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 배출가스 규제는 보통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법이 정해지면 기준에 무조건 맞춰야 하는데, 허락된 경계를 넘어서면 천문학적 벌금이 따르고 기업 이미지는 타격을 입는다. 그렇다고 잘 대응했다며 소비자에게 홍보로 생색을 내기도 애매하다.
비용 발생으로 원가 부담이 생기고 때에 따라 성능 저하 부담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보통 자동차 회사들은 이런 규제를 피하거나 늦추고 싶어 한다. 며칠 전 독일에서 나온 소식은 기업의 그런 생리의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 1년 전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담합 의혹 폭로
지난해 7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독일 자동차 회사 벤츠, 아우디, 포르쉐, BMW, 그리고 폭스바겐 등이 20년 동안 비밀스럽게 담합해왔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연방카르텔청에 폭스바겐이 보낸 서류를 입수해 공개한 것이다.
각 제조사를 대표해 수백 명의 임직원들이 60여 차례에 걸쳐 회동을 하고 변속기, 컨버터블의 지붕, 디젤차 배기가스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을 맞춰왔다는 게 당시 보도 내용이었다. 그중 언론에 가장 크게 보도된 것은 디젤 배기가스 처리장치와 관련된 것이었다.
요소수로 유해가스인 질소산화물을 중화시키는 선택적환원촉매(SCR)법은 요소수를 담는 탱크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이 탱크 크기를 작게 하기로 담합했다는 것이다. 요소수 분사량은 당연히 줄게 되며 이렇게 되면 효과적으로 질소산화물을 잡을 수 없게 된다.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는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먼저 자백하는 기업에는 벌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법을 이용해 은밀한 그들만의 카르텔 고발에 먼저 나섰다. 반독점법에 따라 한 해 총매출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낼 수 있다. 만약 벤츠가 위법 판결을 받게 되면 2016년 기준 최대 20조에 가까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벌금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폭스바겐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 그리고 다시 1년 후 드러나는 또 다른 담함 의혹 - 가솔린 필터
이렇게 해서 드러난 담합 의혹 이슈는 EU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잦아드는 듯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처음 전했던 슈피겔이 정확히 1년 만에 또 다른 담합 의혹을 폭로했다. 이번에는 가솔린 엔진 자동차에 필터 장착을 최대한 늦추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필터 관련한 업체 관계자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과 관련 서류 일부를 확보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슈피겔에 따르면 2011년 2월 폭스바겐 직원이 보낸 이메일에 다임러 측에서 이미 가솔린 자동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분진, PM)는 가솔린 미립자 필터(OPF)만으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필터 장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2011년 초에 이미 제조사들끼리 공유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해 12월 자동차 기술위원회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경우 디젤 엔진처럼 엄격한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슈피겔은 이때를 자동차 업체들의 로비가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였다며 로비의 승리라고 전했다. 독일 제조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자동차 업체들 역시 로비에 힘을 보태 얻어낸 결과였다고 했다.
◆ 가솔린 자동차 미세먼지 배출량은 어느 정도일까?
푸조가 2001년 디젤 엔진에 미세먼지 필터(DPF)를 처음 달면서 시작된 미세먼지(PM)와의 싸움은 원래대로였다면 가솔린 자동차 역시 좀 더 일찍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9월이 돼서야 모든 가솔린 신차에 필터를 장착하게 됐다. 그들 스스로 필터 필요성을 알아낸 지 7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그렇다면 논란이 되는 가솔린 직분사 엔진의 미세먼지 배출은 어느 정도일까? 2012년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가 이 문제를 공론화한 후 여러 곳에서 테스트가 진행됐다. 그중 2016년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의 실험 결과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아우토빌트 테스트 결과>
시트로엥 칵투스 블루 HDI 디젤 자동차의 PM 배출량 5p/cm³
현대차 i10 1.2 가솔린 다중분사(MPI) 28,337p/cm³
BMW 218i 액티브 투어러 가솔린 직분사 115,247p/cm³
폭스바겐 골프 1.4 TSI 가솔린 직분사 660.797p/cm³
포드 몬데오 1.5 에코부스트 가솔린 직분사 1,792,945p/cm³
메르세데스 벤츠 S500 가솔린 직분사 (필터 장착 차량) 8,769p/cm³
디젤차는 필터 장착 후 거의 미세먼지를 발생시키지 않았지만 가솔린 자동차는 브랜드 상관없이 차의 크기에 비례해 많은 양의 분진을 내뿜었다. 그나마 처음으로 가솔린 필터가 장착된 S클래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미세먼지를 배출했을 뿐이다. 이런 결과는 같은 해 아데아체의 또 다른 실험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
◆ 늦추고 늦추던 그들의 온갖 생색내기
슈피겔 보도가 사실이라면 독일 제조사들은 가솔린 자동차의 미세먼지 배출이 필터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용을 이유로 장착 시기를 의도적으로 늦추려 한 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 놓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서로 앞 다퉈 가솔린 자동차에도 필터를 장착했다며 고객들에게 생색을 냈던 것이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친환경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내뱉었던가.
현재 독일 제조사들은 가솔린 필터 구하기에 혈안이라고 한다. 이미 올해 9월부터 모든 신차에 가솔린 필터를 장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필터 대비가 안 돼 일부 모델들은 주문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장착은 해야겠고 물량 확보는 어려우니 필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제조사들이 이 가격 상승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지도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 기업의 이윤 추구는 상도덕 토대 위에서
독일 제조사들은 카르텔 의혹과 관련해 EU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감춰졌던 내용들이 밝혀질까? 디젤 게이트 이후 겨우 회복되는가 싶던 독일 자동차 업계는 카르텔 의혹 조사 결과에 따라 더 큰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자동차 트렌드를 주도하고 기술력으로 시장을 지배하던 그들이었지만 작은 이익에 눈멀어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조사는 철저해야 하고, 그 결과는 빠짐없이 공개되어야 하며, 사실로 밝혀진다면 처벌은 단호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외면한 제조사가 이들 말고 또 있다면 그들에게도 제대로 된 경고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의혹을 제대로 파헤쳐 강력한 따라야 한다. 지금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달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