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3 - 팔일(八佾) -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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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노(魯)나라의 체(禘)제사는 강신주를 땅에 부어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부터 이후에는 나는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다.
○ 趙伯循曰: “禘, 王者之大祭也. 王者旣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祀之於始祖之廟, 而以始祖配之也. 成王以周公有大勳勞, 賜魯重祭. 故得禘於周公之廟, 以文王爲所出之帝, 而周公配之, 然非禮矣.” 조백순이 말했다. “禘는 천자의 큰 제사다. 천자가 이미 시조의 묘를 세운 다음, 다시 시조를 배출한 황제를 추존하여 시조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시조와 함께 배향하는 것이다. 성왕은 주공이 큰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노나라에 중한 제사를 하사하였다. 그러므로 주공의 묘당에서 체 제사를 올릴 수 있었고, 문왕을 가지고 시조를 낸 황제로 삼아, 주공을 그에 배향하였지만, 그러나 이는 예가 아니었다.”
伯循 名匡 唐河東人 조백순은 이름이 광이고, 당나라 하동 사람이다.
朱子曰 以始祖配祭而不及群廟之主 不敢褻也 주자가 말하길, “시조로써만 배향하여 제사를 올릴 뿐, 여러 묘당의 주인에게까지 이르지 않는 것은 감히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事見禮記明堂位及祭統篇 이 일은 예기 명당위 및 제통 편에 보인다.
失之於僭 違不王不禘之法矣 참월함에서 잘못하는 바람에, 천자가 아니면 禘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법을 어긴 것이다. |
2 | 灌者, 方祭之始, 用鬱鬯之酒灌地, 以降神也. 魯之君臣, 當此之時, 誠意未散, 猶有可觀. 灌이라는 것은 바야흐로 제사를 시작할 때 울창주를 이용하여 땅에 뿌리는 것인데, 이로써 降神하는 것이다. 노나라의 군신들은 이때를 당해서 성의가 아직 흩어지지 않았기에 아직은 볼만한 것이 있었다.
朱子曰 鬱鬯者 禮家以爲釀秬爲酒 煮鬱金香草和之 其氣芬芳條暢也 주자가 말하길, “鬱鬯(울창)이라는 것은 禮家들이 찰기장을 빚어 술을 만드는데, 울금과 향초를 삶아 그것과 섞음으로써, 그 기운과 향기가 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周之祭祀 先以鬱鬯灌地 求神於陰 旣奠然後取血膋實之於蕭以燔之 以求神於陽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주나라의 제사는 먼저 울창주로 땅에 뿌려서 陰에서 귀신에게 오도록 구한 다음, 이미 제물을 진설한 후에 피와 기름을 취하여 쑥에 채워서 태움으로써 陽에서 귀신에게 오도록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自此以後, 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蓋魯祭非禮, 孔子本不欲觀, 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 故發此歎也. 이것부터 이후는 점차 게으름에 빠져서 볼만한 것이 없었다. 대개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었으므로, 공자는 본래 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에 이르러서 예를 잃은 중에 다시 또 예를 잃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런 탄식을 발한 것이다. 僭禘元已失禮 旣灌懈怠爲又失禮 禘제사를 僭用하는 것은 원래 이미 예를 잃은 것인데, 이미 灌地한 뒤로 懈怠하여 행하는 것은 또 다시 예를 잃은 것이다.
慶源輔氏曰 僭祭之罪 雖大而其來已久 且國惡當諱 懈怠之失 雖小 然却是當時主祭者 切己之實病 不可不有以箴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제사를 참용하는 죄는 비록 크기는 하지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고, 또한 나라의 죄악은 마땅히 숨겨야 했던 반면에, 제사를 게을리 한 잘못은 비록 작지만, 그러나 도리어 당시 제사를 주관했던 자들에게 절실했던 실제적 병폐였으니, 그것을 경계해줌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 謝氏曰: “夫子嘗曰: ‘我欲觀夏道, 是故之杞, 而不足徵也; 我欲觀殷道, 是故之宋, 而不足徵也.’ 又曰: ‘我觀周道, 幽ㆍ厲傷之, 吾舍魯何適矣. 魯之郊ㆍ禘非禮也, 周公其衰矣!’ 考之杞ㆍ宋已如彼, 考之當今又如此, 孔子所以深歎也.” 사씨가 말했다. “공자가 일찍이 말하길, 나는 하나라의 도를 살펴보고 싶어서, 이런 까닭으로 기나라에 갔는데, 증명하기에 부족하였다. 나는 은나라의 도를 살펴보고 싶어서, 이런 까닭으로 송나라에 갔지만, 증명하기에 부족하였다고 하였다. 또 공자께서 말하길, 나는 주나라의 도를 살펴보는데, 유왕과 려왕이 그것을 손상시켰으니,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노나라에서 郊와 禘 제사를 지내는 것은 禮가 아니니, 주공이 쇠미해졌던 것이다’고 하였다. 기나라와 송나라에 고증하는 것이 이미 저와 같았고, 지금에 고증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았기에, 이것이 바로 공자가 깊이 탄식한 까닭이다.” 新安陳氏曰 魯在春秋時爲諸侯望國 周之典禮儒書在焉 신안진씨가 말하길, “노나라는 춘추시대에 제후들이 우러러보는 나라였으니, 주나라의 典禮와 儒書가 여기에 다 있었다.”라고 하였다.
問禘之說 諸家多云 魯躋僖公昭穆不順 故聖人不欲觀 如何 朱子曰 禘是於始祖之廟 推所自出之帝 設虛位以祀之 而以始祖配 卽不曾序昭穆 故周禘帝嚳 以后稷配之 王者有禘有祫 諸侯有祫而無禘 此魯所以爲失禮也 누군가 묻기를, “禘제사에 대한 말씀에 있어, 여러 학파들이 말들을 많이 하는데, 노나라의 제희공이 昭穆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께서 살펴보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禘제사는 시조의 묘당에서 시조를 배출한 황제를 미루어서 헛된 자리를 만들고, 그 제사를 지내면서 시조로써 배향하는 것이니, 일찍이 昭穆으로 차례를 정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나라에서는 帝嚳에게 禘제사를 지내면서 后稷으로써 배향하였던 것이다. 천자는 禘제사도 있고 祫제사도 있지만, 제후에게는 祫제사만 있을 뿐, 禘제사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노나라가 禮를 잃었다고 여기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或問禮記大傳云 禮不王不禘 王者禘其祖之所自出 以其祖配之 又喪服小記曰 王者禘其祖之所自出 又下云 禮不王不禘 正與大傳同 則諸侯不得禘 禮明矣 然則 春秋書魯之禘 何也 曰 成王推寵周公故也 祭統云 成王推念周公 賜之重祭 郊社禘嘗 是也 魯之用禘 蓋以周公廟 而上及文王 卽周公之所出故也 누군가 묻기를, “예기 大傳에 이르길, 예에 의하면 천하에 왕 노릇을 하지 않으면, 禘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王者는 자기 시조를 배출한 사람에게 禘제사를 지내는데, 자기 시조로써 그에 배향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상복소기에 이르길, 王者는 자기 시조를 배출한 사람에게 禘제사를 지낸다고 하였고, 또 아래에서 이르길, 예에 의하면 王者가 아니면 禘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는 바로 大傳과 같은 것이니, 제후가 禘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은 禮에 있어서 명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춘추에서 노나라의 禘제사를 기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왕이 주공을 미루어 총애하였기 때문이다. 예기 제통 편에 이르길, 성왕은 주공을 추념하여 그에게 중요한 제사를 하사하였다고 하였는데, 郊제사와 社제사와 禘제사, 그리고 嘗제사가 바로 그것이다. 노나라가 禘제사를 사용한 것은 아마도 주공의 묘당에서 위로 文王에게 미쳤을 것이니, 문왕은 곧 주공을 배출한 황제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謝氏蓋倂前章通論之 此二章及下章 或夫子一時之言 或記者以類次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씨는 대체로 앞장과 나란히 하여 통론하였는데, 이 두 장과 아래 장은 혹은 공자께서 한 때에 말씀하신 것이거나, 혹은 기록한 자가 비슷한 것으로써 편차한 것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