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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 예술가들이 남긴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보고서
✺ KBS1 <예썰의 전당> [21회] 더 나은 세계, 뜨거운 기록 – 레 미제라블 1부. 2022년 10월 02일 방송 다시보기
● 일러스트 에밀 바야르(Emile-Antoine Bayard,1837~1891)가브로슈(Gavroche)는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등장인물이다. 테나르디에 부부의 세 아들중 한 명이다. 정의로운 마음을 가졌지만 엉뚱한 소년이다.
✵ 예썰의 전당 스물한 번째 주제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역작, 소설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 미제라블’은 개과천선한 죄수 장 발장의 삶을 통해, 혁명의 물결이 일렁이던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벽돌이라 불릴 만큼 두꺼운 책 속에는 주인공 장 발장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설 ‘레 미제라블’을 따라 격동의 시대, 19세기 프랑스로 떠나본다.
◇ 미제라블(Misérables[)
· 형용사 : 비참한, 불쌍한, 불행
· 명사 : 불쌍한 사람한
◆ 레 + 미제라블(Les + Misérables) = 불행한 사람들
✵ 예썰 하나. ‘모자’에 주목하라? 혁명의 상징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 비밀!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대가, 외젠 들라크루아. 그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소설 ‘레 미제라블’처럼 혁명의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이미 유명한 그림이지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꿀팁이 있다. 바로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쓴 ‘모자’에 집중하는 것! 특히 여신의 모자는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에도 나온다. 이 ‘모자’의 역사는 무려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또한 여신을 둘러싼 시위대가 쓴 모자에도 각각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림 속 모자들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그런데 자유와 혁명의 가치를 담은 이 그림이 사실 ‘프랑스 대혁명’을 그린 게 아니다? ‘혁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파헤쳐본다.
● 프리기아 모자(Bonnet phrygien)는 고대 아나톨리아 중부(오늘날의 터키)의 프리기아(Phrygia)에서 유래하는 모자이다. 별칭으로는 자유의 모자라고도 한다. 고대 로마에서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민의 신분을 얻게 되면 이 모자를 썼기 때문에 자유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시민군의 아이콘으로 널리 쓰여 프랑스를 상징하는 가공의 여성인 마리안(Marianne)은 이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역사의 주체는 민중
혁명은 민중의 뜻 - 다양한 계급의 지지를 받은 혁명을 표현
베레모를 쓰고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노동자 계급
상류층인 부르주아 계급
어린 학생들이 쓰던 검정 베레모 모자
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왕실과 귀족에 대한
시민의 투쟁을 그린 그림
✵ 예썰 둘. ‘장 발장’과 ‘팡틴느’가 현실에? 소설보다 더 참혹했던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삶!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은 빵 하나를 훔쳐 19년이나 감옥살이를 한다. 하지만 장 발장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경제가 무너지고 기근까지 들면서 먹을 것이 귀했기 때문이다. 빵 하나의 가격이 노동자 하루 일당과 맞먹을 정도. 장 발장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다. 한편, 소설 속 또 다른 인물인 팡틴느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파리 노동자들을 상징한다. 여관에 맡긴 딸의 양육비를 벌어야 했던 팡틴느. 열악한 환경에서 밤낮없이 일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데. 소설보다 더 비참했던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삶은 어땠을까.
✵ 예썰 셋. 독서를 위해 ‘계모임’까지, 돈 없는 노동자들이 ‘레 미제라블’에 열광한 이유는? 출간 당시 1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비싼 책값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가난한 노동자들은 ‘레 미제라블’을 읽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모여서 책의 내용을 듣는 낭독회는 물론, 독서를 위한 계모임까지 만들었다는데.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레 미제라블’에 열광했던 것일까?
● 코제트(Cosette)는 프랑스어로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팡틴이 붙여 준 애칭이다. 본명은 외프라지(Euphrasie). 좋은 응원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Euphrasia에서 파생된 프랑스어다.
넝마옷 차림의 어린 코제트가 자기 몸의 몇 배나 큰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는 이 모습은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무거운 물통을 들고 물을 길러 다녀야 하는 불쌍한 아이 이다. 후에 뮤지컬과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로도 쓰였다.
아름다운 금발의 팡틴스(Fantine's)
테나르디에 부부가 양육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하자
자신이 팔 수 있는 것을 하나둘 팔기 시작하는 팡틴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98~186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1830년, 캔버스에 유채, 260×325㎝,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 역사적 배경. 흔히들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샤를 10세가 물러나는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세계사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이 그림이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입니까?'하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대답한다. 참고로 이 그림의 부제는 '1830년 7월 28일'이다.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쫓겨나고 그 뒤에 왕이 된 사람이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파로 이름을 날렸던 루이 필리프 1세로, 입헌 군주로 즉위했다. 근데 말이 입헌 군주였지 실상은 소수의 부유한 지주층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사실상 독재왕정에 가까웠다.
7월 왕정에 대한 불만은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새로 등장한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불만이 심해졌고, 이는 2월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7월 혁명으로 왕이 된 루이 필리프는 즉시 이 그림을 구입했다. 그러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타나 시민을 이끄는 ‘자유’는 그에게도 위협적이었다. 지나치게 혁명적인 이 그림은 줄곧 창고 신세를 지다가 1848년에야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해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실권한 다음이었다.
* 그림 해설. 그림 앞의 시체와 그림 속 인물들이 그리는 그림의 중앙에서 우측으로 약간 치우친 역삼각형 모양 등, 그림의 전반적인 구도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1816년 작, 메두사의 뗏목과 매우 흡사하다.
깃발을 들고 있는 여인은 제목대로 로마 신화의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라고 볼 수도 있고, 프랑스를 상징하는 의인화 캐릭터인 마리안(느)이라고 볼수도 있다. 이때 마리안(느) 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었던 '마리'와 '안느'의 합성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마리안라는 캐릭터가 여신 리베르타스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속, 자유의 알레고리는 해방을 상징하는 빨간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종래 금지됐던 공화국의 삼색기를 휘날리고 있다. 자욱한 포연 속에 소년과 중절모를 쓴 신사, 공장 노동자와 농민 모두가 총을 쥐고 일어서게 만든 건 바로 그들 모두의 이상, ‘자유’였던 것이다.
자유의 여신 왼편에 소총을 든 신사는 화가 본인의 모습을 본땄다. 이렇게 화가 본인을 자신의 그림 속에 집어넣는 일은 바로크 시대부터 비일비재하게 있어왔다. 아테네 학당의 라파엘로 산치오나 최후의 심판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의 거장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밀 바야드, ‘최초판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서 코제트(Cosette)의 초상화‘, 1862년
✺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9세기의 프랑스 왕국~7월 왕정 기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쓴 대하소설. 그의 대표작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이며 서양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의 역사, 파리의 건축과 도시 설계, 정치, 도덕철학, 반정부주의, 정의, 종교, 낭만, 가족애의 유형과 인간의 본성,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자기희생과 속죄를 통해 성자로 거듭나는 한 인간의 거룩한 이야기. 역사, 사회, 철학, 종교, 인간사의 모든 것을 축적한 세기의 걸작이다.
* 줄거리. 무식하고 가난한 시골 일꾼 장 발장은 조카들이 굶어 죽을 처지에 놓여 빵 한 덩어리를 훔치다가 무려 십구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석방된다. 출소 후 좌절과 인간에 대한 증오심으로 또다시 절도와 살인의 유혹에 빠지지만, 촛대를 훔치려던 자신을 용서해 준 미리엘 주교에게 깊이 감명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도시에 공장을 세워 사업에 성공한 방 발장은 팡틴이라는 가엾은 여인과 그녀의 딸 코제트를 비롯해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결국 시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집요한 형사 자베르는 장 발장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그를 쫓는다.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 프랑스 낭만파 작가.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삶은 『레 미제라블』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위고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 왕정주의자였던 어머니, 그리고 십대 때부터 글로 생계를 꾸려갔던 문학 천재 위고가 어떤 역사적 격변을 거쳐 “기득권층의 든든한 기둥에서 망명자로, 눈부신 출세주의자에서 독립적인 저항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에서 진보적 운동의 대변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극적인 변신에는 나폴레옹 3세와 형성한 대결 구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하고 탄압받으며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레 미제라블』은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브뤼셀로 망명한 위고 자신이 배척당하는 인물이 되면서 초고보다 확대되어 영국 왕실령 건지섬에서 『레 미제라블』이라는 걸작으로 탄생했다. 가난이라는 주제는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 미제라블을 분석한 책 '세기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저술한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벨로스는 레 미제라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가난과 빈곤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레 미제라블이 이 개념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조했다. “가난 앞에서 품위가 떨어지고 비천해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영혼은 많지 않다.
보통 서민들은 믿기 힘들 만큼 어리석다.” 이렇듯 18세기 말에 출간된 『백과전서』의 ‘가난’에 관한 항목은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곤경에 대해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절실하게 필요해야만 분발해서 생산적인 노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낮은 계급’은 곧 ‘위험한 계급’으로 여겨졌다. ‘불운 탓에 비천해진 사람’에서 ‘돈이 부족한 사람’으로 빈민에 대한 의미가 점진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레 미제라블』이 있다. 장 발장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도 가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인간의 본보기다. 장 발장이 계속되는 물리적, 도덕적, 감정적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를 거부하며 사회적인 계급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데이비드 벨로스 교수는 위고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두 가지 혁명을 서술하면서 그가 왜 이 두 혁명이 아닌 1832년 6월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위고가 실제로 겪은 최초의 혁명은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표현한 1830년 7월 혁명이다.
그런데 사흘 만에 부르봉 왕조를 전복하고 루이 필리프가 정권을 잡게 된 사건에 『레 미제라블』의 초점을 맞추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위고 자신이 직접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내 아델이 넷째 아이를 출산하려던 참이었고, 『파리의 노트르담』 집필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루이 필리프 왕정을 전복시킨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당시 귀족원 의원이던 위고는 군대의 임시지휘관으로 2월 봉기에서 바리케이드를 내린 당사자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빈민 정책에 성난 노동계급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6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위고는 이때 제헌의회 의원으로 무장 폭도에게 계엄을 선포하고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말하자면 『레 미제라블』은 바리케이드에서 싸운 사람이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내린 군대의 임시 지휘관이 쓴 작품인 것이다. 1848년 혁명에 대한 경험은 위고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위고는 1848년 봉기 대신 루이 필리프 집권 초기인 1832년 6월 5~6일에 일어난 봉기를 작품 배경으로 선택한다.
그는 왜 19세기 프랑스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작은 봉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했냐는 질문에 벨로스 교수는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혁명이 원론적으로 ‘혁명’의 의미를 설명하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고는 정확한 역사 기록과 당대 사람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1832년 6월 봉기를 재구성하면서 사실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그는 이 혁명을 성난 하층민이 주도한 저항이 아니라 학생들이 혁명의 선봉에 서는 것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을 동원한 것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싸우려고 하는 교육받은 투사들이 대화와 연설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한 동기도 제각각이었다. 위고가 말하고자 한 바는 이 모든 태도를 끌어안고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이었다.
위고는 혁명과 폭동을 엄격히 구분했다. 소설을 잘 살펴보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1848년 혁명의 의미에 관한 논평 대목에서 그는 민중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을 향한 비뚤어진 폭력은 진압해야 한다’고 쓴다. 바리케이드에서 장 발장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데 자신의 기술을 이용한다. 위고는 총을 통해서만 진보할 수 있다는 앙졸라의 확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장 발장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징벌 시집(Les Châtiments), 프랑스어로 쓰여진 빅토르 위고의 풍자시집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여진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이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레 미제라블은 역대 가장 긴 소설 25위에 해당한다. 출처 한국어 번역본 기준으로는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은 5권 분량의 쪽 수는 2,556쪽으로 매우 길다. 오죽하면 팬덤에서 소설 원판을 부를 때 '벽돌(The Brick)'이라고 부를 정도다.
'빵을 훔쳐서 형을 살고 나왔다가 개심한 장 발장의 이야기'라는 대략적인 개요나 편집본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견문한 뒤 원본에 도전하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편집본에서는 그저 장 발장에게 친절을 베푸는 주교 정도로만 묘사되는 '미리엘 주교'의 신상과 행실, 사상을, 원작에서는 1장 전체를 활용해 100페이지가 넘도록 기술하고 있다. 정작 주인공인 장 발장은 2장부터 등장한다. 게다가 장 발장의 이름은 제 1권이 아니라 마지막 책인 제 5권에 붙었다. 어휘도 엄청나게 풍부해 63만 단어 중에는 약 2만 개의 다른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체 단어들만큼이나 많은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장 발장이 주인공이니만큼 그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긴 하지만, 그 외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자세한 내력 성품, 환경 등을 몇십 페이지를 할애하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고 1830년대를 전후로 하여 살아가는 가족을 먹여살리기위해 낙인이 찍힌 탈옥수, 학대당한 아이, 처절하게 사회 밑바닥 끝까지 몰락한 직공, 나폴레옹 지지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의절당한 청년, 사기꾼 부모 때문에 콩가루가 된 가족, 세상을 바꾸려는 젊은이들, 그리고 엄벌주의에 집착하지만 결함을 가진 사회에 굴복한 경찰 등 프랑스의 많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 등 주변인들의 이야기 또한 함께 다루고 있다.
그들의 서술만 따로 떼 놔도 한 편의 소설이 될 수준이다. 게다가 줄거리를 진행하다가 작가가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나오면 늘어지고, 또 진행하다가 또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나오면 늘어지고 하는 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것도 주요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이 수도원은 어떻느니 저 거리는 옛날에 어떤 모습이었느니 식의 얼핏 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오는데, 이게 한두 페이지도 아니고 대부분 기본 1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기에 관두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프랑스의 문화배경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인이 읽기에는 묘사가 너무 빽빽하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장발장의 메인 스토리를 읽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얼핏 쓸데없는 서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 발장과 코제트, 그리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전체적인 혁명 사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소설이기에 그렇다. 오죽하면 랑송이 이 작품을 일컬어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라고까지 말했을까. 다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극도로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분량이 매우 많을 뿐이다.
사실 이토록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은 레 미제라블 뿐 아니라 근대(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주된 특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위고와 함께 근대 프랑스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표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삼총사 또한 마찬가지인데, 대중적으로 읽히는 편집본이 아닌 원작은 눈 뒤집힐 정도로 두껍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출판사들이 단어 수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즉,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을 길게 쓸수록 원고료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따라서 위고나 뒤마와 같은 거장들이 이 분량을 이용하여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대 사회 전반의 정경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근대 프랑스 소설의 스타일(풍부한 묘사와 광범위한 배경)이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덕분에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작가가 기자 생활을 했고 시도 썼기 때문에 원작은 상당히 사회제도의 비판을 중심으로 서정적인 스토리가 나온다. 위고의 아버지가 워털루 전투 때 프랑스 육군 장교였기 때문에 워털루 전투 부분은 특별히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마리우스와 조르주 대령도 위고와 그의 아버지 조제프 레오폴의 오마주.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좌절에 빠진 프랑스인의 심경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 위상은 현대 프랑스까지 이어져 있어서, 프랑스 국내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불릴 만큼의 지위를 지닌 소설이다. 다만 역시 두께가 두께인지라 프랑스인들조차 원전까지 다 섭렵한 사람은 드물며, 타국과 마찬가지로 편집본의 형태로 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 작품과 관련된 말들
◦ 단테가 시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로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 빅토르 위고
◦ 인류의 고통은…… 멈추지 않소.
인간이 무지하고 절망적인 곳,
여성이 빵을 위해 자신을 파는 곳,
어린이가 교육이나 따뜻한 가정이 없어서 고통 받는 곳이면 어디라도
『레 미제라블』이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오.
문을 여시오. 당신을 위해 내가 왔소.
― 빅토르 위고, 이탈리아어판 출판인에게 보낸 편지
◦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자연이 창조해 낸 작품.
― 테오필 고티에 (프랑스 시인)
◦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 귀스타브 랑송 (문학비평가)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21회] 더 나은 세계, 뜨거운 기록 – 레 미제라블 1부,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