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성큼 다가온 6월.
가파른 인왕寺를 오르는데 80이 넘어 보이는
스님이 계단에 앉아계신다.
때는 이때다 싶어, 지난번 방문 때 궁금하였
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필자: 스님, 안녕하세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스님: 말씀 해보셔.
필자: 나무관세움보살 할 때, 나무가 한자로
는 南無남무 로 벽에 적혀있네요?
스님: 직역하면 남쪽에 없다는 뜻이 아니고 인
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 갔
을 때 그렇게 쓰이기 시작 된 거예요.
아, 그렇구나.
아주 궁금한 게 풀렸을 때는 심장으로부터 떨림
으로 오는 소리가 들린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서 인왕사仁旺
寺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 태조가 인왕寺에서 조생스님
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조의 후
원으로 1397년경에 절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
다.
창건주는 무학대사와 조생선사.
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
었고,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10년경 선바
위를 중심으로 박선묵 거사가 선암정사를 세우
면서 중창하였다.
박선묵 거사가 세운 '선암정사'
1942년 분리된 여러 개의 암자를통합하여 ‘인왕
寺’로 칭하고 봉은사 말사로 등록하였다.
고요한 인왕寺는 거창하지 않고 아담한 몇 개의
사찰로 이루어져 있다.
좁다란 골목 구멍가게가 반갑다.
커피 한 잔으로 잠시 땀을 들이며 깨달음에 무섭
게 매달린 인왕寺를 찬찬히 둘러본다.
선암정사와 인왕사 대웅전 사이로 난돌계단을
오르면 ‘국사당國師堂’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
(木覓大王)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조선신궁을 지으
면서 1925년 지금 위치로 옮겨지었다.
지금도 이곳 국사당을 무대로 내림굿, 치병굿,
재수굿 같은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28호.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던 국사당國師堂