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밖에서의 성격이 경기장 안에서도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얌전하고 차분한 선수도 경기 중에는 야수가 되기도 한다. 경기에서 드러나는 성격이 따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직장인만 봐도 일할 때와 사생활에서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 축구 선수도 다르지 않다.
이 선수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지난 5월 전북 현대 미드필더 한교원은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박대한에게 주먹을 휘둘러 퇴장을 당했다. 당시 많은 관계자들이 충격을 받았다. 한교원은 원래 착하고 침착한,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훨씬 얌전한 성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해 남에게 미움을 사는 경우가 드문 그가 그토록 폭력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례는 또 있다. 유럽으로 떠나기 전 이청용은 K리그에서 터프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과감한 태클과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상대와 대결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던 선수다. 그런데 이청용은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다. 장난기가 별로 없고, 진지한 사람이다. 하지만 경기에만 들어가면 돌변했다. 부상을 당한 뒤로는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종종 경기 중에 과감한 플레이를 할 때가 있다.
한교원과 이청용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축구 선수의 실제 성격이 플레이 스타일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80도 다를 가능성도 존재한다. 회사에서는 까다롭고 철저한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무던한 사람이 있다. 일부러 태도를 다르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직장인과 자연인의 경계를 오가는 경우도 있다. 이를 축구 선수에 대입하면 이해하기 쉽다. 경기장 안과 밖에서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병준 인하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는 “원래 얌전한 선수가 거친 플레이를 했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없다. 경기장 밖에서의 성격이 경기장 안에서도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얌전하고 차분한 선수도 경기 중에는 야수가 되기도 한다. 경기에서 드러나는 성격이 따로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수는 경기장에 들어가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결연해지고 투지를 갖게 된다. 경기장 안에서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직장인만 봐도 일할 때와 사생활에서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 축구 선수도 다르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다설명한 대로 원래 얌전한 선수도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분노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내야말로 최고 수준의 정신력이 요구되는 행위다. 얌전하거나 침착하다고 해서 꼭 잘 참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하거나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선수를 보며 정신력이 좋다고 오해한다. 사실 이보다는 참는 것을 잘하는 선수가 정신력이 좋은 것이다.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선수는 그 직전에 ‘좌절’이라는 과정을 겪게 된다. 상대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수도, 자신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진에 빠져 자신감이 하락했을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 좌절이라는 감정은 선수를 괴롭힌다.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때로는 폭력이라는 결과로 분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좌절을 겪었을 때 흥분하지 않는 방법으로는 ‘3R’이 있다. 좌절에 반응할(Reaction) 때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Relax), 다시 집중해야(Refocus) 한다는 의미다. 반응이 보복하는 행위, 특히 주먹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거칠게 반응하는 대신 심호흡을 크게 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목표를 명확하게 바라봐야 한다. 상대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김 교수는 “어차피 축구는 역동적인 스포츠다. 서로 밀고, 치고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상대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뒤도 보지 말고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마 감독들도 평소 선수들에게 조언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 순간의 판단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참을 줄 아는 선수가 잘 참는다”라고 조언한다.
이 글은 대한축구협회 공식매거진 <ONSIDE> 7월호 'PSYCHOLOGY'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글 = 정다워
자문 = 김병준(인하대 체육학부 교수)
사진 = FA pho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