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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시형(時形)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을 비롯한 믿음의 몇몇 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것이나
주된 골자는 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찬양하며
통회 기도로써 이루어져 있습니.
이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심을 철저히 믿고
그를 찬양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가 되시고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하셨으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기에 믿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찬양들 속에는
우리 모두의 소망의 원천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소개된 시조형 시편들은
시형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 가사로 곡을 붙여서 사용하기 위하여
누구나 쉽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시조형(時調形)으로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에
시조형 시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전체가 찬양가사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왜곡되지 않게 시조형으로
글자 수를 맞추다 보니
어떤 부분에는 무리가 된 표현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근본 뜻은 크게 이탈되지 않게
기도하며 최선을 다 한 결과임을 말씀 드립니다.
시편의 기자와 같이 오직 주의 영광을 높이며
평생을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함으로
함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var articleno = "6918";
1985년 7월 처음 만나 11월에 약혼을 하고, 다음해 결혼과 함께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경상도 깊은 산골의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신혼이었기에 가능했었다고 여겨진다. 한 가정을 꾸려 두 아이를 선물로 얻게 하시고,
30년 목회에 서광교회는 네 번째 교회다.
목사가 되어 굶지 않고 먹고 산 것이 은혜이라면, 수많은 성도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며
지내옴이 큰 복이다.
특별히 감사하는 것은 11년 전, 건강의 위기, 목회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함께 울며 격려하고 기도하며
내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가진다.
부모님보다 더 오래, 많이 함께 한 아내는 인생의 반려자요, 목회에 큰 동역자이다.
결혼기념일에 선물도 못하고 밋밋하게 지났지만 기회를 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이 땅의 모든 부부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이근희 목사님
좋은 습관을 만들자.
신용대 목사님
구정의 연휴를 보내고 있다. 구정은 음력으로 말하는 새해이다. 이제 진정으로 2018년이 다 없어지는 날이다. 무엇이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시간을 떠올려 보라. 어떤 기분이며 어떤 마음일까? 그러기에 매일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매일이 나의 가장 좋고,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하고, 의미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보면 나에게 길들여 지는 습관은 정말 중요햔 것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드라이드는 습관에 대하여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파워 블로거인 스티브 기즈가 쓴 책 '습관의 재발견'에 보면 '습관을 들이는 비결을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비유했다. 처음에는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주면서 아이가 페달을 구르게 하고 어느 단계에 이르면 자전거를 붙잡은 손을 놓아도 잘 가게 된다.'고 하였다. 즉, 습관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한 번 만들어 두게되면 굳이 의지력을 발취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저절로 습관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간 강도의 운동을 30분 이상 계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한다. 그 행복감에 맛을 들이게 되면,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되고 습관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나, 재미있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을 목표로 둘 때 행동의 동기가 생기고 의도적인 습관으로 이어져 몰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용어로 '내발적 동기' 라고 하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직접 설정하고 습관으로 만든다면,
이제 그 습관이 우리를 만들어 목표한 지점까지 데려다 준다는 것다
기도
문학박사 김윤환목사님
씻어내는 일이다
잘라내는 일이다
무엇을 씻어낸다는 것은
지난 시간 게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백지장의 넉넉함을 만드는 일이다
무엇을 잘라낸다는 것은
자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스스로는
할 수 없어서
하늘의 힘 빌리는 거다
- 김윤환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2010, 시와에세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윤용상 목사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반역하는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에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셨다 하고…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에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12:9~16).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불행이 닥쳐올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막상 불행을 당하였을 때에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다. 더구나 불행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게으르고 교만하게 행하여 불행을 자초했다면 더욱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낮에 이삿짐을 꾸려 집 밖에 내어놓은 후 한밤중에 짐을 메고 야반도주하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는 머잖아 유다 백성들과 방백, 그리고 왕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갈 것을 상징하는 행위예언이었다. 이러한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시드기야 제 십일 년(B.C 586년) 4월 9일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고 입성하자 시드기야는 그 날 밤에 그의 군사들과 함께 손수 이삿짐을 어깨에 메고 성을 빠져 나갔으나 여리고 평원에서 잡히고 말았다. 그 결과 시드기야의 아들들과 신하들은 칼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 자신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예언되었던 경고를 무시하고 이처럼 끝내 심판을 모면하지 못한 채 피를 토하는 후회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한 번 다가왔을 때 놓치게 되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놓쳐서는 안 될 절대의 기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기회이다. 이에 사도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지금 이 구원의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경고를 저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일시적인 세상 정욕을 좇느라 영원한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닫힌 후에는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홍수의 심판 중에 문이 열리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는 숱이 무성한 대신 뒷머리는 대머리이며,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그를 발견한 자가 그의 머리채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까닭은 한번 놓치게 되면 머리카락을 붙잡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발에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잡을 수 없는 것,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기회’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 돌이킬 수 없는 미련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를 잡는 것은 기회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때처럼 세상의 쾌락과 물질과 명예 등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을 위해 천국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회를 잡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신령한 젖(벧전 2:2)인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사모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뚜벅뚜벅 걷고 생각하다보니
이강희 목사님
2018년도 절반이지나가네요.
이제 7월을 맞이하는데 전국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태풍도 오고있네요.
비도많이오고 태풍도 오니 친구님들 모두 긴장하시고 피해입지않도록 대비하시기바랍니다
.저도 지인과 친구들이 농어촌에서 개척하는 목회자들이 많다보니 걱정이 앞서 먼저 기도하게됩니다. 7월 많은 교회행사와 또 제가속한 어린이선교회가 봉사기간에 있습니다.친구님들 교회와 또 모든 여름행사에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늘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더위를 즐기시고 기쁨과 행복.사랑을 함께 웃음으로 시원하게 날리는 7월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합니다.행복하세요.기대합니다.축복합니다.ㅡ
박대규 목사님
<겨울날 함께 부르는 인생의 노래>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 작품 911
겨울이 계절적으로 상징하는 기호는 죽음이다. 생명이 시작되는 봄은 지상에 머무는 자 들에게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고 여름은 생명의 충만을 선물로 안긴다. 하지만 머지않아 가을이 찾아와 스산한 바람과 함께 늦서리의 채찍을 휘갈기면 충만했던 생명은 곧 힘을 잃어 버리고 싸늘한 자신의 주검을 낙엽으로 뿌려놓으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차갑고 서슬퍼런 겨울의 칼날은 모든 것들을 예외없이 무차별적으로 베어버린다. 겨울은 죽음으로 변해버린 이 세상의 음울한 터 위를 하얀 눈의 보자기로 가리워 놓고 자신의 모습을 슬쩍 감추지만 오랫동안 세상을 살아온 우리들은 겨울이 주는 황량함과 쓸쓸함을 쉽게 걷어 낼 수가 없다. 하여 겨울날엔 기도하기 좋다. 겨울은 죽음을 딛고 영생을 바라보는 소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은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가 평생 머물렀던 남서 독일 토트나우베르크 산장에 눈이 수북히 쌓일 때면 이런 결심문을 그의 창문에 걸어 놓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다. “깊은 겨울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 주위에 휘몰아 치고/ 모든 것을 뒤덮을 때에야/ 비로소 음악을 듣고/ 인생(철학)을 공부할 시간이다.” 이제 우리도 이번 겨울을 그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프란츠 슈베르트가 남긴 겨울나그네(Winterreise)만큼 겨울의 낭만과 고독 그리고 인생의 진지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 것이다. 이 곡은 독일의 무명시인 빌헬름 뮐러가 지은 24개의 시에 곡을 부친 작품으로 피아노 반주를 따라 주로 테너나 바리톤 가수가 부르는 연가곡이다. 한 젊은이가 사랑에 버림받고 추운 겨울의 벌판을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하는 가운데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의 배경이다. 음악적 정서는 한없이 우울하고 체념적이다. 슈베르트는 그러나 이 작품의 어둡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넘어서 시냇물,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가지, 눈물, 이정표, 사람들 등의 시각적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부각시켜 영혼에서 우러나는 다양한 감정으로 음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선율은 단순하고 따사로우면서도 갈등과 절망에 빠진 젊은이의 영혼이 새로운 자의식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이정표처럼 울린다. 겨울나그네 속의 주인공은 오늘날 구원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버려진 채 끝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에 다름 아니다.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는 방황하는 영혼을 향해 음악적으로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라 말하고 싶다. “나뭇가지들이 살랑거리면서/ 꼭 나를 부르는 것 같았네/ 친구여 내게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았노라!” (다섯 번째곡 ‘보리수’).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손풍금을 빙빙 돌리네/ ····참으로 이상한 노인이여 내가 당신과 함께 가 드릴까요/ 나의 노래에 맞춰/ 손풍금을 켜주지 않을래요?” (스물네 번째곡 ‘거리의 악사’).
독일어권 영역의 가수들에게 있어 ‘겨울나그네’는 언젠가는 꼭 넘어야 할 거대한 성벽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군웅할거하는 대가들 가운데서도 독일의 위대한 바리톤 가수 ‘디트리히 휫셔 디스카우’를 비켜갈 수 없으리라. 그는 십 여년에 걸쳐 무려 일곱 번씩이나 이 곡을 녹음했다. 참으로 인생 전체를 드린 음악을 향한 구도자적 열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두 해석상의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역사적 명연주이며 겨울나그네 연주의 이정표를 이룬 기념비적 노래라 하겠다. 휫셔-디스카우 이전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라 우선 템포가 일률적이지 않고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흔들리는 리듬과 템포의 불균형에 스탠다드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고 그 이후 겨울나그네에 도전하는 가수들로 하여금 '휫셔-디스카우의 룰‘을 따르게 만들었다.음악이던 성경이던 인생이던지 간에, 해석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반주자 제랄드 무어 역시 서정적 피아니즘의 진수를 보였다고 평가받는다. 피아노의 작은 멜로디의 터치 하나하나가 눈보라 속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 모두 이 겨울에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감상해보는 게 어떨까?.
무릎관절염이나 반월상 연골판
전문의 하 상선박사님
과연 무릎관절염이나 반월상 연골판 손상에 대하여
줄기세포 이식수술로 치료가 이루어 질까?
고령에서 진행되는 무릎 관절염과 반월상 연골판 손상 에대한
염려는 떠나 갈수 없는 과제인것이다
과연 무릎관절염이 심하고 변형도 심하고
운동범위도 매우 제한적인데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반월상연골판 손상이 같이
동반되는경우가 대부분인경우가 많다,
과연 줄기세포이식수술로 치료가 이루어 질수 있을까?
요즘 TV 방송이나 CBS 방송에서 어떤 연자가 나와서 모든치료가
수술없이 가능하다고 발표하여 몹시 당황스러운적이 있다
PRP prolo 치료가 모든것을 가능하다고 발표되는것을
보고 매우 놀라웠다.
사실은 치료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검증이 되지 않은상테에서 방송으로
나오고 있다니 매우 놀랍다.
꽃 피고 꽃 진 자리
최숙영 시인
창 밖에 눈이 내리면 아스라이 지난 날 그 추억이 소록소록 내려와 쌓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꽃 피고 꽃 진 자리 하얀 그리움으로 하르르 하르르 내리면 그 날의 수묵화 같은 사랑을 다시 또 그려 봅니다 그토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당신 있어 나는 지금 참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창 밖에 비가 내리면 아스라이 지난 날 그 추억이 보슬보슬 내려와 물듭니다 세월이 흘러도 꽃 피고 꽃 진 자리 흐르는 빗물 되어 사르르 사르르 내리면 그 날의 수채화 같은 사랑을 다시 또 그려 봅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고귀한 당신 있어 나는 지금 참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 2013년 12월 5일 중앙대학교 아트센터에서 7시 30분 발표회를 하였음
아름다운 날
의정부 남부교회 이 기주권사님
하루에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거리를 정해 두고 살기엔 내 나이가 많아서 주님이 운행 하시는 대로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 거리가 하루를 내가 걸어가야 할 분량입니다
어제도 참 소중한 만남을 주선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카스에서 만난 감리교회 젋으신 장로님 !! 출장길이 저희 집 근처라 만나고 싶다 찾아주신 장로님
늘 모습에서 첫 새벽 만난 이슬처럼 맑고 밝은 모습의 장로님
그 아름답게 웃는 모습이 보고싶어 마주한 우리는 손 부터 덥썩 잡았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여 화장실 청소를 감당 하시고 사회를 섬기느라 밥차 설겆이를 하신 손 그 손은 귀한 손이였습니다
커피 샾에서 마주한 우린 처음 만난 것 같지 않은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미 주님 안에 형제의 따뜻한 정을 시간이 흐름도 모르게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으로 마련해 주신 자리 젋으신 장로님은 노인의 마음을 바다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신 주님의 내음이 가득한 행복한 만남이였습니다
보름 남짖 전에 소천하셔 천국에 입성하신 선친 【김 정상 원로 장로님】 기억을 하시며 눈가가 젖어드시는 효심 깊으신 장로님이십니다
제가 서둘러 손녀{채윤}이로 화제를 돌리니 금새 폰에서 손녀 사진을 꺼내 보이시며 자즈러지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손녀 바보가 되시는 심성 따뜻한 장로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찬양 사역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 높이시고
참 좋은 밥 차로 소외계층 만나 도우시며 노인들 영정 사진 찍어 주시고 무병 장수를 축복해 주실 분
저 한테도 영정사진 찍을 분 모아서 연락 하라시는 베품이 넓으신 장로님
감사한 마음만 간직하고 제가 감당해 보기로 마음을 다지는 날이였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까지 몸에 배이신 장로님께 사랑의 빚을 잔뜩 짋어진 행복한 날로 ....... 푸른 초 가을 삶의 인연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공항에서 만난 여섯살 짜리 뉴질랜드 이쁜아가씨. 이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여행갈때 직접가방을 챙기고 들고 다닌다. 설령 가방 챙기다가 물건을 빠트려도 그냥경험하게 내버려둔다. 불편해봐야 다음에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18세가 되면 부모님을 떠나 독립을한다. 절대 부모님으로 부터 어떠한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단다. 부모님집에 다니러와서 국제전화를 쓰게되면 당연히 요금을 부모님께 내고가는 나라. 국민80%이상이 유산을 자식이아닌 국가에 기증하는 나라. 오스트리아.뉴질랜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과 같이 전세계에서 사회복지제도가 으뜸인 나라의 자녀교육관 엿볼수있다.
속초 최창균목사님
규장출판사에서 금년 상반기에 새로 출판된 손기철 장로님의 책 <킹덤빌더>를 읽어 보았습니다. 저자는 킹덤 빌더가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나님나라에서 추론된 용어이며 자녀와 제자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나라의 표현을 빌어 킹덤 빌더와 킹덤 멘탈리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전통적인 신앙인의 삶과 킹덤 빌더의 삶이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저자가 전통적인 신앙인의 삶을 잘못 이해하는 측면이 있으며, 킹덤 빌더의 삶이란 것이 기존의 올바른 신앙인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킹덤 빌더는 교회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교회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한편, 저자는 킹덤 빌더는 교회를 다니는 게 아니라 교회를 세워간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저자가 주장한 방식에 의해서 얘기한다면,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반론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저자는 p324에서 킹덤 빌더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복음이 되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것도 표현방식만 다를 뿐, 사실 두 개념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단지 후자가 신선한 표현방식이라고 봅니다. 이런 창의적 발상은 저자가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표절하기도 쉽지 않은 장점이 됩니다.
혹시 저자가 제도권의 신학교에서 신학과정을 이수할 경우 이런 창의적 발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균형 잡힌 신학적 사고를 하게 된다고 보는 게 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저자의 책들은 웬만한 신학서적들보다 판매부수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만 해석해서 덜 팔리는 신학 책들보다 이 책이 우수하다고 할 수만은 없겠죠.
저자는 제자훈련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킹덤 빌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p99를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대신,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 행하심을 모방하고 훈련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시대착오적인 경건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반적인 기독교교리와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행실을 따르고 훈련받는 것은 공인된 방식입니다. 이것을 비판하다 보니 독자로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저자는 p137에서 복음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왕국이 도래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지금의 보편적인 기독교 교리는 복음을 좋은 소식 혹은 복된 소리 등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런 걸 부정한다면 이단 의혹에 빠질 수가 있게 됩니다. 한편으로 이 대목은 저자가 기존의 교리를 부정한다기 보다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저자는 하나님 중심적인 새로운 사고방식인 킹덤 멘탈리티를 주창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 오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한편, 여기의 ‘새로운’ 을 새롭게 구원받은 자가 드리는 새노래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소한 지적이지만 p142부터 킹덤 멘탈리티의 용어설명 글들에는 특이하게도 문장에 주어들이 없습니다. 열다섯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소제목들의 바로 다음에 나오는 첫 문장들에서는 주어가 없는데, 대신에 그 소제목을 주어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p170에서 저자는 기존의 관점 및 개념과 킹덤 멘탈리티의 관점 및 개념을 비교하여 표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관점 및 개념이 구약시대인지 신약시대인지, 영지주의인지 세속주의인지 아니면 지금의 한국교회인지 구별이 안 되게 섞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관점 및 개념을 보면 영적 생활만이 중요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삶이며 땅에 시민권이 있고 구원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며 기존의 신학은 기복신학이고 번영신학이라는 정의들이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손기철 사역자님은 정통교단 교회의 정식 장로님이기도 하지만, 어느 교단에서는 교류금지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단논의 선상에 서 있는 분이죠.
이 책에서도 아마 킹덤 멘탈리티의 관점 및 개념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렇듯 기존 교회에 대한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교단으로부터 교류금지의 조치도 취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정받는 교회 장로면서 교류금지 대상자가 되어 있는 이 모순이 언젠가는 해결돼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논리의 비약도 보입니다. p273에는 위암 환자가 치유될 것을 믿는 기도까지만 할 게 아니라, 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완치되면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를 상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어찌 보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p365에서 현재 개신교의 공동체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공동체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또한 위험한 사고인 것 같습니다.
금년도 6월 10일자 당당뉴스 기사에는 6월 5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손기철 장로의 해븐리터치 사역 평가’를 주제로 열린 기독교학술원 월례 기도회 및 발표회가 열렸던 내용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기사 내용에 의하면 이날 신학자들은 손기철 장로의 사역이 치유사역만을 강조하는 점과 신학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용어들을 남용하는 점을 지적했다고 나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킹덤 빌더와 킹덤 멘탈리티는 신학적 논의를 거치지 않은 용어입니다. 저 또한 손기철 장로님께서 주님의 사역 분야에서는 자신이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정식 학위과정에서 공부하시기를 권면하는 글을 당당뉴스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단정 짓는 건 곤란합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순수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p356에서 킹덤빌더인 우리는 현재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자가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참 좋은 주장입니다.
또한 이 책은 머리말에서 번영신학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이 세상에서(교회 밖에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를 모색한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 대학의 부총장을 지내실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신 석학답게,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데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책이 말미를 보면 내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휩싸일 때 알고 믿을 수 있게 되며, 이러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책의 마지막 문장은 직장의 신우회가 우리끼리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야말로 건강한 사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짧지 않은 서평 글을 저는 기꺼이 작성합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맞춤법이 틀린 것을 발견 못했습니다. 규장에서 펴낸 또 하나의 좋은 잘 읽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ㆍ 우리들 마음에도 감사가 가득한 2월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ㆍ유옥분 의원
답신:지난 활동 사진과 글
2월은 제가 기록을 했습니다,
나는 네가 좋아
- 백향김찬순-
나는 네가 참 좋아
생각만 해도 어느 사이
옆에 앉아
네 생각을 알려주는 것 같아
나는 네가 참 좋아
보이지 않아도
네 마음을 그렇게 알 수 있어서
나는 네가 참 좋아
네 생각만 하면 고달픈 마음도
씻은듯 사라지니까
나는 네가 참 좋아
내 눈에 보이는 신비로운 보화가
하나씩 열리는 아름다움을
너에게 말해 줄 수 있어서
이 넓은 세상
네가 어느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아도 너와 함께
숨 쉬고 있음을 감사 할래 ~
***
나는 네가 참 좋아
보이지 않아도
나는 네가 참 좋아
내 눈에 보이는 신비로운 보화가
하나씩 열리는 아름다움을
너에게 말해 줄 수 있어서
이 넓은 세상
네가 어느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아도 너와 함께
숨 쉬고 있음을 감사 할래.
임종호 수필가
*아버지는 누구인가* - 아버지노래 한소절 감상해보세요 -
어머니노래는 많은데 아버지노래는 적네요
아버지는기분이좋을때 연신 헛기침을하고 곤혹스럽고 겁이날땐 너털웃음을 웃는분
"내가 아버지노릇 제대로 하고있나"하며 늘 자책하시는분
자식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다가도 아니야아니야,하시는분
최고의자랑은 자식들이 남의칭찬 받을때지만 못난짓을해도 "괜찮아,괜찮아"하며 속으로 우시는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 오시느라 춘풍추우 사시사철 새벽같이 일터로나가, 윗사람 눈치보고 아랫사람에게 치받치며 몸이부서지라 정신없이 달려오신분
정년퇴직후 무기력해진 아버지는 잘나가는 국민MC '송해선생 '에 비교 당하고 '삼식이'라며 면박받고, 썰렁개그의 소재꺼리로 희화화 되기도 하지요
창조의 질서를 따르는 선한 행실
(신명기 22장1~12)
네 이웃이 소유한 것을
못 본체하지 말라 하시는 하나님
이웃의 길 잃은 우양을 못 본체하지 말고
네 이웃의 의복이나 나귀등
이웃의 모든 것을 못 본체하지 말며,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형제 같은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며
여자는 남자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 옷을 입지 말라 합니다.
여장을 하고 남장을 하는 것이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가 아니라
수천 년 전 구약의 시대부터
오늘 날까지 이어온 가증한 일로
인간의 죄 성이 끊임없이
질기고 두터운 것임을 알게 하고
남자는 남자 옷을 입고 남자답게 살고
여자는 여자 옷을 입고 여자답게 사는 것이
창조주의 피조물로서
창조의 질서를 따르는 선한 행실이며
마땅히 지켜야할 덕목으로 다가옵니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고
소와 나귀에 한 멍에를 씌우지 말고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증한 가나안의 풍습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창조물을 창조하신 대로 보존하여
순수함과 진실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순결함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세상을 쫓지 말라는 메시지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듯 주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소망하게 합니다.
-파랑콩-
<파랑콩의 QT일기>
황인일 시인
참 반갑습니다! 찾아오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꽃이 예뻐도 산과 강이 그리워도 내가 찾아가야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쁘고 반가운것은 내가 그립고 보고싶을 때 나를 불현듯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반갑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하루 업무가 시작되고 예정대로 수업에 참여 할 시간 오랫동안 궁금하던 분이 찾아오셨다. 멀리서 함께 했던 형제가 찾아오니 얼마나 반갑고 좋은지! 무더위에 찌든 더위가 시원한 얼음 냉수보다 더 상쾌하다. 꽃보다도 환한 얼굴이 내마음을 흡족게한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것은 보고 싶을땐 마음이 먼저 앞서 달려가서일까?
내 영혼 머문 자리 전세원 시인
웃으며 살려무나
주응규 시인
사람아 이 사람아 세상에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던가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긴 게지
사람아 이 사람아 마음속의 먹구름일랑 걷히고 청초한 빛을 띠려무나
인생살이가 별거라던가 둥글게 살려무나
세월의 강을 건너는 인생 사랑의 징검돌을 놓아 건너려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인생 사는 게 무어 별거라던가 사람아 이 사람아 웃으며 살려무나
웃자
장우익 시인
해 질 녘이면, 돌아가 머물 집이 있고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는 일상은 사계절과 같았다 좋은 일은 스친듯했고 아프고 슬픈 일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게 인생이라고, 시들면 지고 저물면, 영원히 머물 집이 있다는 믿음이 내 삶의 그림이다 행복은 웃음이라 한다면 웃어본 것의 기억 그리 흔치 않다 이제 부터라도 웃어야겠다 내일 죽인데도 웃어야겠다
퇴근길의 한 남자의 활기찬 뒷모습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도 행복을 초대해놓고 웃음의 보따리를 풀것같다
나는 저 나이에 나는 저 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귀가를 했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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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청향 조재선시인
적당히 오염된 빵 타협하는 언어들 동토의 거죽아래 오그라든 새싹
공식적인 미소와 언어로 하루를 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손 쉬운 세상인가
우린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같은 물줄기로 나란히 흐르고 곧은 길에서 가로 지르지 말며 푸른 하늘 아래 먹구름을 만들지 말자
그대와 내가 공존하는시간 억만겹 인연의 수레를 돌아 정점으로 만난 아쉬운 찰나이려니 익히 알고 있는 우리의 공식으로 아닌 척, 모르는 척 한 세상 깊은 강물처럼 흘러가자
허리굽은 새싹들이 서리뚫고 봄을 부를때까지...
원수 갚는 기도
정영숙 시인
원수 갚아달라는 한풀이 기도는 하나님이 아닌 마귀가 듣고 즉시 또 다른 원수를 수 만 마리 데리고 들어와 마음을 혼돈하게 하여 정신병을 일으키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쁘게 들으시고 내 한 매친 상처를 고치시고 마음의 평화와 찬송을 주신다. 주여! 원수 갚아 달라는 내 기도를 휴지통에 버려주시고 나를 원수로 한을 품고 있는 자 있으면 찾아가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저는 둔하여 내가 한 허물과 죄를 기억 못합니다.
★2018년12월30일(주일)★
김정우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딤전 2:8
분노없이
기도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제시한 조건은 분노가 없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분노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화 자체나 화내는 일, 화를 표현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성향을 뜻하는 말입니다. 성질을 격렬하게 폭발시키는 행위가 아닌, 악의와 분을 품은 상태를 뜻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 말의 강조점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이웃을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이것은 사람의 정신-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한 우리 모든 사람이 이 점에서 실패하기 쉽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 분한 감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말로 못 마땅해 하는 마음과 불평하는 마음이 있음을 스스로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그의 도움을 청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고 우리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으신다고 느끼면서도, 그 마음상태 그대로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그 응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15:8) 같은 정신이 동료들을 향한 태도에도 나타납니다. 원수가 있다면 미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규칙은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것입니다. "분노•••••••••없이."
감사일지 시즌 2 - 21 (2016. 02. 19. 금)
인천동구 (前) 한숙희 의원 1. 대보름 맞이 척사대회에서 주민 여러분들을 만나고 인사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2. 내 마음으로 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더디 가더라도 잘 못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됨을 감사합니다. 3. 부끄러움이나 염치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 감사합니다 4.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서 책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평강의 꽃
은총 배미영시인
평화가 있을 때 평화를 더욱더 노래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피우는 꽃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반대되는 그 모든 것들을 물리치는 기도로 활짝 피는 꽃
사막 같은 광야의 길 고난의 길을 이겨내고, 새 힘을 주시는 능력으로 피는 꽃
인생을 돌아보며 믿음으로 삶을 긍정하면서 하늘 말씀 안에서 축복으로 피는 꽃
평화를 외치게 하는 주는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꽃은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임승천 시인
마라도에 닿거든
마라도에 닿거든 되돌아 제주를 보라
거기
일렁이는 물결 위
한라산 위로 떠나온 만큼의 시간이 출렁일 것이다
마라도에 닿거든 왼쪽 절벽을 보라
밀려오는 물결 거듭 깨어지되
변하지 않는 마음 속 시간까지 꿰뚫어 보라
마라도에 닿거든
왼쪽으로 펼쳐진 풀밭
아주 낮게 속삭이는 강아지풀
그 낮은 기막힌 사연을 들어 보라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그릴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거든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앞에 서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그려 보라
바다와 물결
온몸으로 부딪히는 바람
영혼까지 뜨거운 마음을 파도 위에 띄워 보라
인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종만 장로님
오늘도 함께 하심과 변함없는 사랑하심을 감사 드리며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잠깐 살다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가는 인생인데...
버려야 할 욕심과 시기와 미운 마음들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도록 주여~! 도와 주 옵소서.
절제의 능력을 주셔서 모든 일에 적당하게 하옵시고
참으며 사랑의 눈으로 주님의 의를 이루는 2012년이 되게 하옵소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모든 일에 욕심을 버리게 하옵소서.
약한 생각이나 이기적인 생각에서 해방 시켜 주옵시고
선한 양심과 성결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 승리 하게 도와 주옵소서.
세계 곳곳의 재앙으로 고통하는 이들의 애통함을 돌보아 주옵시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못하고 악하게 흘러가고 있는 세상을
복구 시켜 주옵시고 회복 되게 하옵소서.
그 재앙을 통하여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탐심이 물러 가게 하옵시고
가슴으로 영혼으로 감사와 만족함에 충만케 하옵소서!
기댈곳 없어 허탈한 이들과 가슴 한켠을 내어 정을 나눌 수 있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믿음과 사랑을 허락 하옵소서
오늘의 일용할 양식과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 하시는 나의 주님~~범사에 감사 드리며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우리 웃으며 살아요
장석도 권사
오늘의 시련이 힘겨워 절망의 나락 끝으로 다다를 때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참으로 잘 인내 하여 내일을 맞는다면 어제보단 오늘이 내일 보단 그 다음날이 놀랄 정도로 가벼워짐을 느끼면 좋겠어요.
사람에게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주시지 않는것 처럼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은 덜 힘들거란 믿음으로 우리 웃으며 살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 인내하는 요령도 생기고 여유있는 자신감도 생겨 힘차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겨울아 겨울아 / 김치경 작시
겨울아 겨울아
마지막 잎새마저 보기가 싫더냐
무엇이 그리 섭하여 그것마져 없애더냐
앙상한 가지끝에 매달려
매서운 내 입김에 지치고 힘들어도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 하련다
모진바람 북풍한설
나를 찾아 헤메이는 네 노래 들어보마
서러운 너의 고백 어디한번 전해다오
백설이 되어버린 너의 흔적
내 몸을 감싸주니 이제야 알았구나
바람같은 시련이 사랑이었음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향기 목사님
내려놓는다는 것은 세상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십자가를 드는 것을 의미한다.
쓸데없는 욕심과 짐을 내려놓은 후 바로 즉시 새로운 십자가를 지어야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드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미련한 사람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한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시련을 겪게 된다.
세상적인 사랑을 잃어버린 실연의 아픔 속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가?
그 아픔의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라
그 아픔을 계속 자신의 교만함으로 지고 간다면 가슴 속까지 시린 겨울을 맞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시련의 겨울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회개의 거울을 내밀어 주신다.
당신은 말씀의 거울을 보고 회개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시련 속에 있는 사람을 보고 눈이 시려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도움을 청하는 자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 짐을 내려놓은 후 빈 손이 된 나의 손이 그분의 짐을 나누어 들어야 한다.
세상의 유혹의 칼날에 빈 나의 손이 십자가 보혈로 치유되어야 한다.
욕심과 정욕의 짐을 들고 거북이처럼 천천히 주님의 나라로 나아갔던
거북하고 더러운 나의 손이
주님의 피가 묻은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손이 될 때 나의 손은 정결케된다.
그것이 '진정한 내려놓음'이다!
우리는 용서를 말하면서도 누구 누구 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 합니다.
더구나 그 용서할 수 없음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설교자 스펄전이 젊었을 때 스데반에 대해서 설교를 하던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하는 바람에 설교가 중단되었는데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셨는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당혹스러운 물음 앞에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원수들에게 돌로 맞아죽을 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더욱 큰 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원수 갚는다고 후련해 지지 않습니다.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연방 정부 청사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커다란 참사였습니다.
이 사건의 범죄자(티모시 맥베이)는 붙잡혀서 사형 선고를 받고
희생자들의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언론에서는
사형이 집행된 이후 이 장면을 지켜본 희생자들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희생자들 부모와 가족들은 한결같이 무엇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느낌과
허무한 마음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면 안타까웠던 마음이 한편으로 후련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처의 가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처벌이
자신이 받은 상처의 치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원수 갚음이 아니라,
오직 용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빵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인은 신선한 빵을 구우려고, 버터를 매일 아침마다 농부에게서 배달받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버터가 정량에 모자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저울에 달아 보니 역시 버터의 양이 부족하였습니다.
주인은 매우 화가 나서 자신을 속인 농부를 고소했고,
농부는 결국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뒤집어쓰고 망신을 당한 쪽은 농부가 아닌 빵집 주인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농부에게는 젖소 몇 마리는 있었지만 너무 가난하여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배달할 버터의 양을 정하는 데 매일 자신이 납품하는 빵집에서 갖다
먹는 빵의 무게를 기준으로 버터를 잘랐던 것입니다.
결국 빵집 주인의 얄팍한 상술과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판단한 마음이 오히려 자신을 판단 받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남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분노는 부정적인 것이고
자기 자신을 점점 소멸시켜서
사라지게 해 버립니다.
먼저 용서하십시오.
먼저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미십시오.
그러면 모든 인류의 얼굴에서
행복이 꽃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먼저 용서 하십시오
남이 용서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용서함으로써 운명을 정복할 수 있고
인생을 설계해 나가며 기적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입니다.
용서의 대가로 당신은 평화와
행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글지글러 <사랑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은 없다 중에서>
우리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하고 맺혀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형제 사이에 그리고 부부 사이에 아니면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풀지 못한 매듭이 있습니까?
용서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용서는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자유하게 해 주는 사랑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용서했다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할 만큼 했노라 말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내 기준에 다다를 때 비로소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면,
나도 그 사람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용서할 일이 있어서 내가 용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해서 용서한 것입니다
이인용목사님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 (창 48:12-22)
요셉은 두 아들의 축복 위해 야곱에게 나아갑니다.
13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이끌어 그에게 나아가매]
하지만 야곱은 손을 엇바꾸어 안수합니다.
14 [오른손 에브라임에, 왼손 므낫세 머리에 얹으니]
14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위하여 축복합니다.
16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16 [이들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름으로 칭하게 하며]
16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요셉은 야곱의 엇바꿔진 손을 옮기고자 합니다.
17 [요셉이 야곱의 손을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아버지여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소서]
야곱은 오른손을 차자 에브라임에게 얹어 축복합니다.
19 [아버지가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19 [그의 아우가 큰 자가 되고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20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야곱은 하나님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신다 합니다.
21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21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주님. 부모의 축복이 자녀들에게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하나님의 뜻에 맞는 축복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최종 종착지를 바라보게 하소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신재성 목사님
신약성경에서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로 권면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시험(試驗)을 국어사전은 첫째, '질문이나 실제의 행동 따위로 지식이나 능력을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라 설명하고, 둘째는 '어떤 계획이나 방법을 시행하기 전에 실지로 행하여 그 결과를 알아보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꼬임, 또는 유혹'이라는 설명도 한다.
야고보가 말한 시험은 세 번째의 설명에 해당된다. 따라서 야고보가 말한 시험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박해와 연단으로 인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의미한다. 이것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다. 그리고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우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시련(試鍊)을 국어사전은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라고 설명한다. 또한 인내(忍耐)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딤'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시련의 과정이 없는 인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시험으로 인한 시련을 믿음의 인내로 감당하여 극복하라고 권면한 것이며, 이로써 '모든 것을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했고,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한 것이다.
야고보는 계속하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면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오직 사람이 스스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될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창세기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그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사람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뱀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자기 욕심에 끌려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로 마침내 미혹되어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욕심에 끌려 미혹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말았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지나친 욕심이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이며, 그것이 곧 불순종의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시험한 자는 누구인가? 뱀으로 표현된 마귀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하와를 시험하여 불순종의 죄에 빠지게 했던 방법 그대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옛 방법이 오늘에도 통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너희가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라고 유혹한다. 할수만 있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온갖 술수와 계책을 총 동원하여 사람들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수반되는 어려움을 끼치게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귀가 기대하는 바를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마귀의 시험에 빠져 죄에 빠져 넘어지는 것이다.
왜 마귀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죄에 빠져 넘어지도록 미혹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가? 그것은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 사람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바를 시기하고 질투하기에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서로 떼어 놓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마귀가 어찌하지 못한다. 마귀의 어떤 술수와 계책도 먹혀들지 않는다. 마귀의 시험이 가져다 주는 시련과 연단을 인내로 감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는 믿음이 마귀의 시험을 뿌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신앙의 위대한 인물 욥을 소개한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욥을 하나님은 크게 신뢰하셨다. 그래서 사단(마귀)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자랑(?)하시기까지 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으면 받을수록 마귀의 질투는 크게 발현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할수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의 신뢰를 받지 못하도록 훼방하여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이간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의 불의를 끊임없이 하나님께 참소하기를 즐거워한다. 때로는 거짓된 말로 하나님의 신뢰를 상실하게 하려고 힘쓴다. 사람의 진실성을 외곡시켜 의심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성경은 욥이 얼마나 무서운 시험을 당하였는지를 증거한다. 욥의 시험으로 인한 시련과 고통은 범상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다. 욥이 당한 시련과 고통은 욥이 죄를 지어 당한 것이 아니었다. 욥에게는 아무 죄가 없었다. 다만 순전하고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다. 그런 욥을 마귀가 시기하고 질투하여 하나님께 참소하였고, 욥을 신뢰하셨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당한 시련과 고통이었다.
그랬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셨다. 하나님은 욥이 어떤 경우에도 당신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을 것이라고 믿으셨다. 그런 믿음이 있으셨기에 마귀가 시기와 질투로 참소하는 것을 용납하시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뢰는 그대로 적중했다.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수반된 시험을 당하면서도 욥은 결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악담에도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나하겠느냐?'라고 대답하여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 또한 친구들의 냉혹한 비난에도 욥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결코 나약해지지 않고 끝까지 지켰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를 시험한다. 그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마귀의 시험은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시기에 허락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런 시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신다면, 우리로 하여금 그런 시험을 당하도록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마귀는 결코 우리를 시험으로 인해 미혹되어 쓰러지게 할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마귀의 시험으로 쓰러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에 찬 선언이다. 바울의 고백을, 그의 확신에 찬 선언적 권면을 받아들여 믿으라. 그리하면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로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럴지라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말라.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것으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더 가까이 이를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우리는 마귀의 참소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으시기에 허락하신 시험이니,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신뢰하신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그것들을 끝까지 참고 견디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야고보의 격려에 귀를 기우려 용기를 가지라.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게 하신 주께서 능히 세상의 모든 시험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시험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마귀의 술수와 궤계가 제아무리 간교할지라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진심으로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총이요 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기에, 우리를 신뢰하시기에 마귀에게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권면하노니 하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라. 그 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라. 시험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게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사실이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이런 사실을 참으로 감격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바라노니 이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즐거워하라.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우리가 당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결코 하나님의 징계도, 더더구나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고 신뢰하신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복을 허락하시기 위한 징조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하라. 더 많이 기뻐하며, 더 많이 즐거워하라. 그리하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기도
김용찬 작곡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출생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이 모두가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하심 감사합니다. 믿음을 주시고 그 안에서 복음이 자라서 주님을 찬양하는 피조물임을 알게하시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귀한 생명으로 공의와 사랑을 완성하여 실천하시고 우리에게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따르라고 하심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여건으로 복지 시설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계시는 분들 위하여 기도 합니다. 주님 그 분들의 마음에 외로움보다 주님 사랑을 먼저 감사하는 범사의 사랑을 심어 주옵소서. 아멘~ (2014, 12, 30.)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세월의 시간이 지나가는 노년의 허무를 복음의 생명으로 주를 사모케 하시고 육의 죽음이 두렵지 않게하심 감사합니다. 말씀을 따르며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열정이 식지 않도록 이어주시고 항상 말씀 가까히 두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바라는 욕구 보다 주님의 뜻을 세우게하는 아름다운 믿음을 나에게 공급하여 주시고 내것 되게하심을 감사합니다. 년말을 맞이하여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 합니다. 주님 그들의 외리움을 주님의 말씀의 축복으로 달랠 수 있도록 그들 마음 문을 열어 주옵소서. 아멘~ (2014, 12, 29.)
조병수 목사님
몇 일전 집 가까이 있는 마트에서 제일 작은 자루에 든 양파를 사 들고 와서 곧바로 양파 하나를 꺼내어 음식 준비를 하려고 보니 거의가 썩어 들어가서 사용을 할 수가 없어 버려야 했다. 사 오기가 무섭게 양파 하나가 통째로 음식 쓰레기 봉투에 들어가야 하니 그도 은근 화가 나지만 겨우 다섯개 들어있는 양파 중에 하나가 썩었으니 손해가 막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마트에 가서 얼른 바꿔올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그다지 큰 것도 아닌데 손해를 보고 말자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부터는 물론이고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조그마한 손해가 있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손해에 대한 보상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공중 전화기나 자판기 고장이 나서 100원짜리 동전 한두 개만 손해를 봐도 전화기나 자판기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음식에 머리카락 하나만 들어가 있어도 음식을 물리거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몇 백원 아니라 더 이상의 큰 부정한 금전적인 이득이 있을 때이라도 눈감고 모른 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다섯개에 3천원 하는 양파를 사가지고 집에 왔는데 보따리를 풀어 보니 양파가 여섯개가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트에 가서 되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택시를 타서 요금을 낼 때에도 100원짜리 하나만 덜 받아도 고맙게 생각을 하면서도 때로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100원짜리 하나라도 덜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기분이 영 찜찜하고 택시기사 욕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부당한 이득에는 기뻐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에는 배아파하는 못된 습성을 버리고 더러는 손해보면서 살면 좋겠다. 손해 본 것을 알더라도 따지거나 배 아파하지 말고 손해 본 것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을 기뻐하면서 사는 마음 넉넉함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 손해보고 삽시다!
선인장 꽃 성호진
창문 곁 화분에서 피어난 붉은 선인장 꽃
밤이면 졌다가 아침이면 활짝 피는 선인장 꽃
가시돋힌 줄기에서 핀 아름다운 선인장 꽃을 보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재물되신 주님 얼굴떠오르네
머리에 쓴 가시관에서 흘러내리는 선혈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재물되신 어린양
이 시는 오래전에 전국장애인 문학제인 수레바퀴 문학제에 공모해서 입선한 것을 올러봅니다
김오현목사님
음식의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국정이든 검정이든 좋은 역사교과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만큼 중요한 것이 그 음식을 만드는 환경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 역사교육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지나친 입시와 출세위주의 경쟁교육에서 역사수업은 늘 뒷전입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는 하지않는 곳도 많습니다. 이런 마당에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하는 것은 어른들의 허황된 욕심일 뿐입니다. 여야는 국정교과서 문제로 열을 올리고 있을 게 아니라
학교에 찾아가서 아이들한테 무릎 꿇고 먼저 사과해야 합니다.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가르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첫댓글 제가 작업을 했지만 상당합니다 .이곳에 공유할 자료가 엄청많은데요 .할일이 또 있으니 말이죠
세상에나 이케 많은 분의 글과 사진과 활동을 볼 수 있다니~~대단해요~~~
정품은 아니지만 현장촬영 녹화한 작품이라 애착이 많습니다
그렇다고여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카드사용법도모르던 촌 권사가 이일을하면서 카드도 사용할줄알고 제법입니다
사모님기도부탁드리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