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佐渡) 광산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지난주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반대로 유네스코 등록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추천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내 강경 세력이 반발하자 방침을 뒤집은 것이다.
사도광산은 2차 대전 때 조선인 1000여 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곳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면 어두운 역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등재를 추진하면서 신청 대상을 1867년 이전의 유적으로 한정했다.
어두운 역사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역사’를 반영한다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원칙에도 어긋나
한국이 반대하면 유네스코 심사에 통과할 가능성도 낮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연기하기로 했으나 아베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강경 세력이 반발하자 하루아침에 방침을 뒤집었다.
사도 금광(일본어: 佐渡金山 사도 킨잔)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 섬에 위치한 금광이다.
광석은 주로 '은흑'(銀黑)이라고 불리는 석영 중에 맥상에 존재하던 휘은광 및 자연 자연금의 미립자였다.
1601년에 금맥이 발견된 이래 에도 시대 기간 동안 중요한 재원으로써 개발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의 전성기에는 금이 1년 동안 약 400kg, 은이 약 40톤 이상 채굴된
일본 최대의 금광산으로, 은 생산에서도 일본 유수의 광산이어서
은 화폐의 제작을 위한 재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광산 구실을 했었다.
그 중 아이카와 광산은 에도 막부가 직할 경영하여, 대량의 금은을 산출한 사도 금광의 중심이었다.
산출하여 제련한 철심과 회취은은 막부에 상납되어, 이를 긴자에 맡겨 화폐를 주조하였다.
또한 은은 특히 생실 등의 수입 대가로써 청나라 등에 대량 수출되어,
사도 산출의 회취은은 세다 은으로도 불렸다.
현재는 광산이 고갈되고, 금의 가치와 노동자 임금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수지가 맞지 않아 채굴이 중지되어, 금광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갱도의 총 연장은 약 400km에 이르지만, 그 중 관광 노선으로 개발된 구간은 300m 정도이다.
요지는
지난 1월0일 요미우리신문, TBS 방송 등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니가타(新潟)현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고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정부가 이번에 사도 광산을 추천하더라도 한국의 반발 등으로
인해 내년에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록될 전망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심사에서는 한번 탈락한 안건이 향후 재심사 등으로 등록된 사례가 없다.
따라서 이번에 탈락하면 기회가 없어지는 만큼, 시간을 두고 전략을 보완해 2024년 이후 등재를
다시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추천에 관한 최종 결정은 다음 주 열리는 각의(국무회의)에서 내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