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장천재 중수에 몸 바친 농포공
공의 휘는 송(松), 자는 학춘(學春), 호는 농포(農圃)이다. 그는 아버지 호은공(湖隱公) 휘 경조(璟祚)와 어머니 영광정씨(靈光丁氏) 사이의 외아들로 1832년(壬辰)에 방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버이 섬김이 남달라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1873년 공은 장천문중의 도유사를 맡고 있었다. 그 때 장천재가 너무 낡아 쓰러질 지경에 놓여있었다. 문중의 원로들은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그대로 놔두면 도괴될 것이라는 진단에 따라 신축에 버금가는 중수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대공사를 추진하기 위해서 문중은 3명의 대표를 뽑았다. 설계와 총괄은 석홍(錫洪), 재정 및 실무에 농포공 그리고 집사에 다암공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실질적인 업무는 농포공과 다암공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항렬로는 숙질간이지만 나이는 동갑이라 호흡이 잘 맞았다.
40대 초반이지만 그 때는 초로에 들어갔다. 수명이 그리 길지 않던 시대라서 당시로는 노인 측에 들어갔다. 재각 하나를 짓는데 1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하고 공사기간만 1년이 걸렸다. 관산 오덕문중으로서는 유사 이래 최대의 공사였던 셈이다. 그 공사의 실질적 책임을 맡았으니 긴장의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인부를 남의 면에서 동원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다암(茶庵)의 즉휴루기(則休樓記)에 보면 산현리(山峴里) 주민들이 3일, 대흥면(大興面)과 내덕도(萊德島) 주민까지 동원됐다. 그들 인부들은 자신들이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일을 도와줬다고 적고 있다. 물론 이웃 면(面)문중의 일을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남을 돕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농포공과 다암공의 주된 임무는 실제로 다른 면에 사는 주민들로 하여금 자진해서 노력봉사를 하게 만든 것이 최대임무였을 것이다. 대개 노력봉사를 하면 주체 측에서 점심과 막걸리를 제공하는 게 우리나라 고금의 관례가 아닌가. 그런데 봉사의 당사자가 먹거리를 자급하게 만든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7. 충렬재(忠烈齋)를 중수한 모암공
공의 휘는 계철(啓哲), 자는 치선(致善), 호는 모암(帽巖)이다. 그는 아버지 장(樟)과 어머니 인동장씨(仁同張氏) 사이의 아들로 1840년(庚子)에 행원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서당에 다니며 효경(孝敬)과 소학(小學)을 배웠다.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으며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다.
향교를 다닐 때인 1874년(戊戌) 전염병으로 읍민들의 고통이 우심하자 주민들과 함께 읍폐(邑幣)의 개선을 관청에 호소했다. 그러나 관리들의 농간으로 유야무야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자 공이 소장의 우두머리가 되어 끈질기게 시정을 요구해서 개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일로 읍민들은 "조정에는 최씨(최치원)의 충정이 있고, 민간에는 어진 위씨(위계철)가 있으며, 옛날에는 두모에 소부가 있고, 지금은 행원에 위씨가 있네.(京有崔忠野有魏氏前有杜召今有杏魏)"라는 송덕비를 세워줬다고 한다.
문중에 충렬재를 마련해 주다
충렬공 묘소가 있는 장흥군 장동면 하산리 연하동 재각의 현액은 원래 충렬재(忠烈齋)로부터 시작됐다. 1740년 충렬공의 묘소를 발견한 이후 문중은 재각 하나 갖기를 소망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문중의 형편이 재각을 구하거나 수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럴 때 공이 재각을 수리했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공의 행장에는 이에 대한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1910년 한·일 합방 당시 장흥군청에서 발행한 관내 사우와 재각현황이 있는데 충렬사가 '위계정의 재각이고, 모암공이 마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으로 미루어 충렬공 재각은 19세기말이나 20세기 초에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충렬재가 하산사(霞山齋)로 바뀐 것은 충렬사(忠烈祠)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즉 1555년 달랑진사변으로 전사한 장흥부사 한온(韓蘊)의 위패는 원래 솔칫재에 세운 충렬사에 모셨다. 그러다 장흥읍내 유림들이 장흥읍에 충렬사를 세워 위패를 옮겨갔다. 따라서 중복을 피해 지명을 따서 하산재로 바꾼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수련회 때 충렬공 묘소를 한번 탐방했으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들었지 가본적이 없답니다
휼륭하신 문중 조상님 옛발자취와 장천재.충렬재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