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제가 사는 공동체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가구거리에 있습니다. 공동체가 운영하는 북카페 앞에는 큰 화분들을 놓아두었는데, 거기 배롱나무도 자라고 수국도 자랍니다. 어제는 아침나절에 화분을 보러 갔다가 작은 나무 하나가 거기 터를 잡은 걸 발견했습니다.
‘이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곰곰이 살펴보니 작은 느티나무입니다. 가느다란 줄기에 잎사귀를 제법 여럿 매달고 있습니다. 이곳 길가에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심겨 있는데 그 씨앗이 여기까지 날아온 모양입니다. 나무들은 부지런히 씨앗을 떨구지만, 도시의 길은 다 포장되어 있어서 씨앗들은 제 자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가을이 되면 가로수로 심어둔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밟히고 그 냄새 때문에 죄 없는 나무가 눈총을 받고 그러지요. 본래는 흙으로 가서 뿌리를 내리고 새 생명으로 자라야 하는 것들인데 말입니다. 제가 전에 살던 미아리에는 감나무가 많았는데, 이맘때면 감들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으깨져 있곤 했습니다. 나무는 씨앗을 떨어뜨리고 낙엽을 떨구지만 받아줄 땅이 없구나, 생각하면 서글퍼집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마태 13,3-4) 미디어 기술의 혁명으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지금은 과거 책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하고 있지요. 이곳 논현동에 북카페를 연 지도 5년이 되어갑니다. 서점을 찾는 이들이 적어지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보려고 하는 시도지요.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마르 4,14-15)
세상에는 우리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 운동…. 말씀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리도록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나는 지금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걸까? 이 작은 씨앗들은 언제쯤 커다란 나무가 될까? 이 아침 길가에 선 느티나무를 쳐다보며 드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