었다. 가나안족은 알파벳을 사용한 최초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미타니와 가나안은 도시국가 형태로 때로는 연합하고 때론 분열하곤 했다. 기원전 16세기 2륜구동에 운전자와 전사로 구분되는 두 사라믜 일원이 탑승하는 방식이 표준화되기에 이르렀다. 전차는 견고했으며 중심 차축에 견고한 나무박스를 갖추고 4개의 바퀴살은 보다 가벼워지고 커졌으며 그로서 보다 효과적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게 가능해졌다. 기원전 1650년경 이 신기술은 곧 바로 흭소스 정복자들을 경유하여 이집트에 전파되는 등 각 방면으로 퍼져나갔다. 서양학자들은 그 무렵 중국의 상나라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는데 내견해는 좀 다르다. 아무튼 이후 300년 기간내 말이 끄는 전차는 문명세계를 통하여 진보된 전략기술의 기본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 600년간 탁월한 전쟁무기로서 존재를 한다. 전차는 값 비싼 전쟁무기였다. 이는 세련된 가공기술과 많은 돈이 필요했으며 끊임없는 유지관리를 요구했다. 거기에 이 전차에 필요한 말의 생산이나 도입 그리고 훈련등도 당연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막대한 시간과 돈의 투자는 기술집약과 더불어 귀족의 전사등급으로 급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즉 마리안누(mariannu)라 하는 귀족 신분의 전차를 끄는 전사가 미타니왕국에 등장한다. 마리안누는 프로급전사로서 특수기술 보유의 전차용 전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미니에쳐에 마리안누라는 전차용 전사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연유다.
전차용 말에 대한 아주 매력적인 훈련 교본이 바로 이 세련된 마리안누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남아 있다. kikkuli(킥쿨리)라하는 훈련 교본이 바로 미타니왕국으로부터 나온다. 이 교본은 미타니왕국의 이웃이며 라이벌이었던 히타이트 국의 왕 수필루리우마(Suppiluliuma) 1세의 군마를 조련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용 말을 조련하는 7개월짜리 교육 매뉴얼을 만들었다. 4각 점토판에 히타이트 말로 기록한 킥쿨리의 교과서는 수 천 년이나 지난 지금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매뉴얼은 '미타니 출신의 말 조련사 킥쿨리가 말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기록으로 그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킥쿨리의 가르침은 문학적 수사가 없이 직설적이고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말에 대해 개인감정을 일체 싣지 않았다. 말이 정신과 육체적으로 전장에서 제 역할을 다 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이다.
애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보면 말의 건강에 대해 신경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 군마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강인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이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는 정신과 육체의 강인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키우고 조련하면서 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자질이 먼저인지 교육이 먼저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킥쿨리는 교육을 통한 후천적 개발을 믿었고 말이 건강해야 다음 교육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실용주의 입장에서 인간적인 훈련을 지지했지만 군마육성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킥쿨리는 어린 말의 성장과 훈련적응 속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성장보다 훈련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 단계에 걸쳐서 조련했는데, 처음 두 단계는 골격과 심혈관계 개발을 강조했고 마지막 단계는 신경계 개발에 집중했다. 말이 자신감을 느끼도록 근육과 심장-폐 기능을 강조했다.
요즘의 무산소 근지구력 훈련(Interval Training)과 비슷한 훈련을 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걸음걸이(전력질주, 깡총뛰기, 걷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잠깐 훈련을 멈춘 동안 심장박동이 느려지는데 조련사는 정상 심장박동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훈련을 재개했다. 훈련을 하는 동안 심장은 다양한 압박을 받았고 걸음걸이와 훈련시간을 바꾸면서 말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견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킥쿨리는 하루 최대 3번의 훈련을 했고 아예 며칠 동안 계속 반복하기도 했다. 중간에 훈련을 줄이거나 아예 안 하는 날도 있었다. 조련 초기단계에서는, 말을 전차에 묶고 계속 끌고 다니게 했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말은 다른 말과 함께 전차를 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말의 상태에 따라 탈진하지 않도록 맞춰서 훈련강도와 난이도를 계속 높였다. 말이 힘들어하면 휴식을 주거나 강도를 낮췄다.
킥쿨리는 4일 동안의 검사기간을 따로 가져서 더 이상 훈련하기 힘든 말을 추려내 제외시켰다. 훈련과정에는 수영과 야간훈련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말에게 언제 무엇을 먹여야 할 지와 말을 목욕시키고 다듬는 방법도 설명했다. 체력훈련을 통과한 말은 전장에서 다른 말과 함께 전차를 끄는 본격적인 훈련을 시켰다. 다양한 속도로 급가속과 급선회, 정지, 엄호와 일렬전진과 같은 전차전의 특성을 배웠다. 특히 마부의 명령과 고삐질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배웠다. 킥쿨리의 조련덕분에 히타이트는 훗날 이집트보다 강한 군마를 얻게 되었다. 1991년에 런던 NEW ENGLAND대학에서 이 킥쿨리를 갖고 아랍계 말을 상대로 7개월간 그대로 교습을 실시했었는데 교범에서 원하는 놀랄만한 효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밤새 말이 달려 48마일을 주파하는 능력을 과시하는 정도의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이 전차교본은 메소포타미아의 미타니를 거쳐 아나톨리아 중심에 자리한 히타이트로 전수되어 탁월한 기량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히타이트는 점차 전차의 마리안누 배출을 꾀하였으며 애초 궁사로의 쓰임에서 육탄전에 보다 큰 비중을 두었다. 육중한 전차의 히타이트의 기교술은 무력한 보병을 대신하는 기능에 목적이 있었다. 즉 중전차는 공격적인 무기였다. 나열한 보병의 형태를 깨부수고 혼란에 휩쌓인 적군을 향하여 그들이 돌진을 하여 말발굽과 전차 바퀴가 달릴 수 잇는 한 최고의 피치를 올려 칼과 투창을 써서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활에 있어서 공격의 선봉을 말한다.
중전차는 전황의 결정적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한 히타이트의 전차 전쟁은 말과 전차병의 무장으로 연결된다. 어깨까지 커버를 하는 비늘갑옷 망토는 미타니와 히타이트 전사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청동 목걸이가 목을 보호하고 청동 헬멧으로 머리커버를 했다. 말은 가장 손상을 입기 쉬운 관계로 전형적으로 말의 등을 커버하는 비늘커버 형태와 목 보호용 목걸이를 갖추었다. 메소포타미아 전투용 전차에 대한 자료는 원작 그대로의 그림해석에 의존을 하였지만 이륜전차의 특징적이고 세부적인 지식은 고고학연구와 고대 이집트의 유물에 기초를 둔 것이다. 1922년 고고학자 Howard Carter는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잘 보존된 이집트 Tutankhamen의 전차를 발굴한다. 기원전 1323년의 것인 이 전차는 Ur전투 용 마차 이래 꼭 1천3백년만의 발견으로 그 기간 내의 기술적 발전의 정도 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그 발굴이 보여주는 진가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