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의 반토막으로 잘린 산은 비봉산, 앞의 먼 곳에 호탄교가 보이고 그 뒤 왼쪽으로 갈기산이 보인다.
갈기산 아래 협곡같은 좁은 곳으로는 금강 상류가 흘러내리고, 어죽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로 이어진다.
낮으막한 추풍령 고개(220m 정도)를 넘은 신라군은 황간 아래의 금강 물줄기를 타고서 이곳 협곡같은 곳을 지나야 비로소 금산에 이르는 지름길이 된다. 금산에 7백의총이 있는 사연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요충지 지형이다.
금산은 삼국시대는 황산벌로 가야하는 요충지이요, 임진왜란 때는 전라도 전주 감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 비봉산과 금강 . 비 봉산 뒤로 갈기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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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고을에 관한 내용은 영동군청 홈페이지에서 참고한다.
우리 마을은 옛 어진 분들이 자리잡은 명당 마을이라 일컬었으며,
조선 태종13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속되어 옥천군 양산현이라 하였고 그 후 옥천군 양내면 평촌으로 불리웠다가 190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동군 양산면에 편입되었다.
(*(충북) 옥천, 영동은 고려 때까지 경상도 영역이었다. 현재의 충청도로 된 것은 조선 태종 때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형적인 특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주요 이유는 금강과 추풍령간의 지형에서 비롯한다.)
효의 마을 우리 호탄은 전래되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효성이 극진하기로 소문난 사람으로 연로하신 부친이 병이 들어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는 말씀을 듣고 부모 명을 거역한 일이 없는 효자는 딸기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갈기산 산속을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곰이 나타나 곰의 인도로 딸기를 구하여 집으로 오던 중 해는 저물고 얼어붙은 금강을 건널 수 없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호랑이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지니 병안 중의 그 아버지는 딸기를 먹고 병이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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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팔경의 상류에는 봉황대가 있고 그 앞 금강에는 다슬기(현지 사투리로는 올갱이) 잡는 사람이 보인다. 그 뒤로는 호탄교 다리가 있다. 충북 옥천 이원에서 양산8경 중 제1경인 천태산 영국사 앞으로 지나서 이곳 양산으로 통하는 길이다
‘호탄’의 지명 유래를 (충북) 영동군청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통해서 들여다 본다.
아마도 현지 주민의 이야기를 채록해서 이야기 그대로 적은 것이라 구수한 맛이 들기까지 한다. 원문을 약간 손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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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탄(虎灘)의 유래>
어머니가 병이 들었답니다. 그래 가주구서
고기가 먹구 싶다구 하는데 집이 간고해서 고기를 살 수가 없어서 그래서 누가 얘기하기를,
"어머니 그 병에는, 사람의 인(人)고기를 먹어야만 그 병이 낫는다. " 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허벅지 살을 비어서 어머니한테 고기라고 속여 가지구서 다려서 그런 바가 있고,
또 한 가지는 뭐냐하면 그 아버지 역시 병에 들었을 적에도 그 뭐 손가락을 절단해서 그 수혈을 해서 해드리구 이렇게 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으면서, 하루는 그 어머니가 뭐라고 얘길 허는고 하니, 거기 호탄(虎灘)이라고 하는데 거기 갈기산이라구 산이 있습니다. 아주 그냥 석산(石山)으로 아마 이 근방에서는 그런 석산이 없을꺼요. 그 산 바위가 그냥 막 비쪽비쪽하고 그 뭐 그 산이 여간 악산(惡山)이 아닌데, 그 갈기산이란 산이 있구, 동쪽으로는 비룡산(飛龍山)이 있구, 서쪽으로는 갈기산이란 산이 있는데, 거기를 그 산이 있는데, 아 이때는 벌써 어느 땐고 하니 동지섣달이여. 한참 엄동설한 추울 땐데 어머니가 복분자(覆益子)를 먹어야만, 먹구 싶다구 하구, 복분자를 먹어야만 그 병이 낫는다고 하는 거여. 그래서 어머니가 복분자를 원하드라는 거여. 복분자라는 것이 뭐냐 하면 고무딸기여. 그 고무딸기, 그 고무딸기가 동지 섣달에 고무딸기가 있을 턱이 있습니까? 그래서, '에이 그러나 저러나 어머니가 원하니까 동지섣달 이래두 고무딸기 어디 바위 밑에나 이런 데 어디 있을런지두 알 수 없다.' 해가지구 어머니 명령이라 해가지구 다래끼를 가지구서 강을 건너 그 갈기산을 올라갔더랍니다. 올라갔는디 난데 없는 곰이 나타나 옷자락을 끌어, 옷자락을 끌어. 그래 끌면서 하는 것이 어이 따라 오라는 거여. 곰이 옷자락 끄는대루 따라갔어. 따라 갔드니 아, 보니께 어느 바위 밑인데 쪽- 들어가니까 고무딸기가 그냥 벌겋게 익은 고무딸기가 열려가지고 있더랍니다. 거기, 그래서 그걸 다래끼에다 한 다래끼 듬뿍 따가지구서는 인제 내려오는 거여. 내려와서 보니 지금두 거기 모리라구 하는 주막이 있는데 거길 내려와 보니까 날은 추워서 배는 꽁꽁 얼어 붙었지. 강은 얼어서 시극쟁이 전부 백졌지. 도무지 밤은 어두워서 캄캄하기는 하지, 도무지 건너갈 도리가 없어, 호탄 동네를. 그 동네를 건너갈 도리가 없어. 그래서 한참 위로 갔다, 밑으루 갔다 어디 빈등이래도 갈 데가 없나 싶어 좀안히 얼음을 타구 갈 데두 없구, 노두 없구. 타구 건너갈래니 건너갈 도리두 없구. 이거 인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는데 어떤 송아지만한 뭐, 짐승 하나가 와서 꼬리를 치면서 대꼬(자꾸) 직신직신하면서 자기 앞을 대들거든. 그냥 무조건 올라앉어. 그래 그 고무딸기 딴 다래끼를 둘러매고서 올라앉어 타고 보니께 그게 호랭이여. 그래 그 호랭이가 여울을 건냈다구 해서, 그전 마을 이름이 호계(虎溪)라구두 했구 또 큰깔이라구두 했는데, 그런 후에 호탄(虎灘)이라구 이름을 변경했어. 그 효자가 고무딸기 따 가지구 건널 적에 건너을 수가 없어서 호랑이가 그 여울을 건너켰다구 해서 그래 호탄(虎灘)이라구. 그래서 동네 이름이 변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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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 이야기-
1)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허황된 얘기같이 들리지만, 공주 계룡산 동학사에서 삼불봉 가는 길에 만나는 남매탑(오누이탑) 전설에도 호랑이 이야기가 나온다. 단군할아버지가 산신이 되어서 타고 다니는 영험한 동물이 호랑이다, 산신각에 가면 호랑이가 애완용 동물마냥 곁에 있음을 볼 수 있다. 호랑이 즉 범은 우리 민족의 토템이자. 친근하면서도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 노릇을 해왔다. 지금도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Red Devils)들’응원 속에 전해져 오고 있다. 사실 고대로 올라가면 야생 동물들과 사이좋게 지냈던 것이 지금도 인류학자들이 오지의 원시 종족 탐사시 확인된다고 한다. 하긴 원시인류나 야생 동물이나 자연의 한 식구요, 한 종이었을 테니까. 대자연 속에 함께 사는 것이 옛날에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잡아먹고 또 거꾸로 잡아 먹히기도 하면서(호환). 그러다가 점차 인류가 적대적으로 대한 결과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이다.
2) 사람고기(人肉 인육)를 달여서, 자식이 그것도 제 허벅지 살을 베거나 아니면 손가락을 잘라서 (단지 斷指 ) 고기나 피를 입에 넣어 부모를 살려냈다는 효도 얘기 또한 흔한 것. 공주시 효포(孝浦)리 ‘소개(<孝浦)’ 동네에는 이런 사실을 알리는 신라 시대의 향덕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앞 냇물은 듣기에 좀 섬뜩한 혈흔천(血痕川)이라는 이름으로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3) 여울의 뜻 알아보기(인터넷 자료 참고) :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서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곳.
여울은 강이나 내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다.
물결이 특히 세차게 흐르는 여울은 ‘된여울’, 급하고 쏜살같이 빠른 여울물은 ‘살여울’이라고 한다.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갑자기 낮아져서 여울물이 턱이 져서 흐르는 곳은 '여울목'이라고 하고, 개울에 있는 여울목은 ‘개여울’이라고 하고.
‘호탄’ 이라는 한자식 이름을 현지 토박이들은 ‘범여울’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는 여울이 흘러내려 가면서 내는 물소리가 범의 ‘으흥. 으르렁’하고 포효하는 소리처럼 무섭게 소리내면서 흘러가는데서 생겨난 이름은 아닌지 그냥 생각해본다.
여울 바닥은 주로 울퉁불퉁한 돌로 되어 있다. 흙이나 모래 따위는 거센 물살에 모두 씻겨 내려가 버려 대개는 몽글몽글한 강돌만 남는다. 이웃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자지산성에는 임진왜란 때 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먹 크기의 강돌이 성벽 위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2022. 0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