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치Go 박차 Go]는 손에 들어오자 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해준다.
책 표지부터 신선하다. 한 손에는 대금을 들고 귀에는 헤드셋, 후드에 청바지를 입은 준우의 모습과 제목이 한눈에 책 내용을 궁금하게 한다.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한발 가까이 다가간 작가의 교단정신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작가가 학교에서도 이렇게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지 않고서는 이런 제목이 나올 리 없을 것이다.
주인공 준우는 여러 독자층의 가슴을 헤집으며 안타까움과 걱정을 함께 하게 한다. 국악을 공부하는 예고생들은 물론이요, 그냥 인문계고 친구들도 느끼는 청소년기의 울분, 아이를 키워본 부모,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준우를 통하여 '그래 그래~그랬구나"를 연발하며 빠져든다.
운암동 예술고 옆 미라보 아파트에서 19년을 살았던 나는 예고생은 일반 인문계고생보다 좀 특별한 등하교길부터 목격하곤 했다. 학교 앞은 늘 승용차와 택시로 북적댔다. 학생만 등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키가 큰 악기와 함께 등교하는 것이다. 가야금인지 거문고인지 첼로인지 더블베이스인지 거대한 악기가방을 가족끼리 도와 낑낑대고 내려 함께 학교로 들어가는데, 이런 광경은 예술고 앞에 '무슨무슨 경연대회'라는 현수막이 걸리는 날에는 학교 앞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 앞까지 밀리는 악기 교통 체증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준우는 대금전공이라 악기를 운반하는데 드는 노력은 조금 수월했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런 예술고 학생 지켜보기는 19년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예술고 거문고전공하는 학생의 아버지에게 팔리면서 끝이 났다. 아이연습실로 쓰려고 새 집 말고 헌집을 사서 방 한 칸을 아예 방음장치를 해야 한다는 얘길 들으며 예술을 하는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고충이 어렴풋한 짐작되었다.
그러던 10여 년 전 5월 무슨 대회 전날, 유치원 아이들을 인솔하여 예술고 국악오케스트라 리허설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서양악기만 보아왔던 꼬마들은 황홀한 그 국악 오케스트라를 직접 감상하면서 놀라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접하는 우리나라 악기소리에 입을 쩍 벌리고 눈이 휘둥그레 놀래던 아이들은 다녀와서 그 감동을 오래도록 여러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그 여파는 컸다. 그날 그 리허설을 관람한 유치원 아이 중, 신아성이란 아이는 장구를, 박세훈이는 북을, 유송은이는 판소리를 시작하여 초등학교 4학년생이 전주 대사습 장원에 이르러 판소리 신동이라는 닉네임까지 가지고 있으니 예술고 옆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아마도 맹모삼천지교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날 처음 들은 모든 국악의 장엄한 타악기를 압도하던 정적인 대금연주에 빠져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국악방송을 즐겨 듣는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준우를 들여다보며 마치 아성이, 세훈이, 송은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특히 송은이 엄마와는 지금도 늘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데 국악을 하며 짊어지고 가는 아이들의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간간히 듣곤 한다. 인문계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도 꿈이 없이 그저 성적만 높여보자 하는 학생이 많을 진데 국악을 일찍이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팜으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이이 책에도 절실히 나타나 있다. 양악과의 관계, 선후배간의 관계, 더 큰 스승을 찾아가야 하는 문제, 대회에서의 갈등, 상금의 문제 등등 아름다운 국악의 뒤편에 스스로 풀어야 하는 숙제가 숨겨져 있음을 준우를 통해 말하고 있다. 이는 국악을 전공하는 자녀를 둔 부모만이 꺼낼 수 있는 작가의 특권이기도 할 것이다.
국악을 하는 학생들의 악보는 정말 자기 자신만이 알아먹을 수 있다. 오선지 악보가 아닌 정간보에 자신만이 아는 부호로 음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연주해내야 하며 12박의 국악장단은 서양의 박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칠 맛을 느끼게 해준다, 매트로놈 230정도 되는 휘모리를 서양박자로 어찌 표현한단 말이요? 대금의 시작을 진양조로 시작하여 산조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올라 딛었다는 표현은 처음 아주 정적으로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격렬하게 신들린 것처럼 자신의 연주에 빠져들었을 준우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악을 공부하는 학생의 아픔과 우리 것을 사랑하고 이어나가려는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대학을 지망하는지, 법대를 갈 것인지, 의대를 갈 것인지, 수능이 몇 점인지... 청소년들의 사랑, 학교생활, 올바른 지도 등등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이 있었지만 예술고생을 소재로 한 소설은 처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빡치Go 박차 Go]는 소설의 소재면에서도 굉장한 창의적인 발상이고 교육계에도 그들을 이해하는 새바람이 불 것 같은 희망을 가지게 한다. 아무쪼록 땅을 짚고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새끼제비들을 위한 용기백배 청춘지침서가 되기 바란다.
수능 100일전의 백일기도하는 모정이 신문에도 TV에도 보이는 오늘, [빡치Go 박차 Go]의 국악도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는 창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책을 덮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는 휘모리 자진모리 중모리를 벗어나 진양조로 장단을 바꾸어 살아가야지. 그러다가 가끔 중모리로 즐겨볼거나~
첫댓글 멋진 평론일쎄. 정아란.
이런 작가를 우리가 알고있다는게 자랑입니다.
오마나!!! 고맙습니다. 이렇게 멋진 글을 올려주시다니요. 지난번에 격정적으로 보내주신 카톡의 내용만으로도 감동을 먹었던 차에 이렇게 글까지 올려주시니 무어라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예술고 근처에 살았던 경험과 어린 아이들에게 국악을 접하게 해주어 자신을 길을 찾아가게 해준 유치원 원장님으로서의 교육철학이 넘 아름다워요. 아이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접해볼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각기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우리의 아이들이 그저 남들과 똑같은 길을 살아가길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시기까지 오랫동안 맘속에서 진주알처럼 굴려주셨을 것을 알기에 더 감동입니다. 사랑해요^*^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영화로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네요. 시집 보낸 놈인지라 이제 제 손을 떠난 셈인데... 제 생명력으로 하여 어디로 향하게 될지 저도 알 수 없네요.ㅎㅎ
@직녀 저도 그 얘길 쓰려고 했는데. 정말 영화로 하면 서편제 못지않은 영화가 될 듯. 꼭 영화가 되었으면~
영화감독들에게 책을 보내보세요. TV작가들에게도~
@정아란 아, 똑같이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ㅎㅎㅎ 일단 지켜볼 생각이에요. 잼있잖아요, 어떻게 되어갈지 지켜보는 맛도 쏠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