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백년 서화 명인인 인감 近百年书画名人印鉴:齐璜
제백석(1863~1957), 본명은 순지(纯), 자는 위청(渭), 호는 난정(。)이다.스물일곱 살에 이름을 바꾸고, 글자가 빈생에 살았으며, 호는 백석, 백석산옹, 노평, 허기, 산을 빌려 관주를 읊은 사람, 부평당상, 삼백석인 부자 등이며, 일명 기원, 호남상이다.베이징 국립예전교수, 중앙미술학원 명예교수, 베이징화원 명예원장, 중국미술가협회 주석 등을 지낸 근현대 중국회화의 대가이자 세계문화 명인이다.
농가에서 태어나 유희서화, 일곱 살에 외할아버지 주우여로부터 책을 읽었다.열두 살에 목공을 배우고, 1878년에 주나라의 아름다움을 스승으로 모시고 조화목공을 공부하여, 사람들은 지목장으로 불렸다.1888년에는 민간 연예인 소연을 사학화 초상으로, 이듬해에는 호심원(胡)으로, 진소번(。小为)을 사학시문(芗陔文)으로 삼아 회화를 전공하여 초상으로 삼았다.스물일곱 살에 서화를 배우고, 시문을 익히고, 도장을 새기며, 화공을 겸하였다.1894년 왕중언 등 7명과 '용산시사'를 맺고 사장으로 추대됐다.후와 리송암 등은"나산시사'는 함께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며 금석을 모각하였다.1899년 상담의 명사 왕기운(王闿)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문을 공부하였는데, 같은 해 간행물 첫 번째 인쇄물인 '기원인존(园)'으로, 인학정경(学學敬)황이(,)정밀(黄)의 규칙은 정밀함)이(精密)하여 난진(。)할 수 있다.1902년 하오선(诒)의 요청에 따라 시안(西安)으로 가서 판번산(樊山)을 가르치고, 번번이 소장한 팔대산인, 김농(金。) 등의 명가 서화를 관람하였다.그 해, 그 화조화풍은 사의화 경로에 올랐다.1903년 오출오귀(。)를 시작해 남북을 두루 여행한 뒤 고향에서 부평당을 짓고 8년간 산골생활을 하며 시를 읊으며 그림을 그렸다.팔대 산의 사람들에게, 석도의 화조화는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하고, 화필은 더욱 간결한 것을 볼 수 있지만, 초충이 스케치하고, 다공하고, 간간히 또는 작의로 그것을 내놓는다.김농의 신수를 얻다.쉰 일곱 살에 북경에 정착하여 전각으로 그림을 팔아 생활하다.진사의 영향을 받아 조습을 버리고 의화조를 정성껏 쓰다가 서위, 팔대, 석도를 종으로 하여 김농, 오창석에까지 이르렀다.1927년 임풍면 초청으로 베이징예술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1949년 중앙미술학원 명예교수를 거쳐 1950년 중앙문사관관으로 초빙됐다.1953년 문화부는 뛰어난 인민예술가 칭호를 부여하여 중국미술가협회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1954년 전인대 대표로 선출되었고, 1956년 세계평화이사회에서 그에게 국제평화상여금을 수여하였으며, 1957년 베이징 중국화원 명예원장을 거쳐 1963년 세계 10대 문화유명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화조, 충어, 산수, 인물을 잘 그리며, 붓과 잉크가 풍부하고 촉촉하며, 색채가 풍부하고 명쾌하며, 조형이 세련되고 생동감이 있으며, 의경이 순박하고 소박하다.작어새우벌레게는 천취가 넘치고, 수묵이 가득하며, 자태가 활달하여 옛사람보다 높다.공필초충은 특히 생동감이 있어 산수 구도가 기이하다.서공 전예는 진한비판에서 유래한 것으로, 행서는 옛것을 살리고 졸렬한 취미로, 전서는 일가를 이루어 시문을 잘 쓴다.
제백석은 제자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이고선, 이가염, 왕설타오, 왕수석, 왕주구, 허린려, 진대우, 이립, 누사제백, 장덕문, 소,
졸년은 구십칠세였으나 실제로는 구십오세였고, 마술을 믿는 자의 말 때문에 이 세를 뛰어넘었다.
齐璜(1863-1957),原名纯芝,字渭青,号兰亭。27岁改名璜,字濒生,号白石、白石山翁、老萍、饿叟、借山吟馆主者、寄萍堂上老人、三百石印富翁等,又号寄园,湖南湘潭人,祖籍安徽宿州砀山。曾任北京国立艺专教授、中央美术学院名誉教授、北京画院名誉院长、中国美术家协会主席等职务,是近现代中国绘画大师,世界文化名人。
出身农家,幼喜书、画,七岁从外祖父周雨若读书。十二岁学木工,1878年拜周之美为师学习雕花木工,人称芝木匠。1888年拜民间艺人萧芗陔为师学画肖像,次年拜胡沁园、陈少蕃为师学诗文,专习绘画,为人作肖像养家。二十七岁学书画,习诗文,刻图章,兼作画工。1894年与王仲言等七人结“龙山诗社”,被推选为社长。后与黎松庵等结“罗山诗社”,一起吟诗、作画、摹刻金石。1899年拜湘潭名士王闿运为师学习诗文,同年刊第一套印谱《寄园印存》,印学丁敬、黄易,规矩精密,可以乱真。1902年应夏午诒邀请,赴西安教画,结识樊樊山,尽观樊所藏八大山人、金农等名家书画。是年,其花鸟画风走上写意画路径。1903年开始其“五出五归”,游历南北各地,之后在家乡葺“寄萍堂”,开始8年的山居生活,潜心吟诗作画。对八大山人、石涛的花鸟画多所取法,画笔更见简练,但草虫写生,多工致,间或以写意出之。书法学金农,得其神髓。五十七岁定居北京,以篆刻卖画为生。受陈师曾影响,一弃早习,专精写意花鸟,以徐渭、八大、石涛为宗,兼及金农、吴昌硕。1927年应林风眠邀请,任教于北京艺术专科学校。1949年担任中央美术学院名誉教授,1950年被聘为中央文史馆馆员。1953年文化部授予其杰出的人民艺术家称号,当选为中国美术家协会第一任理事会主席。1954年当选为全国人大代表,1956年世界和平理事会授予其国际和平奖金,1957年担任北京中国画院名誉院长,1963年被选为世界十大文化名人之一。
擅画花鸟、虫鱼、山水、人物,笔墨雄浑滋润,色彩浓艳明快,造型简练生动,意境淳厚朴实。所作鱼虾虫蟹,天趣横生,水墨淋漓,神态活泼,高出古人。工笔草虫尤为生动,山水构图奇异。书工篆隶,取法于秦汉碑版,行书饶古拙之趣,篆刻自成一家,善写诗文。
齐白石弟子很多,其中著名的有李苦禅、李可染、王雪涛、王漱石、王铸九、许麟庐、陈大羽、李立、娄师白、张德文、萧龙士等,三子齐子如、戏剧大师梅兰芳、评剧名家新凤霞也是齐白石的弟子。
卒年九十七岁,实为九十五岁,因信术者言,跳过二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