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麗君私家相冊 등려군 개인 앨범 제2부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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谢雷是台湾的一位老歌星,于1963年踏入歌坛,谢雷一唱成名,
《多少柔情多少泪》使他比后来的青山更早成为歌坛偶像—当然那时候还没有流行这个词汇,同时也扭转歌坛旺女不旺男的传统。
謝雷는 대만의 원로 가수로 1963년 가요계에 데뷔하여서 謝雷는 한 번 노래를 하고 유명하게 되었다,
“多少柔情多少淚”가 그를 후배들 보다 더욱더 빠르게 가요계의 우상이 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이때는 아직도 이런 단어도 유행되지 않았고 동시에 여자는 인기가 있고 남자는 인기가 없는 가요계의 전통을 바꾸어 버렸다。
其后他更以一曲《苦酒满杯》而奠定地位,谢雷当年在台湾师承于音乐家“屏蔽含有”李鹏远。
李先后在电台,电视台,电影界,唱片界担任音乐制作人,教了不少学生。
그 외에 그는 다시“苦酒滿杯”한 곡으로 위치를 굳게 다졌다,謝雷는 그해에 대만에서 오랫동안 음악가“屏蔽含有”李鹏远에게 공부를 하였다.
李先后는 라디오 방송국,텔레비전,영화계,음반계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제작인 이었고 적지 않은 학생을 가르쳤다。
邓丽君,包娜娜,陈纷兰,欧阳菲菲,白嘉莉,凤飞飞,张琪,谢雷 等,均出自其门下。
据其自称,邓丽君因家庭困难,幼年时就跟他学歌,经他悉心关照,成为他的高足。
등려군,包娜娜,陳紛蘭,歐陽菲菲,白嘉莉·白沙,鳳飛飛,張琪,謝雷등이 모두 그이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등려군은 집안 형편이 곤란하였기에
어릴 때 그에게 노래를 배울 때는 언제나 그가 온 마음으로 돌보아 주어서 그의 수제자가 되었다。
1967Chocolate姐妹,
谢雷因着这一层关系对邓丽君十分关照,俩人更是多次同台表演。谢雷回忆,邓丽君在出道之初,
与其他女孩组成“巧克力姐妹”,以活泼可爱的形象备受各界肯定,各类黄梅调,反串,地方戏曲,更是邓丽君的强项。
謝雷는 이런 관계 때문에 등려군에 대하여 매우 잘 보살펴 주었고,두 사람은 또한 여러 차례 같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였다,
謝雷의 회고에 의하면,등려군이 처음 데뷔하였을 때 다른 소녀들과 같이“巧克力姐妹 초콜릿 자매”를 결성하였는데,
활발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여러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黄梅調·황매조,다른 역의 대역하기,지방 희곡은 더욱 등려군의 특기이었다。
邓丽君做状所射之人为其后大名鼎鼎的欧阳菲菲。
早期邓丽君在香港的演唱会,多半是与其他台湾歌星共同组团举行的,比如1970年和吴静娴,杨蜜蜜,皖君等人组成“凯声综合艺术团”,
1973年和杨燕,张帝,谢雷等人组成“东方歌艺团”,与欧阳菲菲,谢雷等组成“新桃花江”等等。
등려군이 한 일은 나중에 유명하게 된 歐陽菲菲를 위해서 한 일이 되었다,
일찍이 등려군은 홍콩에서 한 공연은,대부분 다른 대만의 가수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개최하였는데
예컨데 1970년에 吳靜嫻·오정한,楊蜜蜜·양밀밀,皖君·환군 등과 함께“凱聲綜合藝術團”을 결성하였다,
1973년 楊燕,張帝·志民,謝雷 등과 더불어 東方歌藝團을 만들었다,歐陽菲菲 謝雷 등과 같이“新桃花江 신도화강”등을 만들었다。
此为1970年邓丽君与欧阳菲菲在香港歌剧院的合影,当时欧阳菲菲是华人社会里闪耀的明星,
其立身之名歌包括《热情的沙漠》《在雨中》《珍重》《你想爱谁就爱谁》《拥抱》等一连串歌曲。
이를 위해 1970년 등려군은 歐陽菲菲와 같이 홍콩 가극원에서 함께 촬영을 하였는데,
그때 歐陽菲菲는 중화인 사회에서 빛나는 스타이었고,
유명하게 만든 노래에는 熱情的沙漠,在雨中,珍重,伱想愛誰就愛誰,擁抱 등의 일련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欧阳菲菲甚至间接地成就了邓丽君赴日演唱生涯。1973年,欧阳菲菲和从香港赴日发展的陈美龄,双双拿下唱片大赏,
日本宝丽多唱片公司因此对其他亚洲地区的歌手开始感兴趣,派出了星探,希望在香港物色一位具青春气息、稚气未脱的女歌手。
歐陽菲菲는 심지어 간접적으로 등려군의 일본 진출 공연 생활을 성공시켰다,
1973년 歐陽菲菲는 홍콩에서 일본 진출로 발전한 陳美齡과 더불어 음반 대상을 둘이서 차지하였다,
일본의 Polydor 음반 회사는 이 때문에 다른 아시아 지역의 가수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스타을 찾으러 파견을 하여서 홍콩에서 젊은 생기가 넘치고 아직은 앳된 여가수 한 명을 물색하고자 하였다。
他们在香港找了三个月,遍寻不着,一天,在东方歌剧院,唱着歌曲的年轻少女,眉宇间尽是清新,甜甜的笑容掩不住稚气,
日本星探梦寐以求的新偶像,终于出现了!星探马上把宝丽多公司在香港的负责人郑东汉找来,
他也像发现新大陆一样,迫不及待地打听这位出色的少女歌手。
그들은 홍콩에서 3개월이나 두루 찾았는데 찾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동방 가극원에서 노래를 하는 젊은 여자가 양미간이 모두 맑고 새롭고 아름다운 용모가 앳되 보였는데,
일본의 스타 발굴 팀은 꿈속에도 찾던 새로운 아이돌스타·Idol Star를 찾은 것이었다,
마침내 나타났다!스타 발굴 팀은 빨리 홍콩에 있는 Polydor 회사의 책임자 鄭東漢을 찾았는데,
그도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다 하며,한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이 뛰어난 소녀 가수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宝丽多唱片公司迅速和邓丽君签了约,把她送上日本舞台。其后,欧阳菲菲更是给予邓丽君相当多的关照,甚至成为她的歌迷。
欧阳菲菲第一个打进日本歌坛,她和邓丽君是台湾仅有的两位参加过日本NHK三次”红白“大赛的歌手。
Polydor 음반 회사는 재빠르게 등려군과 계약을 하고는,그녀를 일본 무대로 보냈다,
이후에 歐陽菲菲는 더욱 등려군에게 상당히 많은 배려를 해 주었고,심지어 그녀의 팬이 되었다,
歐陽菲菲는 처음으로 일본 가요계에 진출하였으며,
등려군과 함께 대만에서 몇 안 되는 일본 NHK 가요 홍백전에 3차례 참가한 두 사람이었다。
2003年邓丽君去世八周年时,欧阳菲菲接受台北之音“音乐enjoy”主持人陈乐融专访时,
也忆起以前和邓丽君一起做秀的日子,菲菲表示,因为邓丽君比她小,所以以前她都叫她“小鬼”!
菲菲说,她一直很羡慕邓丽君柔美的嗓子,相比之下,自己就像个大大咧咧的男人婆。
欧阳菲菲1972年打入日本”红白“大赛的成名曲《甜蜜活到底》,至今仍风靡日本。她现时旅居日本。
2003년 등려군이 세서한 지 8주년 때,歐陽菲菲는 台北之音·타이베이의 소리의“음악 Enjoy”사회자인 陳樂融과 인터뷰를 할 때,
그녀도 이전에 등려군과 함께 Show를 하던 날도 기억이 나며,歐陽菲菲는 등려군이 자기보다 어렸기에,
이전에 그녀는 언제나 등려군을“꼬맹아·小鬼”하고 불렀다고 하였다,
그녀는 언제나 등려군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부러웠는데 비교해 보면,
자기는 마치 걸걸하고 대충대충하는 남자스러운 노파 같다고 하였다,
歐陽菲菲는 1972년 일본의 홍백전에 참가하여 유명해 진“甜蜜活到底”가 지금껏 여전히 일본을 휩쓸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일본에서 살고 있다。
1969年在台北国宾饭店与原住民少女一起跳山地舞。邓丽君起初是作为台湾一个类型歌星引起人们关注的。
她的台风与少女的天赋都令当时的台湾人着迷。晚会或者重要场合如果没有邓丽君,几乎可以认为是一件很没有面子的事。
邓丽君穿上围裙,当上厨娘,站在一堆锅碗瓢盆之中。这是1970年她在香港卖汤圆做秀的照片。
1969년 대북 국빈호텔에서 원주민 소녀와 같이 山地舞를 추었다,등려군은 대만의 스타일로 관심을 불러 모은 첫 번째 가수로 인식되었다,
그녀의 대만 스타일과 소녀적 천부적 재능은 그때의 모든 대만인을 매혹시켰다,
저녁 모임이나 중요한 자리에 만일 등려군이 없으면 거의 체면이 없는 일이라고 할 만하였다。
등려군이 앞치마를 입고서 주방 아가씨가 되어 부엌 취사도구 앞에 서 있다,
이것은 1970년 그녀는 홍콩에서 湯圓을 팔면서 Show를 하는 사진이다,
☆湯圓 탕원:찹쌀가루 등을 새알 모양으로 빚은 것으로 대부분 소를 넣어 만듦,또는 이것을 넣고 끓인 음식。
事实上,邓丽君天生喜欢做饭,并有一手好厨艺。她的弟弟邓长禧回忆说,
他在美国与姐姐住在一起时,大部分时间都是姐姐做饭给他吃,
而且做得相当不错,据邓家人称,邓丽君还是个美食爱好者。
사실상 등려군은 음식 만들기를 천성적으로 좋아하고 아울러 요리 솜씨가 아주 좋았다,
그녀의 남동생 등장희가 회고하기를 그가 미국에서 누나와 같이 지낼 때,대부분 시간은 모두 다 누나가 자기에게 먹을 것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잘 만들었다,등려군 집안 사람의 말에 의하면 등려군은 또한 미식 애호가 였다고 하였다。
她最爱吃猪脚,也非常喜欢东坡肉。在香港时,天香楼是她最常光顾的餐厅,每次必点的菜即是“东坡肉”这道菜。
点菜时,她常常告诉一起来的朋友,因为童年家境不好,偶尔菜中会出现肉就会感到兴奋不已。
그녀가 먹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돼지 족발로,동파육을 매우 좋아하였다,
홍콩에 있을 때 天香樓는 그녀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음식점이었으며,갈 때마다 반드시 주문하는 요리는 바로 동파육이라는 음식이었다,
요리를 주문할 때 그녀는 언제나 함께 온 친구에게 말을 하였는데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뜻밖에 요리 속에서 고기를 발견하면 흥분을 멈추지 못한다고 하였다。
吃香喷喷的“东坡肉”,是她童年记忆中最美好的回忆。
有同期艺人透露,邓丽君不仅外形健康活泼,而且意外的是,胃口也相当好,可以连吃几碗面而面不改色。
구수한 동파육을 먹는 것이 그녀가 어릴 때 기억 속에서 가장 맛있던 것으로 회고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예술인이 이야기하는 것인데,등려군은 외형상으로 건강하고 활기 찰 뿐만 아니라
또한 뜻밖에 식욕도 매우 좋아서 국수 몇 그릇을 먹고 나서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였다。
邓丽君在举办演唱会的高雄金都乐府自己的海报前留影,她与张琪,张百龄一同登台,宣传海报上她被冠以天才歌星的称谓。
邓丽君在港九明爱中心演出《小放牛》的剧照。1970年8月邓丽君在港九明爱中心演出《小放牛》。
공연회가 개최된 高雄의 金都樂府의 자기의 Poster 앞에서 촬영한 등려군으로 그녀는 張琪,張百齡과 함께 무대에 서 있으며,
선전 Poster에 등려군은 천재 스타라는 칭호가 쓰여져 있다。
港九明愛 Center에서 공연한“小放牛”의 스틸 사진의 등려군,
1970년 8월 등려군은 港九明愛 Center에서“小放牛 소방우”를 공연하였다,香港明愛 Caritas Hong Kong 1953,
在陈旧的彩色照片上是青春的邓丽君,她的装扮不像个明星,更像是一个中学生,在稚气与情窦初开之间。
她面孔像个月饼,鼻子低而扁,并不非常漂亮。
낡은 빛깔의 사진에 젊은 등려군이 보이는데 그녀의 옷 모습은 스타 같지 않아 보이고 오히려 중학생처럼 보인다,
앳된 모습과 막 사랑에 눈을 뜨는 시기 사이로 그녀의 얼굴은 월병처럼 보이는 데 코는 낮고 넓고 아울러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다。
那时的邓丽君爱唱《小放牛》扮牧童。而这已是三十多年前的事情了,二十多年后成熟,丰腴的邓丽君自是另一番景象。
1970在台北大歌厅表演。邓丽君常常走台于各地歌厅。有时候一晚上要走好几个场子。
그때 등려군은 목동으로 분장하고“小放牛 소방우”를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30여 년 전의 일로,20여 살이 지난 성숙한 면이 보이며 포동포동한 등려군이 스스로도 또 다른 모습이다。
1970년 대북의 큰 음악홀에서 공연하는 모습,
등려군은 언제나 여러 음악홀의 무대로 달려갔다,때로는 하룻밤에 여러 곳을 가야하기도 하였다。
邓妈妈与小邓丽君常常是很晚才能回到家里。邓长禧回忆说,那时候看到姐姐很辛苦,觉得她很了不起。
有时候因为自己早晨起来要上学,而要早睡,早晨起来,姐姐在睡觉,故有时候竟然会半个月说不上一句话。
등려군 어머니는 어린 등려군과 같이 언제나 아주 늦게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등장희는 회고하기를 그때 누나는 매우 고생스러워 보였으나 누나는 매우 대단하다고 느꼈으며,
때로는 자기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 하였기에 일찍 자야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보면 누나는 잠을 자고 있었기에 때로는 놀랍게도 15일 정도 말 한마디도 못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但邓丽君天生喜欢舞台,并不以此为苦,反而自得其乐。
1970年应凯声唱片的邀请随台湾众多女歌星一同赴港演出,
站在众人之中,邓丽君应是最年轻的一个,她穿着短裙,与其他女歌手迥然不同。
그러나 등려군 천성적으로 무대를 좋아하였기에,아울러 이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았다,오히려 이것을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1970년 개성 음반의 초청에 응하여 대만의 많은 여가수들과 같이 홍콩으로 가서 공연을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서 있는 등려군이 분명히 어려 보였다,그녀는 이외의 여가수와는 완전히 다르게 치마를 입고 있었다。
첫댓글 1주일 만에 글을 올려 주시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임에다 가족 행사가 잦아서 뜸했었네요, ㅎ
진캉시앤님께서 보내 주신 번역문 메일의 본문이 중첩되어 있어서 한참 헤맸슴다, 원문과 대조한 후 올리긴 했으나 사진 준비가 부실하여 부끄럽군요.. 번역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진은 지난 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鄧麗君私家相冊의 것을 모두 가져 올 수는 없어서 중국 회원들이 제공하는 것을 인용합니다,
분류 되지 않은 파일 중에서 저도 본문 내용에 따라 찾아 삽입하고는 있는 실정이죠..
번역한다고 고생했습니다.
아. 謝雷(간체자 : 简体字 谢雷, Xiè léi) 라는 분의 본명은 사무웅(謝茂雄 Xiè Mào-xióng) 이고, 태여난 연도와 1940년생 대만 現 타이베이 시(臺北市)0 태평 정(太平町) 입니다.
謝雷와 함께 찍은 등려군의 그시절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