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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유통회-
묘법연화경 일일법문:
내가 즉시 이렇게 사유하였으니..
내가 즉시에 이렇게 사유(思惟)하였으니...
“만약 일불승(一佛乘)만을 오로지 찬양할 경우
중생이 재고(在苦)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 일승법(一乘法)을 잘 믿지 않을 것이며
믿지 않는 까닭에 일승법(一乘法)을 깨트려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리라!!”2-157
아즉자사유 약단찬불승 중생몰재고
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불능신시법 파법불신고 추어삼악도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墜於三惡道
1-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는! 부처님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고서 21일이 지나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를 마음속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2-부처님이 아직 본지(本地)를 드러낼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말씀하신 것이고, 본지(本地)를 드러낼 경우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라 말씀을 하시게 된다.
3-다시 말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에 입각하여 적문의 부처님은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말씀을 하시는 것이고, 본문에 와야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라 말씀을 하시는 것이니,
방편품에서 근기가 예리한 자는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가 바로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인 것을 눈치 챌 수가 있으나, 당시에 영산제자들 중에 단 한명도 알아듣는 제자가 없었으니, 미륵보살이 지용대중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왔으나 단 한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 일이 바로 그 증거다.
4-부처님이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생각을 하고서 첫 번째 7일이 되는 날에 곧바로 일불승을 말씀을 하시려고 하였으나, 일불승의 근기가 단 한명도 참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세 번째 7일에 “내 차라리 열반에 들리라!!”하신 것이다.
5-이 게송은 법신여래(法身如來)임을 말하고자 하였으나, 당시에 제자들이 무량한 겁을 걸치며 방편의 교화를 받아왔기 때문에 법신여래의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말하지 않고,
원교여래(圓敎如來)의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말할 수밖에 없음을 노래하신 것이다.
6-만약 법신여래임을 말하고자 하였다면, “自我得佛來 所經諸劫數 無量百千萬 億載阿僧祇 常說法敎化 無數億衆生 令入於佛道 爾來無量劫”이라 노래를 하셨을 것이나, 지금 방편품에서 원교여래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신여래임을 감추고 “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墜於三惡道”라 하신 것이다.
7-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은! 원교에서는 묘각을 부처님이라고 말하고, 일교에서는 일승을 부처님이라 말한다. 즉 법화경의 제목을 따져보면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말하면 이는 원교에 입각을 한 법화경의 제목이고, 일승묘법연화경 일곱 글자를 말하면 이는 일교에 입각한 법화경의 제목이 된다.
8-원교에서는 등각에서 묘각이 부처님의 경지이나, 일교에서는 등각에서 묘각을 거쳐 일승에 와야 부처님이라 말한다. 따라서 원교에서 묘각은 원교여래를 말하고 일교에서 일승은 법신여래를 말하는 것이 다른 원교와 일교의 다른 점이다.
9-원교의 부처님은 영산오품위(靈山五品位)를 닦아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과 십지(十地)를 거쳐 등각(等覺)에 올라 묘각(妙覺)을 성취하고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니, 이를 원교여래(圓敎如來)라 부른다.
10-일교의 부처님은 경전오품위(經典五品位)에서 28품을 닦아 등각과 묘각을 거쳐 일승(一乘)을 성취하고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니, 이를 법신여래(法身如來)라 부른다.
11-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에서 원교의 묘각 위에 부처님이 곧바로 불승을 말씀하신 것은, 불승은 곧 일승이니 다시 말해 불승은 일불승의 줄인 말이다. 묘법연화경에서 묘법의 위에 불승 즉 일승이 놓이는 일이 맞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묘법연화경에서 묘법에 묘각이 원교여래의 부처님이지만, 묘법의 “묘”자(妙字)인 묘각 위에 불승 즉 일불승이 놓이는 것이 지금의 게송에서 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승묘법연화경이 법화경의 바른 제목임을 알 수가 있다.
12-천태보살의 법화현의(法華玄義)에서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는 원교여래를 성취하는 일을 논설한 것이고, 일연보살이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외우게 한 것은 원교여래를 닦는 공덕을 논설하였으니, 이 두 사람은 영산회상의 출신이기 때문에, 법신여래의 공덕을 논설할만한 위치가 못된다.
13-지금 일연보살의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가지고 법화경을 닦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으니, 천태보살의 상법시절까지는 어떻게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가 그런대로 맞는 말이기는 하나, 이제 말법에 와서 지용보살이 출현해 법신여래의 일을 논설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아직도 묘법연화경을 다섯 글자에 의지하는 일을 잘못된 가르침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14-지금 방편품의 게송에서도 부처님이 법신여래의 일을 말할까 하다가 그만 두시고, 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라 운운(云云)하시면서 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로 말씀을 끝낸 것이다.
15-영산회상에 입각하여 법화경의 제목을 풀이하면, 경(經)은!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말하고, 연화(蓮華)는! 영산회상에 제자들을 가리키고, 법(法)은! 원교의 등각이고, 묘(妙)는! 원교의 묘각에 속한다.
즉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 맨 위에 “묘”자(妙字)를 가지고 묘각이라 말하고 이를 부처님이라 정하니, 이 부처님이 바로 원교여래인 것이다.
16-경전회상에 입각하여 법화경의 제목을 풀이하면, 경(經)은! 경전회상에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말하고, 연화(蓮華)는! 경전회상에 제자들을 가리키고, 법(法)은! 원교의 등각이고, 묘(妙)는 원교의 묘각이니 원교여래(圓敎如來)까지이고, 일승(一乘)은! 원교의 묘각 위에 불승(佛乘)을 가지고 부처님이라 정하니, 이 부처님이 바로 법신여래(法身如來)인 것이다.
17-따라서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부르면 한 불국토에 부처님 이름만을 부르는 일이니,
영산회상에 입각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의 원교여래의 공덕만을 부르는 일이 되지만, 일승묘법연화경 일곱 글자를 부르면 시방세계에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니, 경전회상에 입각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여래의 공덕을 부르는 일이 된다.
18-지금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부르는 일은... 첫째 시절에 맞지 않는다. 둘째 사람에 맞지 않는다. 셋째 인연에 맞지 않는다. 넷째 교화에 맞지 않는다. 다섯째 이익에 맞지 않는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허물을 짓게 되는 것이다.
19-첫째 시절에 맞지 않는다. 함은, 지금은 정법과 상법이 지나가고 말법인데, 말법에는 경전회상이 법화경을 유통하는 시절인데, 아직도 상법시절인 줄로 착각을 하는 허물이 있다. 둘째 사람에 맞지 않는다. 함은, 말법에는 여래인(如來人)이 태어나 경전회상에서 불도를 닦는데, 아직도 영산회상에 의지해 불도를 닦는 줄로 착각을 하는 허물을 짓는다.
셋째 인연에 맞지 않는다. 함은, 불도를 성취하는 일은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경전회상의 사람들만이 불도에 드는 시절인데 아직도 영산회상에 사람들이 불도에 드는 줄로 착각을 하는 허물을 짓는다. 넷째 교화에 맞지 않는다. 함은, 지금은 일승묘법연화경 일곱 글자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는 시절인데, 아직도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를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는 줄로 착각을 하는 허물을 짓는다. 다섯째 이익에 맞지 않는다. 함은,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는 상법시절까지는 어떻게 이익을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은 말법의 시절인데 아직도 상법시절의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가 이익이 되는 줄로 착각을 하는 허물을 짓게 되는 것이다.
20-천태보살과 일연보살은 원교에 입각하면 매우 뛰어난 보살이나, 일교에 입각하면 지금 중생의 몸을 한 보운지용보살의 법화경 논설을 읽고 있는 제자만 못함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1-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은 유불여불(唯佛與佛)의 제법실상(諸法實相)에 십여시(十如是)에 있어 현재실상(現在實相)만을 노래하신 것이고,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는 유불여불(唯佛與佛)의 제법실상(諸法實相)에 있어 삼실삼관(三實三觀)을 노래하신 것이니,
아직도 묘법연화경 다섯 글자 위에 실상(實相)을 올려놓고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이라 부르는 일은 제법실상(諸法實相)에 십여시(十如是)에 있어 현재실상(現在實相)만을 부르는 일이니, 즉 원교여래(圓敎如來)를 이름을 부르는 격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절은 여래종족(如來種族)이 태어나 법신여래(法身如來)의 몸을 얻고자 하는 시절에 맞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22-천태보살은 원교사상을 펼쳤을 뿐이고, 일연보살은 천태보살의 원교사상을 이었을 뿐이니, 이 두 사람은 모두 영산회상에 보살이고 무량한 겁을 걸치며 부처님에게 방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부처님에게 방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우리들과 같이 여래종족은 이 두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 봐야 조금도 이익이 될 것이 없다.
23-보운보살은 지용보살의 권속이고 무량한 겁 전에, 지용의 스승님으로부터 중생일 때에 오탁의 악세에 태어나 방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일승묘법연화경 일곱 글자를 가지고 교화를 받았고, 지금 보운지용보살이 일체의 방편경전을 연설하지 않듯이, 이렇게 말법의 시절에 태어나 지금 법화경유통회에서 여래종족인 여래인(如來人)들을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24-우리들은 원교여래를 닦지만 지향하는 바는 법신여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교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곧바로 “여래(如來)”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25-쉽게 설명을 하면, 우리들은 보살도(菩薩道)를 닦는 부류가 아니고 여래도(如來道)를 닦는 부류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교의 묘각인 원교여래를 닦으면서 법신여래를 얻는 부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보운지용보살이 자주 하는 말이..
“여래인들이여!
우리들은 보살과 태생이 달라 처음 중생일 때부터 보살도(菩薩道)가 아닌 여래도(如來道)를 닦는 부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만약 시방의 큰 보살이라 해도 우리들을 보고 중생이 여기고 원교여래와 같이 공경을 하지 않으면 허물을 짓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26-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는! 만약 이 1구의 게송을 원교에 입각을 하면, 중생(衆生)을 가리켜 지금 현재 우리들 여래인(如來人)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일교에 입각해 이 1구를 풀이하면 중생(衆生)은! 영산의 모든 보살과 연각과 성문과 일체의 대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게송을 자세하게 풀이하면, 아즉자사유 약단찬불승(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이라고 먼저 말씀을 하셨으니, 이 게송을 부처님이 읊을 당시가 바로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성취하고 21일 지났으니, 당연히 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는 영산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27-다시 설명을 하면, 영산의 보살이 무량한 겁을 걸쳐 닦는 보살도(菩薩道)와 성문과 연각이 닦는 유여해탈(有餘解脫)을 가지고도, 부처님이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를 말씀하신 것은, 영산제자의 근기가 하열함을 지금의 게송에 드러내신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28-따라서 보운지용보살이 간혹 “여래인(如來人)들이여! 우리들을 영산의 보살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영산의 보살들은 우리들에 비해 근기가 하열하기 때문에, 여래 멸도한 뒤에 경전회상에서 방편의 경전을 뒤로 한 채 법화경을 닦을 법기(法器)가 못된다. 따라서 영산의 보살을 보게 되어도 공경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을 한 것이니,
이 모든 근거는 모두 법화경에서 지금의 게송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금도 위배하여 법화경을 연설하는 일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고, 보운지용보살의 가르침에 믿음을 가지고 들어오면 묘당법사님의 말씀처럼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29-따라서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성취하시고, 곧바로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시고 하였으나, 영산의 제자들이 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30-불능신시법(不能信是法)은!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곧바로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시게 되면, 영산의 보살들이 불능신시법(不能信是法)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먼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즉 8만의 큰 보살조차 일승의 가르침을 곧바로 믿지 못하는 마당에 하물며 8만의 큰 보살 이하에 당시의 대중에 있었으랴!!!
31-따라서 영산의 보살들은 법화경의 28품의 가르침을 모두 듣고도, 법신여래의 몸을 얻지 못하고 원교여래의 몸을 얻는 것으로 만족을 하기 때문에, 보운지용보살이...
“여래인들이여!
우리들은 법신종족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되어도 법신여래가 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법화경에 나오는 보살들을 따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닦는 수행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하열한 보살 따위를 마치 부모님처럼 여기지 말라고 말을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32-만약에 우리들 여래종족이 여래 멸도한 뒤에 참석하기 매우 어려운 법화경의 회상인 경전회상에 자리를 하고도, 보살도를 닦는 일을 지향하고 있다면 잘못된 도리와 이해에 빠진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33-법화경은 분명히 여래도를 말씀한 경전인데, 여래도의 경전을 가지고 보살도를 닦는 일에 있어, 영산의 보살들이야 태생이 하열하기 때문에 큰 허물이라 여기지 않아도, 여래 멸도한 뒤에 여래종족이 법화경을 지니고서 보살도를 닦는 일은 법화경에 부끄럽고 법신여래이신 석가모니부처님에게 죄송한 일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34-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는! 부처님이 곧바로 일불승을 연설하게 되면, 보처보살조차 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에 해당이 될 것을 염려하여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먼저 말씀을 하신 것이다.
35-부처님이 무엇을 염려하여 보리수나무 아래서 무량한 보살과 대중 앞에서 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라 말씀을 하신 것인가! 첫째 중생즉불신(衆生卽佛身)이고 둘째 이 중생즉불신(衆生卽佛身)에서 중생이 바로 여래종족이 존재함을 말해야 하는 것이고, 셋째 이 여래종족은 중생에서 부처님이 되어도 곧바로 법신여래가 된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고,
넷째 영산회상에 그대들은 무량한 겁을 걸쳐 부처님이 되어도 원교여래의 부처님이 되고, 원교여래의 부처님이 된 뒤에서부터 다시 여래도(如來道)를 닦아야 법신여래의 이름을 얻게 되는 말을 해야 되고, 다섯째 용녀가 불도를 이루를 일을 보고도 질투를 하여 사리불과 보살들이 의심을 할 것을 염려하신 마당에 하물며,
우리들 여래종족이 존재하는 일을 말하면 어찌할 것인가 걱정을 하신 것이고, 여섯째 보리수나무 아래 당시에 지용보살을 곧바로 불러내면 놀라 믿지 않을 것을 염려하신 것이고, 일곱째 중생의 몸을 한 여래종족을 보면 마치 시방에 제불과 같이 공경해야 한다는 말에 놀랄 것이고,
여덟째 부처님이 되지도 않은 중생이 중생의 몸을 한 상태에서 곧바로 여래도(如來道)를 닦는 일이 시방의 제불이 닦는 여래도와 동일함을 말해주면 놀랄 것이기 때문이고,
아홉째 여태까지 부처님이 되는 일은 보살도를 닦아야 부처님이 되는 줄로 알았는데,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여래도(如來道)를 닦아야 한다는 말에 놀라게 될 것이고, 열째 중생즉불신(衆生卽佛身)만이 진실인(眞實人)이고, 보살과 연각과 성문의 계위가 여태까지 진실인(眞實人)인 줄로 알았는데, 자신들이 도리어 방편인(方便人)임에 놀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에는 무량한 이유가 있으나 여기까지 줄인다.
36-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는!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있을 당시에 모든 제자들이 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로 인해 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에 떨어지게 되는 일을 염려하여,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고자 하였으나,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를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37-일승(一乘)인 불승(佛乘)을 닦는 경전은 오로지 법화경뿐인데, 법화경의 회상에 참석을 한 모든 제자들 역시 무량한 겁을 걸치며 부처님에게 방편의 교화를 받아 와 놓고도, 지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곧바로 말하지 않으시고 화엄경을 먼저 연설하셨으니, 이는 약단찬불승을 말하게 되면, 네 가지의 허물을 짓게 되기 때문이니,
첫째 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 둘째 불능신시법(不能信是法). 셋째 파법불신고(破法不信故), 넷째 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 이니, 이를 염려하여 부처님이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라 말씀을 하신 것이다.
38-따라서 지금도 법화경을 가지고 화엄경과 비교해 비등하다고 말하거나 내지는 화엄경보다 위에 경전이라 말하거나, 또는 법화경과 화엄경과 금강경은 동격이다 말하게 되면, 그 죄가 헤아릴 수가 없으니,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당시에 조차 큰 보살들과 대중을 위해 법화경을 곧바로 연설하면 네 가지의 죄를 짓고 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에 떨어지게 될 것을 염려하신 마당에 있었으랴!!!
39-보운지용보살의 가르침 외에 이곳 남염부주에서 불도를 바르게 연설하는 도량은 단 한 곳도 없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만약 보운지용보살을 떠나게 되면 네 종류의 죄업인 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 추어삼악도(墜於三惡道)에 떨어지게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40-법화경의 경전은 지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님이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는 직접적인 도량임을 알아야 하고, 보리수나무 당시에 역시 부처님이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먼저 연설하고자 하시었으나, 네 종류의 죄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해 아즉자사유(我卽自思惟)를 마음속으로 생각하신 것이다.
41-지금 법화경유통회에 경전회상(經典會上)은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만을 연설하는 도량이고, 스승은 보운지용보살이며 제자는 여래인(如來人)들이다. 즉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당시에 곧바로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지 않은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처보살조차 네 종류의 죄업에 걸릴 것을 염려하시었으나, 지금 보운지용보살이 곧바로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여래인(如來人)들에게 연설을 하기 때문에, 보운지용이 “여래인들이여! 우리들이 만약 보리수나무 아래에 이었다면 부처님이 우리들을 위해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연설하셨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偈頌-
우리들이 만약 보리수나무
아래에 있었다면
부처님이 우리들을 위해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말씀하셨을 것이나,-1
우리들은 방편의 경전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보니,
부처님이 우리들을 위해
경전회상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2
보운지용은
보리수나무 아래
부처님이 연설하고자 하는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지금 법화경유통회에서
곧바로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은,-3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을
듣게 되어도 네 종류의
죄업에 떨어지는 일이 없는
여래인들이 제자이기 때문이다.-4
따라서 보리수나무 아래
부처님이 연설하고자 하신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이
지금 보운지용이 연설하는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으니,-5
보운지용보살은
무량한 겁 전에
이미 법신여래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지용제자였기 때문이다.-6
-寶雲地湧 讚佛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원문 : 법화경유통회 경전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