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학교 현장 강의 가는 날. 새벽에 눈 뜨자마자 유튜브를 켠다. 검색창에 ‘세바시 구범준’을 쳤더니 영상이 두어 개 정도 뜬다. 세바시는 익히 알고 있고 가끔 보기도 하지만 PD에 대해선 잘 몰랐다. 강의를 듣기 전 조금 알고 가면 좋을 거 같아 영상을 봤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제목을 참 잘 지었다. 그런 대단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프로듀서를 만나러 간다니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AI가 등장했다. AI의 등장 이후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급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정해진 로드맵 없이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강의 초반 구범준PD는 ‘이야기를 가진 자는 대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야기라... 누구나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사연’이 ‘이야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범준PD는 이야기를 가지기 위해 우리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묻고 삶으로 답해야 할 네 가지 질문’ 각 질문마다 자신의 사례와 ‘세바시 청소년 캠프’에서 아이들이 발표한 영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청소년 시기만 되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부모들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나도 자녀들이 청소년 시기가 되면서부터 각자 일과 공부로 인해 대화하는 시간이 부족해졌다. 일상 대화 외에 진지한 대화 좀 할까 하면 도망가는 아이들이 떠오르며 아이들의 속내를 들으려면 캠프에 보내야 할까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강의 중 새로웠던 개념은 ‘뷰자데’이다. 새로운 것에서 익숙함을 느낄 때 쓰는 단어 ‘데자뷰’와 반대되는 개념이란다. 처음에는 생소한 단어라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창의력’이라고 이해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의미가 조금 달랐다. 창의력이 익숙한(기존에 있던)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라면 뷰자데는 단순히 낯선 ‘느낌’ 정도에 불과한 거 같다. 구범준PD는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정의하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사람은 대부분 익숙한 걸 좋아하고 안정감을 원한다. 그래서 변화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걸 찾고 새롭게 보고 낯선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하지 못 할뿐.
이번 강의 클라이맥스의 키워드라면 ‘자기 신뢰’를 꼽을 수 있다. 순응과 잘못된 일관성을 피하고, 자기 자신의 본능과 생각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범준PD는 자신의 일을 밀고 나가는 데 있어 자기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나를 믿는가? 솔직히 100%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가끔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나?’ 갈팡질팡할 때가 있으니까. 독서 사교육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걱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에게는 드러내지 못한다. 내 자녀에게 공부가 다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친구들처럼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아들에게 다른 대안을 주지 못한다.
이런 나의 모순된 행동 속에서 나는 왜 그대로 가고 있을까? 스마트폰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은 필요하다 생각하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가는 길도 이 시대의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공부만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아들에게 다른 길을 가도 된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 ‘다른’ 길이 두려운 아이 또한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는 길이지만 확고한 줏대란 건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가다보면 좀더 뚜렷해질까? 자기 신뢰란 걸어가는 그 길 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래, 내가 온 길이 맞았어!’하고 믿게 되는 것 아닐까.
구범준PD는 ‘강의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그가 던지는 4가지 질문은 강의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그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며 걸어가다 보면 딱 떨어지는 답은 아니라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 역시 아직 찾지 못한 질문의 답을 계속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