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참새는 까치,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한양 가는 길에 올랐다. 설탕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 불편하신 건 없으세요?"
"걱정 말거라, 네 덕분에 편하구나"
할머니께서 참새와 같이 가게 된 이유는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갔던 아들이 보고 싶다고 중얼거린 걸 참새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김장쇠랬나, 서당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들이라고 했다.
참새를 데리러 온 종사관에게 참새가 부탁을 하자 종사관은 수락했고, 그 결과 참새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산을 넘고 넘고 또 넘어 한강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배를 기다리면 됩니까?"
"네.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면 될 겁니다"
한강에 도착한 일행은 밤이 되었기에 강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참새가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자 종사관도 참새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 그냥 노비인데 왜 고개를 숙이시나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아, 아닙니다. 저는 나루에서 배가 오는지 보고 있겠습니다!"
종사관은 참새가 뭘 물어보거나 말할 때마다 윗사람에게 말하듯이 대답했다. 한강까지 오는 동안 노비 참새가 호랑이 열 두 마리, 곰 스물 세 마리를 맨 주먹과 허벅지 조이기 만으로 잡은 것 때문에 종사관이 겁이 나서 그러는 거였지만, 참새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다.
"이상하네. 오늘 점심에 드신 호랑이 국이 탈이 났나? 아니면 추워서?"
종사관을 잠깐 걱정하던 참새는 잘 때 호피라도 더 덮어드려야겠다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강가를 봤다. 장쇠 어머니는 강가 너머를 보고 있었는데, 아마 아들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나보다는 우리 아들 장쇠가 걱정이야. 빨리 나루에 배가 와서 우리 아들 좀 봤으면 좋겠는데"
"그렇나요..."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른 참새는 배를 기다리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강을 건너야겠다고 생각했다. 참새가 장쇠 어머니 곁을 지키던 까치를 들어 올렸다.
"까치야, 한강에 돌다리를 만들면 어떨까?"
"가능하지. 그런데 이 강은 배들이 많이 다니니까 좀 큰 다리를 짓는 게 좋겠어"
"그래?"
그러더니 까치는 땅에다가 부리고 선을 그어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참새는 나루에 있던 종사관에게 찾아가 물었다.
"여기서 강폭이 제일 좁은 곳이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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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들나루에 배가 지나갈 만한 다리를 그녀가 손짓 한 번으로 만들어서 건넜습니다"
"저렇게 커다란 다리를 만들 돌은 어디서 구했단 말이냐?"
"그것이, 설악산 울산바위를 떼왔다고 합니다"
"울산바위를?"
종사관의 보고를 들은 왕은 몸을 옆으로 굽혀 종사관의 뒤를 봤다. 그가 했던 말 그대로 어젯밤에만 해도 없었던, 소 열 마리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만한 다리가 지금 눈 앞 한강에 있었다. 왕을 따라 나온 세자와 대군들은 물론이고 조정 대신들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풍경이었다.
"저 분이 왕이라고? 통통하고 빨간 옷을 입은 게 산타클로스 같네"
"까치야, 그게 누구야?"
"그런 게 있어. 아직 고개 들지 마"
"으윽"
종사관의 뒤에는 참새와 장쇠 어머니가 엎드려 있었는데, 까치는 땅에 엎드린 참새의 등 위에 서서 왕을 쳐다보고 있었다. 왕이 두 사람에게 고개를 들라고 하자, 참새는 몸을 일으키면서 들고 있던 설탕 포대를 보여줬다. 그러자 종사관이 그걸 받아 바닥에 내려 매듭을 풀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사탕(砂糖)이옵니다. 이 노비가 바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탕?"
"사탕이라고?"
그러자 왕은 물론 세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런 걸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어보니, 참새는 남쪽 섬에 갔다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왕이 말하자, 참새는 까치가 말하지 말라고 한 부분(까치와 자신에 대한 것이나, 마법 소녀에 대한 것)은 빼고 하늘을 날아서 남쪽 섬에 간 다음 거기서 사탕이 나오는 수수를 재배했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네 이름이 참새라고 했느냐?"
"네"
"차, 참새야, 여, 여기서는 그렇사옵니다, 하고 말하는 거야"
장쇠 어머니가 옆에서 참새의 말이 짧은 걸 지적하자, 왕은 신경 쓰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것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아느냐?"
"네, 다른 것도 할 줄 압니다"
그러면서 참새가 시골에서 사는 동안 했던 농사라던가, 산짐승을 사냥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봇짐에 있던 호피를 술술 꺼내자, 왕과 대신들은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네 능력이 대단하니, 내 너를 궁에 들이고자 한다"
"정말로요? 와 신난다!"
참새의 대답에 장쇠 어머니가 또 놀랬지만, 왕은 개의치 않고 하하하 하고 웃었다. 대군들은 어리둥절거렸지만, 대신들은 모두 화색이 되었다.
"이건 필시 조선의 큰 복이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를 가르치면 우리 일도 줄어들겠지요!"
"그럼 우리도 드디어 사직할 수 있겠군요. 하나씩 하나씩 가르칩시다!"
대신들이 어떤 걸 가르쳐야 자기들이 은퇴할까 궁리하는 걸 모르는 노비 참새는 면천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참새라는 예전 이름에서 따와 라이작(羅珆雀)이라 하는 이름을 얻었고, 장쇠 어머니와 함께 궁에 들어와 후원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잡학을 다루는 자를 어찌 궁에 드리시는 것입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자연의 이치는 강이 흐르니 배를 타는 것이 당연한데, 어찌 다리를 만들고 배를 타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 천출 아녀자를 궁에서 내쫓고 다리는 허물어 버리소서!"
하는 식으로 라이작을 반대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왕과 대신들이 전부 '정리'를 했다. 꿈에서 조상님에게 들은 언질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얼마 후, 라이작이 궁궐 후원에서 재배하는 작물들에 대해 연구한 왕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라이작은 듣거라. 그 작물들이 궁궐 밖에서도 잘 자라느냐?"
"네, 시골에서 심어봤는데 잘 자랐습니다 땅콩은 기름을 짜서 여러 곳에 쓸 수 있고, 호박은 어디서든 잘 자라고, 호밀도 맛은 거칠지만 사료로 괜찮고 추운 데서도 잘 자랍니다. 그리고 또 이거는..."
그렇게 라이작이 이야기를 하자, 왕의 눈이 반짝이며 뭔가를 내밀었는다. 말 여덟 마리가 그려진 마패였다.
"그럼 조선 팔도에 그것들 좀 퍼트리고 오거라. 여기 마패 받고"
"네? 저 혼자서요?"
"몇 명 같이 딸려 보낼테니 걱정 말거라. 다녀오면 내 친히 너에게 정과(正果)를 하사하겠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쇠 어머니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가다가 도로 깔고 산짐승 잡으면 더 좋고"
그렇게 조선의 마법 소녀 라이작은 어쩌다가 조선 팔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라이작은 까치와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궐 밖을 나섰다.
"까치야, 나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맡았어"
"그냥 부려 먹히는 것 같은데"
"설마! 나한테 정과라는 것도 준다고 그랬어"
"그래, 그래. 빨리 일이나 해치우고 돌아오자고"
이 일로 인해 라이작이 조선을 돌아다닌 경로를 따라 도로와 다리가 깔리고, 호랑이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만주로 도망치고, 그녀가 재배한 농작물의 용도를 연구한다고 누군가가 맷돌로 콩 갈듯이 갈려 나갔지만, 이 모든 게 왕의 계획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이고, 주상께서 부르셔서 뭔가 했는데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게 되다니..."
왕의 명으로 기록 담당으로서 그녀를 따라가게 된 정인지의 한숨도 그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조선 마법 소녀 라이작이 궁에 들어오고 얼마 뒤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농작물을 보급하기 시작했으니, 이 때가 양력으로 144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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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소녀는 호랑이를 찢어!
이제 마법 소녀는 세종에게 굴려질 것 같네요.
농업은 이렇게 해결될 것 같은데, 광업은 어찌할까 고민이네요. 금과 은을 캐면 명나라에서 내놓으라 할 테니.
명나라 사신에게 호피를 뇌물로 바칠까요? 아니면 아편을 퍼트려서 명나라를 망하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