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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와 서해안 시대의 중심에 선 아산시!
지금 우리나라는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모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지만, 입신출세 이외에 실질적으로 정말로 도와 줄려고 하는 사람들은 적은 것 같습니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에 흘러 나오는 이야기라든지 그 사람들의 과거 양태를 보아도 그리 많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은 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하고 인연을 맺은 것이 전부이며 똑 같은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만, 국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대통령 당선자를 도와드려야 됩니다. 그 지도자를 통하여 국가의 발전을 돕는 것이지요. 그 분이 야당의 당 대표로 출마하였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백 박사는 그 분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강남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였다. 이 때 백박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에서 떨어진 것을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잘 된 일이라고! (그리고 이 여자 분의 아버지가 도운 결과’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백 박사도 이 분의 아버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 풀칠하는 것을 해결한 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분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언제 한국인이 식량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느냐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도 중시하는 학력, 지연의 고향지역은 경상도와 전라도라 다르지마는 백 박사는 이분의 아버지를 모셨던 열렬한 애국자였다. ‘오늘 일을 거울 삼아 더 잘해 나아가’ 라고 ‘아버지가 죽어서 충고하는 것’이라고! 그리고는 백 박사는 계속하였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무나 만나지 말고 골라서 만나’라고, 그리고 3번째로는 갈 곳도 아무데나 가지 말고 잘 다니라고, 그런데 이 백 박사는 최근 이 여자분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결국은 좋은 분을 물들게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백 박사는 80세가 넘은 동인의 나이나 정부에 들어가서 일한 적이 없는 학자 출신으로서의 과거의 양태 등으로 보아, 자기가 정치를 하겠느냐고 자문하였다. 나라를 위해서 일해온 백박사의 과거 경력으로 보아서 분명하였다. 동인은 현 연구소(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을 자신이 전라북도에서 태어나 유학하였던 독일에서 Voigt 교수의 추천과 박 대통령의 수락으로 이를 처음에 박 대통령이 지난 64년, 독일 방문을 마치고 경제수석으로 자신을 구두 임명하였던 것을 철회하고, 청와대와 한국일보 옆에 민간연구소로서는 처음으로 세웠음을 설명하고 18사람이 시작하여 대통령의 지시로 경부고속도로 등, 대부분의 국책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 등을 하며, 이끌어 왔음을 이야기하였다. 즉, 우리나라 경제발전 초창 기의 역사다.
그렇다고 독일경제학박사 1호인 백 박사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을 느꼈다. 나라를 위한 의무 같은 것이었다. 백 박사는 독일의 현 Merkel 연방수상이 2차 대전 이후,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모였던 5명의 학자들이 사회주의 시장경제학을 독일에 심어야 한다고 주창하였던 질서경제학파(Schaeffer, Euken 교수 등 Order 경제학파)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였고, 그 중 Voigt 교수는 당시 연방수상이던 Erhardt 교수의 동료로서 Dr. Paek 이라는 제자의 눈물 어린 호소를, 당시에 ASEAN 각국에 불 길마냥 번지던 Coup d’etat 때문에 생긴 Kennedy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히 상업차관(3천만 마르크의 대한민국 개발차관)의 인질로서 파 독한 한국간호사, 광부 등 때문에 박 대통령을 독일 의회에서 통과한 만장일치를 핑계로 하여 초청하였음을 예로 들었다. 즉 Voigt 교수와 Erhardt 교수는 친구 사이였다.
이와 관련, 자본주의를 일으킨 독일출신 미국의 경제학자 Max Weber 의 이야기도
‘이를 위하여 이의원님이 총대를 매고, 평생을 우리나라를 위해 해외를 뛰어 다녔고, 주 독일 대사 때부터 알고 지내는 권대사 하고 이를 위하여 큰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마침 이의원께서 아산 출신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저도 국회의원을 해 봤기 때문에 말씀 드립니다만, 그 동안 저는 아산시에 각별한 인연을 맺고 아산을 특별히 보아왔고, 당진도 최근에 3번째 다녀 왔습니다. 아산이란 박 대통령이 주장하여 만들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둥시의 가장 가까운 도시로서 세종시가 대한민국 수도로서 원할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끔 지원해주고 또 서해안 시대를 맞아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아산/당진/평택항이고 상해 시도 평평한 평지에 새워졌으며, 중국이 바다와 접한 황해 쪽의 제일 깊은 곳이라고 해 봐야, 해저 5, 6m로서 비교적 그 깊이가 낮고, 우리나라는 산과 바다로 되어 있어, 해저가 깊어 조금만 파 내면, 아산만/평택/당진 항은 대형 선박 몇 척이 동시에 접안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적 조건을 갖춘 서해안에서 최고의 북쪽 항구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국운이 상승하는 국가입니다.
또한 일본의 국토심의 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일제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국토를 그렇게도 잘 아시던 분 중에 “나까야마 세이찌” 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양반의 충고를 박 대통령께 보고 드렸더니, 박 대통령께서 책상을 치시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3억불의 대일 청구권 자금이란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이 배인 돈으로서 이를 가지고 여한이 없도록 후손들이 써야 함으로 저보고 한. 일 공동연구회의 등을 만들어 좋은 방법을 찾아 보라는 엄청난 임무를 주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시민이 주로 우물 물을 먹었습니다. 이를 대신하여 파이프 등을 묻고 강남 땅의 대부분이 Swamp였기 때문에 비가 왔다고 하면 물바다를 이루던 것을 시정하기 위하여, 이북으로부터 3개의 강이 합류하던 소양감 댐을 세우고 이 댐을 세운 뒤에 팔당 댐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하셨던 분이지요’
‘또한 “다찌” 일본 전자공업협회 부회장은 ‘한국이 동북아에서 복 밭은 나라라고 전자공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에 우리들도 잘 모르던 이 전자공업부문에서는 깨끗한 공기와 물이 필수적인데 일본도 중국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일본은 동경의 후지 산이 사암으로 되어 있어, 푸석푸석한 땅에서 나오는 물과 바람이 태평양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소금기가 있어, 안 된다는 것이었으며 중국도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문제점이 많이 노출된다는 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렀다고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Siemens 에서 이야기하던 앞으로의 경제는 진공관을 이용한 라디오에 달려 있다고 하여, Sony 등을 중심으로 Transistor Radio 등을 개발한 일본기업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젓가락을 쓰는 민족으로서 그것도 철제 젓가락을 쓰는 한 민족은 백인이 못 쫓아 온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부족한 기술 인력을 해결하기 위하여 창원/부평공업단지를 세우고 여기에 일분 전자공업 투자를 포함시켜, 한국의 공과태학을 나온 기술자들을 일반기술자들과 같이 남루하게 옷을 입혀, 발각 날 까봐, 3개월에 한번 Rotation을 시킨 일 등은 일품이었습니다. 이때 LG의 박OO 전무께서 수고가 많으셨고 이래서 LG의 전화기 사업이 시작되는 이야기이지요. 여하튼 우리나라는 국운이 상승하여 상기와 같은 분들의 충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이 연간 10%에 가까운 성장으로 쫓아 오고 있습니다. 아산에 동아시아에서 생산한 물건을 팔아 주고 이들의 국가원수를 1년에 한번 초청 하는 데에, 평생을 외교업무에 보내신 권대사가 추진하고 있는 평화포럼(형식상 그렇게 칭함)을 그 안에 포함, 후진국으로 확대하는 최종 목적은 DMZ 내에 UN평화마을(철원 등)을 만들고 여기 총장으로 현 UN 사무총장이신
그리고 빽 박사는 이 의원에게 고뇌 어린 충고를 하였다. “고도산업사회로의 진입은 기대와 꿈만으로는 결코 되지 못하며, 그 사회를 향하여 치솟는 민족적 열기와 정책 결정자의 슬기로운 지혜, 그리고 경제주체로서 일선에서 뛰는 기업인의 개척자적 정신과 피땀 흘려 노력하는 근로자들의 철학이 없이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고 이것이 바로 현대정치의 이념이며 사상적 근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보다 국가가 우선하며, 현 시기는 우리나라가 여기에서 주저앉느냐 더욱 발전하느냐로 특징 지워진다고 언급하고 장기적인 고려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오래 동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인기몰이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하여도 힘을 보였다.
정부란 변혁을 타고 방향지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백 교수는 아산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서 다음 5가지 큰 이유를 들었다. 이 의원은 한국을 아는 지식인으로서 이를 수긍하는 것 같았고 열심히 적었다. 얼마나 살지 모른다고 노 교수의 눈가엔 어느 새 눈물이 맺혔다.
그 첫째가 교육체계가 없는 데서 유래하는 세대 간의 가치관의 충돌을 들었다. 사회 일부에서 한탄 하듯이 우리 사회 일부를 자칭하는 파벌이 있지만, 그 근원적 잘못은 우리들이 이들의 존재를 허용하였기 때문이었고, 우리들이 지금부터라도 잡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예로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하였다는 곳인 영국에서 “대처”수상이 노조와 관련하여 내린 영국의 결단을 들었다. 한국이 신생독립국으로서 2차 대전 후, 147개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소득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부가 오히려 사회 일부분에 불과한 이들 분파를 키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두 번째로 드는 것이 공무원들 이름의 노조를 들었고, 이들이 협회의 일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예로 들었으며, 국가에서 월급을 타고 있는 교육 공무원들이 노조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하였다. 세상 어디에 국가에서 월급을 주고 후세를 가르치는 교육노조가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이야기였다.
세 번째로 공직자들의 Moral Hazard였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으로서 세계 125개국 중에서 35위와 40위 사이를 오가고 있음을 맨 처음 예로 들었다. 그리고 빽 박사는 우리나라 OOO부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자기가 은퇴한 뒤에 나갈 자리를 보느라고 국영기업체가 과다하게 550여 개로 늘어났다고 이야기하고, 박 대통령의 지시로 자신이 당시에 팔당 댐을 막은 일부터 시작하여 대전의 한 고등학교 토목교사이던 안OO사장을 데려다가 수 자원공사를 만들었음을 예로 들면서 이를 분석하였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청렴지수가 125개국 중 27위로서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있다는 것이다. 1인당 공직자의 부패규모가 한해 국민 소득의 1/4수준에 달한다고 발표한바 있음을 유럽의 한 연구소 이름을 열거하면서 예로 들었다. 게다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공무원과 똑 같은 공기업 쪽에 눈을 돌리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며, 공기업의 빗은 2002년 200조에서 2010년 680조원으로 우려 480조원이나 증가하였다고 그 예로 들었다.
네 번째가 중산층의 몰락이다. 어느 나라나 중산층이 두꺼워야지만 경제도 발전하고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점을 들었다.
다섯 번째로 이들은 상기 문제점들에서 연유한 국민적 무감각과 몰지각을 이유로서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를 해결하여 만이 국가가 다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그 실례로서 장기적인 민주화를 위하여 단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일부 계층이 너무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피하자는 것이 현 정부에게 국민적인 Mandate를 준 것이라고도 백박사는 강조 하였다. 이래서 5가지는 꼭 고쳐져야만 국가가 4만불 시대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국제화 시대로서 다른 나라들도 같이 올라가야 함으로 동 아시아 국가들이 1만 불의 1인당 국민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동 아시아 물품을 갔다가 팔아 주고, 사실상 도와주는 KOEX 같은 건물을 아산시가 지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 이 의원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4만불 시대로 가는 “로드 맵” 에서 맨 처음 하여야 할 사업이 “아산 프로젝트”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이 의원께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백 박사는 대통령 당선자를 자신도 잘 알지만, 학자로서는 간접적으로 주무 장관이라 던 지로부터, 대통령 당선자께서 백박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오찬 장소로 향하였다. (오찬 장인 Restaurant Ritz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재론하고 오찬 이후, 이 의원을 환송)
(작성: 20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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