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문모 전] 제4부 아마겟돈(101)
8. 고문관 이야기(8)
“그러니까 그날 김 일병의 공격에 대해서 문 하사의 부상은 충격을 받은 만큼 상태가 그리 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대부분의 병사들이 철로 둑의 사면에 눈을 쓸어낸 마른 풀 위에 판초를 깔고 누워서 잠들었었거든요.
그러니까 김 일병이 철로 위에 서서 철로 아래 비탈을 기대고 누운 문 하사의 어깨를 겨냥하고 내리 찍었다 해도 어깨에 총개머리판에 맞는 순간 몸체가 그대로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갔을 겁니다. 그러면 그 충격은 상당히 완화되었겠죠?
그러니까 생각만큼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지금 상태가 불구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다가 공격을 받았으니까 그대로 기절해버린 거죠. 그런 그가 그날 상황이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는 거죠. 적어도 내가 판단컨대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음식은 열심히 줄여주고 있었다.
밥도 들어와서 찌개에 밥을 비비듯 마는 듯 섞어가며 먹었다.
“죽이려고 했다면 머리통을 내리 깠을 낀데?”
“흐흐흐…….”
방동환이 문모의 말투에 웃더니,
“그때 부대원들이 무슨 내무반에서 자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원래 도로 행군 중에 도로변에서 취침할 때는 두 사람당 한 개씩의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 두 사람이 교대로 자다가 경계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모두 중무장한 채 총을 두 손으로 잡아 앞 가슴에 올려놓고 잠이 듭니다. 그 말은 머리를 철모로 아주 잘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내리 깐 들 뭐 크게 다치게 하겠습니까? 삐그러지기 알맞지요.
그런데 당시 우리 중대가 그 좁다란 협궤로 된 철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철로 변 양쪽에 줄지어 경계를 하고 있었지요. 아시겠지만, 철로는 보통 주변 지형보다 높게 돈대를 쌓아 철로가 부설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양쪽으로 물이 흘러 빠져 나가도록 긴 도랑이 형성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이를 교통호 삼아 별도의 참호는 파지 않고도 경계하기 딱 좋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문 하사는 마침 그 분대가 박격포 분대였기 때문에 박격포를 철로 위에 장전해 놓고 두 포수들 옆에 잠들어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두 포수 중 한 사람이 깨어 있었겠지요. 소대장은 소대 중간 쯤에 개인 텐트를 치고 본부를 차리고 있는데 거기서 두 사람의 통신병과 무전기를 옆에 두고 교대로 자면서 경계도 하고 통신도 받고 그러거든요. 통신병 하나는 유선 통신병이고 또 하나는 대개 무전기 담당입니다.
저는 선임 분대 분대장으로 그 텐트 바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분대는 기관총 분대였는데 그 텐트 옆에 기관총 총좌를 설치해 놓고 나도 그곳에서 함께 경계하는 거죠. 기관총 사수들도 두 사람입니다.”
이야기하다가 동환은 냄비에 졸아들고 있는 나머지 것들에서 건더기를 찾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침 그때, 그러니까 김 일병이 동초를 서서 철로 위로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소대장님은 순찰을 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경계병이든 잠든 병사든 이상이 없는지 돌아보는 거죠. 어떤 때는 저도 같이 동행합니다. 그날은 소대장 혼자 돌았습니다.
그는 손에 검도할 때 쓰는 막대기를 지휘봉 대신에 목 뒤로 가로 걸쳐 얹어서 두 손으로 검의 양쪽 끝 근처를 잡고 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그날도 그러고 순찰했을 겁니다. 그게 그분의 특색이지요.”
“하하, 그래서 왜놈 병정이라고 했다면서예?”
“그 별명도 들으셨군요?”
“그랬심더. 준호하고 나는 일본에서 중학교 댕길 때 학교에서 검도 했심더. 지가 이 팔 잘라 먹힌 것도 따지고 말하자면 검도 실력을 부리다가 진짜 칼 겉은 낫에 잘리 묵힌 기지만도.
준호는 일본 검도 실력으로 2단 쭘 되는데 해방 이후에 실력이 더 늘었을 깁니더. 그런데 입대해가지고 소대장질 하면서 목도를 들고 댕깄다 카이 새삼시럽네예.”
“그랬군요. 그러니까 심 목사님도 검객이었다는 뜻이구만요.”
“검객이락 칼 거까지는 아이고, 그저 죽도나 목검을 휘두르며 운동을 한 거지요.”
“그래 황 중위님이 그 목검을 어깨에 가로 걸치고 순찰 돌다가 김 일병의 행각을 발견한 겁니다. 말하자면 소대장이 문 하사가 있는 박격포대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는데 김 일병은 그것도 모르고 소총을 거꾸로 쳐들었다가 개머리판으로 그의 어깨를 내리 찍은 겁니다. 그걸 소대장이 목격한 걸 겁니다.
‘김 일병!’하고 소리쳐 부르면서 달려가니까 김 일병이 획 돌아서면서 소총을 자기에게 겨누더래요. 그런데도 천천히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다가서니까 소대장님 서십시오. 하고 소리치더래요.
그런데도 더 다가가니까 노리쇠를 덜커덕 후퇴시키더랍니다. 그러자 소대장이 쥐고 있던 목검을 휘둘러서 그의 소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게 하고 아구창을 내질렀던 모양입니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앞으로 거꾸러지는 것을 소대장이 확 껴 안았답니다. 그때 그의 입에서 터진 피가 소대장 가슴에 칠갑을 했다네요. 그리고는 그를 땅바닥에 눕히고 가로 타고서 제압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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