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능의 모습..난간석이 없다..
능위에서 본 모습..시원한 풍경에 한눈에 명당자리임을 알수 있다.
비각이 정확히 보인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아닐까 싶다.
수길원 [綏吉園]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조선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靖嬪李氏:1693∼1721)의 묘입니다.
소령원 입구 바로 못미쳐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어머니 묘와 함께 있는 셈입니다.
정빈이씨(靖嬪李氏) 영조의 후궁. 1719년(숙종 45)에 소원(昭媛)으로서
효장세자를 낳았고, 1724년(경종 4)에 영조가 즉위하자 정빈에 책봉되었습니다.
정비인 정성왕후가 아이가 없던차라 맏아들을 낳아주었으니
영조의 애정이 없었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효장세자를 낳고 3년만에 돌아가시었습니다.
석물이 하나도 없고 단지 곡장만이 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이복형인 효장세자도 1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니
결국 세자의 자리는 사도세자로 넘어갔으니 만약 효장세자가 빨리 죽지만 않았어도
사도는 뒤주에서 죽을 운명을 피할수 있었을것을....안타갑습니다.
채 피지도 못한 모자를 의미하듯 꺽여버린 향나무가 수길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길원은 풍수학적으로 대가 끊기는 흉당이라고 하는데 중국풍수서에도
기록될 정도의 천하명당인 소령원 옆에 자기 후궁의 묘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만든
영조의 심사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왕후가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눈치본것은 아닐까요?
정자각 자리로 추측되는 터, 시급히 복원해야겠습니다.
아무리 후궁이자 왕이 되지 못한 세자의 어머니 묘라지만 이렇게 대접해서는 안될것입니다.
홍살문을 고정시키는 돌로 추정되는 흔적입니다.
깨진돌 사이로 풀과 들꽃이 자리고 있습니다.
돌을 깨트린게 세월인지 들풀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선 최고 통치기간을 자랑하는 영조.
탕평책과 균역법을 실시한 개혁 군주 영조.
하지만 그의 가족사는 불행의 연속이였습니다.
사회적 성공이 인간의 행복과 동일시되지는 않다는걸
수길원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댓글 표현하시는 선생님마다 각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네요~~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