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한 송이 / 박정숙
황산 공원에서는 국화축제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공원 입구에는 청룡과 어린 왕자, 뽀로로랑 패티가 형형색색의 국화로 장식된 채 방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국화 터널이 시작된다. 하얀 소국 수만 송이가 사르르 사르르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탄다. 갑자기 어지름이 인다. 입구와 출구가 멀어지며 마치 미로에 들어선 기분이다. 눈앞이 흐려진다.
한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세상은 무너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이태원 비탈진 골목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던 인파가 넘어져 압사 사고가 났다고 했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하늘도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갑자기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사이 날씨는 변덕스러워졌다. 하지만 국화축제에 걸어 놓은 작품들을 챙겨야만 했다. 황망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행사장 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으슬으슬 찬 바람이 옷깃 속으로 들어와 휘젓는다. 부스 안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며 국화차 한잔을 마신다. 어느새 앞산 허리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내 안으로도 비가 흘러내린다. 견디기 힘든 슬픔으로 가슴이 젖는다. 오늘이 시화전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오후가 되니 언론에서는 쉬지 않고 이태원 참사를 다룬다. 사고가 나기 전에 112에 신고한 사람들 입에서 압사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런데 왜 빨리 대응하지 못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목이 터지라 외쳐도 사람들은 핼러윈 복장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높은 음악 소리 때문에 절규하는 소방대원의 말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고,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인간의 한계적 상황에서 삶은 그 손을 놓았다.
찬바람이 비를 몰고 왔다 갔다 한다. 그럴 때마다 전시된 국화가 파르르 몸을 떤다. 그중에는 스스로 고개를 떨구는 꽃도 보인다. 가는 꽃잎들이 바닥에 흩어진다. 어제까지의 활달함은 사라지고 그저 스산함만이 남는다. 국화가 이리도 슬픔의 꽃이라는 것에 가슴이 또다시 아파진다.
국화는 찬 바람을 맞으면서 피는 꽃이다. 식어가는 태양을 따라 모든 꽃이 지고 난 후에 국화는 멍울을 맺는다. 긴 세월을 굽이쳐 돌아온 누님의 표정으로 채도 낮은 꽃을 피운다. 국화는 정원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법이 없다. 낮은 눈길이 머무는 구석에서 가장자리에서 소리 없이 핀다. 겨울이 올 줄을 알면서도 고통이 닥칠 줄을 알면서도 그윽한 향기를 품고 끈질기게 피어난다.
대통령이 일주일간의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한다.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참사의 자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울부짖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죄책감에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한 시민은 끝없는 눈물을 흘린다. 밤새워 구조작업을 진행한 소방관들도 망연한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봇물 터지듯 터진 슬픔이 온 국민의 마음을 덮친다.
자꾸만 우울해진다. 희생된 사람의 유족들, 병원에서 회복 중인 사람은 물론이고 그 현장을 계속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다. 지난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은 한 차례 슬픔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아직 그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쓰나미를 맞았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애도 기간이라도 모두 함께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의 고통을 사회문화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애도라 한다. 요즘 들어 불특정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희생되는 사건이 잦다. 누구라도 순식간에 거대한 불행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불행에 대한 애도에 너와 나는 없다. 실제로 애도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면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의 적응 또한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애도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국화 한 송이가 놓인다.
지자체마다 모든 행사를 축소 시키거나 취소한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 당연한 이야기다. 양산문인 협회에서 보낸 메시지를 적은 작은 쪽지가 행사 관계자에게 전해진다. 몇 분 동안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어 주는 시간을 가진다. 국화축제에 놓인 꽃들이 애도의 꽃이 되고 만다.
핼러윈 축제가 우리 고유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젊은 사람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현대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한 통로였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어쩌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비교 경쟁의 장으로만 그들을 내몬 우리가 모두 이 참사의 원인인 것은 아닐까. 발끝에 머문 시선을 들어올리기가 두렵다.
아직 활짝 피기도 전에 떨어진 꽃들. 축제의 장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생각하며 국화축제에 놓인 꽃들이 함께 눈물을 흘린다. 국화축제도 오늘로써 막을 내린다. 엄숙한 분위기의 음악을 뒤로하고 시화전 작품을 거둔다. 상실과 이별로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황산 공원을 가득 덮은 저 국화들을 감히 희생자의 영전에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