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대표님의 카톡에서]
🌷친구가 몇이나 되오🌷
정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평생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번 박은적이 없고,
적선 쌓은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로 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 집안이 되었다.
정진사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는 천하 명필이다.
고을 사또도 조정으로
보내는 서찰을 쓸 때는
이방을 보낼 정도였다.
정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과 혼기 찬 딸 둘은
허구한 날 밥상, 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날락
하는게 일과다.
어느날, 오랜만에
허법 스님이 찾아왔다.
잊을만하면 정진사를 찾아와,
고담준론(뜻이 높고 바르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을 나누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법 스님을
정진사는 스승처럼 대한다.
그날도 사랑방엔 문사들이
가득 차 스님이 처마 끝
디딤돌에 앉아 기다리자
손님들이 눈치채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허법 스님과 정진사가
곡차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정진사는
친구가 도대체 몇이나 되오-?”
스님이 묻자 정진사는
천장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추 일흔은 넘을것
같습니다.”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진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오.”
정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말했다.
“스님, 한눈 가득 펼쳐진
저 들판을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친구 일흔을 샀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 이상이면
친구가 아닐세.”
두 사람은 밤새도록
곡차를 마시다가, 삼경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
이 지나 고꾸라졌다.
정진사가 눈을 떴을 때
스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부터 정진사네
대문이 굳게 닫혔다.
집안에서는 심한 기침소리가
들리고 의원만 들락거려
글 친구들이 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도
진사네 대문은 열릴 줄 몰랐다.
그러더니 때아닌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에,
곡(哭) 소리가 터졌다.
진사가 지독한 고뿔(감기)을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빈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과 딸 둘이 상복을 입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침통하게 빈소를 지켰다.
진사 생전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글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문상을 와서
섧게섧게 곡을 하더니,
진사 부인을 살짝이 불러냈다.
“부인, 상중에 이런 말을
꺼내 송구스럽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그 친구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미망인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차용증이다.
정진사가 돈 백냥을 빌리고
입동 전에 갚겠다는 내용으로,
진사의 낙관까지 찍혀 있었다.
또 한 사람의 문상객은
왕희지 족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를 디밀었다.
구일장을 치르는데,
여드레째가 되니 이런 채권자들이,
빈소를 가득 채웠다.
“내 돈을 떼먹고선
출상(出喪)도 못해!”
“이 사람이
빚도 안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떡해.”
빈소에 죽치고 앉아
다그치는 글 친구들 면면은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빈소에
들어섰다.
미망인이 한 뭉치 쥐고있는
빚 문서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을 향해 고함쳤다.
“정진사! 일어나서
문전옥답을 던지고 산,
잘난 당신 글 친구들에게
빚이나 갚으시오~.”
병풍 뒤에서 ‘삐거덕’
관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정진사가 걸어 나왔다.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 해
신도 신지 않은채 도망쳤다.
정진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법 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사또에게 찾아갔다.
이튿날 부터
사또의 호출장을 받은
진사의 글 친구 빚쟁이들이,
하나씩 벌벌 떨면서
동헌 뜰에 섰다.
“민초시는 정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 줬다지-?”
사또의 물음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민초시는 울다시피 읍소했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곤장 삼백대를 맞을 텐가,
삼백냥을 부의금으로
정진사 빈소에 낼 건가 -?”
이렇게 하여
정진사는 글 친구들을
사느라 다 날린 재산을,
그 친구(?)들을
다 버리고 다시 찾았다.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과연 옳은 친구가
몇명이나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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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不孝橋
효불효교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 삼간에
화전밭 몇 마지기가
전 재산 입니다
정신없이
시집 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습니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 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 입니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 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유복자 막내
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
가기는
더 바빠 졌습니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 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습니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 시원하게
해 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 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습니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습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 달
만에 새
사람이 됐습니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 졌습니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 입니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 봐도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습니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습니다
농익은 40대 후반
유씨댁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습니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 뼈를 사다
고아 줬습니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 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습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습니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일곱 아들의
작품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
(孝不孝橋)라
불렀습니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
지정)랍니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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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상
2022년10월26일 수
너 단풍을 보노라니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사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산을 무대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바위 푸른솔도
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 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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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을 품고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어떤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쁜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만족과 불만 중
어느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고 살면 됩니다.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품어도 되고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 하나,
미소짓는 그리운 얼굴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품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생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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