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 있는 집안'이란 말이 있다. '의미론(意味論)'적 유래는 풍수다. 좋은 땅에 조상의 유체가 안치되면 살은 무화(無化)되고 깨끗한 황골(黃骨)만 남는다. 파묘할 때 손마디 하나까지 깔끔하게 보존된 유해를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뼈대 있는 집안'은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을 전제해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이를 풍수 고전 '금낭경'은 '부모의 유해가 생기를 얻으면 그 자손이 음덕을 입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문장에 대해 중국의 성리학자 정자(程子)는 "땅이 좋으면 조상의 신령이 편안하고 그 자손이 번창하는데, 마치 나무의 뿌리를 북돋워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풀이했다.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면사무소 뒤에는 창녕성씨의 시 조묘가 있다. 평지 돌출한 작은 동산에 자리한 시 조묘 앞으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토평천이 감싸 흐른다. 유어농파형(遊魚弄波形)이다. '물고기가 물결을 희롱하며 노는 형국'이란 뜻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성혜림의 시조 묘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창녕군 성산면 방리 마을 앞산에는 성혜림의 조부(성낙문) 묘가 있다(부인과 합장).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김정남의 외가 선영이기도 하다. 한 촉의 난이 산비탈에 꽃을 피우려는데 굶주린 토끼가 이를 뜯어 먹는 방란임토형(芳蘭臨兎形)이다. 비록 난의 줄기와 꽃이 뜯겼다 해도 뿌리는 상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어머니 고영희의 선영은 제주에 있다. 제주시 봉개동에 가족묘 형태로 자리하는데 뒤로는 한라산을 주산으로, 앞으로는 제주시와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좌청룡·우백호도 선연하다. 제주에는 여섯 개의 음택 명혈과 양택 명혈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곳일까? 아무튼 뭇 신하들이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군신봉조형(群臣奉朝形)의 길지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영희의 시조는 제주의 삼성혈(三姓穴)에 자리한다. 역시 제주의 '뼈대 있는 집안'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이복형 김정남 모두 남한의 혈통인 셈이다.
유감스럽게도 김정은 위원장 외가 선영이 보도된 뒤 그 외할아버지 허총(虛塚)이 사라졌다. 일부 '극성스러운 사람들'의 해코지가 무서워 친척이 치웠다고 한다. 창녕에 있는 성혜림의 조부모 선영도 잘 조성되고 관리되었던 듯하나 지금은 잡초에 묻혀 있다<사진>. 상태로 보아 남북한 관계가 경색된 이후 방치된 듯하다.
'통일 대박론'이 올해의 화두가 되고 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당시 필자는 그곳에 유학 중이었다. 그들의 통일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필자는 전율했다. 그때 동서독 사람들은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Wir sind das Volk)"와 "우리는 하나다(Wir sind eins)"를 외쳤다. 진정 '통일 대박'이 되려면 '남북한이 하나'라는 동질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과 북은 동기(同氣)다. 이들이 서로 감응할 때(동기감응) 명당발복이 이뤄진다. 북한의 지도자 집안은 혈연적으로 남한과 하나다. 미래의 그 어느 날 남북 정상회담이 제주에서 열리고, 거기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이 잠시 짬을 내어 외가 선영을 참배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상상만 해도 통일이 금방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