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이덕혜)
출생- 1912년 5월 25일
고종과 후궁 (복녕당)귀인 양씨 사이에서 출생
(고종의 고명딸)
6살때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
8살때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
14세때 일본으로 감(볼모)
19살때 몽유증 증세보이기 시작, 영친왕의 거처로 옮겨 치료
20살때 백작 소 다케유키와 강제결혼
마사에 출생
병세악화
42세때 다케유키와 이혼
마사에 사망
51세때 한국 귀국
71세때(귀국 20년만) 에서야 호적만들어짐
78세때 -1989년 조선의 마지막 왕녀로서 생을 마감
홍유릉에 안장
돌때의 덕혜옹주.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경성일출심상소학교 시절

덕혜옹주 사진 칼라복원한거.

결혼식당시..


덕혜옹주의 하교 사진. (정말 특별하긴했네요 ^^)

덕혜옹주 [德惠翁主, 1912.5.25~1989.4.21] 덕혜옹주의 묘..

◎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덕혜옹주
덕혜옹주의 남편인 소다케유키(宗武志)는 한국에 알려진 것처럼 난폭하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일본 동경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로서 대마고등학교 교가를 작사, 작곡하고 대마도지에 시를 기고하였고 유화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등 시·서·화에 두루 재질을 보인 사람이었다.
소다케유키가 그린 그림으로 현재 나가사키현립 역사자료관 입구의 우측 벽면에 걸려있다.
덕혜옹주의 비극에 대한 소문은 옹주가 소다케유키와 결혼하기 직전부터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진원지는 구 조선왕실의 상궁나인들이라 할 수 있다. 금지옥엽 조선옹주가 일본의 섬 백작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나자 조선 왕실은 발칵 뒤집혔고 1930년 이미 4년 전에 이복 오빠인 순종황제가 돌아가시고 나선 일본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할 사람마저 없었던 때에 이루어진 이 결혼식에서 상궁나인들은 상당한 치욕과 옹주를 동정하는 마음에 섬 백작에 관한 진실을 곡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작이 애꾸에 곱추에 난폭하고 배운 것 없는 농장 주인인데 일본정부가 옹주와 결혼시키기 위해 편법으로 백작으로 만든 거라는 소문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아무도 정정을 해주지 않자 조선 내에서는 사실로 굳어져 버렸다. 하지만, 사실 종무지 백작은 애꾸도 곱추도 난폭하지도 배운 것 없는 농장주도 아니었다. 소유게(宗家)는 대대로 대마도를 통치한 집안으로 종무지는 그 후손으로 대마도를 상속받았지만 명치유신으로 폐번치현(번이 없어지고 현으로 바뀌면서 번주의 자치가 사라지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제가 시작됨)이 되자 황실에서 도주의 작위를 폐하고 백작의 작위를 하사한 것이다.
종무지의 후원자는 다이쇼천황의 부인인 사다코 황후로 종무지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조선왕가의 딸로 지참금이 상당했던 덕혜옹주를 맺어주어 그 재정난을 덜어주려고 하였다. 사다코의 중신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다분히 정략적인 결혼이었지만, 초반에는 행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황실로부터 백작위를 하사받은 종무지는 대학교수로 훗날 태어난 딸 마사에도 상당히 사랑하여 손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훤칠한 키에 전형적인 일본의 고운 마스크를 지닌 그는 덕혜옹주와 결혼 후 대마도가 아닌 도쿄에 저택을 두고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결혼 2년 뒤 둘은 딸을 낳았지만, 딸 출산 후 덕혜옹주가 다시 정신병이 재발하게 되었다.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꽤 오래된 것으로 아버지의 죽음 후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와 일본인 귀족학교에서 이지매를 당하면서 향수병과 함께 커졌고, 어머니인 양귀인의 죽음 이후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당시 정신병은 신체장애와 함께 상당히 부끄러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고, 특히 귀족인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당시에는 상당한 가십거리였었다. 종무지는 이를 꺼려해서 덕혜옹주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할 생각을 못하고 집안에 가둬두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옹주가 자꾸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밖을 나가려고 하자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고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옹주의 정신병 재발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옹주의 딸 정혜(일본명 마사에)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사랑했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마사에의 죽음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결혼생활 못지않게 말이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현해탄 투신자살 설.
해방 후 조선 왕족을 감당하지 못한 종가 사람들에 의한 살해설.
마사에는 해방 후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인과 결혼하게 되는 데 연애결혼이었음에도 이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얼마 후 가출을 하게 되었는데 가족들은 그녀를 애타게 찾지만 결국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사인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덕혜옹주의 병이 점점 심해지자 종무지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 시켰고, 1951년 사다코 황후가 사망하자 이혼하게 된다. 그 후 종무지는 일본인 여성과 재혼하지만, 해방 후 1962년에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서는 한번 보고 싶다고 찾아 왔던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옹주의 충격을 염려한 측근에 의해 거부당했다고 한다.
덕혜옹주와 소다케유키는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 소설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사진 잘 나오나요? ;
저만 보는건 아까워서..
첫댓글 움...복스럽게 생기셨네요~ 강제결혼...,..ㅜ
89년까지 사셨네??? 어머..................덕혜옹주님 아들딸 있나요?
잘나와요~
4번째부터 왜 이런...................... 동일인물인가..?세번째 사진은 신지수 닮으셨어요
생일이 같다. 우와...
경성일출심상소학교 시절 사진이랑 딴사진이랑 웬지 안맞는다는;;;
그러게말입니다;;
이 사진 살짝 강두닮았어요 ㅎㅎㅎ
너무 불쌍해.. 어디선가 어떤사람전생이 덕혜옹주였다고 하던데 그거 무슨 시간이 안맞는대서 아니라나 어쨌대나 여튼...... ㅜㅜ 일본으로 강제로....-_-
아맞어이거예여 !
고종이 환갑때 얻은 딸이군요....
강자 닮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하하하하하~아님~ㅠㅠ강자......ㅋㅋㅋㅋㅋ
님아 ㅡㅡ;
흠..그래도 가슴아픈 역사속에서 살다가신분인데..아무리 강자를 닮았다해도.. 그건 속으로 생각하심이-_-
오 내가 태어난 년도다..! 89년
왜 나는 슬플까..
저도슬퍼요
어릴 때 똘망똘망하게 생기셨네요... 기품이 흐르는...
이분정말 슬픈인생을 사시다가 돌아가신분이에요 일본에건너가서 학교다닐때는 한국에서 왔다고 학교애들사이에서 왕따 같은거 당하고 대마도 백작이랑 강제결혼하고[결혼사진에서도 그다지행복하진 않아보이고..] 정혜라는 이름의 딸을 하나 낳았지만 정신적압박으로 조기성 치매? 이런병에 걸렸는데 남편이 아무런 조취도 안하고 그냥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또 그와중에 따님은 자살하고... 결국 우리나라로 돌아오셨지만 비극적인 삶을 사셨던분이셔요.ㅜ
일본 개색히들...
정혜라는 딸도 얼마 못 살고 죽죠.. 그것 때문에 정신병에 걸리셨다고..
고종황제가 자식들 중에 가장 사랑했던 분이기도해요.. 그래서 일본이 그걸 가지고 더 독하게 강제결혼을 시키고 일본으로 끌고갔어요... 마지막 옹주였지만 정말 비참했고 일본과 한국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지 못해서 정신병이 오셨죠.. 마지막에는 낙선제에서 이방자 여사의 극진한 병간호 있었던 걸로 압니다.. 결국에는 낙선제마져 국가 소속으로 강제로 뺏어갔지만.. 딸 마사에 역시 엄마의 조선왕녀란 사실을 싫어했다고 하더군요..자신은 순수한 일본인이였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꺼라고..-_- 그렇게 그리원한 고국에 정말 모든걸 잃고 망가져서 돌아온 이분을 보면 가슴아픈 역사죠...
결혼식 사진에 귀티가 좔좔... 하교사진 엄청나다...///
이분 인생이....너무 안타까움.....ㅠ
우와 이쁘시다!.... 근데 뭔가 슬픔..
아주 옛날옛날 일같기만 한데 이렇게 사진으로 조선의 임금 얼굴을 본다는게 진짜 신기하기만 하네요..
어떤분이 이분 전생으로 나온거.......맞나................ 아오 또 화나게하는일본새끼들
귀국 20년만에 호적이 생기셨다니..................
저도 89년 생;;;제가 태어나기 7개월 전에 돌아가셨군요.. 두번째 사진 우리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있던데~
71세때(귀국 20년만) 에서야 호적만들어짐.......마음이 아파
맨위에 영친왕이 아니라 영왕이예요. 영친왕은 일본이 친일 그런의미로 지어준이름
이쁘시다..................
온갖 수모 다 당하시고 돌아가신분 ....... 정말 명성황후 못지않게 비운의 삶을 살다 가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