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새끼 양과 같이 양순하게
토끼에게 물을 적당히 주어야 합니다. 너무 많이 주면 설사를 하고 너무 적게 주면 탈수증으로 죽습니다. 물을 먹지 않으면 클로버 풀이나 상추, 아카시아 잎에다 적당히 된장이나 소금을 발라주면 물을 먹일 수 있습니다. 앙골라 토끼를 우리 집에만 키울 때 아이들이 구경 와서 자칫 귀라도 잡으면 큰일이었습니다. 사실 토끼는 귀가 크고 길기에 잡기가 아주 쉽지만 아마 토끼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사람에게 귀를 잡히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토끼가 놀래지 않도록 암막을 쳐 주고 마른 사료를 주고 물도 자주 주지 않으니 웬지 토끼가 자꾸 말라가서 4-H 구락부(클럽)의 형들에게 물어보니 물을 적당히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앙골라 토끼도 다른 토끼 키우듯이 키우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위로 털을 깎아주는데 자꾸만 토끼 살점을 베는 것입니다. 토끼는 반항하고, 털은 잘 안 깎기고, 살점은 베고, 식구들한테 핀잔은 듣고, 토끼가 안쓰럽던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 염소는 본 일이 있지만 털 깎는 양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데 그 일이 참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창경원에 가서 양을 처음 보았고 뉴질랜드를 여행하였을 때 목장의 양을 보고 몰아도 보고 털 깎는 시범도 보고 양고기도 먹어보고 양이 얼마나 양순한 동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양을 번제의 제물로 삼거나 죄지은 사람의 옷을 입혀 죽게 하는 속죄 제물로 쓰인 것은 거부할 줄 모르는 양의 순종성 때문입니다. 또한 더럽혀지지 않는 깨끗한 털과 가죽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요긴한 양식이 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양’(천주의 고양 : 天主의 羔羊)이라고 한 것은 번제물로 바쳐질 것이며, 속죄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기막힌 증언입니다. 또한 양이 털을 깎여 앙상한 알몸을 드러낸 것처럼 악당들에 의해서 옷이 벗겨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의 참 모습을 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을 구약의 최후의 예언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요한은 정말 위대한 예언자였으며 의인이었고, 참된 증거자였습니다.
논어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孫(遜과 같이 쓰임)>
<군자는 의로움으로 바탕을 삼고, 예로써 그것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그것을 말하고, 신의로써 그것을 이룩한다. 그래야 군자이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의롭게 살아야 함에도 세상에 물들어 살았답니다. 주님의 자녀로 진실하고 진리에 의해서 살지 못하고 온갖 사이비에 빠져 잘못 산 것만 같습니다. 군자는 예로써 배우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여야 하는데도 선행을 하는데 게으르고 내가 의롭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주님을 내 생활의 중심에 두어야 함에도 세상 다른 것에 마음을 쓰고 주님의 말씀을 생활에 옮겨 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하며 단호하게 주님을 증언한 것처럼 우리도 용기를 내어야 함에도 입으로만 떠들고 있으니 믿음을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요한은 "주님은 하느님이시며 태초에부터 먼저 계셨던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도 매일 미사 참례하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큰소리로 증언하겠다고 약속만 하고 선교에 게으르고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하여 모범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새해가 되니 더욱더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의 그간의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앙골라 토끼와 양처럼 새하얀 털로 삶과 신앙을 단장하고 싶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축일1월 3일 성녀 제노베파 (Genevieve)
신분 : 수녀
활동 지역 : 파리(Paris)
활동 연도 : 419/422?-512년
같은 이름 : 게노베바, 게노베파, 제노베바, 제느비에브, 주느비에브, 즈느비에브
성녀 제노베파(Genovefa)는 419년 혹은 422년 파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낭테르(Nanterre)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를 만났다. 이때 성 게르마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어 가는 도중이었다. 성 게르마누스는 설교 도중 어린 여자 아이가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고, 설교가 끝난 뒤 여자 아이를 불러 여러 가지를 물은 뒤 성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낭테르 근처에는 수녀원이 없었기에 성녀 제노베파는 집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성녀 제노베파가 언제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 게르마누스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수도복을 입혀 주었다고도 하고, 16세 무렵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의 주교 빌리쿠스(Vilicus)에게서 수도복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부모가 돌아가자 곧 파리로 가서 대모와 함께 머물며 자선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성녀 제노베파가 신성을 모독하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성녀 제노베파가 환시를 자주 체험하자, 그녀의 환시와 예언을 기만과 사기로 취급했다. 그러나 성 게르마누스의 중재와 지원으로 반대자들의 음모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파리의 주교는 그녀에게 파리에 살며 수도생활을 원하는 처녀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겼다.
451년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가 쳐들어와 파리를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성녀 제노베파는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회개와 보속을 하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틸라의 군대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패배하였다.
몇 해 뒤 프랑크족의 왕인 메로비히(Merowig)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성녀 제노베파의 자선과 희생은 더욱 빛났다. 그녀는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점령자를 설득하여 포로 석방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메로비히와 후계자인 아들 힐데리히 1세는 파리 시민들을 특별히 관대하게 대했다. 특히 힐데리히 1세는 파리의 초대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또 메로비히의 손자인 클로비스 1세를 설득하여 파리에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성당이 완공되자 그녀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되었고, 이 성당은 이후 그녀의 프랑스어 이름대로 주느비에브(Genevieve) 성당이라고 불렸다. 성녀에 대한 신심은 많은 기적을 낳았다. 834년 홍수가 일어나 파리가 완전히 침수되는 위기에 놓였을 때 성녀에게 전구하여 이 위험에서 벗어났다. 1129년에 열병으로 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성녀를 기리는 행렬 도중 병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오늘 축일을 맞은 제노베파 (Genevieve)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