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를 읽다 / 김부회
부서진 벽 틈에서 바람이 운다
흙벽,
깨진 벽 귀퉁이에 팔랑거리는 누런 신문지 조각
도배지조차 못 붙이고
살다, 머물다, 떠나간 나름의 이유들이
낯선 여행길을 마중 나왔다
어느 날짜로부터 정지한 뉴스의 발자국이
촘촘히 음각된 폐가
골 깊은 낡은 시간은
점점 길어지는 망각의 주름들을
스스로 늘려 나가고 있다
한때의 가십과 뉴스
헌 뉴스가 된 하소연을 토렴하는 깊은 밤
제 키보다 웃자라는 숲의 무대를
등장하다 퇴장하는 숱한 활자의 그림자들
거욷하게 떨어져 나간 벽 사이
노쇠한 지문誌文들을 푸석한 온몸에 채록한 채
홀로 남아 허름해진 한 채
바람과 소리가 겨끔 내며 나풀거리는 계절
푸른 하늘을 실어 온 들판 달구지가
가만가만 짐을 부려 놓는
고단한 어둠의 차양 밑
달빛 아래 공손하게 달빛 등을 켜
우우웅, 모호한 소리들을 들춰 내며
길 찾는 사람을
혼자 반기고 있다
//......
화려하고 세련된 오십대 초반의 안경이 썩 잘 어울리는 멋쟁이 여인, 자기관리 끝판 왕 같은 군살하나 없는 몸매의 소유자 사십대 초의 까무잡잡 매초롬한 여자.
화장기 없는 수수하고 수더분한 평범한 그저그런 삼십대 초반인 그녀까지.
세 여자들이 그닥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는 소박한 제단상이 펼쳐진 상 앞에 초로의 범상치 않는 얼굴을 한 여인과 마주보고 섰다.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꽤뚫어 보는듯한 쎄한 눈매가 예사롭지 않게 세 사람을 훑어 내리고 있다.
네모난 붉으스럼한 나무 상 위에 방울도 보이고 색색깔의 깃발도 놓였고 점사통인지 동그랗고 긴 나무통도, 뚜껑있는 자그마한 사기 주발도 나란히 앉았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세사람을 보며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이 큰 목소리로 우리집 큰며느리랑 큰아들 점 보려고 동생하고 왔다며 주춤거리고 섯는 그녀를 앞으로 밀어 넣는다
엉겁결에 마주 앉은 두 사람
나이를 묻고 생년월일과 난 시까지 묻는 점사를 향해 뒤에서 먼저 말 하는 시어머니를 향해
"며느님께 물었어요"
두 분은 가만히 앉아 계시란다.
남편의 생년월일과 난시를 묻는 말에 뒤에 앉은 어머님이 냉컴 받아서 대답을 하신다
"개띠에 동짓달 열 하루 아마 초저녁 무렵인것 같은데"
라고 얼버무리신다.
그 말에 옆에 앉은 이모님이 한마디 거든다
"언니 잘 생각 해 봐 큰 조카 태어 난 날인데" 두분이 수근수근 속닥 거린다
앞에 앉은 점사님 그러던지 말던지 그녀에게 음력으로의 생년월일을 묻는다
"닭띠에 모월 모날 난시는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그 말에 종이에 두 사람 생년월일 적힌 공책을 들여다 보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집다가 부채를 착 펼치기도 하고 이내 점사통을 흔들며 중얼중얼 거리며 납작하고 길다란 목판 하날 꺼집어 낸다.그리고 이내 닫힌 주발 뚜껑을 열고 하얀 쌀 한 웅큼 집어 상위에 차라락 뿌린다. 그리곤
"이집 대주는 허허벌판에 나무 한그루 덩그러니 서 있는 메마른 불의 형상이라 부모복도 인복도 없는 혼자 자수성가 할 외로운 팔자라 매사 힘들겠네요"
그래도 부인이 나무밑에 초록 풀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촉촉한 물이 그득한 형상이라 남편을 살리는 아주좋은 궁합이라 먹을복도 자식복도 있고 늦복이 들어 있어 썩 괜찮은 궁합이란다
숙덕거리는 뒤에 앉은 두 여인을 힐끔 보던 점사가 앞에 앉은 그녀에게 당신 앞으로 바짝 다가 앉으란다 가로 놓인 상을 옆으로 밀치고선 그녀를 끌어 당기며 귀에 대고 속삭인다.
친정엄마 목소리가 조근조근 작지 않느냐다. 느닷없는 물음에
"맞아요 왜요?"
엉겁결에 같이 속삭이는 그녀다
지금 엄마가 여기 오셨네요 딸래미 고생한다고 속상해 하며 눈물 짓는단다
그 말하는 목소리가 딱 생전의 엄마 목소리다
햐!~
이 노렷을 어쩌면 좋을까
눈물이 핑 도는지 눈 앞이 흐려진다
"아마도 만만치 않는 시어머니나 시댁 식구들 등살에 기를 못 펴고 사는 딸래미가 걱정이 되서 나를 통해 오셨나 보단다"
장사도 시원찮고 남편 몸도 안좋아 골골 대고 있을 때다
어디서 용 하다고 소문이 자자 하던 미아리 어느 골목 끄트머리에 있던 점집에서의 풍경이다
그 때 생전 처음 본 그 점쟁이의 속삭임이
괜한 말이 아닐꺼라 생각이다
세월이 흘러도 가끔씩 그 여인의 몸으로 나에게 조근조근 속삭이던 엄니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
.
붉은 색에 꽃무늬가 화려한 끈나시 원피스를 입으신 그 해 여름 날의 첫 만남은 너무 강열했다 하얀 피부의 얼굴과 등과 가슴이 시원하게 파인 대담한 옷이 그랬고 손질한 손톱에 분홍색 메니큐어가 빛났고, 시원시원 화려한 언변에 주눅이 잔뜩 들 정도록 아우라가 있었던 마흔 아홉의 어머님과의 춘천 집에서의 첫 대면이다
서른의 노처녀가 상상한 시어머니의 모습은 예상을 훨씬 빗나갔으니......
화사 하고 강열했던 그 때의 시간은 사라진지 오래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앙상하고 노쇠한 육신은 침대에 꼼짝없이 갇혀서 지루한 생 억지로 이어가시니 언제쯤 자유롭게 훨훨 날아 가실까?.......
첫댓글 요 요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미주님
감사합니다 ^^~
앞쪽 글속에 풍경이 .. 진안의 깊은 골짜기속
폐광.
그옛날 왜인들이 금을 수탈해가던 곳에
금방 쓰러질듯한 폐가가 있었지요.
대낮에도 귀신이라도 나올듯한 외딴 폐가에
벽에붙어 떨어진 신문지와 어우러진 색바랜
벽지 가 흐늘거리는 바람 을 타니
더욱더 공포 스럽고...
그런곳 좋아서 찿아 다니는 .........이내 심사
그놈의 점사가 참 기가 막힌것이 무당의 입에서
나오는 조상님의 목소리가 똑같다는....
그것이 알고싶다....입니다.
삶방에 새로운 혜성이 등장한듯 필력이 대단
하십니다.
무악산님이시라면
충분히 그런 폐가가 무섭지 안았을것 같아요
맞아요
이제는 그 점쟁이도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고 화려하고 옷 매무새가 참 멋졌던 어머님도 콧줄에 의지 한체 기나긴 생 하염없이 이어나가시니 인생 참 찰나인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
요요님!
그깊이는 어디까지 일까요
숙성된 장처럼 읶어가는 글
ㅎㅎ
무슨
그냥 나 심심해서
끄적 거리는디유
숙성은 무신
점쟁이분
만만치않을것 같은
시엄마에 그 시이모님 보고
여린 새댁이 안쓰러웠을듯 합니다
친정 엄마로 변신해서
속삭여주든 마음이 그런거였을지도요
얼마나 많은 시집살이 한풀이 사람들이 왔을것도 같죠?
그시절 시댁식구들은 권력으로 휘둘렀으니요
영원할것 같던것도
찰나처럼 지난 인생
이제는 콧줄로 하염없는 생이라니
세상 모든건에는 끝이 있다를 ㅠ.ㅠ
ㅎㅎ 그럴지도 모르지요
근디 엄니 목소리는 맞아요
지금도 생생 하네요
우리 어머니
참 대단하신 분이시죠
키도 크시고 옷 입으시면
옷 태가 너무 멋졌어요
그닥 비싸진 않지만 어머니가 입으면
아주 고급으로 보였어요 ㅎㅎ
어쨌든 화려한 색을 좋아 하셨어요
시방은 에구
나도 머지않았네요 흐~
정아님 고마워요^^
부서진 흙벽 틈에서 펄럭이는 누런 신문지 조각, 멈춰선 날짜들…
버려진 공간에서 지나간 생의 사연과 깊은 시간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참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폐가의 풍경이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네요.
가을 문턱에서 마음에 오래 남을 좋은 시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그 시가 너무 마음에 와 닿지요?
몇번을 읽고 또 읽어 봅니다
베리님 고마워요^^~
어느 땐 함부로 열려진 빈집을 건너 다음 집으로 가고자 할 때도 있다
시골의 마을은 빈집으로 존재 하는 요즘 세간살이 장독대
시커먼 아궁이 한 세대가 한 인생이 지나간 자리 그 인생들이
끌어 안고 살았을 세간살이 나부랑이들 씁쓸한 마음이 되지요
시 를 읽으니 또 제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합니다
점쟁이들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지요 찬피 동물처럼
쎄한 눈빛 그 눈빛이 세함을 잃으면 신통방통도 빠져 나간다는
요요님의 수려한 글에 또 한참 머물러 봅니다.
늘 감사드려요
폐가를 읽는다 라는 시에 꽃여서
9월이네요
남편 등급이 또 안나왔네요
이번에는 될 줄 알았는데
@요 요 남편 등급이 나왔어요 다행이~~
4등급으로 오늘 연락받고 서류 찾아서
등록하고 오늘 부터 근무 하는걸로 ㅎㅎ
어제는 등급이 안바껴서 안된줄 알았는디 5급도 아니고 4급으로다가요
@요 요 97세 우리 어머니 올봄에 4등급 받았습니다.
건강이 넘쳐서 그동안 둥급이 읺나왔지요.
4월 부터 요양보호사 오시다가 ..7월부터
주간돌봄센타 가십니다.
@무악 산 흐미낭
무악산님이 꼬리를 다셨네요
어제부로 요양보호사 선생님으로
집에서 남편 케어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좋기도 씁쓸하기도 하네요^^~
요요님께선 보기 드물게 문학적 소양이 아주 뛰어나신듯 합니다.
서두에 붙이는 전문가의 글이 흔히 우리가 쓰는 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이런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더하여 본문도 문체가 독특합니다.
뭐라 할까 싱싱하고 상큼한 잘 익은 사과를 먹는 느낌입니다.
문향이 넘치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바라오며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곡죽전님의 과찬에 몸둘바를모르겠습니다
저 시가 며칠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시인의 글
저런 멋진 시 한번 써 보는게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