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란 시정(市政)을 기대한다
최광림(정읍 출, 시인·토요신문 주필)
쪽빛으로 물든 가을하늘, 코끝을 스치는 달콤하고 감미로운 바람이 향기롭다. 가을걷이에 분주한 풍요로운 들녘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넘치고 만산홍엽은 심장을 불태우려는 듯 빠른 보폭으로 하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천하절경인 내장산 단풍도 신선봉과 서래봉을 시작으로 검붉은 자태를 뽐내기에 여념이 없으리라. 그렇다. 이런 날은 황톳길 위를 나뒹구는 낙엽도 꽃이 되고 한 편의 시가 된다.
미당(未堂)은 ‘나를 키워준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필자는 ‘나를 키워준 건 9할이 고향’이라는 지론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입에 담기조차 송구스럽고 분에 넘치는 ‘고향’이라는 아름답고 정겨운 언어, 그런 내 고향 정읍을 등지고 상경한지도 스무 해가 훨씬 지났다. 20여년 넘게 성냥 곽 같은 대단지 아파트에 꽁꽁 묶여 살다가 3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조금은 오르막길 산모롱이에 둥지를 튼 다세대 주택, 하지만 창을 열면 가까이 야트막한 산이 있고 옥상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여 답답한 마음조차 상쾌하다. 어쩌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볼 양이면 줄줄이 쏟아져 내리는 별무리.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때론 분수를 벗어난 자아도취에 빠져들기도 한다. 가진 것이 빈약한 들 그 무슨 대수랴. 버리고 비우면 온 세상이 다 내 것인 것을…….
집사람이나 애들은 갑작스런 달동네 이주에 푸념 섞인 몸짓으로 간혹 탈출의 음모를 꿈꾸지만 그래도 무던하게 따라주는 식솔들이 고맙고 미안하다. 모르긴 해도 이들도 지애비의 빈약한 주머니 사정에 묵시적인 애증의 눈길을 보내고 있음이리라.
비록 몸은 떠나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에 머문다. 비단 필자만이 아니라 출향인 모두는 한결같은 마음일 게다. 동구 밖 느티나무와 아스라한 황톳길을 넘어온 대 바람 소리, 시냇물 굽이도는 그 끝머리에서 구슬픈 기적이 울면 어머닌 또 품 떠난 자식 생각에 장지문을 밀치며 하염없이 옷고름으로 눈자위를 훔치리라.
지난 한가위 때 고향집에서 팔순의 노모를 모시고 5형제가 마주앉았다. 자식들을 위해 정성들여 마련한 주안상을 앞에 두고 밤이 이슥하도록 담소를 주고받았다. 화두는 가족들의 건강과 우애였다. 그것이 작은 효도의 시작이란 까닭에서다. 다섯 중 둘이 고향을 지키고는 있지만 필자를 포함한 나머지 3형제도 때가 되면 꼭 귀향하리라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묵묵히 일평생 고향을 지키고 있는 노모와 두 아우들에게는 송구스런 일이나 이들이 있어 나는 또 든든하고 행복하다. 이틀 전에는 서울과 정읍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두승산에 올랐다. 정상인 말봉에서 바라본 추색이 완연한 고향벌판은 말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연례행사로 작년 이맘때는 내장산 등반을 했다. 주 목적은 친구들의 우정과 우의를 돈독히 하자는 데 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자는 애틋한 고향사랑의 뜻이 담겨있다. 각박하고 삭막한 도회지, 그것도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고향’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평화롭고 포근해진다. 정말이지 다음부터는 만나서 산만 오를 것이 아니라 고향 정읍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뜻 깊은 일을 할 생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가 시작된 후 정읍도 민선 5기의 시장을 맞았다. 그동안 시장을 비롯한 시 당국이 많은 풍파와 곡절을 겪으며 다각도로 고향 정읍발전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정읍이 아직도 타 시에 비해 전반적으로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선 25만이 넘던 인구가 그 반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정읍이 얼마만큼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가를 잘 증명하고 있다. 떠나는 땅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는 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뜻이다. 총론으로 부연하자면 문화창달과 사회복지 실현은 물론 소비적 산업에서 생산적 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부존자원을 극대화하여 특성화와 다양화를 지향하는 신 개념의 경영마인드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도하차 된 내장산을 중심으로 한 사계절 관광단지 조성과 칠보나 산외 등 청정지역의 보존과 자원화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내장산 단풍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 한 방울이나 조약돌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다스리기에 따라 얼마든지 효자산업이 될 수 있다.
현 김생기 정읍시장은 정치적으로 풍부한 경륜과 덕망을 소유한 인물로 알고 있다. 오랜 중앙정치를 토대로 축적된 경험과 유무형의 역량을 지혜롭게 발휘한다면 분명 정읍은 머잖아 삶의 질이 향상되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외치(外治)라면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 민의에 부합하는 소통의 정치(正治)가 바로 내치(內治)다. 민의의 소통에 인색한 행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코 성공할 수도 없다. 그런 만큼 외치 이전에 내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침 없이 겸양과 미덕의 다스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일전 검찰의 정읍시장실 압수수색은 필자 같은 출향인에게도 큰 충격이다. 패자나 반대세력의 음해고 모함이라 믿는다. 이에 동의한다면 김시장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맞서야 한다. 비단 시장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정읍시민 전체의 위상과 명예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사정당국 역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불어 선거 후유증으로 인한 갈등을 봉합하고 실추된 이미지 회복과 화합에 진력하기 바란다.
김시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소통행정과 민생안정 등 민선 5기 밑그림을 제시하고 ‘시민이 행복한 자랑스런 정읍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누구나 밑그림은 거창하고 찬란하다. 하지만 거개가 끝은 아름답지 못했다. 각설하고 김시장은 시민들의 기대가 남다른 만큼 초심을 항심으로 이어가 성공한 시장으로 남기 바란다.
백낙천이 조과선사에게 불법이 뭐냐고 물었다. 선사가 '중선봉행(衆善奉行) 제악막작(除惡幕作)'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악한 일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백낙천은 '무슨 특별한 법(法)이라도 있나 했더니 별거 아니군. 그런 소리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말이요.' 비꼬듯 실망한 낯빛으로 돌아서자 선사가 그의 뒤통수에다 일갈(一喝)하기를, '야 이놈아,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지만 백 살 먹은 늙은이도 행하긴 어려우니라.' 이 말에 백낙천은 돌아서서 선사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시정(市政)도 이와 같아서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흉물스런 유산인 잡다한 전시성 행정이나 껍데기는 과감하게 내던지고 두들겨 맞고 튀어나온 콩깍지 속 알맹이 같은 그런 알토란 시정을 충심으로 기대한다.
익히 회자되는 연어의 회귀는 인간들에게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주고 있다. 여우나 다람쥐도 때가 되면 고향 앞으로 머리를 향한다. 이것이 수구초심이고 귀소의식이며 회귀의식이다. 하물며 인간인들 오죽하겠는가,
가고 싶어라/그곳에 돌아가서/한 줄기/바람이거나/눈물이고 싶어라//남도(南道)/한 자락에/풍경처럼 얹혀진/고즈넉한 마을//솔숲 넘어/등이 굽은 황톳길로/아스라한 유년의 기억이/대 바람 소리에 실려/언덕을 넘어가고//이름만 들어도/반가운/그 옛날의 것들이/토담집 울 넘어/조롱박으로 매달려/줄줄이 쏟아져 내리는/내 어머니와/그리고/내 아들의 고향(故鄕)//가고 싶어라,/그곳에 돌아가서/한 줄기/바람이거나/눈물이 되고 싶어라.(최광림 시 ‘가고 싶어라’ 전문)
나는 오늘도 어머니의 아늑한 품안과도 같은 고향을 꿈꾼다. 아니 비록 몸은 천리 타향에 있어도 마음과 영혼은 늘 꿈과 사랑이 넘치는 내 고향 정읍의 품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http://cafe.daum.net/ckl0000)
<2010년 10월 18일 정읍시청 청탁원고>
첫댓글 윤기가 흐르는 조용하고 차분한 가을날입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과 시 가슴에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