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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15- 24절까지 요약 설명
15절-19절까지 요약설명
* 성령님의 이름 another Comforter : 또 다른 위로자 ,같은 종류의 다른 하나,를 의미한다,
* 성령님은 육신으로 계셨더너 예수님과 본질과 신성이 동일하신 분이시다,,
* Comforter : 위로자로 번역된 이 단어는 ' 옆에 있도록 부름받은자'라는 뜻이다,
* 위로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 Comfort 라틴어 어원이 힘(strength)과 함께 하다'
* 성령님은 우리를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고 달래시는 분이 아니라 삶을 용기 있게 해쳐 나갈 수 있도록 강하게 하시는 분이다,
* 변호인 : 법정에서 우리 곁에 서서 우리를 대변해주시는 분이시다,
* 성령님의 속성 ----> 진리의 영 the Spirit of truth'
*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결코 비진리나 거짓과 함께 하실 수 없다,
* 성령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하셨고 그 말씀을 조명하여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곧 말씀에 의해 통제받는 삶과 같다,
엡5:18 - 술 취하지 말라, 그것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할 지니라,
골3:16 -17 -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와 함께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 마음속에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17 또 너희가 말이나 행위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
* 거하신다 ---> 중요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 구약 시대 ---> 사울왕, 다윗왕,
시편51:11 - 나를 주의 얼굴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성령님의 특정 임무를 위해 사람 위에 임하셨다가 떠나기도 하셨다,
* 신약시대 ---> 오순절 이후 --->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forever (영원히) 거하실 것이라고 약속 하셨다, 요14:16
* 영원한 보증 --->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어도 성령님은 믿는 자를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 고아가 아니다 -->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 예수님께서 떠나신후 제자들은 버려진 고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령님이 오심으로써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기 때문에 성령님을 알 수 없지만 믿는 자는 성령님이 내주 하심으로써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산다,
19절에서 24절까지 요약 설명
* 예수님의 세가지 나타나심
* 과거 19-20절 : 부활과 오순절 --->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
* 20절 At the day 는 오순절을 의미한다, ----> 성령님이 오심으로 인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가 생명의 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 우리는 주님안에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신비로운 연합이 성령님을 통해 완성 되었다,
* 현재 21-24절은 순종을 통한 친밀함
* 거처 -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 - 집을 짓는 것과 관련이 있다,
* 구원 과 순종 명령들을 지키는 것 ----> :구원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지만,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삶은 "하늘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Heaven comes to us)이다,
* 미래. ---->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 19절 ----> 영광 스러운 재림
* 예수님께서 지금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는 것은 심판을 늦추시는 긍휼을 보이신다,. 주님은 지금 교회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며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지만 장차 재림하실 때, 온 세상은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달 하신다(계 1:7).
문맥을 통해 의미를 알아보자
요14:15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명령들을 지키라,
* 성령님은 '위로자'이시지만, 그 위로는 우리가 제멋대로 살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마음을 '그분의 집(Abode)'으로 삼으심으로 완성된다
*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유일하고 적절한 증거는? ----> . 즉, 순종이 없는 사랑의 고백은 성경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 내가 좋아하는 명령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까지 포함된다,
16 -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히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 삼위일체 --- 예수님께서 아버지게 구하면 위로자를 주신다,
* 성령님은 상황에 따라 우리의 교사가 되기도 하시고, 때로는 변호인이 되기도 하시며, 가장 힘들 때는 따뜻한 위로자가 되어 주신다
17 -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라,
* 성령님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 16:13), 모든 오류로부터 그들을 지키신다
* 제자들이 장차 기록(성경)하거나 전파(설교)할 때, 그 내용이 오직 진리만이 되도록 보장하시는 분이 바로 진리의 영이시다
* 너희 안에 계신다,---> 말씀(진리)에 근거한 인격의 변화"가 진정한 성령 내주의 증거
*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나니 ---->
고전2:14 -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며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것들이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세상이 그분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
* 감각의 한계와 믿음의 감각
* 세상은 육신의 눈이라는 단 하나의 안테나만 가지고 있다, 오직 시각, 청각, 촉으로 검증하고 실재라고 믿는다,
*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 느낌이 없으니 가짜다 --> 보이고 느끼고 할 수 있는 덩어리를 만들고 숭배한다,
* 신자는 믿음의 눈이라는 새로운 안테나가 장착 된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흔들리는 잎사귀(삶의 변화)통해 바람의 실재를 확신한다,
* 안다 야다(Yada, יָדַע)는 것의 성경적 의미는 ----> 단순히 머리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한 친밀한 관계와 성장을 뜻한다,
* 세상 사람들의 무지 또는 신자들의 무지는? -----> 식당 밖에서 메뉴판만 읽고 있는 사람과 같다, 음식의 성분은 알 지 몰라도 그 맛은 절대 알 수 없다, 성경책은 열심히 읽고 있을지 몰라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의 참 맛은 알 수 없다,
* 진짜 아는 신자 ---> 직접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다, 맛을 본 사람은 누가 아무리 그 음식의 맛이 없다고 해도 가짜라고 우겨도 흔들리 않는다, 이미 맛이 강력한 증거가 된다,
시34:8 - 오 주께서 선하신것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 세상과 주파수가 맞아지면 ---> 요일2:16 -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과 연결되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알도록 하시는 참 맛은 없다,
* 진리의 주파수와 맞아지면 ---->말씀과 진리로 명령을 지킬 때 ---->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사과에 비타민 C가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하지만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어 그 새콤달콤한 맛을 혀로 느끼는 것이 바로 '야다' 이다
18 -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에게로 오리라,
*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인생은 아무리 부유해도 영적으로는 '위로받을 길 없는 고아'와 같다. 그러나 신자는 성령님(The Comforter)이 계시기에 결코 고아와 같지 아니한다,
1, 부활의 소망, -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실재적인 소망이 되셨다,
2, 성령님의 내주 - 예수님의 몸은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지만 지금도 중보하고 계시고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항상 함께 계신다,
3, 재림의 약속 - 아버지 집에 처소가 준비 다 되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곧 오신다,
19 -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
* 두 종류의 시력 ----> 세상의 눈 : 예수님의 육신만 봄, 오직 심판의 날만 있다, 믿음의 눈 :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을 계속해서 본다,
* 주님의 '영존하시는 신성(영원한 생명,)과 중보자로서의 지속적인 통치 ----->
* 영적 생명(이 땅에서의 삶)과 영원한 생명(하늘에서의 삶)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매여 있다. 만약 주님과 분리된다면, 신자는 한순간도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 예수님이 영원하다'는 것은 구원의 보증이 되신다,
* 보이는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삶의 희망도 생명도 사라지는 것이다,
20 -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 At that day ---> 오순절 ----> 확신 하는 날 ----> 내가 내 기준으로 확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보증하시는 것
*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
롬8:16 -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 하시나니
* 확신 ---> 믿음을 내 마음에 고정하는 것이다, 확신은 성령님의 조명이 없이는 할 수 없다,
갈4:6 - 너희가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21 - 내 명령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시니라,
* 내 명령들을 가지고 -----> 그것들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
* 명령들을 받았으면 지켜야 된다, 알고만 있으면 안되고 순종하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다,
*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 지식이 아닌 실제로 오심 : 지식은 예수님을 역사속의 인물이나 도덕적 스승으로 가둬 놓는다, 지키는 자에게는 주님은 실제 살았 있는 실제로 나타내신다,
* 신학 서적 속에 갇힌 하나님이 아니라 내 인생 여정에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구나'라고 명확히 인식하게 하신다,
* 가려진 베일을 벗겨 주딘다, ---> 성경을 읽을때 글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뒤에 계신 주님의 인격과 마음이 느껴지게 하시는 것이다,
*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신다 --->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넘어 내 영혼이 그 사랑을 느끼게 하신다, 마치 추운 겨울날 따뜻한 햇살이 몸에 닿을 때 그 온기를 부인할 수 없듯이 주님의 사랑은 내 마음에 가득해지는 것이다,
* 순종의 보상으로 더 깊은 교제를 하게 된다, --->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길때 친밀한 교제로 기쁨을 나눌 수 있다, 주님의 깊은 계획과 뜻도 친밀하게 알게 해 주신다,
* 나타내심'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교제의 특권'이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친밀함은 경륜적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실제적인 복이다.
주의할 점 ----> 느낌이 믿음의 기초는 아니다. 하지만 믿음의 뿌리가 말씀에 깊이 고정(Fixed)되면, 그 열매로 '인격이 드러나고, 향기가 나는 것이 성경적이다.
22 - 가롯이 아닌 유다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어찌 주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하매
23 -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 ---->
신자의 몸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성전'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을 당신이 머물기에 적합한 성전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Essence) 자체가 우리와 섞여서 우리가 신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다.
여기서 '거처'는 '영향력(Influence)'의 개념이다. 즉, 신자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관점과 감정과 기쁨을 소유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갈5:18 -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
24 -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들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것이니라,
주님은 자신이 전한 말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것'이라고 선언 하신다. 여기서 주님이 왜 굳이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언급하셨는가?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언급: 주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아버지의 명령이다"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치명적이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는 '이중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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