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표충사(表忠祠)‘ 한시(漢詩)편 4.>
표충사(表忠寺)는 밀양읍에서 동쪽 방향으로 28km 떨어진 재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이며,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표충사는 654년에 원효대사가 나라의 번영과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명산을 찾아다니던 중, 천황산 산정에 올라 남쪽계곡 대나무 숲에서 오색구름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사찰의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했다. 829년(흥덕왕 4)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이곳에 머물 때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전국에서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에 흥덕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크게 부흥시켰으며, 왕자가 마셨던 약수를 영험한 우물 약수라는 뜻의 ‘영정약수’라 했고,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고쳐 부르고 크게 부흥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600년에 혜징화상이 중건했다. 1679년에 실화로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소실되자 1680년에 대규모로 가람을 중건했다.
22) 여러 공들이 쓴 표충사 운을 사용해[用諸公題表忠祠韵] 남붕 상인에게 바치다(贈南鵬上人) / 이덕수(李德壽 1673∼1744)
天下奇男見四溟 천하에 특출한 남아 사명대사가 나타나
東臨暘谷制奔鯨 해가 돋는 남쪽에서 고래 바다를 바로잡았다네.
廣長舌奮魔皆伏 부처님의 법문으로 마귀 모두를 굴복케 하였고
毒害心消佛有靈 부처의 영험으로 해로운 독을 품은 마음을 삭였다하네.
世外䯻珠休老授 세상 밖에서 상투를 벗고 노년을 보내며 전수했으니
域中香火郭公幷 지역에서 곽공(郭公)과 나란히 제사를 올리는구나.
知師亦有垂天翼 스님께서 또한 수천지운(垂天之雲)같은 날개가 있어
一擊猶堪截海腥 마땅히 바다의 추악함을 일격에 다스렸다네.
[주] 밀양 표충사비는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南鵬禪師)가 1742년에 건립하였다.
23) 표충사(表忠祠) / 황현(黃玹 1855∼1910)
聖朝不佞佛 성조에선 부처를 섬기지 않았건만
得人於古無 불도 중에 전에 없던 인물을 얻었네
一室三師弟 한 사당의 스승과 제자 삼인은
空門大丈夫 참으로 불가의 대장부였구려
風簷仙鼠白 바람 부는 처마엔 흰 박쥐가 날고
雨壁怪松枯 비 스친 벽 위엔 괴송이 말랐구나
灑淚秋山外 가을 산 밖에서 눈물을 뿌리노니
芒芒愧腐儒 흐리멍덩한 썩은 선비가 부끄러워라
[주1] 병신고(丙申稿) : 1896년(고종33), 매천의 나이 42세 때 지은 시고이다.
[주2] 충사(表忠祠) : 전라도 해남(海南) 대흥사(大興寺) 경내에 세워진 사우(祠宇)로,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여 많은 공을 세웠던 고승(高僧) 휴정(休靜), 유정(惟政)과 휴정의 제자인 처영(處英)까지 모두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관(官)에서 봄가을로 제관(祭官)을 보내 향사(享祀)하고 있다.
[주3] 비....말랐구나 : 괴송(怪松)이 말랐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의미한다. 피일휴(皮日休)의 〈유서하사(遊棲霞寺)〉 시에 의하면 “샘물은 차거워 삼복더위가 없고 소나무는 말라서 육조의 오랜 세월 간직했네.〔泉冷無三伏 松枯有六朝〕”라고 하였다. 또한 필력(筆力)이 아주 힘찬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24) 사명선사 표충사 시축 운에 화운하여[和四溟禪師表忠祠軸中韻] / 임희성(任希聖 1712∼1783)
溟師有廟鎭南溟 사명선사의 사당이 남녘땅에 있는데
眼底凔波斂鱷鯨 눈앞에 악어와 고래가 숨어있는 차가운 물결이 펼쳐있네.
當日鐵船浮此路 그 날 철선을 타고 이 물길로 떠가다가
至今蠻俗誦王靈 야만스러운 풍속에 왕의 위령(威靈)을 읊었다.
休公衣鉢傳燈遠 휴정의 가사와 바리때로 멀리까지 불법을 전하였고
郭帥精忠報祀並 곽재우 장군의 충정과 더불어 나란히 보은에 제사를 올렸다.
且喜萊州方息戰 또한 내주(萊州)까지 기뻐하며 바야흐로 전쟁이 멈추었으니
長敎法雨灑餘腥 오랜 불법의 가르침으로 남은 추악함까지 씻어버렸다.
25) 표충사 입구로 들어가 안희원(安禧遠, 안길수 1846~1919)를 기다리며[步入表忠祠洞口 待安吉叜禧遠] / 안창렬(安昌烈 1847∼1925)
載藥云名刹 재약(표충)은 이름난 사찰로 전해오는데
携藜自密城 밀양으로부터 여장을 이끌며 갔다.
蒼松前路暗 무성한 푸른 소나무가 앞길을 어둡게 하더니
紅樹遠山明 붉은 단풍나무가 멀리 산을 밝게 하네.
野酌扶衰力 들판에서 먹은 술로 쇠약한 심신을 북돋우는데
村砧急暮聲 저물녘 마을 다듬잇돌 소리가 요란하구나.
櫂淵回首望 도연정(櫂淵亭)에서 고개 돌려 바라보니
漠漠浦雲撗 막막한 포구에 구름 가득하네.
재약은 표충의 또 다른 이름이다(載藥 表忠一名)
[주] 도연정(櫂淵亭) : 경상남도 밀양시 범도리(泛棹里)에 있는 정자인데. 죽림(竹林) 안희원(安禧遠, 1846~1919)이 그 아버지 치와(恥窩) 안효완(安孝完 1827~1893)을 위하여 지었다. 지금은 없어졌고 다만 그 유허(遺墟)에 이선대(移船臺)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26) 김순안이 찾아와 함께 표충사를 거쳐 상산사에 갔다가 느끼는 바가 있어[金順安來訪 同往表忠祠 又行商山祠 有感] / 염수헌문집(念睡軒文集)
美蹟吾鄕尙可追 내 고향의 아름다운 자취를 오히려 추적할만한데
二公忠孝國人知 국가를 위해 봉사했던 두 분의 충효를 알고 있다.
商山一靣尊賢社 상산(商山) 전체에 어진 이를 모시는 사단이 있으니
島峴千秋表節祠 오랜 세월 섬과 고개에 모신 표절사(表節祠)이다.
高揭板文光彩倍 높이 걸린 현판문이 찬란하게 곱절 빛나고
爭瞻楣號闡揚奇 간판에 적힌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니 다투듯 바라본다.
張巡幸得昌黎著 장순(張巡)에게 다행이 창려(昌黎)를 드러내니
後世應傳杏老詞 후세에 응당 행로사(杏老詞)가 전해온다.
[주1] 장순(張巡 709∼757)은 唐(당) 때의 사람이다. 당 현종(玄宗) 때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허원(許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수양성(睢陽城)을 지켰다.
[주2] 창려(昌黎)의……부끄럽네 : 간관의 직책에 있으면서도, 임금에게 곧은 말을 올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 말이다. 창려는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호이고, 쟁신론(爭臣論)은 바로 그가 지은 글 이름인데, 내용은 대략, 당시 간의대부(諫議大夫) 양성(陽城)이 간관으로 있으면서 임금의 잘못을 번연히 알고도 간(諫)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기롱한 것이다.
<경남 밀양시 ‘표충사(表忠祠)‘ 한시(漢詩)편 5.> 667
1839년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당)을 이곳 표충사로 옮겨오면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로 개명했다. 표충사는 1983년 사명대사 호국 성지로 성역화되었다. 표충사의 건물 배치는 대광전과 표충서원을 중심으로 두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대광전은 불교, 표충서원은 유교 영역이다. 유교 공간이 불교 사찰 경내에 공존하는 특이한 가람 구조이다. 사당 표충사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744년 영조 임금의 어명으로 제향행사가 시작된 이래 밀양시청이 주최하고 종교계(불교 · 유교)가 주관하는 민관합동 제향으로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初丁日) 즉 첫 정(丁)자가 들어 있는 날에 불교와 유교 의식이 함께하는 호국선현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27) 의승 유정 표충사에 대해 지어 부치다[寄題義僧惟政表忠祠] / 이천보(李天輔 1698∼1761)
慷慨雲壇誓衆年 구름 낀 제단에서 강개하여 해마다 중생들이 맹세하는데
袈裟擊楫薩州船 일본 살주(薩州)의 배를 타고 법의를 입고 뱃전을 두드렸다.
海濤鯨息譚經地 고래가 사는 큰 바다 물결 속에서 편안히 건너가
佛日塵淸倚劒天 부처의 자비로 난을 평정하고 하늘의 칼에 의지했다.
異敎未應無義士 의사(義士)가 없는 이교도들이 감히 응하지 못했으며
中興終亦賴高禪 나라의 중흥이 끝난 이들은 고승에게 생떼를 썼다.
時危不負西山鉢 위기 때마다 서산의 승려가 기대에 부응했었고
一體同祠儘夙緣 사우를 함께하며 일체가 되어 묵은 인연을 다하였다.
[주] 중류격즙(中流擊楫) : 굳은 결심을 다짐하며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드리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하는 굳은 결심, 또는 가슴에 품은 웅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28) 표충사 12운[表忠祠十二韻] 휴정사, 양 문인이 짝이 되어 있는데 한 분이 유정이다(休靜祠也 以兩門人配 其一惟政也) / 홍석주(洪奭周 1774∼1842)
倉卒龍灣路 창졸 지간에 용만(龍灣)길 지나니
鼔鼙凝聖情 북소리가 임금의 염려를 엉기게 한다.
山僧能介冑 산속의 승려가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朝士媿簪纓 조정의 신하가 비녀와 갓끈을 책망하네.
八月南溟晏 팔월 달에 아득한 남쪽 바다가 저무는데
百年西塞淸 백 년 동안 서쪽 변방 한가했었다.
使星隨覺筏 사성(使星)이 각벌(覺筏)을 추구하더니
法雨洗心兵 법우(法雨)가 마음속 살기를 씻어냈다.
恩詔嘉宗泐 임금의 조칙으로 쓴 조상의 글씨가 아름다운데
元戎禮馬鳴 군대의 대장은 말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했다.
係銜皆傑士 말의 재갈을 채운 모두가 걸출한 인사들이었고
開帖感皇明 문서를 열어보니 명 황제에게 감동을 느끼게 한다.
優鉢歸初服 넉넉한 바리때와 처음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와
慈航涉衆生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이끌었다.
空花俄起滅 허공에 핀 꽃도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지고
天日自光晶 하늘의 태양도 저절로 수정 같은 빛을 낸다네.
揭烈非禪敎 모든 공덕에는 선(禪)도 교(敎)에도 아님이 없고
褒忠實國程 나라를 위하는 그 바탕에는 충(忠)을 기려야한다.
華宮隨世界 세상이 연꽃의 궁전으로 이루어지고
蓮眼若生平 이에 평생 연꽃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杳杳浮雲劫 아득히 떠다니는 구름 분주하고
依依向日誠 태양은 나를 향해 어른거리네.
宸章記宿昔 머지않은 옛날 임금이 기록한 친필을
讀罷淚承衡 읽다보니 눈물이 끊이질 않구나.
[주1] 사성(使星) : 사자(使者), 옛날에 임금의 명령을 받고 지방으로 출장 가던 관원.
[주2] 각벌(覺筏) : 불가(佛家)에서 깨달음을 각해(覺海)라 하므로 사람을 깨우치는 배란 뜻으로 쓴 것이다.
[주3] 법우(法雨) : 중생을 교화하여 덕화(德化)를 입히는 불법(佛法)을, 내리는 비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29) 표충사 신장절 공께 제를 올리며[表忠祠 祭申壯節公] 무태촌의 채소감 묘에도 제를 올렸는데 모두 상촌에 있어 비문을 지었다.(無怠村 祭蔡少監墓 皆有象村所撰碑文) / 조태억(趙泰億 1675∼1728)
乍拜太師廟 잠시 태사묘(太師廟)를 배알하고
仍尋少監墳 거듭 소감(少監)의 무덤을 찾아뵈었다.
細看牲石刻 상세히 보니 석각에 새겨져 있어
俱是象村文 여기 상촌의 글월을 모두 읽었다.
溯遠懷風烈 세찬 바람을 타고 거슬러 편히 올라가
虔誠薦苾芬 경건한 정성으로 좋은 향불로 제사를 올렸다.
㫌麾幸玆土 다행이 이 고장에서 깃발을 나부낄 수 있었고
餘慶屬來雲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니 모두의 경사일세.
30) 밀양시 도연정 아래서 뱃놀이하다[舟遊櫂淵亭下]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一棹相將溯晩風 한 배 타고 함께 저물녘 바람 거슬러 오르니
春流浩蕩蘸晴空 넓고 아득한 봄물이 맑은 하늘 비추네
臨江峭壁竹相翠 강가에 임한 가파른 절벽엔 대나무 어울려 푸르고
隔岸孤村花獨紅 강둑 넘어 외로운 마을엔 꽃만 홀로 붉어라
漁父滄浪歌後過 어부는 창랑을 노래한 뒤에 지나고
仙人李郭望來同 신선은 이곽이 함께 이름을 바라보네
盈樽綠酒君須辦 그대는 술단지 가득 잘 익은 술 마련할지니
要泛今宵明月中 오늘 밤 명월 가운데 뱃놀이에 마셔야 하리
[주1] 도연정(櫂淵亭) : 경상남도 밀양시 범도리(泛棹里)에 있는 정자인데. 죽림(竹林) 안희원(安禧遠 1846~1919)이 그 아버지 치와(恥窩) 안효완(安孝完 1827~1893)을 위하여 지었다. 지금은 없어졌고 다만 그 유허(遺墟)에 이선대(移船臺)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주2] 창랑(滄浪) :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 맑거든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탁하거든 나의 발을 씻으리.〔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하였다.
[주3] 이곽(李郭) : 후한(後漢)의 이응(李膺)과 곽태(郭泰). 곽태가 낙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이응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넘에 사람들이 보고 ‘지상선(地上仙)’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