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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19회] 나폴레옹, 예술을 통치하다. 2022년 09월 18일 방송 다시보기
✵ 예썰의 전당 열아홉 번째 주제는 ‘영웅’이 되고자 ‘예술’마저 통치한 황제 ‘나폴레옹’ 1789년에 일어난 대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어 들어선 정부의 무능함 탓에 프랑스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 나폴레옹은 혁명정신을 잇는 영웅이 돼 사회 혼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1799년,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에게 ‘쿠데타’라는 꼬리표는 걸림돌. 쿠데타로 얻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심하던 나폴레옹이 선택한 것은 ‘예술’이었다. 예술로 영웅이 되고 싶었던 독재자 나폴레옹. 이미지 메이킹의 대가, 나폴레옹이 펼친 예술통치에 얽힌 흥미로운 예썰을 풀어보자!
그림의 아래쪽에 역사상 알프스를 직접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한 장군인 한니발(Hannibal.19세기)과 초대 신성로마 제국 황제인 샤를마뉴대제(Charlemagne, the Great, the 1st Holy Roman Emperor, 742?-842)가 있는데 그의 이름들이 적혀있고 그바로위에 보나파르트라고 자기의 이름이 적혀 있는걸 봐서 아마 영웅이 되고 싶었든 그의 의도가 잘 들어난 작품인 것 같다 그 당시 이탈리아 땅인 마렝고 전투를 앞둔 상태에서 그 지역을 먼저 점령한 오스트리아군은 알프스산맥이 있으니 산맥을 우회하여 돌로방스지역에서 전투를 예상하고 그쪽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 그랑생베르나르의 2469미터를 넘어가 승리를 한다.
✵ 프랑스 제1제국 군가 양파의 노래 가사
프랑스의 군가 중 하나. 독음은 /샹송 드 로뇽/ 정도다.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주선율은 에티엔 메윌Étienne Méhul의 1797년 오페라 『젊은 앙리 왕의 사냥(La Chasse du Jeune Henri)』, 「서곡」의 일부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제1제국 시절 프랑스 병사들이 애창했던 노래로, 음식을 주제로 한 군가란 점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가사
J'aime l'oignon frit à l'huile,/J'aime l'oignon car il est bon./J'aime l'oignon frit à l'huile,/J'aime l'oignon, j'aime l'oignon.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맛있으니까 양파가 좋다네./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양파가 좋다네, 양파가 좋다네.
(후렴)
Au pas camarades, au pas camarades,/Au pas, au pas, au pas,/Au pas camarades, au pas camarades,/Au pas, au pas, au pas.
가세 동지여, 가세 동지여,/가세, 가세, 가세,/가세 동지여, 가세 동지여,/가세, 가세, 가세.
Un seul oignon frit à l'huile,/Un seul oignon nous change en Lion,/Un seul oignon frit à l'huile,/Un seul oignon, un seul oignon.
기름에 튀긴 양파 단 하나,/양파 단 하나면 우린 사자가 되네,/기름에 튀긴 양파 단 하나,/양파 단 하나, 양파 단 하나.
(후렴)
Mais pas d'oignons aux Autrichiens,/Non pas d'oignons à tous ces chiens,/Mais pas d'oignons aux Autrichiens,/Non pas d'oignons, non pas d'oignons.
하지만 오스트리아놈들에게 줄 양파는 없네,/그 개자식들에게 줄 양파는 없네,/하지만 오스트리아놈들에게 줄 양파는 없네,/양파는 없네, 양파는 없네.
(후렴)
Aimons l'oignon frit à l'huile,/Aimons l'oignon car il est bon,/Aimons l'oignon frit à l'huile,/Aimons l'oignon, aimons l'oignon.
기름에 튀긴 양파를 좋아하세,/맛있으니까 양파를 좋아하세,/기름에 튀긴 양파를 좋아하세,/양파를 좋아하세, 양파를 좋아하세.
(후렴)
정리하자면 맛있는 양파 튀김을 오스트리아놈들은 주지 말고 우리끼리만 먹자는 내용이다. 오스트리아 의문의 1패
전승에 따르면 마렝고 전투 직전에 나폴레옹이 빵에 양파를 문지르는 척탄병들을 보고 "영광의 길을 걷고 있는데 양파가 가장 걸맞는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즉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는 오스트리아군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다는 디스에 가깝다.
같은 상황의 정반대 그림,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9-1825)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과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1856)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 예썰 하나. ‘완전정복’, 그림 속 나폴레옹은 가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에 숨겨진 비밀! 말 위에 올라탄 나폴레옹의 위풍당당한 자세가 인상적인 그림,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한때, ‘완전정복’이란 참고서의 표지를 장식했던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그림 속 바위에 이름이 적힌 ‘의외의 위인들’, 산맥을 가로질러 대포를 옮긴 나폴레옹만의 전략 등 낯익은 작품 속에는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그런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영웅적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실제와 다르게 그려졌다는데. 그림이 감춘 진실은 무엇일까?
에티엔 메율(Etienne Méhul, 1763-1817)은 프랑스의 작곡가이다. 처음은 오르가니스트였으나 뒤에 글루크의 오페라에 감격, 그의 권유와 조언으로 오페라 창작에 전념하였다. 기품있는 멜로디와 힘찬 양식에 단정한 고전성을 보이는 그의 음악은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가장 고귀한 음악가로서 평가를 받았다. 모두 30곡이 넘는 오페라와 발레곡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오페라 <조제프>(1807)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1748-1825), ‘튀일리궁 서재의 나폴레옹황제(The Emperor Napoleon in His Study at the Tuileries)’, 1512년, 미국 워싱턴 DC 미국 국립미술관
세계 3대 법전은 로마법대전, 나폴레옹 민법전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을 말한다.
✵ 예썰 둘. ‘나폴레옹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나폴레옹에겐 홍보팀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이미지를 미화하기 위해 현실이 왜곡된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했다. 그 화가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자크 루이 다비드’였다. 그의 작품인 나폴레옹 대관식은 나폴레옹이 황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어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나폴레옹을 미화하려는 화가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나폴레옹 영웅화에 앞장 선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홍보부장이었다. 또한, ‘나폴레옹 영웅 만들기’에 나폴레옹 본인도 나섰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신문 기사를 직접 작성했다. 자기애 가득한 나폴레옹의 기사는 보는 사람을 경악하게 하는데.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그린 예술작품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 예썰 셋. 유럽 예술의 중심? 피의 박물관? 정복자 나폴레옹, ‘루브르 박물관’을 탄생시키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 이곳의 별칭은 피의 박물관이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나폴레옹이 약탈한 예술품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은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시장이자, 그가 주도한 예술통치의 정점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지금은 바티칸에 돌아온 벨베데레의 아폴로, 라오콘 군상 등 나폴레옹이 훔쳐간 예술품들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데. 루브르 박물관은 유럽 예술의 중심일까, 약탈의 증거일까?
초대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1세(Napoléon I, 1769-1821),
‘대관식 복장을 걸친 나폴레옹 1세, 프랑수아 제라르’, 18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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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서 도시를 살펴보는 황제를
그 절대정신을
나는 보았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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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생애는 1천 년 내 가장 비범한 생애였다.
나폴레옹은 분명 위대하고 특출한 인물로서
생애만큼이나 자질도 비범했다.
나폴레옹은 확실히 내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대단했고,
우리 세대에 살았던,
아니 여러 세대 동안 살았던 인간 중
가장 놀라운 인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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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의 유럽
프랑스 대혁명
✺ 나폴레옹 1세(Napoléon I, 1769-1821) 프랑스의 황제, 군인.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였던 코르시카 섬에서 법률가(변호사)의 자녀로 태어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 혁명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 1799년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하였다. 이후 스스로 황제에 올라 혁명을 퇴보시켰지만, 동시에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수립된 자유주의 이념을 유럽에 전파시켰다. 이때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을 통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어 당대 세계적 강대국들이 몰려 있던 유럽을 석권하고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패권주의적 외교와,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강대국들의 견제에 직면했고,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에 따른 백일천하의 종식으로 몰락했다.
그는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어려운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최하위 군사학교인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뛰어난 군사전략과 정치력으로 35세에 황제까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카를 3세 이후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된 인물이며 그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기에 그의 몰락과 빈 회의 이후 근대 유럽의 외교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인물이 다시 유럽을 집어삼키는 걸 막는가를 기준으로 진행될 정도로 포스트 나폴레옹의 출현을 경계하였다 한다. 이런 배경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은 나폴레옹의 재림으로 여겨졌으며 파리가 함락되었을 때 히틀러는 나폴레옹의 묘에 참배까지 할 정도였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나폴레옹이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그 스스로가 갖춘 사상과 철학인 법치주의, 능력주의, 시민 평등사상을 온 유럽에 퍼트렸고, 나폴레옹 법전 등 여러 업적을 남겨 세계사적으로 한 획을 그었다. 기본적으로 근대 세계는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끝난 정치 혁명 그리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야기한 경제구조의 대변혁이 어우러져 완성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유럽사 최고의 군사 전략가 중 한 명으로 당대 주변국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으며 대표적으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또한 프랑스 육군의 모든 부분을 전반적으로 선진화시켜 세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주역이었다. 이후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나폴레옹을 따라 군제를 개편한 만큼 사실상 전쟁사의 근대를 완성시킨 인물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개인으로서 세계사의 변혁을 이끌어낸 인물이며 유럽이 18세기 시민 혁명 시대에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풍미한 인물이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큰 접점이 없는 한국에서도 그의 유명세 덕에, 설령 프랑스사나 프랑스의 인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나폴레옹의 이름과 말을 탄 그의 화상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2021년은 나폴레옹의 사망 200주기였다. 비록 프랑스는 제국에서 공화국이 된 지 150년이 넘었지만,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앵발리드에 방문해서 헌화했다.
파리의 개선문
* 프랑스어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나파르트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고, 나폴레옹이 이름이다. 아마도 이름+성 구조의 서양식 작명을 몰라서 그랬거나 황제가 되면서 이름인 나폴레옹으로 불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럽 군주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이름이 왕명이 되고 성은 왕조의 명칭이 되기 때문이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당대에 보나파르트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어 이름은 나폴레오네 디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 '나폴레오네'로 쓰든 프랑스어인 나폴레옹으로 쓰든 이름의 뜻은 '황야의 사자'이다. 그러나 그가 그의 이름을 코르시카 사투리로 발음하면 ‘라 파이유 오 네(La paille au nez. 코에 박힌 지푸라기)'로 들려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름은 멋지지만, 성 부오나파르테(보나파르트)는 게르만족 롬바르드족의 성씨 보니파르트가 어원으로서 영어로 하면 Good Part(좋은 부분)라는 뜻이다.
프랑스 황제로서의 칭호는 나폴레옹 1세 칭호를 대대로 쓰고 있다. 한문으로는 음차하여 나파륜(拿破崙)이라고 표기한다. 한국에는 나폴레옹의 음차가 '나팔륜'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破'는 한국어로 '파'라고 읽지 '팔'이라고 읽지는 않는다.
* 이탈리아 가문 출신으로, 그의 모어는 코르시카어였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는 성장기에 학교 등에서 배운 제2언어이다. 프랑스 변방에 위치한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이 태어날 즈음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며, 이전까지는 프랑스와 관계없는 이탈리아령 제노바 공화국 소속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탓에 그는 다중언어(multilingual) 화자이긴 했으나 의식적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평생 프랑스어 철자법에 서툴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역설적이다.
머리가 특출한 나폴레옹이 학창 시절 국어 성적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철자법 문제에서 나온 일화이다. 논술식 시험 답안지에서 철자법이 틀린 어휘들이 감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
1805-1807년, 캔버스에 유화, 610×931cm,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왕관을 쓰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 부분 확대
프랑스 제국 나폴레옹 1세의 정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 1763-1814)
* 어록
◦ "«Impossible» n'est pas français."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 "내 키는 땅에서 재면 가장 작지만 하늘에서 재면 가장 크다."
◦ La mort n'est rien, mais vivre vaincu et sans gloire, c'est mourir tous les jours.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 La victoire appartient au plus persévérant.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 "내가 권력을 찬탈했다고? 나는 그 누구에게서도 왕권을 뺏지 않았어. 나는 그저 시궁창에 버려진 왕관을 주워서,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 것 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왕관을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머리에 썼어. 나는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한 거야."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19회] 나폴레옹, 예술을 통치하다,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