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靑石 전성훈
그토록 숨 가쁘게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이 이제는 슬슬 물러가는 모양새이다. 절대로 떠나갈 것 같지 않았던 무법 제왕 같은 여름도 무상의 시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더워, 더워하며 어찌할 줄 모르게 지새웠던 나날이 어제였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리면 계절은 오고 가기 마련인 것을, 덥다고 투덜거리며 살아온 게 왠지 부끄럽다.
추석도 지나고 9월 말이 되니 새벽에는 찬 기운이 스며든다. 이제는 가벼운 이불을 덮지 않으면 안 된다. 여름 내내 활짝 열어 놓았던 창문을 어느 정도 닫고 자지 않으면 코끝에 찬바람이 들어 감기 걸리기에 십상이다. 9월 하면 가을이 떠오르고, 가을 하면 고향 집 추녀 밑에서 노래 부르던 귀뚜라미 형제가 생각난다. 귀뚜라미 소리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오래전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던 노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다. 유럽 어느 나라의 민요를 번안 가요로 불렀는데 자연을 동경하는 서정적인 내용이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엷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살짝 바라보기만 해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아름답게 비치기도 한다. 눈을 들어 꽃을 바라보면 기쁨의 미소가 저절로 배어난다. 꽃을 보면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예쁜 꽃들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감흥을 느끼지 않는 사람 또는 사이코패스처럼 따뜻한 마음이 얼어붙은 차가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세상 만물에 대한 느낌은 내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꽃들도, 언제나 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는 것은 아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젊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젊음을 가꾸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요란스럽게 발버둥 치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몸을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고자, 얼굴 특정 부위의 성형과 가슴 성형, 문신과 타투, 주름살 제거에 보디빌딩까지 별별 모습으로 변신한다. 젊게 보이려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여 다른 이의 눈길을 끌려는 눈물겨운 몸짓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젊은이 중에는 거의 발가벗은 몸매를 여러 각도에서 매혹적이고 더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일이 허다하다. 젊음이라는 시절이 한순간이기에 그때를 충분히 즐기고 기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젊음도 늙음도 지나가는 삶의 짧은 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나이가 너무나 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비교하고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야 하는지? 유행가의 재미있는 가사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이 고와야지’라는 노래,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겉으론 거만한 것 같아도, 마음이 비단같이 고와서 정말로 나는 반했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한 번쯤 들어보았던 노래 가사이다. 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것과 마음이 아름다운 것,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사람들에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몸과 마음이 다 아름다운 모습의 인간을 상상한다면, 너무 욕심이 지나친 것이 아닐는지. 언제가 보았던 인터넷 기사 내용이 생각난다. 태국의 어느 불교사원 앞에는 한 시절에 최고의 미인이었던 여인의 젊은 날의 사진과 그 옆에는 그 여성이 죽은 다음에 백골이 된 사진을 나란히 붙여 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인지는 대상의 객관적인 형체와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이 함께 작용한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사람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각자의 개성처럼 저마다 다를 게다. 칠십 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살면서 다시 가을을 맞이하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본다. (202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