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659호]
무어라는 것
허림
무어라도 돼라
그게 엄마의 좌우명이었다
콩나물 키워 열두 가지 반찬 만들고
아구든 아귀든 강냉이든 옥씨기든 올갱이든 고디든
먹도록 만들어 상 위에 올리는 것
그게 엄마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
노상 소핵교만 졸업했어도
무엇이든 됐을 거라는 말
게우 소핵교 이학년도 다니다 말고
부엌떼기로 들어섰다가
위안부 소녀들 공출해 간다고
한동안 도광동에 숨어 살면서도
콧구멍이 새까맣도록 고골에 불을 피워 상을 차렸다는
그 먼 날들을 들려주며 뭐든 돼라 했는데
돌아보니 온 길도 없고
내다보니 갈 길도 아물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시인은 되는 게 아니라고
엄마는 말할 뻔했는데
뭣 땜에 그랬는지
엄마가 간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엄마도 생각이 참 많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 『엄마 냄새』(달아실, 2019)
*
홍천 내면 사는, 홍천 내면 하면 떠올리게 되는, 허림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지요.
『엄마 냄새』에서 한 편 띄웁니다.
「무어라는 것」
산에서 나는 것이든 강에서 나는 것이든 바다에서 나는 것이든
그게 무어가 됐든 식구들
"먹도록 만들어 상 위에 올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람이지요.
"그게 엄마가 할 줄 아는 전부였다"고 아들인 화자(시인)는 말하지만,
"소핵교만 졸업했어도 / 무엇이든 됐을 거라" 엄마도 자조하지만,
세상의 엄마들이 세상의 모든 재료를 사람이 먹도록 만드는 그 신비한 능력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어려운 '살림'의 능력 아니겠나 싶기도 합니다.
엄마가 자식들이 되기를 바라는 세상의 '무어라는 것'은 또 알고보면
세상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타락한 능력에 다름 아니겠다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 화자인 아들이 마침내 시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차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썩은 것들, 상한 것들조차
한 줄 시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 상 위에 올리는 것이니
시인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그게 살림의 길인 줄
엄마는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겠지요.
아니 말씀은 안하셨으나 '장하다 내 아들' 그리 생각하셨겠지요.
아니라면 엄마가 간 하늘이 왜 저토록 붉겠습니까.
화자도 알았겠지요.
허림 형의 생도 참 생각이 참 많구나
그리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2019. 6. 3.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박제영시인이 출판일로 바쁘신가 봅니다.
주페가 대신 올려드립니다.
허림시인은 마주 앉아있자면 거의 한마디도 말씀을 안하시는 수줍은 중년입니다.
그래도 정이 아주 많으시고 좋은 시인이십니다.
일곱번째 새 시집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