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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8일 화요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 : 미카 5,1-4ㄱ
복 음 : 마태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오늘의 묵상
왕태언 요셉 신부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성모님의 족보가 아닌 예수님의 족보를 전해 줍니다.
아마도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계 혈통 중심으로 족보를 기록한 것처럼
예수님 시대에도 남성 중심으로 족보를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는 이 족보에서 다섯 여인의 이름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 다섯 여인의 마지막으로 성모님을 언급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예수님의 탄생에
성모님의 순종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순종과 헌신은 예수님과 세상의 만남을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세상 구원은
예수님 이후의 세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시간과 모든 세상에 대한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와 그 안에 등장하는 다섯 여인의 존재는
구원의 방향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그분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시기 전의 시간과 세상,
오류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의 탄생 축일인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탄생과 더불어 그분의 순종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심을 경축하며 기뻐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로부터 잘 알려진 희귀 광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광물은 너무 단단해서 가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석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공하지 않으면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희귀 광물이기에 귀부인들의 액세서리로 조금씩 팔리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이 광물은 점차 잊혔습니다.
그런데 이 광물에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붙였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딱 한 가지.
영원한 사랑은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이 보석과 같습니다.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 이 보석을 선물할 것입니다.
이 보석의 이름은 다이아몬드입니다.”
이전까지는 피와 생명을 상징하는 루비가 최고의 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 연마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이아몬드는 눈부시게 빛나게 되었어도
보석으로서의 가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광고 이후 루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고가로 판매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이야기 중심이었습니다.
일상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넣으셔서,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상에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한 소중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래야 나의 가치도 커지게 됩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교회 전례에서 탄생을 특별히 기념하는 인물은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세례자 요한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은 하느님 나라에 태어난 날인 선종일을 축일로 지냅니다.
그러나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따로 기념하는 것은,
이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특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수많은 세대가 흘렀지요.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족보에는 성인과 의인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인물도 있지만, 죄를 짓고 실패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하느님의 구원은 인간의 완벽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죄와 상처가 있는 족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당신 계획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마리아와 요셉의 믿음과 순종을 기다리셨습니다.
성모님의 위대함은 세상 앞에서 큰일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서 큰일을 하시도록 자기를 온전히 내어드렸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성모님처럼 온전히 자기를 내어드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축하합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또한 오늘은 '몬떼 올리베또 성 마리아 연합회'의 주보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로부터 열 달을 거슬러 올라가는 12월 8일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입니다.
그러니 성모님의 탄생은 ‘원죄 없으신 잉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성모 마리아를 원죄 없는 잉태로 탄생시킴으로써
성자의 강생에 합당한 준비를 갖춘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여명으로 이해됩니다.
곧 구원 역사의 중요한 국면이 시작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세주께서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강생에 합당한 준비를 위해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성모님을 원죄로부터 보호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는 비록 인간이 죄의 굴레에 있다 하더라도,
결코 하느님의 축복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인간은 본질적으로 축복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들려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이 예언한 대로 다윗 자손으로 메시아이심을 전해줍니다.
동시에 마리아께서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
하느님의 특별한 간택을 받으신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복을 주시는 분”이시오,
성모님께서는 “은총과 복을 가득히 받으신 분”(루가 1,28)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 안셀모는 성모님을 “넘치는 은총으로 충만하신 분”,
“복되시고도 지극히 복되신 분”이라고 찬양하면서,
그 은총과 복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당신이 받으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축복을 받고,
창조주께서는 그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신다.
~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충만함의 흘러넘침을 입어 새싹이 트듯 되살아났다.”
이는 성모님께서 받은 은총과 축복이 성모님으로 말미암아
온 피조물에게 흘러들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아드님과 형제가 되며,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며 그분 안에 수렴됩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고,
우리도 ‘은총에 은총을, 축복에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요한 1,16 참조)
흔히들 “부모의 기쁨은 자녀에게 있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이처럼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의 면류관을 쓰셨으며,
구세주 아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원죄 없이 잉태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축복에 축복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
많은 은총에 은총을 입은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어머니의 노래’로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기뻐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9) 아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조욱현 토마 신부
1. 성모 탄생의 의미: 구원의 여명
교회가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축일로 기념하는 이유는,
그분의 탄생이 곧 구원의 역사를 밝히는 새 여명이기 때문이다.
인류 구원사의 정점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첫 신호가 바로 마리아의 탄생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노래한다.
“마리아의 탄생은 들에 핀 꽃이니,
그 꽃에서 생명의 열매가 나오리라.”(Sermo 189, De Nativitate B. Mariae 의역)
마리아의 탄생은 단순히 한 여인의 출생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었다.
2. 마태오의 족보와 마리아의 위치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구원사의 흐름을 보여 준다.
특이하게도 마태오는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밧 세바) 네 여인을 언급한다.
이들은 모두 상처와 불완전함을 지닌 이방인들로서 낯선 여인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셨다.
성 요한 다마스코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세대 가운데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순결하고 흠 없는 선택된 그릇이 되게 하셨다.”(Homilia in Nativitatem BMV, 2 의역)
즉,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혈통이나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자유롭고 자비로운 선택으로 마리아를 구원 계획의 중심에 두셨다.
3. 성령으로 잉태된 구원자
마태오 복음은 분명히 말한다.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20절)
예수님은 단순히 다윗의 혈통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시다.
여기서 요셉의 역할은 혈통적 아버지라기보다,
예수님을 합법적인 다윗의 후손으로 인정하는 법적 보호자의 기능에 머물고 있다.
마리아는 새로운 계약의 궤요, 성령의 성전이며,
하느님과 인류가 만나는 지점이다.
교회 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믿음과 순종으로 구원의 계획에 협력하셨다.
그분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능가하며,
인류를 위하여 구세주를 낳으시는 길이 되었다.”(56항 의역)
4.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7,14)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탄생이 곧 ‘임마누엘’,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표징임을 강조한다.
마리아는 이 예언의 성취의 장소가 되셨다.
성 에프렘은 시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늘조차 담을 수 없는 분이 당신의 태중에 거하시네.”(Hymni de Nativitate, 11,6 의역)
이는 마리아의 모성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하심이
인간의 유한함과 만난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5. 우리의 응답: 작은 마리아가 되기
마리아의 탄생은 구원의 시작이며,
그분의 ‘예!’(Fiat!)는 구원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우리 역시 작은 마리아가 되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신앙은 단지 그분을 흠숭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 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에게 강조한다.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한 번 육신으로 낳으셨다 한들,
네가 믿음으로 네 영혼 안에 그분을 낳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Sermo 25,7 의역)
6. 맺음말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은 우리에게 구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드러내셨다.
우리 역시 믿음과 순종, 사랑으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작은 마리아가 되어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삶 전체가 임마누엘의 신비,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표징이 되기를 기도하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휴가 중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어느새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렸고,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자리 잡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만큼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31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한 친구는 해외 주재원으로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동차 딜러를 하는 친구는 요즘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조경과 토목 일을 하던 친구는 잠시 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자과를 졸업한 친구들은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본당 사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친구들의 삶은 서로 달랐습니다.
어떤 친구는 한 직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어떤 친구는 사업을 하며 경기의 흐름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떤 친구는 잠시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한 친구가 제가 미국에서 산다고 하니 물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란과 전쟁을 하는가?”
성직자인 제가 국제 정치의 복잡한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산책하면서 들었던 강의의 내용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미국은 세계 경제를 미국 주도로 재편하였습니다.
그 핵심은 ‘금본위제’였습니다.
미국의 달러를 국제통화로 유통하면서
상대국이 미국의 달러를 가져오면 그에 상응하는 금을 주는 정책입니다.
달러가 많이 유통되면서 미국은 더 이상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미국은 세계 경제의 큰 축인 에너지의 판매를
달러로 하는 ‘페트로 달러’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중동의 산유국은 막대한 이익을 얻고,
그렇게 얻은 달러로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고, 미국의 기업에 투자하였습니다.
대신에 미국은 중동의 산유국에 미군기지를 세우고, 군사적으로 지켜주었습니다.
만약 페트로 달러 체제가 흔들리면 미국의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쟁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에너지와 경제, 안보와 패권, 역사와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작은 갈등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먼 나라의 전쟁이 우리의 기름 값과 물가에 영향을 줍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쪽에서 일어난 작은 날갯짓이 먼 곳에서는 큰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선택이 다른 나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한 사람의 결정이 가족과 공동체의 미래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탄생은
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아기가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날 세상의 황제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고,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한 여자아이의 탄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달랐습니다.
마리아의 탄생은 인류 구원을 위한 조용한 준비였습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세상은 권력과 전쟁을 통해 역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족보 안에는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도 있었고, 인간적인 욕망과 잘못에 빠졌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공한 왕도 있었고, 실패한 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함과 상처까지도 구원의 역사 안에 받아들이셨습니다.
요셉 역시 처음에는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셉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도 앞날을 모두 알고 “예”라고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그렇게 마리아와 요셉의 작은 순종이 인류 구원의 문을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평범한 삶 안에도 수많은 희생과 선택, 눈물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평범한 삶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마리아의 탄생이 처음에는 평범한 한 아기의 탄생처럼 보였지만
구원의 시작이 되었듯이,
우리의 작은 친절과 관심, 기도와 희생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권력은 세상을 크게 흔들지만,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입니다.
거대한 폭풍은 두려움을 주지만,
사랑으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은 위로와 평화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도 성모님의 눈과 마음을 닮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보는 눈,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응답하는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기다리고 인내하고 희망하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오늘 우리는 성모님 탄생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신앙 여정, 하나하나 짚어나가 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의 잉태 이후 성모님은 당혹해하는 부모와 맞서야 했고,
난감해 하는 약혼자 요셉과 맞서야 했고,
따가운 이웃들의 시선과 맞서야 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성모님께서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자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뿐입니까? 정녕 있을 수 없는 마굿간 탄생,
헤로데 박해를 피하기 위한 이집트로의 피신하십니다.
때로 이해하기 힘든 아들 예수님의 돌출 발언, 결국 아들 예수님의 출가,
그리고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들, 결국 십자가 죽음...
정녕 성모님의 한평생은 길고도 험난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우리에 앞서 때로 힘들고, 때로 외롭고,
때로 시련 투성이의 가시밭길을 용감히 걸어가셨습니다.
때로 밀려오는 외로움에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때로 가야할 길이 너무나 아득해 주저앉고만 싶었습니다.
때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온몸으로 떨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모님은 기다림의 달인, 견뎌냄의 달인이셨습니다.
희망의 달인, 믿음의 달인이셨습니다.
철저하게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바탕에는 다름 아닌 단순함, 소박함, 가난함, 겸손함의 덕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 앞으로 닥쳐오는 비관적인 상황 앞에서도
성모님은 단 한번도 No라고 하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Yes라고 외치셨습니다.
하느님의 다양한 초대 앞에 항상 호의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 결과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은 거룩한 생명의 잔,
하느님의 거처인 지성소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묘하신 분이십니다.
작고 겸손한 사람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총애하십니다.
한사코 밑으로 내려가려는 사람을 어떻게든 위로 끌어올리십니다.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의 생애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답답함과 지루함 속에서도
항상 너그럽고 관대하며 낙관적인 삶의 자세로
묵묵히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셨습니다.
작은 소녀일 때 그녀의 믿음은 겨자씨보다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관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자신의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세주의 어머니, 하늘나라의 여왕,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거듭나셨습니다.
끝없는 신앙의 성장, 그것이 마리아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로 재탄생하는 우리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마리아의 탄생을 우리가 축하하는 것은 마리아의 탄생이
우리와 의미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탄생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축하할 리 없지요.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 여자나 어미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잖아요?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요.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처가 집 말뚝에게도 절을 한다고.
그래서 옛날 저의 어머니 환갑 때 어떤 분이 저의 어머니께 신부님 아들을
저희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축하드린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는 마리아가 고맙기 때문이고,
마리아가 고마운 이유는 마리아로 주님께서 오셨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받고 행복하게 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9월 8일 마리아 탄생 축일과 12월 8일 성모 무염시태 축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 곧 주님의 탄생과 밀접하게 일치하는 축일이고,
성모 무염시태 축일 아홉 달 뒤 오늘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낳아주신 마리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리면서
우리는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낳아주신 동정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의 어머니들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먼저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동정 마리아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봉쇄 관상 수녀들을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불렀는데
그것과 달리 프란치스코는 성령의 정배라고 불렀던 것이며 이는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잉태하셨기 때문이었지요.
다음으로 성령의 정배로서 주님을 잉태하고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도 주님을 잉태하고 낳아드리기까지 하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동정녀가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그 이상하고 괴상한 말을
성모 마리아께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신
그 아홉 달의 임신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씀이신
주님을 임신하고 태교까지 하는 아홉 달이 있어야겠지요.
그런 다음 내 안에서 자라난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 실천을 통하여 낳는 것입니다.
아홉 달 동안 내 안에서 태아였던 주님을 이제 아기로 세상에 낳아주는 것인데,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그 거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낳아준다고
프란치스코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마리아처럼 성령의 정배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재탄생하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입니다.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승화 시몬 신부
초세기부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커져왔습니다.
과도한 신심은 때때로 문제가 되곤 했지만
하느님께 겸손 된 자세로 순명하신 성모님의 자세는
신앙인의 귀감으로서
우리가 닮아야 하는 모델로 존중받고 공경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모 신심은
다양한 측면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과 하늘로 불러올리심은
고대 교회에서부터 믿어왔던 내용이며
이 믿음이 성모 마리아의 탄생까지 연결되어
오늘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질문이 신앙인들에게 주어졌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어떻게 저런 겸손을 가졌을까?
성모님은 어떻게 저런 순명의 자세를 가졌을까?
그녀를 낳아준 부모는 누구이며
성모 마리아에게 어떤 신앙 교육을 했을까?
이러한 질문은 성모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하고
요아킴과 안나 성인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살아간
성모 마리아의 신앙 여정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러한 질문들 안에서 우리가 깨닫는 건
학연 지연 혈연도 무시못하지만
결국 어린 시절부터의 체험과 자신의 선택이
하느님 일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려줍니다.
우리도 그러한 선택을 통해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께 의탁하며 성장해 나가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s://frsimon.tistory.com/1878 [시몬 신부의 신앙이야기:티스토리]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