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유난히 일어나기 힘들고,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난다면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점검해보자. 무기력함과 분노는 우울증 증상이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에 잠식당하다보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고 또 자책하게 된다. 이럴 땐 전문가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찾는 편이 좋다. 심리상담가, 신경과 전문의와 함께 우울증·치매 등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정신건강 현주소를 살펴봤다.
‘가장 잔인한 이별.’
치매를 부르는 말이다. 뇌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니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포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평소 생활 속 위험인자를 잘 숙지하고, 운동·금주·금연 등을 실천해 신체를 지혜롭게 관리한다면 ‘추억과 함께하는 행복한 노년’을 꿈꿀 수 있다. 신경과 전문의와 함께 치매질환의 속성, 예방과 치료법 등을 알아봤다.
●후각 무뎌지고 램수면장애 있으면 의심해봐야=“조선 제21대 왕이었던 영조도 노인성 치매를 앓았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어요. 즉위 50년 이후 엉뚱한 명령을 내렸다거나 환각·불면증·잠꼬대·의식상실 등의 증상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4일 만난 신경과 전문의 양현덕 하버드신경과의원장은 치매 역사가 오래됐다며 영조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는 “치매가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80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25% 정도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배우자 부모 가운데 1명은 확률상 치매에 걸린다는 얘기다.
노년의 불청객 치매는 왜 생기는 걸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신경퇴행성 치매는 뇌에 분포하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엉키면서 발생한다. 치매 종류에 따라 원인이 되는 단백질도 각기 다르다.
양 원장은 치매 전조 증상을 몇가지 알려줬다. 후각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램수면장애를 겪는 것이 대표적이다. 램수면장애는 자면서 잠꼬대, 욕설, 격한 움직임을 동반한다. 업무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직장인 역시 인지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어 공부로 치매 예방해볼까=“외국어 공부를 시작해보는 것도 치매를 예방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죠.”
어학 공부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말엔 근거가 있다. 낯선 경험에 자주 노출되고, 읽고 쓰는 행위를 반복하면 뇌의 기능이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학습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학력층, 사회 경험이 부족한 가정주부 등은 치매를 앓을 확률이 높다.
평소 치매를 일으키는 다양한 위험인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람직하다. 영국의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이 2020년 펴낸 ‘치매 예방, 중재, 돌봄’이란 제목의 보고서에는 여러가지 치매 위험인자가 정리돼 있다.
기존 저학력·고혈압·흡연·비만·우울·운동부족·사회고립 등 9가지에 과음·머리외상·대기오염 3가지를 추가했다. 가령 과음 후 전날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른바 ‘블랙아웃’이 잦아지는 것은 치매 경고등이 켜졌다는 뜻이다. 알코올은 해마의 특정 수용체에 비정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반복돼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손상된 탓이다.
양 원장은 위험인자 가운데 특히 사회고립에 주목했다. “인간관계 저변이 넓은 사람은 아무래도 소통을 하면서 인지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잖아요. 친구관계가 원만하고, 가족애가 끈끈한 사람은 치매를 앓을 확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흉금을 털어놓을 친구·가족·친지 관리를 잘해두는 것이 행복한 노년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전화위복 기회로 삼아라=가족 중 치매환자가 생기는 상황은 분명히 두려운 일이다. ‘나이 든 어린아이’와 같은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양 원장은 “치매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두려움에서 빨리 빠져나와 전문병원 문을 두드리라”고 조언했다.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에게 맞는 약물·비약물 치료를 하면 얼마든지 환자의 호전을 기대해볼 수 있어서다.
치매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라는 그의 말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양 원장은 최근 자신이 진료한 어르신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오히려 가족간 결속이 더 단단해졌어요. 자녀는 환자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고, 치료 과정에도 참여해 함께 위기를 극복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 원장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힘’을 강조했다. 환자에게 정서적 안정을 찾아주는 것이 치매를 치료하는 첫걸음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치매환자에게 끝까지 친구로 남아 있어 주세요. 환자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마음속 깊은 불안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거든요. 자신을 지지해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크나큰 위안을 얻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