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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정법안장
<능엄선 수행을 한 남해 화방사 토굴에 있는 성원스님의 말>
이 능엄 수행법을 통해 해탈하신 개운 조사는 ‘이 능엄은 중생의 진루(塵漏)를 벗어나게 하는 수행서이지 반야를 설명한 경전(經典)이 아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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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스님의 말에 정(正)과 사(邪)를 구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불공스님의 말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나고 흰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등등 이다.. >
(발자국 問):..그럼.. 그렇게 희고 샛 이빨이 돋아난 불공스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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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업선 수행을 한 남해 화방사 토굴에 있는 성원스님의 말,>
이 능엄 수행법을 통해 해탈하신 개운 조사는 ‘이 능엄은 중생의 진루(塵漏)를 벗어나게 하는 수행서이지 반야를 설명한 경전(經典)이 아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2. 답변
(1) 서설
사실 은자의 발자국님이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생각컨데, 아마도 "이 능엄은 반야를 설명한 경전이 아니다" 라는 성원스님의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아무렇게 설해진 것은 아니고 부처님의 계획에 따라서 설해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사십구년 동안 각처를 다니시면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양과 내용은 방대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말씀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재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십구년 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오시교(五時敎)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로, 성도 후 최초의 삼칠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로, 그 다음의 십이년 간 아함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로, 그 다음의 팔년 간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 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넷째는 반야시(般若時)로, 그 다음의 이십일년 동안 반야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무려 육백여 부에 해당되며, 그 중에서 반야심경은 반야의 골수만을 간추린 경전에 속합니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최후의 팔년 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개운조사님의 능엄경 주석서에도 비슷한 분류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 교상판석(敎相判釋)
"우리 부처님의 설법은 조리가 있어 어지럽지 아니하시므로 처음에 일승(一乘)의 원교(圓敎)를 설하여 근본을 세우셨으니 이는 곧 화엄(華嚴)이요, 다음에 삼승(三乘)의 점교(漸敎)를 설하여 근기(根機)에 맞도록 하셨으니 이는 곧 아함(阿含)과 방등(方等)과 반야(般若)이고, 최후에 일승의 돈교(頓敎)를 설하여 실상을 나타내셨으니 이는 곧 법화(法華)이다.
수능엄은 곧 반야와 법화의 중간인데, 이는 사실 대승(大乘)의 마지막 교리를 설하신 것이기 때문에 여래의 밀인(密因)과 보살의 만행(萬行)인 닦아 증득하는 법이 마침내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어서 곧바로 일승의 원돈(圓頓)한 도에 나아가므로 법화경상에서는 다시 지위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고 단순하게 오묘한 법만을 말해서 수기(授記)하여 부처가 되게 하였을 뿐이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큰 일이 법화에 지극함을 다하셨다. 법화 이후에 곧 열반을 설법하시어 매듭을 지으셔서 계율을 지켜 불성이 항상 머물음을 설하시고 끝마치셨으니, 「부율(扶律)」이란 후사(後事)를 부탁함이고 「담상(談常)」이란 참된 적멸(寂滅)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직 입멸(入滅)하기에 임하여 유언으로 부탁하신 일이지 법화에다 더 추가한 것은 아니다.
무릇 정진 수련하는 일을 곡식을 심고 거두는 데에 비유하면 반야는 씨앗을 심는 것이고, 능엄은 김매서 가꾸는 것이고, 법화는 수확하는 것이고, 열반은 이삭을 줍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엄은 반야의 뒤라고 판단한다. 대체로 반야 이후에는 혜학(慧學)이 바야흐로 성(盛)하고 정력(定力)은 온전하지 못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더러는 많이 듣기만 하는데 빠져서 정수(正受)를 잃기 때문에 여기에서 수능엄의 정정(正定)을 보이고 반야의 큰 지혜를 근본으로 해서 선정과 지혜가 균등하고 학문과 수행이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 마침내는 일승의 실상(實相)에 나아가게 했으니, 이는 수능엄경을 설하게 된 까닭이다.
이 세 가지 경전의 큰 이치를 논하면 한결같이 큰 일의 인연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먼저 반야를 바탕으로 하여 열어 보이셨고, 다음에 능엄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들어가게 하시고는 마지막에 법화에 이르러서 인가(印可)하신 다음에야 모든 부처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것이니, 그 차례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혼탁하고 더러움을 버리고 오묘하고 밝음을 발해서 자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데는 능엄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3) 소결
위의 정본 수능엄경상의 주석의 말씀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을 크게 원교, 점교, 돈교로 나눈 후에 원교에는 화엄경을 , 점교에는 아함 방등 반야경을, 그리고 돈교에는 법화경을 각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분류와 크게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능엄경이 어디에 속하는지 문제가 됩니다.
성원스님의 말씀에서 "능엄경은 진루를 벗어나게 하는 수행서이지 반야를 설명한 경전이 아니다" 라고 하신 의미는 지금 강원이나 승가대학에서 능엄경이 반야시에 속하는 경전이라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능엄경은 반야부의 경전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위의 능엄경 주석에도 능엄경은 반야경을 설하신 후에 법화경을 설하시기 바로 전에 설하신 경전이라서 반야와 법화의 중간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원스님의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 혹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자세한 것을 보고 싶으신 분은 성원 스님의 " 수행, 날개를 달다" 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III.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1. 서설
두번째의 질문의 경우는 제가 임의로 답을 드릴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는 불법의 매우 엄중한 부분이지만 아직까지 여기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놓은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화양 조사께서 자비심을 베푸시어 여기에 관한 비밀스런 그림과 말씀을 누설하시고 계신바, 유화양 조사님의 그림과 설명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답변에 대신할까 합니다. 인연이 있는 분들께서는 이 그림과 설명을 통해서 불법의 숨겨진 비밀스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안목을 넓히게 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질문
...불공스님의 말에 정(正)과 사(邪)를 구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불공스님의 말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나고 흰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등등 이다.. >
(발자국 問):..그럼.. 그렇게 희고 샛 이빨이 돋아난 불공스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
3. 답변
(1) 유가수련증험설
서설
은자의 발자국님이 질문하신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나고 흰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등등" 은 유가수련의 증험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해서 유가수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증험에 대한 글을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유가(瑜伽)수련이란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말씀하신 혜명과 각성(慧命覺性)을 함께 닦는 수행법을 말하는 것인바, 유가란 여의주의 다른 이름이며, 성명을 함께 닦아서 도태를 성취하는 비유를 말합니다.
불공화상의 분류
지니고 있던 질병이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으며, 단전이 따뜻해지고 얼굴 모습이 맑고 수려해지고 깜깜한 방에 있어도 원만한 빛이 일산 같이 비치며, 소리가 한 번 울림에 뼈 마디가 모두 통하여 이어지고 습기가 저절로 사라져서 탐욕이 움직이지 않나니 이는 십신 누진통의 징험이니라.
백 걸음 밖에 있는 가을 털처럼 작은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오래 전에 있던 흉터나 주름살이 저절로 없어져서 흔적이 없이 되며, 눈물 콧물이나 땀이 나오지 않고 삼시(三尸)와 구충(九蟲)이 모두 없어지며, 도태(道胎)가 원만해지고 참 기운이 가득해져서 음식을 끊게 되나니 이는 십주 사다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온 몸의 붉은 피가 다 흰 연고처럼 변하고, 백발이 다시 검어지거나 빠진 이가 새로 나게 되고, 추위와 더위가 침입하지 못하고 죽고 삶이 간섭하지 못하며, 손으로 반석 위에 그리면 글자가 완전하게 새겨지고, 신비한 광채가 명랑해져서 다시 낮과 밤이 없이 되고, 자태는 옥수와 같고 살은 금색처럼 투명해지나니 이는 십행 아나함의 징험이니라.
고요한 중에 이따금 하늘 음악 소리가 맑게 들려오고 안으로 항상 화엄국토에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안의 성품이 출현하고 밖의 신이 찾아와 조회하게 되고, 천시(天時)와 사람의 일을 다 미리 알 수 있게 되며, 붉은 노을이 눈에 가득하고 금빛이 몸을 감싸며, 채색 구름이 둘러 싸서 형체와 정신이 모두 오묘하게 되나니 이것은 십회향 아라한의 징험이니라.
태백산인 소능선사의 분류
수타원과(須陀洹果)를 얻으면 마음에 잡념이 없어지고, 피가 흰 우유로 바뀌니 이는 그 증험이요. 사다함과(斯多含果)를 얻으면 손에는 육맥(六脈)이 없고, 피가 흰 기름(백고,白膏)으로 변하여 잠과 꿈(몽매,夢寐)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이요.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으면 코에 호흡이 없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돌아오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 것이요.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얻으면 형체가 변하여 기가 되어 자유로 날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느니라. 벽지불(酸支佛)에 오르면 이기(二氣)를 다 먹고 일성(一性)이 홀로 비치어 과(果)를 원만히 이루고 다시 일지(一地)에 올라가 보살 수행이 있으리라.
소결
위의 글을 살펴보면 불공화상과 소능선사의 분류가 조금의 차이는 있는지만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자의 발자국님이 질문하신 이빨이 다시나고 흰머리가 검어지는 증험은 십행 아나함과의 증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함과는 소승의 3번째 과위에 해당합니다.
화엄경과 능엄경에는 수행을 통해서 증득하는 과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능엄경에 나오는 것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먼저 간혜지, 십신(十信) 수다원과, 십주(十住) 사다함과, 십행(十行) 아나함과, 십회향(十回香) 아라한과, 사가행(四加行) 벽지불과, 십지(十地) 보살과, 등각, 묘각, 불 등의 순입니다.
(2) 유화양 선사의 그림과 설명
서설
유화양 선사는 저서인 혜명경에서 비밀스런 선불(仙佛)의 수행을 그림을 통해서 남긴 없이 누설하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수행의 착수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수행의 마지막까지 모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두가지의 그림만 빼고 거의 전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림과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그림의 마지막에는 우리 은자의 발자국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부처님과 불공화상께서 어디에 계시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각자의 근기에 따라서 얻을 것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누진도(漏盡圖)
1. 개운당발기
『유가록』(瑜伽錄)에 이르기를 「어떤 스님이 묻기를 바라밀체가 번역한 뜻과 혹 다른 스님들이 번역한 내용에는 대략 한 가지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지금 화상께서는 세 가지로 나누어 해석한 것은 혹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불공(不空)화상이 대답하기를 훌륭하고나! 그 물음이여! 지금 모든 말법 세계에 참다운 수행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게 함은 너의 공덕이다. 삼마지는 바른 선정을 닦는 터전을 말하는 것이니 불도를 닦는 도량이다. 만약 이 구멍[竅,삼마지]을 알지 못하면 법해(法海)가 아득하고 아득한데 어느 곳에다 착수할 것인가? 참다운 스승이 아니면 그 곳을 알 수 없나니라. 삼마바리는 헛 것을 관찰하는 것을 말함이고, 삼매는 선정 가운데 바른 느낌이 일어나는 징험이니 그 이름은 비록 같은 듯하나 세 가지 사실 같지 아니하니 깊이 믿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올바른 선정의 구멍(三摩地)은 참으로 빈 가운데 오묘한 작용이 일어나는 것(眞空妙有)이니 크기로 말하자면 밖이 없고 작기로 말하면 안도 없어서 중생들의 불성이 그 한 구멍이 있으니, 이 구멍을 알지 못하고 수련하는 사람은 편협하게 성품만을 닦는 외도이니라.」
2. 능엄경의 경문과 주석
수능엄경
"그때 세존이 대중가운데에 계시다가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면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 말씀하시기를 "삼마지(三摩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이니 만행이 다 갖추어졌나니라. 시방의 여래가 이 유일한 문(門)으로 초출(超出)하신 오묘하고 장엄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어라"
주석
三은 정(正), 摩는 정(定), 地는 규(竅)의 뜻이니, 삼마지는 즉 사성과 육범의 유일한 큰 하나의 총규이다. 여러경전에 나타난 것으로는 법보리도량, 부동도량,여래장,법계장,무진장, 무량의처,현관,정토,불이법문이라고 하여 다 기술할 수가 없을 정도이나 모두 이 총규를 가르키지 않음이 없다. 부처님의 법을 닦는 사람이 이 총규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수련하면 만에 하나도 성공할 수 없고 다만 뒷 세상에 법과 인연을 맺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여래의 큰 신선의 도는 미묘해서 알기가 어렵다. 이 미묘한 법을 구하지 아니하면 마침내 보리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하였고, "미륵경'에 이르기를 "그대를 천만겁이나 배불리 먹인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공망(空亡)에 떨어질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총규를 모르고 수련하는 것을 깜깜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수련하는 것이라 하니 그렇게 하면 일생을 헛되게 지낼뿐이다.
이 총규는 가르침 외에 별도로 전해주는 것을 말하며(교외별전), 불법의 듣기 어려움을 이름하는 것이니, 참으로 수련하겠다는 뜻이 있는 자는 지극한 정성과 지극한 덕을 다하면 반드시 옳은 스승이 가르쳐 줄 것이다.
수능엄에서의 삼마지는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함께 경유해간 길이기 때문에 "유일한 문"이라고 했고, 미묘하고 장엄한 바다에 이로 말미암아서 이르므로 "길"이라고 한 것이다. 고금을 통하여 비록 영리하고 큰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연구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듣고 나서야 거의 알 수가 있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믿기 어렵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3. 혜명경의 말씀
세존께서 "갈타라는 용궁(龍宮)에서 법을 설한다"라고 하셨다. 용궁이라는 것은 서천에서 쓰는 범어인데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단전(丹田)이라 하고, 단전기혈(丹田氣穴)이라고도 한다. 서천에서는 또한 정토(淨土)니, 해저(海底)니, 극락국이니, 우다나니 하고 불러서 그 이름이 많으나 모두가 진리의 씨앗(眞種)이 조화롭게 합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태의 지관은 "범어에서 우다나라는 것은 단전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근래에 와서 진리를 얻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봐 또 다시 노(爐)라는 용어를 썼다. 마치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가 창날이나 훌륭한 그릇을 만들려면 노가 아니면 안 되는 것과 같이, 수련에 성공하려고 하여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심경해(心經解)에서는 "거두어서 단전이라는 노에 넣고 불리면 해와 같이 붉어진다" 라고 하였다. 광명여래께서는 "노 가운데에서 불이 나온다" 라고 말하고, 또 "노 가운데서 불(火)이 나오는다는 것이 하늘의 비밀(天機)을 누설한 것이다" 라고 말하셨다. 서쪽에서 오신 뜻을 모르면 곧 길을 잃고 헤매이게 된다.
도태도(道胎圖)
1. 유가심인 정본 수능엄경 환해산보기의 말씀
수능엄경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이 여래의 혜명각성(慧命覺性)은 누구든지 다 갖추고 있나니, 선남자와 선여인으로서 대승의 경지를 닦는 사람은 삼마지에 대해 가볍게 편안히 보아 비추어서(輕安觀照) 마음을 항복받고 기미(時)를 기다려서 화합하고 응집해야만(和合凝集) 바야흐로 부처님의 도를 이루나니라.
원주(原註)
이것은 참되게 수행하는 문에서 때를 따라 적절하게 공부해 나가는 총체적인 비결이다.(眞修行門隨時下功之總訣) 여래는 부처님의 과호이니 스스로 그러한 본래의 성품이 천연 그대로인데 시각(始覺)이 또 왔다는 뜻으로 '여래'라고 일컬은 것이다. 선남자와 선여인은 계를 청결하게 지키는 자이다.
공부에 착수하는 방법은 처음에는 명(命)이 성(性)을 만나지 못하면 그 혜(慧)가 생긴다고 해도 이는 참다운 혜가 아니기 때문에 남쪽으로써 북쪽과 화합하여 오묘한 약을 결성하고(以南和北 結成妙藥),
다음은 성이 명을 만나지 못하면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바른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북으로써 남과 화합하여 마니를 결성하며(以北合南 結成摩尼),
다음은 성으로써 명을 응집하고 명으로서 성을 집합하여 도태가 결성되거든 일(一)을 껴앉아 중도를 지켜서 따뜻이 길러서 선정에서 벗어나야 하지만,(結成道胎 抱一守中 溫養出定) 털끝만큼의 차질이라도 생기면 만에 하나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니 보리를 닦고자 하는 자는 오직 지극한 정성으로 참다운 스승을 찾아가 받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목우자(牧牛子)가 이르기를,
「돈오」라는 것은 범부가 혼미했을 적에는 사대(四大, 地水火風)로 몸을 삼고 망상(妄想)으로 마음을 삼아 자성이 참다운 법신(法身)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서 부처님을 찾으며 이리저리 헤매다가, 홀연히 참다운 스승이 지시해 주시는 올바른 길을 만나 일념으로 빛을 돌이켜 자신의 본성을 보게 되면, 이 본성의 바탕에는 본래 번뇌가 없고 온갖 덕(德)이 다 갖추어져서 곧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털끝 만한 차이도 없다. 그러므로 「돈오」라고 하고,
「점수」라는 것은 비록 본성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깨닫고 있으나 수많은 세월동안에 익혀온 기운을 갑자기 다 제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점차로 훈습(薰習)하여 공부가 이루어지거든 도태(道胎)를 따뜻이 길러서 오래오래 수행하면 성인으로 화(化)하기 때문에「점수」라고 한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낳았을 때에는 모든 감각기관은 비록 갖추어졌으나 그 힘이 충만하지 못하므로, 많은 세월을 지내야 비로소 성인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소(牛) 기르는 열 가지 그림을 그려 공부의 처음과 끝을 밝힌다」고 하셨다.
4. 청담스님 말씀
이 경전의 큰 뜻은 삼마지5)로 문을 삼으시니 한번 이 문에 들어가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하겠다. 삼마지라는 것은 곧 참으로 빈속에 오묘하게 있는 것이니라. 만약 참된 비결을 얻은 자라면 마땅히 참으로 빈 가운데에 착수해야 한다. 참으로 빈 것을 떠나서는 별도로 다른 길이 없으니 참으로 비어 무너짐이 없는 가운데에 나아가야 도태(道胎)의 남이 없는 원인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온갖 법이 허깨비와 같되 오직 보리만이 가장 영묘한 것이어서 시방 법계에 신통함을 드러내나니, 이것이 대장부의 도덕이 성립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불법은 듣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비밀한 법을 참으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참다운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억측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는 알 수가 없도다.
5. 개운조사님의 유서
출태도(出胎圖)
능엄경에서 "모양이 이루어져서 나오게 되면 스스로 작은 부처가 되는 것을 법왕자주라고 한다.(形成出胎 親爲佛子 名法王子住)" 고 하였다.
열달동안 진리의 태아(道胎)가 음(陰)과 양(陽) 두가지 기(氣)로 부터 영양을 제공받아 기름을 입어(十月道胎 得二氣滋養) 태아가 원만하여지고 성(性)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머무르게 되는 것(胎圓性定)을 "모양이 이루어지고 머무름에서 나온다." 라고 말한다.(謂之成形出定)
지혜가 넓고 커져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나오면 존재하고 들어가면 사라진다. 모이면 모양이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자취도 없어진다. 빛이 법계에 두루 미치고 신과 귀가 옆에서 보호한다. 그러므로 작은 부처라고 말한 것이다. (智慧廣大 無所不見 無所不知 出有入無 聚則成形 散則無跡 光周法界 神鬼侍護 故曰稱爲佛子矣)
2. 유가심인 정본 수능엄경 환해산보기에 나오는 게송과 주석
염송
적무스님의 게송에 이르기를,
태가 원만하게 되고 때가 되어 눈꽃이 날리거든(胎圓節至雪花飛)
생각을 움직여 표연히 정수리로 오르게 하라(念動飄然上頂機)
여래의 도가 고적하다고 하지 말라(莫謂如來枯寂道)
법신이 고요한 곳을 벗어나서 또 다시 귀의하네(法身出寂又歸依) -
- 개운조사님의 주석 - 출태의 비유이다(出胎之喩)
무구스님의 게송에 이르기를,
만약 마음이 비게 되면 괴로움도 따라서 없어지리니
나고 죽음에 무슨 걸림이 있으리
하루 아침에 깊은 태(胎)속을 벗어나서
소요하는 대장부가 되었네
주석
발심주로부터 생귀주에 이르기까지는 도태(道胎)속에 들어가는 것이요, 방편구족주에서 동진주에 이르기까지는 성태(聖태)를 기르는 것이니, 여기에 이르러 따뜻이 기르는 공부(溫養)를 마쳤으니 법왕자주라고 한다.
3. 선불합종(仙佛合宗) 태을칠문(太乙七問)
태을이 일곱번째로 묻기를, 어떻게 양신(陽身, 부처님의 진신인 법신을 말함)이 나가게 되는지요? 오자께서 말씀하시길, 선천원정(先天元精)을 진양(眞陽)이라고 하니, 이 진양을 얻어서 성(性)을 단련하고 신(神)과 통하여 정(定)에 들어 정(定, 삼매)을 얻어면 양신이라고 하고, 진양을 얻지 못하고 배합하여 정에 들어 정을 얻은 것을 음신(陰身)이라 한다.
이는 단지 고선(枯禪, 간화선 같이 性만을 닦는 것을 참선을 말함)을 익히어 당하에 숨의 출입이 끊어짐을 얻고, 마음에 생멸이 없는 진공(眞空)의 경계에 이르러 비로소 이 음신을 얻어 나가게 할 수 있으나, 아직 생사가 남아 있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증과일뿐이다.
선불(仙佛)의 도는 정(精)을 단련(煉)하여 양정(陽精)을 얻고, 기(氣)를 단련(煉)하여 양기(陽氣)로 화(化)하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올바른 양신은 음과 양의 2기(二氣)가 합일한 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양신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 형체를 숨기고 고요한(靜)한 즉 신(神)이 태허(太虛)에 통하며, 또 양신이 밖으로 나와서 형체를 나타낸 즉 하늘과 땅에 통하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니, 눈으로는 우주를 보며 손으로는 건곤(乾坤)을 운전하니 이것이 진정한 양신(眞陽身)인 것이다.
이 진양신(眞陽神)은 진공성체(眞空性體)이다. 능히 견성(見性)하지 못하여 진공에 이르지 못하면 양신을 이루지 못하며, 진공실지(眞空實地)에 이르지 못하면 능히 양신을 출태(出胎)시킬 수 없다. 양신(陽神)이라 하는 것은 나타내어 현출(現出)하는 변화가 예측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능히 보며, 하지 못하는 것을 능히 하며, 세간(世間)에 없는 바를 능히 있게 하며, 있는 것을 없게도 한다. 그 신통한 작용이 세상에 드러나 사람마다 모두 함께 볼 수 있음을 양신이라 한다.
세상과 사람 앞에 그 형체를 드러내어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먼저 보고 먼저 앎이 뭇사람보다 낫은 점일 뿐이며, 또 형체가 분명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세상에 모습을 은근히 나타내는 까닭에 음신(陰身)이라 한다. 이는 진양(眞陽)의 강(剛)한 기(氣)가 없는 까닭에 그 형체를 밝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묻기를, 어떻게 이 진공실지(眞空實地)에서 양신이 나가야 할 때를 알 수 있는지요?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성(性)이 허공과 합일하여 신(神)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며, 인연에 얽매이거나 물들지도 않으며, 한 티끌도 움직이지 않아 숨의 출입과 마음의 생멸이 완전히 끊어져야 바로 진공실지인 것이다.
한차례 하늘 꽃(天花)이 어지러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신(神)이 정문(頂門, 정수리)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위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더 나아가 연신환허(煉神還虛)하고 연허합도(煉虛合道)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알라. 선(仙)과 불(佛)의 공부는 동일하며, 일어나는 현상도 동일하며, 양신의 증과도 동일한 것이니, 저 시끄럽게 떠들면서 선과 불이 다르다고 고집하여 주장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음을 고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4. 참고 - 십주(十住) 사다함과와 선천의 원정(先天元精)
(1) 십주 사다함과
1.발심주(發心住) 2.치지주(治地住) 3.수행주(修行住) 4.생귀주(生貴住) 5.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6.정심주(正心住) 7.불퇴주(不退住) 8.동진주(童眞住) 9.법왕자주(法王子住) 10.관정주(灌頂住)
법왕자주란 십주중 아홉번째입니다.
(2) 선천의 원정이란?
「유가경」에 이르기를,
" 이 경의 주요 내용은 항상 머무르는 불성(佛性)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나니, 어떤 물건이 하늘보다 더 높은가? 하늘을 낸 것이 그 물건이요, 어떤 물건이 땅보다 더 두터운가? 땅을 기른 것이 그 물건이며, 어떤 물건이 허공보다 더 넓은가? 허공을 싸고 있는 것이 그 물건이요, 어떤 물건이 부처님과 조사를 초월(超越)했는가? 부처님과 조사를 만든 것이 그 물건이라 하니, 이것을 큰 힘을 가진 흰 소에 비유하며, 또한 금강반야에 비유한다」하였으니,
한산(寒山)의 「귀하도다! 천연 그대로의 물건이 오직 하나뿐 대적할 만한 짝이 없다」고 한 것과, 육조(六祖)의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친다」고 한 것과, 운봉(雲峰)의 「하늘과 땅을 움켜쥐고 왔는데 기장 쌀 크기만 하였다」고 한 것과, 부대사의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던 물건인데 이름도 없이 본래 고요하고 고요한 것으로서 만상(萬像)의 주재(主宰)가 되어서 사시를 좇아 만들어지지 않네」라고 한 것과, 원오(圓悟)의 「너나 나나 동일한 큰 종자」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윗글에서 선천의 원정이란 다름 아닌 부처와 조사를 만든 물건이니 대력백우요, 금강반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혜능 스님은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친다." 라고 하셨는데, 바로 선천의 원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정 화신도(出定 化身圖)
능엄경에서 "그때에 세존께서 육계로부터 한 줄기 백보광명을 방출하시고 그 광명 속에는 일천 잎새나 되는 보배의 연꽃이 솟아나게 하시니 화신여래가 그 보배의 연꽃 위에 앉아 계시면서 정수리로 열 줄기의 백보광명을 방출하시고, 그 광명마다 열 항하사 금강밀적(金剛密跡)이 나타나서 산을 받쳐들고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허공세계에 가득하거늘, 대중들이 그것을 쳐다 보고서 두려움과 사랑스런 마음이 한데 어울려 부처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며 일심으로 부처님의 무견정상(無見頂上)에서 광명속에 나타난 여래가 설하시는 신비한 주문을 듣고 있었다." 라고 하였다.
혜명의 진리를 얻지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앉아만 있거나, 입으로만 지껄이는 참선객들이야 어찌 이와 같이 몸을 나투신 여래께서 보배로운 연꽃에 앉아서 빛을 내뿜은 것과 같은 진리의 몸(法身)의 나툼을 할 수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양신(陽神)이란 하찮은 진리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여래께서 하찮은 진리를 얻은 것인가? 이는 곧 능엄의 비밀을 드러내어 뒷날 이 진리를 얻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로 성스러운 곳에 뛰어오르고, 평범한 티끌 속에 떨어져 있지 않도록 밝게 가르치고자 함이다.
이는 곧 능엄경에서 사람들에게 아침저녁으로 외우라고 하는 글인데, 보통 스님들이 그 말미암은 바를 알지 못하고 건성으로 이를 외울 뿐이다. 금선(金仙)이라는 것은 화엄경에서 세존께서 스스로 일컬은 말이다. 때로는 대선(大仙) 또는 칠선(七仙) 또는 중선(衆仙)이라고 불러서 정해진 바는 없다.
요연스님이 '불교를 믿는 오늘날의 스님들이 선(仙)은 작은 도(道)라고들 하는데, 여래께서 어째서 스스로 이 네가지 선(仙)을 이름하였습니까? 하고 묻기에, '불교는 원래 이것과 저것의 나눔이 없는데 굳이 나누는 사람은 그저 그런 스님이다. 여래께서 스스로 네가지 선을 말하신 것은 바로 온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문호(門戶)에 집착하지 말고 세존의 혜명(慧命)의 진리에로 모두들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라고 답하였다.
2. 태백산인 소능선사의 말씀
대도는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쉬우니, 사람의 믿는 곳이 있어 생기는 바가 기이니 기(氣)가 왕성하면 곧 신(神)이 강하고 신(神)이 강하면 곧 몸이 건강한 것이다. 오래 살고 죽지 않는 도가 이것에 이어서 시작하는 것이니라. 기는 형(形)의 명(命)이요, 신(神)은 형의 성(性)이니 고로 기를 소모하면 곧 몸이 약해 지고, 기가 쇠하면 늙게 되고, 기가 체하면 곧 병들게 되고, 기가 다하면 죽나니 이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련의 묘가 오직 하나의 기(一氣)에 있으므로 고승 대덕이 이르기를, "도는 기 아님이 없다고 하니, 만일 법대로 수련할 수 있으면 심화(心火)는 아래로 내려오고 신수(腎水)는 위로 올라와서 성명(性命)이 응결해서 사리(舍利)가 성취되면, 영원히 생로병사를 해탈하여 삼계(三界)를 초월해 벗어나서 끝없이 오래 즐기니 어찌 대장부의 쾌사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수행자중 만약 늙고 병든 자는 먼저 구호와 보익을 완료해서 몸의 근본(身根)을 충실히 한 연후에 비로소 좌환에 들어가서 현묘한 기회를 기다리되 마치 고양이가 죄를 잡듯이 신중히 하여라. 신근이 완전한 사람이 좌환에 들기 위한 대기는 마치 신령한 고양이(靈猫)가 쥐구멍을 지킴에 반드시 소망이 이루어짐이 있으나, 정기(精氣)가 부족한 사람의 대기는 마치 어리석은 고양이가 빈구멍을 지키는 듯하니 반드시 소득이 없으리니 가엾어서 어찌하리요.
신령스런 고양이에 비유하면 네 발을 땅에 대고 두 눈으로 구멍(삼마지)을 살펴서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고 오래되면 흰쥐(보리자)가 있어 나오고자 하나 나오지 못하거늘 더욱 더 조용히 지켜서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필경에 나오고 말아 갑자기 잡게 되니, 이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보리를 캐는 것
온화하고 조용히 들이쉰 숨을 내놓지 않고 내보낸 숨을 들이지 않아서 마치 용이 구슬을 기르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하되 잊지도 말고 도우지도 말고 서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아야 하니, 이렇게 수양한 지 한 달 남짓이면 신광(神光)이 오장(五藏) 안으로부터 나와서 온몸을 둘러싸나니 이는 곧 도태(道胎)가 이루어지는 징후니라.
삼가하여 깊이 잠들거나 포식하지 말며 혹은 기가 넘치고 숨소리가 너무 크거든 마음으로 평정하게 하고 도태의 기틀이 잡힌 후에 석 달에 이르면 크기가 귤만하고, 9월이면 점차 갓난 아기 만하고, 열달 공부를 마치면 보이는 법신(法身)이 스스로 있어서 시방(十方)을 떠돌아 다녀 은원관계를 해탈한 참인연이 있는 중생이 되느니라.
도태가 미쳐 장성하기도 전에 나아가 만약 먼 곳으로 가서 몸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포일수중(抱一守中)의 공(功)을 완수하기 어려운 고로, 항상 삼가 갓난 아이를 보호하고 거두어서 옆길로 멋대로 오래 나가 있지 않게 하고 또 육통(六通)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으니라.
좌정에 들어 한결같이 하여 완전히 구재환허(九載還虛,)의 공을 마치면 우주가 손에 있고 만가지 변화하는 몸(化身)을 낳게 하니 이는 무상의 자유인 것이다. 이 도를 법대로 수련하여 이루면 백발이 다시 검게 되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추위와 더위가 침범치 않으며 사마(邪魔)가 범하지 못할 것이로다. 다만 배우는 사람이 오랫동안 수행하지 못할까 걱정이로다.
면벽도(面壁圖)
1.환희지(歡喜地) 2.이구지(離垢地) 3.발광지(發光地) 4.염혜지(焰慧地) 5.난승지(難勝地) 6.현전
지(現前地) 7.원행지(遠行地) 8.부동지(不動地) 9.선혜지(善慧地) 10.법운지(法雲地)
부동지란 십지중 여덟번째를 말합니다.
1. 혜명경의 게송
一片光輝周法界
雙忘寂淨最靈虛
虛空朗徹天心耀
慧歸禪定月輪孤
不生不滅
無去無來
雲散碧空山色淨
海水澄淸潭月容
한 조각 빛 무리가 진리의 세계를 둘러싸고 이도 저도 다 잊고,
고요하고 맑으면 가장 영험하고 텅 빈다.
텅 비고 빌붙을 바 없는 공간이 살 비치게 맑은데 천심이 고요히 빛나니,
깨달음 조차도 선정으로 돌아가 버리면 둥근 달만 외롭다.
생겨남도 아니요 없어짐도 아니며,
가는 법도 없고 오는 법도 없다.
구름이 스러져 푸른 하늘에 산색이 깨끗하고,
바닷물 맑고 맑아 호수에 달이 녹아 내린다.
2. 혜명경의 설명
화엄경에 "열반에 언제나 머무르니 마치 허공과 같다" 라고 하였다.(華嚴經曰, 恒住涅槃 如虛空)
성(性)은 마치 허공과 같다. 허공이라는 상(相)에 빌붙지 아니 하므로 허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허공이라는 상에 빌붙게 되면 어떤 허공이라는 존재가 있게 되어 허공이라는 것에 가로 막히게 되니, 결국 허공이 되지 아니한다. 허공이라는 것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지 그렇게 하고자 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공과 같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원각경에서 "여래께서 원만하게 깨달으셨다" 라고 하였다.(圓覺經曰, 如來圓覺)
원각이란 참다운 성(眞性)이 허(虛)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고 비어서 더 이상 빌 수 없는 극치인 것이다. 범인(凡人)도 성인(聖人)도 없으며, 낮도 밤도 없으며, 하나의 성(一性)이 크게 비어(太虛) 있다.
바로 소강절 선생이 말한바, "도(道)는 하늘과 땅의 형체있는 그 밖으로 통하는데, 생각이 바람과 구름의 변화하는 모습 가운데 들어 있다."(道通天地有形外 思入風雲變態中) 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수 없이 무너져도 이것은 무너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미타경에서 이른바, 부처를 이룬 이래로 지금까지 열겁이 지났다는 것이다.(彌陀經所謂, 成佛以來 至今十劫者也)
바램이 갖추어지고 덕행이 만족하게 되었을 때에는, 깊은 골짜기에 숨어서 세상과 발을 끊고 텅빈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묘한 진리와 합한다.(願備行滿之時 隱於深谷 絶跡還虛 合乎妙道)
공덕이 다 차면 깊은 산의 오래 된 동굴로서 사람들의 오고 감이 없는 곳에 숨어 들어가서 우뚝하게 다리를 틀고 단정하게 앉아서 보이는 형체(形)를 불리어서 기(氣)로 변화시킨다. 신(神) 역시 텅빈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눈에 보이는 형체(形)도 공허해 진다.(功滿隱入深山古洞 無人往來之所 兀然端坐 煉形化乎氣 神亦還虛 形亦虛矣)
화엄경에 "법의 성(法性)은 허공과 같은데, 모든 부처님께서 그 가운데에 머문다" 라고 하셨다.(華嚴經曰, 法性如虛空 諸佛於中住) 이것을 여래께서 제일 마지막에 이루신 일이라고 말한다.(是謂 如來末後之事也)
나 화양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말로만 해결하려는 구두선 삼매의 외도(간화선을 말함)에 마음을 잘못 빠뜨리고 그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구두선 삼매를 정도(正道)라고 알겠지만, 그것은 정도가 아니다.(余願同志者 休誤入於口頭禪三昧之外道 認爲正道 則非正道也)
IV. 결론
은자의 발자국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히 요약하면,
먼저, 성원스님께서 말씀하신 "이 능엄 수행법을 통해 해탈하신 개운 조사는 ‘이 능엄은 중생의 진루(塵漏)를 벗어나게 하는 수행서이지 반야를 설명한 경전(經典)이 아니다” 라는 말씀은 일반적으로 능엄경이 반야부의 경전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실은 반야부의 경전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개운조사님의 능엄경 주석서에는 능엄경은 반야경을 설하신 후 법화경을 설하시기 직전에 설하신 경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은자의 발자국님은 불공스님의 말, 이가 다시 돋아나고 흰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등등 이다.. 그럼.. 그렇게 희고 샛 이빨이 돋아난 불공스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화엄경에 "법의 성(法性)은 허공과 같은데, 모든 부처님께서 그 가운데에 머문다" 라고 하셨다.(華嚴經曰, 法性如虛空 諸佛於中住) 이것을 여래께서 제일 마지막에 이루신 일이라고 말한다.(是謂 如來末後之事也) 라는 혜명경의 말씀을 소개드리는 것으로서 답변에 대신할까 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간략히 할 수 있었으나 길게 한 것은 나름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과 불공화상은 어디에 계실까요? 길게 여러 경전에 나오는 말씀들을 소개했지만, 결국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서 받아 드리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기쁘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또 다른 망상을 일으키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법화경 약초유품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부처님의 법은 하늘에서 내리는 큰 비와 같이 한 맛이지만, 그 비를 받아서 먹고 자라는 동물과 나무와 식물은 각자의 깜냥에 따라서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신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법의 종지는 생노병사라는 사고(四苦)에서 해탈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불법이라고 여겨지는 수행법을 통해서 이러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인가 라고. 지금의 출가승이나 재가의 수행자들은 왜 이러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남들이 똥장군을 지고 시장에 가는 것을 보고 아무런 의심없이 따라 가는가 라고??...
부처님께서는 "영원히 나지도 않으며, 영원히 늙지도 않으며, 영원히 병들지도 않으며, 영원히 죽지도 않으며, 영원히 젊고 건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리를 닦고자 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출가를 하시고 이후 위 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생노병사의 사고에서 영원히 해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법이 단순히 늙고 병들고 그래서 죽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태자의 영위를 버리고 출가하시고 깨달음을 얻으셨지만, 그것은 단지 하찮은 도에 불과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불도를 닦으면 생노병사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속였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수행하면서 생노병사에 연연하지 말라고. 수행을 하는 목적이 생노병사를 여의기 위함인데 생노병사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이제껏 남들이 해온대로 따라서 하라는 말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요? 결국 병들고 늙고 죽는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결국 헛 늙고 마는 것을 무슨 대단한 수행이라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큰 오류속에 빠져 있다는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염불를 하고 간화선을 하는지 한번쯤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서 수행을 하신다고요? 아님 극락이나 천당에 왕생하기 위해서 수행을 하신다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운동 열심히 하고 영양분을 잘 섭취하는 것이 휠씬 낫습니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예수를 믿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부처님은 영생불멸(永生不滅)의 존재일까요? 아님 그냥 늙고 병들어 죽은 평범한 노인네에 불과할까요?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나오는 게송을 소개하면서 글을 끝맺을까 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읊으셨다.
내가 성불한 때부터 지내 온 겁의 수효는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겁이니라. 항상 법을 설하여 무수억 중생을 교화하고 불도에 들게 하였나니, 지금까지 한량없는 겁 지냈도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참으로 열반하는 것 아니고 항상 있어서 법을 설하노라.
나는 매양 여기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 신통의 힘으로 설하지만, 생각이 뒤바뀐 중생은 가까이 와도 보지 못하노라. 중생들은 내가 열반함을 보고 모두들 사리를 공양하며 연모(戀慕)하는 마음 품고 갈앙(渴仰)하는 생각 내나니라. 중생들은 이미 믿고 조복되어 질직하고 뜻이 부드러우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 보고자 신명까지 아끼지 않으면 그 때에 나와 대중이 함께 영취산에 나타나느니라.
그 때 내가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항상 여기 있고 멸하지 않지만, 오직 방편의 힘으로 멸하고 멸하지 않음을 나타내며, 다른 세계 중생들 중에 공경하고 믿는 이 있으면 나는 또 그 가운데서 위없는 법 설하느니라."고. 너희들은 이 말을 듣지 못하고 내가 열반한다 생각하느니라.
나는 여러 중생들 고통에 빠짐을 보았기에 일부러 몸을 나투지 않고 그들의 앙모의 마음 내게 하여 사모하는 마음 낸 뒤에야 나타나서 법을 설하느니라. 신통의 힘 이와 같아서 아승지겁 동안 항상 영취산이나 또는 다른 곳에 머무르노라.
겁이 끝날 적에 큰 불이 타는 것을 볼 때에도 나의 이 국토는 편안하여 하늘과 사람이 항상 가득하고, 동산, 숲, 강당, 누각은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였고, 보배 나무 꽃과 과실이 많아 모든 중생들 즐거이 노닐며, 여러 천인들은 하늘북 치며 언제나 풍류 잡히고 만다라꽃을 비내려 부처와 대중에게 흩느니라.
나의 정토(淨土) 부서짐 없지만, 중생들은 타고 부서져서 근심과 공포와 괴로움이 이렇게 가득 찬다고 보나니라. 이 모든 죄많은 중생들은 나쁜 업의 인연으로 아승지겁을 지내도록 삼보의 이름 듣지 못하나, 공덕을 많이 닦아서 부드럽고 화평하고 질직한 이는 모두들 내 몸이 여기 있어 법문을 설함을 보게 되느니라.
어느 때에는 이 대중 위하여 부처의 수명 한량없다 말하고, 오래 되어 부처를 보는 이에겐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 설하며, 나의 이러한 지혜의 힘, 한량없이 비추는 지혜의 광명, 무수겁을 사는 수명은 오래 닦은 업으로 얻은 것이니라. 그대들 지혜 있는 이, 이 일을 의심하지 말고 끊어서 없애 버려라. 부처의 말 헛되지 않느니라.
훌륭한 의사 좋은 방편으로 중독된 아들의 병 고치려고 살았으면서 죽었다 말한 것 허망하다 말할 이 없나니, 나도 이 세상의 아버지로서 모든 고통과 근심 구원하려고 뒤바뀐 범부를 위하여, 머무르면서도 열반하였다 말하느니라.
언제나 내가 살아 있음을 보면 교만하고 방자한 생각을 내어 방일(放逸)하여 5욕락 탐내고 나쁜 갈래에 떨어 지나니, 중생이 도를 행하고 아니 행함을 내가 언제나 알아서 제도할 방편을 따라서 가지가지 법을 설하노라.
매양 스스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에 들어가 부처의 몸 빨리 이루게 하나"
출처 - http://cafe.naver.com/sundomaster(능엄선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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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 저는 능력은 부족한데 스승의 복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몇년간 태백산에 계시는 "설송 대법사"님께 법화경도 배웠답니다. 그리고 은사스님께서 열반하시자 오래 전에 말씀하셨던 능엄경을 시작하게 되고 훌륭하신 분들과도 인연을 맺게되니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_()()()_
저도 법화경과의 인연은 설송스님으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태백산 현불사에도 몇번 가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노노레타님과는 많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한마디만 더 드리자면, 능엄경과 혜명경의 가르침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공부하느라 혜명경의 오의를 깨닫는데 근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공부를 하시다가 어렵다고 그만두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참선을 계속해 나가시면 어느 순간 심득을 얻어서 복잡한 가르침이 한줄로 꿰어지게 될 것입니다.
능엄경과 혜명경의 오의를 깨닫지 못하면 능엄선의 수행은 어렵습니다. 공부하시면서 계속해서 진사를 찾는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계율이 청청하고 뜻이 바르다면 반드시 진사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혹 노노레타님께서 여성분이라면 더더욱 진사를 만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의 수행은 남자의 경우에 비해서 처음 착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러나 여성의 수행법은 밝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 만큼 여성이 성불하기란 남자에 비해서 배는 더 어렵다고 보셔야 됩니다.
그럼 노노레타님 항상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남자입니다.ㅎㅎㅎ --- 잠깐 [sundomaster]에도 들러 보았는데 공부를 더 해서 가입하려고 그냥 나왔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공부의 마무리는 스승을 만남으로써 이뤄지겠지요. 벌써 수십년 전 부처님과 인연이 시작되던 날 꿈속에서, 스승을 만나 만세를 부르는 계시를 받았는데 저의 수행의 덕이 부족해서인지 아직 나타나실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네요.ㅎㅎㅎ --- 고마우신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